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맑은 어느 날, 나뭇가지들이 시원한 바람 속에서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햇빛 아래서 잠깐만 뛰어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무더운 여름이었다.
잠시 나무 그늘에 기대어 쉬려던 그때, 멀리서 여학생 몇 명이 활기차게 달려왔다.
교관님! 여기 계셨군요.
제타비 선배가 활동 장소를 다 꾸며놨어요! 이제 시작해도 될 것 같아요!
빨리 와. 시간 없어!
새 수영복 차림의 제타비가 환하게 웃으며 여학생들 사이에 서 있었다. 지휘관을 향해 내민 손에는 거절할 수 없는 단호함이 배어 있었다.
눈앞의 광경을 지켜보던 지휘관의 머릿속에 의문이 스쳐 지나갔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
이 모든 건, 오늘 아침부터 시작되었다...
그럼 이어서~~ 지난번에 보육 구역 학원 관련 임무를 말씀드렸죠? 이번엔 조금 더 자세히 설명 드릴게요.
임무 장소는 청수전 사립학원 유적지예요. 그 안에 실험용 기초 교육 시설이 하나 있는데, 현재 50여 명의 보육 구역 청소년들이 그곳에서 수업을 받고 있어요.
이건 청수전 재건 계획의 일환이기도 해요. 일정한 교육 경험을 가진 교관을 보내 훈련을 지도하는 게 이번 목표예요.
교육 시설 옆이 아직 정비되지 않은 폐허라 위험 요소도 분명 존재할 거예요. 이 역할은 지휘관님이 맡는 게 가장 안전할 것 같아요.
아, 이 교육 시설이 원래 고등학교였다고 하네요. 바로 옆이 해변이어서 아마 경치가 좋을 거예요!
세리카는 홀로그램 화면에서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학생들이랑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그럼 전 이만~
청수전 보육 구역의 교육 시설에 막 들어선 순간,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어? 하늘이 선택한 자, 네가 왜 여기에 있어?
제타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가방을 뒤로 든 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휘관을 바라봤다.
나? 당연히 공부하러 왔지!
제타비는 새끼손가락으로 교복 가방을 가볍게 들어 올리더니, 지휘관 앞에서 한 바퀴 빙글 돌았다.
요즘 여기서 무슨 대피 훈련한다고 들었어. 그런 재미난 걸 놓칠 수 없지.
어차피 교관으로 온 거면, 내가 여기 있는 거 공중 정원에 비밀로 해줄 수 있어? 같이 실컷 놀자!
괜찮죠, 선~ 생~ 님?
앗싸! 역시 [player name] ! 졸업생 체면은 살려주는구나~
에이~ 그렇게 차갑게 굴지 마. 그래도 네가 가르치던 학생이었잖아.
제타비는 능청스럽게 다가와 지휘관에게 팔짱을 꼈다.
그러지 말고, 내가 이 학교를 안내해 줄까? 학생들이랑 인사도 시켜줄게.
교관이면 먼저 학생들부터 알아둬야 하지 않겠어?
제타비는 이 "청수전 사립학원"을 꽤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지휘관을 운동장까지 데려다주고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운동장 한쪽에는 보육 구역에서 온 학생 십여 명이 줄지어 서 있었다. 파오스처럼 통일된 제복을 입진 않았지만, 모두 일정 수준의 교육과 훈련을 받은 듯한 모습이었다.
애써 호기심을 감추려는 학생들의 눈동자를 보자, 문득 파오스에서 훈련받던 시절이 떠올랐다.
안녕하세요, 교관님. 저, 저희는 여기 학생이에요...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니,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어색한 듯했다.
저는 이 반의 반장, 쇼코입니다.
아, 죄송해요. 반장이라는 칭호가 조금 낯설죠? 교육 시설 대장 같은 직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쇼코는 당황한 듯 말을 덧붙였다. 지휘관에게 나쁜 인상을 심어줄까 봐 조심스러워 보였다.
반이랑 반장 같은 단어들은 모두 예전의 "학교"에서 유래된 거라면서요?
저희는 청수전 사립학원 유적에서 공부하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부르게 됐어요.
또 다른 활발한 여학생이 다가와 설명을 이어갔다.
어때요? 반, 반장, "평범한 고등학교" 느낌이 나죠?
아, 소개가 늦었네요. 제 이름은 소소예요. 하루뿐이지만 잘 부탁드려요, 교관님!
교관님과 제타비 선배가 아니었으면, 저흰 이 위험한 해변 근처에 오지도 못했을 거예요. 훈련은커녕 근처에도 못 갔겠죠.
소소는 손을 내밀어 지휘관에게 악수를 청했다.
아, 아직 설명 안 드렸네요. 오늘 일정은 정화되지 않은 폐허를 지나, 해변에서 위험 대피 훈련을 하는 거예요...
쇼코가 설명을 다 마치기도 전에, 뒤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았어. 무기도 다 준비됐으니, 이제 출발해도 되겠다!
제타비는 어느새 해변 활동에 적합한 수영복 차림으로 나타났다. 조금 전 자리를 비운 건, 혼자 탈의실에 다녀온 탓이었다.
한쪽 구석에서 불쑥 나타난 그녀의 손에는, 과장된 디자인과 화려한 색상의 물총이 들려 있었고, 제타비는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듯 들떠 있었다.
해변에서 어떤 돌발 상황이 생길지 몰라, "심판자"를 여름 모드로 전환해 뒀지!
비록 안에 든 건 물탄이긴 하지만, 잔챙이들 상대하기엔 충분해~
흥~ 이러면 누가 방해해도 문제없지. 오늘은 마음껏 즐길 거야!
제타비 선배가 계속 얘기한 선생님이 교관님이셨군요!
제타비를 본 학생들은 익숙하다는 듯이 다가와 반갑게 말을 걸었다.
와, 신기하다~ 선배님의 선생님이 우리 교관이라니. 이참에 옛날얘기 좀...
성격 참 급하네. 자, 처음부터 얘기해 줄게.
제타비는 모자를 바로잡고, 허리에 손을 얹으며 당당한 자세를 취했다. 마치 중요한 발표라도 하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며칠 전, 여행하다가 청수전 보육 구역 근처를 들렀거든. 그때 여기서 곧 위험 대피 훈련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어.
졸업했어도 이런 재미난 일을 그냥 넘어갈 순 없잖아~
그래서 쇼코랑 소소한테 부탁해서, 나도 임시 학생으로 끼워달라고 했어!
정식 학교가 아니라서, 딱딱한 규정 같은 건 없어요.
그리고 제타비 선배는 아는 것도 많아서, 이것저것 많이 가르쳐주셨어요. 저희도 선배의 도움이 필요해요.
그래, 그래. 계속해! 칭찬 더 해도 괜찮아~
제타비는 만족스러운 듯 꼬리를 들썩이며 으쓱해했다.
교관님이 바로 제타비 선배가 계속 말씀하시던 그 "선생님"이셨군요. 이제야 알았네요.
선배가 그러셨어요. 교관님을 만나고 나서, 그제야 진짜로 하고 싶은 게 뭔지 깨달았다고…
그, 그만! 그 얘긴 굳이 안 해도 돼!
제타비가 갑자기 당황한 기색을 드러냈다. 표정이 이랬다저랬다 계속 바뀌며 정신이 없어 보였다.
여긴 교육시설이긴 하지만, 보통 학교와는 조금 달라.
쉽게 말하면, "교대식 수업제도"야. 학생들이 직접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동시에 수업도 병행하는 방식이지.
오늘의 주요 목적은 정화되지 않은 폐허를 지나, 해변가에서 위험 대피 훈련을 하는 거야!
듣기엔 좀 위험해 보이지만, 바닷가에 떠밀려오는 건 전부 산업 폐기물이야. 위험 요소는 없으니 걱정 마~
제타비 선배야 괜찮을지 몰라도… 저희 같은 평범한 학생들한테는 꽤 위험해요. 그래서 경험 많은 교관님이 꼭 필요한 거고요.
제타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상부의 계획은 여전히 딱딱하고 재미없어. 그렇다고 즐거운 여름날을 지루한 훈련으로 날려버릴 순 없잖아!
후딱 훈련을 끝내고 남는 시간에 물총 파티~! 여름 캠프를 제대로 즐기자고!
흐음~ 그러니까 바위를 엄폐물로 삼고, 해변에서 달리기 시합을 하는 거야. 물총에 맞으면 탈락!
제타비 선배 얘기를 듣고 나서... 저희도 괜히 해보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해변 활동에 필요한 방수복이랑 "물총"을 준비해 왔죠!
학생들은 제타비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듯, 반짝이는 눈빛으로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부응하려면, 오늘만큼은 "교관" 역할을 제대로 해내야 할 것 같았다.
청수전 사립학원 뒤편에는 드넓은 백사장이 펼쳐져 있었다. 여학생들은 탈의실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들뜬 얼굴로 지휘관을 데리고 해변가로 뛰어갔다.
훈련하는 동안 별다른 위험은 없었지만, 계속 경계 태세를 유지한 탓에, 지휘관과 제타비는 정신적으로 꽤 많이 소모된 상태였다.
지루한 훈련이 끝나자, 본격적인 여름 캠프가 시작되었다. 학생들은 미리 준비한 물총을 들고 새하얀 모래사장에서 마음껏 뛰놀기 시작했다.
파도 소리와 웃음소리가 어우러지는 가운데, 몇몇 여학생들이 지휘관에게 말을 걸었다.
저희끼리만 노는 건 좀 아쉬워요, 교관님이랑 제타비 선배도 함께해요!
비록 훈련은 끝났지만, 제타비와 지휘관은 여전히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망설이던 순간, 옆에 있던 제타비가 갑자기 물총을 들더니, 눈에서 금빛이 번쩍였다. 곧이어 손끝을 움직이자 물줄기가 뿜어나왔다.
잠시 후, 파도가 물러가고, 총알에 관통된 공업 장치 쓰레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린 괜찮아. 애초에 오늘 하루, 너희들이 마음껏 놀 수 있게 지켜주는 게 우리 임무니까.
그리고... 사실 나랑 선생님도 지금 한창 시합 중이거든~
제타비는 "심판자"를 등에 숨기며, 다시 평소처럼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소소가 눈치채지 못한 틈을 타, 지휘관에게 입 모양으로 "쉿"하고 알렸다.
누가 물총으로 수상한 물체를 더 많이 맞추나 시합 중이야. 지금은 내가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지~
아, 그럼 방해하지 않을게요. 즐거운 시간 되세요!
여학생들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아... 실컷 놀게 해주자.
제타비는 지휘관 옆에 서서, 멀리 이어지는 하얀 해안선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타비의 붉은 눈동자에 푸른 바다가 조용히 일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지휘관은,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을 조용히 삼키기로 했다.
비록 제타비는 물총 게임에 직접 뛰어들지는 않았지만,
지휘관과 함께 학생들 곁을 지키며 "지도자"로서의 매 순간을 함께했다.
두 사람은 마지막까지 해변을 바라보며, 예상치 못한 위험에 대비하고 있었다.
학생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질 때마다 제타비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 마치 그녀가 처음부터 이 학교의 진짜 "학생"이었던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고, 학생들이 지쳐갈 무렵, 제타비는 오늘의 모든 일정이 무사히 끝났음을 알렸다.
선배님, 교관님, 오늘 정말 감사했어요.
"임시 반장"을 맡은 여학생은 돌아가는 길 내내 지휘관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정말 즐거웠어요. 제타비 선배와 교관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매일 똑같고 지루한 일정뿐이었거든요.
두 분이 옆에서 지켜주셔서 마음껏 놀 수 있었어요.
쇼코의 말을 들은 지휘관은, 문득 얼마 전 제타비와 학교를 둘러볼 때, 뒷마당에서 본 폐수영장이 생각났다.
아, 거기요? 아직 정화도 안 됐고, 폐허라서 괜히 들어갔다가 다칠까 봐 다들 꺼려해요.
사실 수영장에서 물놀이도 해보고 싶은데, 이것저것 고려할 사항이 많아서… 결국 포기했어요.
여기서 교육받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죠. 저희 욕심 때문에 다른 분들에게 폐를 끼칠 순 없어요.
쇼코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무심코 한 말이었지만, 지휘관은 그 말을 가슴 깊이 새겨두었다.
학생들이 기숙사로 돌아간 뒤, 지휘관은 제타비를 따로 찾아가 한 가지 제안을 꺼냈다.
뭐? 우리 둘이서 그 폐수영장을 수리하자고?
사실 해변에서 마음껏 즐기지 못한 제타비를 위한 배려였기도 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흐음~ 물론이지. 도와줄게!
제타비는 살짝 고개를 갸웃하며 장난 어린 미소를 지었다.
모처럼 여기까지 온 김에 나도 수영장에서 물놀이해 보고 싶어. 바다랑은 뭐가 다른지 궁금해.
하지만 조건이 있어. 하늘이 선택한 자, 너도 내 소원 하나 들어줘!
그래, 그럼 약속했다!
제타비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지휘관 앞으로 다가와, 검지를 들어 지휘관의 입술에 툭 대며 말했다.
계약 성립! 유효 기간은… 평생이야.
아직 정하지 못했어, 일단 킵해 둘 게.
흠~ 그전까진 네가 알아서 맞혀 봐.
진짜로 맞추면, 보너스 선물도 있어!
입술에 약속의 인장을 남긴 제타비는 만족스러운 듯 두 발짝 물러서더니, 가볍게 몸을 틀어 학교 건물 쪽으로 걸어갔다.
그럼 난 수영장 수리하는 데 필요한 도구 찾으러 가볼게. 이따 뒷마당에서 봐~
수영장에 쌓여 있던 낙엽을 다 쓸어내고, 보육 구역 저수지에 수도관을 연결하니 어느덧 해가 서서히 저물고 있었다.
폐기된 수영장을 청소하는 일은 예상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 제타비가 옆에서 계속 도와줬지만, 오후 내내 해변과 수영장에서 고생한 지휘관은 녹초가 되어 있었다.
드디어 수도관에서 물이 흐르기 시작했고, 지휘관은 강렬한 햇볕을 피해 서둘러 파라솔 그늘 아래로 몸을 숨겼다.
찾았다!
공중 보급, 발사!
멍하니 있던 와중, 오른쪽 뺨에 갑자기 차가운 감촉이 전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제타비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수고했어! 이거~ 학생들이랑 같이 만든 여름 한정 음료야!
제타비는 펄이 들어간 딸기 밀크셰이크 두 잔을 들고 있었다. 그중 한 잔이 바로 방금 지휘관에게 "차가운 충격"을 안겨준 주범이었다.
어때? 맛있지? 흥흥, 엄지척이 저절로 나오지?
제타비는 옆에서 의기양양하게 꼬리를 치켜세웠다.
설마 또 편식하려는 건 아니겠지? 제타비가 정성껏 만든 건데~ 버리기만 해 봐!
화가 난 듯한 제타비를 바라보며, 지휘관은 결국 체념한 듯 밀크셰이크를 한입 마셨다.
입 안 가득 퍼지는 익숙하고도 강렬한 딸기 맛, 칼로리 폭탄이 따로 없었다.
어때, 제타비가 만든 밀크셰이크가 최고지?
지휘관이 반쯤 비운 잔을 내려놓자, 제타비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 잔을 안고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방금 밀크셰이크를 만들면서 여자애들이랑 잠깐 얘기 나눴는데 말이야…
보육 구역에 사는 학생들이 다 그런 줄은 몰랐어.
지휘관은 마지막 펄까지 삼키고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다들 뭔가 꿈이 있어 보였어. 대화할 때 "미래"와 "나중에"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나오더라...
"저도 나중에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라든가…
난 잘 모르겠어. 예전 고등학교 평범한 학생들도 이렇게 쉽게 미래를 떠올렸을까?
전에 데이터베이스 영상 자료를 볼 때, 학교생활은 아무런 근심거리가 없을 거라 생각했거든.
근데 소소와 쇼코랑 직접 대화해 보니까,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더라.
제타비는 고개를 돌려, 살짝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지휘관을 바라봤다.
얘들은 하루하루 주어진 일과 훈련만으로도 벅차. 여유롭게 캠퍼스 라이프를 즐길 시간이 없어.
제타비는 오른쪽 무릎을 끌어안고, 왼발 끝으로 수면을 톡톡 건드리며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다.
앞으로의 일이나 미래 같은 건, 나에게 너무 멀게만 느껴졌어.
게스트리고에서 자란 "학생"들에게 내일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조차 미지수였으니까.
그녀의 반짝이는 눈동자에 기대, 공상, 아쉬움… 수많은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그런 허상 같은 미래보단, 지금 눈앞에 있는 현실에 집중하는 게 더 나은 것 같아.
"평범한" 고등학교는 대체 어떤 곳일까?
에? 진짜?
제타비의 눈동자에 호기심과 기대감이 가득 차 있었다.
파오스는 어떤 곳이야?
잠깐! 일단 얘기하지 마! 한번 맞춰볼게!
분명 재밌는 동아리가 가득했을 거야! 수영부, 밴드부, 아니면... SOS단 같은 거?
쉬는 날엔 문화제도 열리고, 여름 축제랑 불꽃놀이도 있지 않아?
아... 그렇구나.
제타비는 말끝을 흐렸지만, 생각보다 실망한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컵을 든 채, 지휘관 쪽으로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래도 너 같은 사람을 배출해 낸 걸 보면, 평범한 군사학교는 아닌 것 같은데? 적어도 게스트리고처럼 지루하진 않았을 것 같아.
파오스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알려줘!
하나도 빼놓지 말고 전부 다 얘기해 줘.
괜찮아. 끝까지 들을 준비 됐어.
제타비는 이미 들을 준비가 됐다는 듯, 지휘관 쪽으로 웃으며 다가왔다.
지휘관은 입학했던 그날부터 시작해, 파오스에서의 모든 이야기를 제타비에게 들려주었다.
어느새 서쪽으로 기울어진 해는 하늘을 주황빛으로 물들였고, 수영장에 채워진 물이 두 사람의 발가락을 적시고 있었다.
제타비는 지휘관 옆에서 가끔 손으로 물장구를 치거나 발로 물을 휘젓긴 했지만, 시종일관 이야기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그녀에게 지휘관의 "학교생활"은 무척 신선한 이야기였다.
그랬구나... 이제 알겠어.
이야기가 끝나자 제타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 보육 구역이랑 파오스 중, 어느 쪽이 좀 더 "평범한 고등학교"에 가까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히 알겠어.
잔잔한 매미 소리가 제타비의 목소리와 함께 석양 속에서 울려 퍼졌다.
너, 정말 알차고 좋은 시간을 보냈구나.
눈부신 노을빛 속에서 제타비가 지휘관에게 살짝 다가가 반짝이는 눈동자로 조용히 눈을 맞췄다.
너무 가까운 거리 탓에, 그녀의 속눈썹에 닿은 석양의 잔 빛까지 또렷하게 보였다.
제타비의 하얀 머리카락은 황금빛 물결 속에 녹아들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음... 하늘이 선택한 자, 중요한 이야기를 들려줘서 고마워.
이걸로 우리, 서로의 "학창 시절"도 공유한 셈이네?
그럼 이제, 나도 너한테 특별한 존재가 된 건가?
제타비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렇게 소중한 순간을…
기념으로 남겨줄 수 있어, 하늘이 선택한 자?
제타비가 지휘관의 얼굴을 살며시 감싸자, 눈부신 노을빛이 시선을 덮었다.
따뜻한 여름바람, 수영장 위로 퍼지는 수증기, 숲속에서 불어오는 풀잎 향기, 그리고 제타비에게서 나는 은은한 향, 이 모든 게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지휘관에게 스며들었다.
지휘관이 앞으로 다가가려던 순간, 갑자기 귓가에 부드러운 숨결이 느껴졌다.
?!
그리고 곧, 오른쪽 뺨에 익숙한 "차가운 촉감"이 전해져왔다.
지휘관이 뭐라고 말하려던 순간, 오른쪽 뺨에 익숙한 "차가운 촉감"이 전해져왔다.
?!
눈을 뜨자, 손에 딸기 밀크셰이크를 든 제타비가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흥흥, 무슨 상상을 했길래 그래~?
농담이야~☆
하하하, 수영장 물도 다 찼으니, 학생들을 불러올게!
지휘관이 반응할 틈도 없이, 제타비는 벌떡 일어나 두세 걸음 달려가더니, 두 손을 입가에 모아 크게 외쳤다.
아, 맞다! 다들 이 말 꼭 전해 달랬어!
교관님~ 오늘 수고 많으셨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