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기념일 이벤트 스토리 / 운명의 실타래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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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맹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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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꽃집

밤, 마을 꽃집

지휘관은 꽃집 앞에서 한참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더니, 긴 등나무 덩굴이 여우의 목에 둘러져 있는 천을 꿰뚫고, 여우를 문밖으로 높이 들어 올렸다.

여우는 네 발을 축 늘어뜨린 채 얌전히 공중에 매달려 있다가, 덩굴이 바닥에 내려놓자 그제야 꼬리를 살랑였다.

자등

이제부터는 인연의 여신님께서 함께하실 필요가 없으니, 밖에서 잠깐 기다려 주세요.

운알

네에~

아이처럼 말끝을 길게 늘어뜨린 여우는, 방문이 닫히자 비틀거리며 지휘관 발치로 다가왔다.

운알

하아, 자등님 요즘 뭔가 달라졌어. 새 옷 만드는 것도 안 보여주시네.

운알

뭐가 갑작스러워!

너희 둘이 가까운 사이 같아 보여서 부부 연기까지 허락해 준 건데…

자등님 웨딩드레스까지 입겠다니… 그건 너무 제멋대로잖아.

운알

법술을 쓰면 금방 만들 수 있어.

운알은 목을 쭉 빼고,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도 괜히 꽃집 쪽을 힐끔거렸다.

운알

궁금해...

운알

기대되지 않아?

여우는 기웃거리던 걸 멈추고, 고개를 갸웃하며 지휘관을 바라봤다.

운알

너희 진짜 이상해. 결혼이 얼마나 중요한 건데, 왜 이렇게 별거 아니라는 듯이 행동해?

관련도 없는 일에 부부인 척 연기까지 하겠다고 하고, 세레나는 태연하고, 너도 별로 신경 안 쓰는 것 같고…

곧 좋아하는 사람이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올 텐데, 감정 변화도 없어 보이고…

잠시 고민하던 여우가 인간의 바짓단을 톡 건드리자, 지휘관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여우는 맑고 투명한 눈으로 인간을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에 잔잔한 빛이 퍼지며, 마치 누군가가 의식을 스치고 지나가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 들었다.

인간은 순간적으로 경계했지만, 운알은 아랑곳하지 않고, 물에 젖은 고양이마냥 몸을 털어 냈다.

운알

너희 관계를 잠깐 들여다본 것뿐이야. 기억이 아닌 인연만 본 거니까 안심해.

운알

편지로 시작해 재능을 인정하고, 성격이 잘 맞아 오랫동안 인연이 지속된 거구나.

로맨틱하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멋져.

인연의 여신으로 지낸 최근 몇 년 동안, 이런 관계는 거의 본 적이 없어.

여우는 고개를 숙였고,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운알

그래서 더 이해가 안 가.

지휘관이 슬쩍 손을 들어 운알의 머리를 톡 치려던 순간, 문이 삐걱 열리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레나

둘이서 무슨 얘기 하고 있어요?

고개를 들자, 세레나가 문밖으로 나오고 있었고, 시선이 자연스레 마주쳤다.

달빛이 그녀의 눈매를 은은하게 감싸며, 평소의 단아하고 청초한 모습에 아련한 분위기를 살짝 더했다.

저녁 바람이 그녀의 옷자락을 살랑이고, 소매 사이로 드러난 새하얀 손목은 눈길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수줍은 마음이 그 말들을 입술 끝에 가둬두었다.

그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차고 아름다웠다.

발밑에서 움직임이 느껴져 고개를 숙였더니, 여우가 의기양양하게 웃고 있었다.

운알

뭐야, 역시 기대하고 있었네? 완전히 넋 나갔는걸?

본능적으로 부정하려 했지만, 고개를 드는 순간 물결처럼 부드러운 그녀의 시선이 눈에 들어왔다.

세레나는 조용히 반걸음 앞으로 걸어 나갔다. 처마 그늘을 벗어나,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드러냈다.

말은 없었지만, 오히려 그 침묵이 모든 걸 말해주는 듯했다.

신사 돌길

새벽

새벽, 신사 돌길

여우는 세레나와 지휘관을 이끌고 산기슭에 도착해, 돌길의 시작 지점에서 멈추었다.

세레나

운알님?

운알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여기까지 오고 나니까,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

여우는 몇 바퀴 돌더니, 갑자기 뒷발로 턱을 긁적이며 말했다.

운알

에잇, 몰라! 어차피 만나야 하니까, 왜 그랬는지 직접 물어봐야겠어!

세레나, 아까 길에서 가르쳐준 주문 기억하지? 꼭 자등잎을 써야 해, 잊지 마.

그리고 [player name].

운알

원래는 남은 법력으로 너를 위장시켜 주려 했는데… 뭔가 좀 이상해.

네 안에 원래부터 아주 강력한 원력이 잠들어 있었던 것 같아. 저편에서 네가 어떤 존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 힘을 다 깨워놨어.

오늘 밤만큼은, 요괴들 눈엔 네가 엄청 강해 보일 거야. 눈치채지 못하게 조심해.

운알

좋아, 난 먼저 숨을게! 이제 산으로 올라갈 준비해!

그 말을 끝으로, 여우는 한 줄기 안개가 되어, 세레나의 허리춤에 있는 가면으로 스며들었다.

세레나

...

조용히 그 광경을 지켜보던 세레나는 지휘관과 눈이 마주치자 가볍게 웃었다.

세레나

뭔가 신기해요. 전설 속으로 들어온 기분이 들어요.

우린 요괴가 되었고, 이제 신의 결혼식을 보러 가고 있네요.

지휘관은 손끝과 발끝을 따라 감도는, 형언할 수 없는 기운을 느끼고는, 세레나와 함께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세레나

...!

세레나는 살짝 놀란 듯 웃음을 멈추고, 입술을 꾹 다문 채 눈앞의 인간을 나무라듯 곁눈질했다.

세레나

지휘자님도 가끔 얄미울 때가 있다니까요…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돌길 옆 첫 번째 등불로 걸어간 세레나는 한 손엔 자등잎을 쥐고, 다른 한 손을 등불에 얹은 채 가볍게 목을 가다듬었다.

세레나

산천에서 오신 손님이시여, 등불 밝은 신사 앞에 다다르셨나이다.

그 모습을 드러내어 예를 갖추고, 즐거움으로 인연을 이어가소서.

주문이 끝나자 갑자기 바람이 일고, 나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딸랑—

익숙한 방울 소리와 함께, 허공에 두 사람의 실루엣과 화려한 가마가 나타났다.

무녀

인연의 신을 모시는 무녀, 두 분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성함을 말씀해 주세요.

세레나

저는 꽃의 요괴 자등이고, 이분은 산군이십니다.

무녀

자등님이시군요.

가마에 올라타 주시지요.

지휘관은 세레나와 눈을 마주친 뒤, 손을 잡고 함께 가마에 올라탔다.

숨을 죽인 채 가만히 앉아 있자, 두 무녀가 조용히 기도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전에 산에서 봤던 것처럼 가마가 천천히 흔들리며 산속 깊숙이 들어갔다. 세레나와 지휘관은 아무 말 없이, 고요히 그 시간을 받아들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가마가 천천히 땅에 내려앉았다. 목적지에 도착한 듯했다.

무녀

저희는 여기까지만 함께하겠습니다. 앞으로 조금만 더 가시면 신사입니다.

편히 가십시오. 먼저 물러가겠습니다.

지휘관은 밖에서 더 이상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가마 안에서 기다렸다가, 세레나와 함께 걸어 나왔다.

두 사람이 내리자, 가마는 산바람처럼 흩어지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시간은 이미 새벽이었다. 무녀가 떠난 뒤, 어두운 산길에 놓인 도리이와 숲속 등불은 유난히 고요해 보였고, 방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이 마치 꿈만 같았다.

세레나

정말 신기하네요...

세레나

지—휘—자—님—

세레나

...

세레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얼굴을 돌리고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세레나

장난치지 마세요.

세레나

[player name] 님도 참...

투덜거리던 세레나는 금세 감정을 추스르고,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그러자 손에 있던 자등 꽃잎이 찬란한 빛으로 변모했다.

신비로운 힘이 세레나의 손끝에서 맴돌고 있었고,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게 했다.

세레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 끝에 떠오른 새벽빛을 향해 손을 뻗었다.

세레나

잠시 새벽빛을 빌리겠습니다.

그 순간, 하늘 저편에서 한 줄기 빛이 내려와 옆에 있던 등불 속으로 스며들었다.

곧이어 그 빛은 넝쿨처럼 뻗어 나가, 길게 이어진 산길을 부드럽게 밝혔다.

빛이 스며든 숲의 나무들은 유리처럼 투명한 질감을 드러냈고, 명암이 교차하는 돌계단 위에는 빛으로 피어난 이끼가 자라나 있었다. 세레나 손끝에서 흩날리던 자등 꽃잎도 작은 별 가루처럼 반짝이며 공중에 퍼져나갔다.

세레나

...

지휘자님.

세레나는 눈앞의 풍경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조용히 중얼거렸다.

세레나는 몸을 돌려 가볍게 미소 지었다.

그녀의 뺨 위로 떨어진 새벽빛은, 눈앞의 장엄한 야경보다도 더 따스하고 아름다웠다.

세레나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지휘자님과 함께 볼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