Story Reader / 기념일 이벤트 스토리 / 운명의 실타래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

인연의 결실

인연 신사

깊은 밤

깊은 밤, 인연 신사

요괴들이 오가는 신사 안에는 등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세레나와 지휘관은 다다미 위에 마주 앉아 있었고, 궁사와 운알이 그 옆에서 두 사람의 장신구와 화장을 손보고 있었다.

세레나는 눈을 깜빡이지 않고 앞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세레나

…푸흡.

겨우 한 글자만 내뱉었을 뿐인데, 움직임이 너무 컸는지 궁사에게 제지당했다.

수우

존하, 움직임을 조금만 더 자제해 주세요.

지휘관은 크게 소리 낼 수 없어 입 모양으로만 대답했다.

세레나

[player name] 님이 꼼짝 못 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요.

차 한 잔 마실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궁사와 여우가 마침내 작업을 마쳤다.

운알

다 됐다. 잠깐만 기다려, 수우랑 의식에 쓸 도구들 가져올게!

궁사와 여우가 자리를 뜨자마자, 지휘관은 긴장을 풀며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세레나

괜찮으세요? 그렇게 힘드셨어요?

지휘관은 잠시 대답을 망설이다가, 이내 자세를 고쳐 앉았다.

세레나

사실 저도 그래요…

갑자기 여기까지 와버렸네요. 비록… 마음속으로는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지만요...

세레나

음… 그러니까, 언젠가 이렇게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해왔지만… 막상 닥치니 실감이 안 나요.

운알이 했던 질문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었어요.

세레나는 웃음기를 거두고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세레나

지휘자님, 저희… 지금 어떤 사이인가요?

세레나

쉿.

대답하려던 순간, 세레나의 검지가 지휘관 입술에 닿았다.

세레나

대답하지 마세요.

저에게… 조금의 여지는 남겨 주세요.

오늘 밤 이 혼례가, 단지 상황에 떠밀려 하는 게 아니라면... 전 그걸로도 충분해요.

잠시 미묘한 분위기가 흘렀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운알

다녀왔어... 어라? 지금 둘이 뭐 하는 거야?

입에 거울을 물고 달려오던 여우가 두 사람을 보고 멈칫했다.

운알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돼. 나중에도 기회는 있어.

세레나

아... 아니에요...

늘 우아하던 세레나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운알에게서 거울을 받아 든 뒤, 살짝 숨을 내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거울은 고풍스러운 무늬가 새겨진 이면경으로, 양면 모두 맑고 투명하게 빛났다.

세레나

이건 어떻게 쓰는 건가요?

운알

각자 손바닥을 거울 양면에 올려.

여우가 앞발을 들어 두 사람의 움직임을 유도했다. 아직 두 손이 올라가기 전, 세레나가 입을 열었다.

세레나

지휘자님...

세레나

우리의 관계는, [player name] 님이 나중에 스스로 잘 생각해서 정해주세요.

준비를 마치자, 궁사가 방울을 들고 장엄하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수우

신랑, 신부께서는 거울 속으로 들어가 주십시오.

순간 거울에서 찬란한 빛이 솟구쳐 올라 둘의 손을 따라 나선형으로 번져갔다.

빛은 곧 세레나와 지휘관을 완전히 삼켜버렸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눈앞에는 텅 빈 공간뿐이었고, 사방이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있었다.

조심스레 세레나의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앞으로 한 걸음 내딛자, 발밑에서 잔잔한 물결이 퍼지며 서서히 글자가 떠올랐다.

다시 이름을 부르자, 잔물결이 일고 그 안에서 또다시 글자들이 피어올랐다.

<i>친애하는 낯선 이에게: </i>

<i>우편함에서 이 낯선 편지를 보시게 되면, 조금은 당황하시겠죠.</i>

<i>업무가 바쁘셔서 이런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으시다면, 그냥 이 편지를 버려주세요.</i>

<i>혹여나 시간이 남아, 무료함을 달래고 싶으시다면, 이 편지를 다음 페이지로 넘겨 주세요.</i>

글자가 눈에 들어온 그 순간, 지휘관은 이 모든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다.

그것은 둘의 "첫 만남"이었다.

잔물결은 이내 물방울이 되어 피어오르더니, 거대한 파도가 되어 몰아쳤다. 그녀와 함께한 기억들이 해일처럼 한순간에 밀려들었다.

여우가 앞서 말했던 그대로였다.

편지로 시작해 재능을 인정하고, 성격이 맞아 오랫동안 인연이 지속된 거구나.

과거의 기억들이 빛처럼 주위를 감싸며 회전했다.

서로를 알게 되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설렘으로 가득했던 시간들.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며, 상대방의 신념에 감동했던 순간들.

사랑이란 단어로 모든 걸 담아내진 못하겠지만, 함께 보낸 시간 속에 담긴 진심만큼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그렇게, 너무도 당연하게 사랑에 빠졌다.

사랑은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찰나. 그들은 언제 사랑에 빠지게 된 걸까?

마음을 담아 한 줄 한 줄 써 내려간 편지 속 고백에서? 서로의 곁을 지키며 나눈 웃음 속에서?

아니면, 이상과 신념을 위해 함께 피를 흘리며 싸운 시간 속에서?

수많은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자, 감정이 북받쳤다. 지휘관은 그 벅찬 마음을 담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귓가에 세레나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저도… 잘 기억나지 않아요…

함께한 모든 순간이 다 너무 소중해서, 그중 어느 하나를 꼽을 수가 없어…

대답을 마친 순간, 해일처럼 밀려오던 기억이 조용히 가라앉고, 눈앞에 찬란한 색이 번지기 시작했다.

은은한 등불 아래, 자등꽃이 드리워졌다. 연못 위에 선 그녀는 발끝으로 잔잔한 물결을 만들며, 긴 소매를 가볍게 흔들었다.

치맛자락이 등불 빛을 퍼뜨리고, 하얀 비단 천이 꽃잎처럼 흩날렸다.

그녀의 춤사위에 맞춰 황혼이 드리워지자, 연못 안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하늘에선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운알

두 집안이 혼인을 맺어 한자리에서 서약하니, 천생연분으로 영원히 짝을 이루어 하나가 되리라.

자등꽃이 만발하니 집안이 화목하고, 앞으로도 후손이 번창하리라.

백발이 될 때까지의 약속을 편지에 새기고, 붉은 단풍잎에 담긴 맹세를 혼서에 남기노라.

세레나

[player name] 님...

아직 여운이 맴도는 가운데, 그녀의 속삭임이 귀를 간질였다.

세레나

사랑해요.

의식이 돌아온 순간, 지휘관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뒤엉킨 생각들은 파도처럼 밀려 나가고, 현기증이 몰려왔다.

이전 기억들이 흐릿해졌다.

오랫동안 같은 자세로 있었던 탓에, 지휘관은 어지럼증으로 휘청거리며 머리를 감싼 채 일어섰다.

주변을 둘러보니, 낡고 오래된 유적 한가운데에 있었다. 눈앞의 풍경을 살피며 조금씩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지휘관은 혼잣말하며, 옷 주머니를 뒤져 단말기나 다른 물건이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바로 그때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레나

지휘자님? 거기 계세요?

몸을 돌려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던 지휘관은 그대로 멈춰 버렸다.

마지막 한 마디가 숨결과 함께 잠시 멎었다.

밝은 아침 햇살 속, 나뭇가지와 잎사귀들은 슬로우 모션처럼 아주 느리고 부드럽게 흩날리고 있었다.

숲속의 바람 소리와 새소리는 멀어졌고, 앞서 희미했던 기억들이 맑은 물에 잠긴 것처럼 갑자기 선명해졌다.

그녀의 옷자락은 산안개 속에서 살랑였고, 검은 머릿결 사이로 드러난 얼굴은 찬란한 빛에 물들어 있었다.

그건 꿈일 리가 없었다.

둘은 아무 말 없이 바라보다, 서로를 향해 걸어갔다.

옷자락이 스치며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풀잎 속에서 잠자던 반딧불들이 조용히 날아올랐다.

열 걸음쯤 남았을 때, 두 사람의 미소가 산바람에 녹아들어 퍼져갔다.

한 걸음쯤 남았을 때, 눈을 감고도 서로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이마를 맞대자, 하고 싶은 말들이 무언의 속삭임처럼 맞잡은 두 손으로 스며들었다.

어느덧, 멀리 떠났던 여름이 다시 그들 곁으로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