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 산길
깊은 밤
깊은 밤 신사 산길
세레나와 함께 빛으로 물든 산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 신사의 윤곽이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로 다른 정체와 기운을 지닌 손님들이 산길 옆 숲, 갈림길, 심지어 하늘과 땅을 통해 하나둘씩 모여들자, 주변은 점점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중 몇몇 정령들은 세레나, 즉 자등의 법력을 알아보고 지나가면서 인사를 건넸고, 세레나 역시 품위 있게 응답했다.
신사 입구에 도착했을 때, 그곳엔 가면을 쓴 한 인물이 사방에서 도착하는 손님들을 여유롭게 맞이하고 있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서로 시선이 마주쳤다.
...
자등님, 멀리까지 마중 나가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분은...
듣자 하니, 자등님께서 신혼 대전이 끝난 후, 어떤 분과 인연을 맺으실 거라고… 혹시, 이분이 그분이신가요?
네, 맞습니다. 이분은 제 연인 [player name]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세레나의 말을 들은 궁사는 가면을 벗고, 조금 전까지의 느긋함 대신 진중한 모습으로 예를 갖췄다.
두 분께서 오늘 밤 이 신사를 찾아주신 것만으로도, 저희로선 큰 영광입니다.
그런데...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세레나가 자연스럽게 되물었지만, 인간 지휘관은 그녀의 목소리에서 미세한 경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닙니다. 두 분께서 인연 신사에 와주신 것만으로도 큰 영광인데, 어찌 감히 의심을 품겠습니까?
이렇게 직접 뵙고 나니, 저도 모르게 감탄이 나오네요. 이토록 굳건한 두 분의 각오와 마음가짐, 진심으로 존경스럽습니다.
무슨 말씀인지요?
흠… 설마 두 분께선, 서로의 차이에 대해 한 번도 고민해 보신 적 없으신가요?
비록 자등님께서는 수련을 거듭해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다 해도, 수명은 고작 수백 년 남짓.
반면 산군께서는 원력으로 육신을 이루고, 법력은 신의 경지에 다다랐으며, 기세마저 비범하십니다. 누가 보더라도 범접하기 어려운 존재이지요.
이토록 큰 차이가 있음에도 두 분께서 연을 맺기로 결심하셨으니, 어찌 존경스럽지 않겠습니까?
...
세레나는 잠시 침묵에 잠겼다. 살짝 흐트러진 시선은, 상대의 질문에 당황한 것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떠올라서였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궁사님께서는 신분과 수명이, 진심을 가로막는 장벽이라 생각하시나요?
제 얕은 견해로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다만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한 사람은 여전히 젊고 눈부신데, 다른 한 사람은 늙고 쇠해버린다면, 저는 그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두 분께서는 그런 미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신지요?
...
세레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고, 대신 인간 지휘관의 손을 더욱 꽉 잡았다.
그 모습을 본 궁사는 미소를 지으며, 지휘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럼 존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자등님의 아름다움이 사라지고, 몸이 병들고 약해진다 해도, 여전히 같은 마음으로, 변함없이 곁을 지키실 수 있겠습니까?
태산처럼 무거운 말을, 이리 담담하게 내뱉으시다니, 아마 존하 같은 분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참으로 가슴을 울리는 말씀이네요.
무례를 무릅쓰고 한 가지 더 여쭙고자 합니다. 자등님의 일생이, 존하의 긴 세월 속에서 찰나처럼 스쳐 가는 순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궁사는 전보다 더 진지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주위 요괴들도 이상해진 분위기를 눈치채고, 멀리서 조용히 주시하고 있었다.
궁사의 말투는 질문이라기보다는, 마치 스스로도 답을 구하지 못한 채, 타인의 입을 통해 자기 마음 깊은 곳을 확인받으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존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
존하의 명쾌한 답변에 감탄을 금할 수 없군요.
자등님께서 정말 훌륭한 인연을 만나셨군요. 제가 괜한 질문으로 실례를 범했습니다.
신사 안으로 들어가 편히 쉬십시오. 존하와 자등님의 지금 "이 시간"을 더는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궁사와 인사를 마친 두 사람은 도리이를 지나 신사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몇 채의 건물을 지나, 궁사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세레나는 한숨을 내쉬며 안도의 기색을 보였다.
후...
괜찮아요. 지휘자님.
그냥... 아까 궁사가 한 질문이 자꾸 생각나서요.
아니요.
세레나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에게 미래란 감히 꿈꿀 수도 없는 사치스러운 시간이기에, 전에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하지만 지휘자님을 다시 만나고, 행복이 너무 갑작스레 찾아왔어요. 그래서일까요, 한동안 잊고 지냈던 것들이 있었네요.
저도 알아요. 지금 생각해 봤자 아무 의미 없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란 걸… 하지만…
세레나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지휘관을 똑바로 바라보며, 솔직하게 물었다.
나중에 세월이 흘러… 한 사람은 그대로고, 다른 한 사람은 늙어 갈 텐데, 그때도 저와 함께실 건가요?
세레나는 입술을 꾹 다문 채 잠시 말이 없었다. 얼굴에 미묘한 표정이 스친 뒤, 한참이 지나서야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지휘자님, 여긴 인연 신사예요. 여기서 한 말은 되돌릴 수 없다는 거 알고 계시죠?
그 말을 마친 세레나는 발끝으로 조심스레 다가와, 지휘관의 품에 안겼다.
세레나는 평소처럼 지휘관의 감정에 자연스레 공감하거나 마음을 나누려 하지 않았다.
대신 눈을 감고 천천히 다가와...
지휘관 품에 포근히 안겼다. 따스한 숨결이 귓가에 닿았고, 희미한 속삭임이 산바람에 흩어졌다.
지휘자님을 향한 제 마음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인연 신사
깊은 밤
깊은 밤, 인연 신사
잠시 머무른 후, 빛의 안내에 따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문이 잠겨있는 방 앞에 도착했다.
쇠사슬을 끊고 방 안에 들어서자, 운알이 재빠르게 여우 요괴의 모습으로 튀어나왔다.
우와! 정말로 성공했어!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도 괜찮나요?
괜찮아! 여긴 내가 처음으로 제사를 받았던 곳이야. 여기서는 문제없어.
그리고 저것만 치우면 다시 인연의 여신으로 돌아갈 수 있어.
말을 마친 여우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따라가 보니 공중에 정교한 방울 하나가 떠 있었고, 대들보 곳곳에서 뻗어 나온 붉은 실들이 그 방울을 둘러싸고 있었다.
신표가 방울이었어요? 매듭이나 손수건 같은 물건일 줄 알았는데…
헤헤. 의외지?
그건 말이야…
제가 운알에게 준 첫 번째 선물이자, 저희의 인연이 시작된 계기이거든요.
뒤에서 누군가의 감회가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 앞에 어느새 궁사가 서 있었다. 그가 손에 든 고헤이를 가볍게 흔들자, 방울이 그의 손으로 날아들었다.
너...!
넌 자등님의 장신구에 붙어 있었으면 안 됐어. 아니, 사실 어떤 물건에 붙어 있어도 다 알 수 있어.
그리고 이분도, 자등님이 아니시잖아?
여우가 둘 앞을 막아섰다. 방어 자세를 취하는 대신 의아함과 서운함이 섞인 표정으로 궁사를 바라보았다.
수우... 대체 왜 이러는 거야?
...
자신의 진짜 이름이 튀어나오자, 궁사는 한동안 침묵하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운알,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있어?
아니, 네가 그럴 리 없지. 다른 사람을 도울 땐 언제나 하나하나 세심하게 배려하면서, 정작 나에겐, 그리고 너 자신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깊게 고민 한 적이 없어.
… 무슨 뜻이야. 천도와 결혼하는 게 너한테 그렇게 중요한 일이었어?
수행이 필요하다고 말했으면 진작 가르쳐줬을 거야. 다른 이에게 향화 신도를 나눠주는 것도 가능하다고.
됐어… 넌 이해 못 해.
수우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지휘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존하께서는 어떠신가요? 제 행동이 이해되시나요?
궁사의 말과 행동, 그리고 운알이 한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어딘가 감정선이 어긋나 있다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흩어져 있는 단서들로는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에 부족했다.
존하마저 그렇게 말씀하시는군요.
전 존하께서 연인과 함께 오신 걸 보고, 저를 인정해 주신 거라 믿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존하의 답변에 다른 뜻이 숨어 있었군요. 제 생각이 짧아서, 숨겨진 뜻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말을 마친 궁사는 다시 가면으로 얼굴을 가렸다.
운알을 도와 이 혼란을 바로잡고자 하시겠다면... 그렇게 하세요.
그 끝에 희망이 없다 해도, 전 이 길을 직접 걸어가 볼 생각입니다.
말이 끝나자, 방울에서 향화의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곧 수우의 온몸이 그 기운에 휘감기며 천천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갔다.
두 분의 실력을 보여주시죠.
수우의 말이 끝나자, 신사 구석에서 향화 원력에 둘러싸인 신도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