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고된 노력 끝에, 달이 막 떠오를 무렵, 학생들을 위해 준비한 "작은 서프라이즈"가 마침내 완성됐다.
풀숲을 헤치고 난간을 지나자, 녹슨 울타리 너머로 깔끔하게 정돈된 수영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공기엔 갓 청소한 듯한 표백제 향이 감돌았고, 모두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없이 수영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이게 진짜... 잡초만 무성하던 그 폐수영장 맞나요?
제타비 선배, 교관님... 고작 몇 시간 만에 이걸 다... 진짜 대단하세요...!
여학생들은 놀란 듯 서로를 바라보며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뭘 그렇게 머뭇거려~ 얼른 들어가 봐!
제타비가 능청스러운 목소리로 침묵을 깨뜨렸다.
줄곧 기다려왔던 순간이잖아? 안 그래?
제타비의 격려에 여학생들은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두 사람에게 서둘러 인사한 뒤, 수영장으로 달려갔다.
윽, 바다와는 달라, 너무 뜨거워!
태양 열기 때문인 것 같아.
학생들은 신나게 소리치며, 서로에게 물을 튀기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타비의 얼굴에도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왠지 본인이 더 즐거워 보이는 건 기분 탓인 걸까.
응? 그래 보여?
지휘관의 말에 제타비는 조금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잘 모르겠어... 다들 즐거워하니까,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건가?
제타비는 수영장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웃었다.
어쨌든, 누군가가 내 얘기를 들어주고, 그 바람이 현실이 되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야.
고마워, 하늘이 선택한 자. 오늘 정말 즐거웠어.
제타비는 마치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듯 미소를 지었고,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어 보였다.
막 손을 뻗으려던 찰나, 뒤에서 경쾌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이 뒤를 돌아보자, 쇼코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비록 이미 여러 번 감사 인사를 드렸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번 여름 캠프를 통해, "평범한 학생"처럼 지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쇼코는 고개를 숙여 두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특별한 날은 오늘 하루뿐이라는 걸 저희도 잘 알고 있어요... 내일부터 다시 보육 구역에서 원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도요.
비록 단 하루였지만, 저희와 함께해 주시고, 이렇게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제타비 선배, [player name] 교관님... 이번 여름은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학생들이 다 놀고 집으로 돌아갈 때쯤, 하늘엔 이미 보름달이 걸려 있었다.
"방과 후"의 캠퍼스는 유난히 조용했다. 무성하게 자란 풀숲 사이로 반딧불이들이 어른거렸고, 이곳이 더 이상 진짜 학교가 아니라, 보육 구역에 남은 마지막 안식처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다.
지휘관은 제타비와 함께 손전등 빛을 따라 어둠 속을 걸었다. 낮에 왔었던 길을 되짚어 보며 둘은 아무도 없는 수영장에 다시 도착했다.
다 돌아갔나 보다. 이제 남은 건 우리 둘뿐이야, 하늘이 선택한 자.
제타비가 지휘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달빛 속 그녀의 모습은 더욱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왜인지 모르게, 그녀의 눈빛은 더 깊어지고, 미소는 한층 더 신비롭게 느껴졌다.
제타비는 지휘관의 손을 잡고 함께 수영장 안으로 들어갔다.
찰랑—
잔잔한 물결이 낮의 온기를 머금고 부드럽게 몸을 감쌌다.
지금 바다랑 다르다고 생각했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제타비가 어느새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넓은 수영장에 우리 둘밖에 없네. 이참에 좀 재밌는 걸 해 볼까?
물싸움? 물총놀이? 숨 참기 대결은 어때?
다른 사람 눈치 볼 필요도 없고, 딱히 조심할 것도 없잖아…
제타비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이내 낮은 한숨이 들려왔다.
근데, 이상하게 그럴 기분이 안 나…
지휘관의 걱정 어린 눈빛에, 제타비는 오히려 안심시키려는 듯 살짝 웃어 보였다.
아니야, 괜찮으니까, 이상한 생각하지 마!
그냥… 좀 아쉬워서 그래.
제타비는 대답 대신, 지휘관의 손을 잡고 밤하늘을 가리켰다.
저기 보여? 저건 데네브, 그리고 저건 견우성이랑 직녀성이야.
이 세 개가 모이면… 여름의 대삼각형이야.
제타비는 하얀 손가락으로 밤하늘에 작은 삼각형을 그렸다.
그녀가 가리킨 우주의 끝 어딘가에서 세 개의 별이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혹시... 그거 알아?
가을이 가까워질수록, 이 별들도 점점 일찍 떠올라.
지금… 밤 9시 35분인데, 벌써 거의 지평선 아래로 내려가고 있어…
여름이 곧 끝난다는 뜻이야.
제타비는 천천히 지휘관의 손을 놓고, 달빛이 밝게 비추는 쪽으로 걸어갔다.
하늘이 선택한 자, 난 끝이라는 게 싫어.
카운트다운도 싫고, 하나씩 줄어드는 숫자도 싫어. 언젠가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세상을 보는 것 같아서…
하지만, 성장에는 이별이 따른다는 걸 나도 잘 알아. 아무리 붙잡고 싶어도, 결국 그 대가를 받아들여야겠지.
제타비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무언가 결심한 듯 말을 이어갔다.
내가 여기에 온 게 우연이 아니라는 걸 이미 눈치챘지?
며칠 전, 네 단말기를 해킹했어. 이곳 교육 시설의 교관을 맡을 거라는 것도 그때 알게 된 거고.
그래서 편법을 좀 써서 몰래 이곳으로 온 거야.
사실, 이 모든 건 하나의 평범한 소원으로부터 시작됐다.
"하늘이 선택한 자를 만나고 싶어."
그렇게 제타비는 공중 정원을 몰래 빠져나와, 학생들과 친해지며 이 기초 교육 시설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하지만 단 하루뿐인 이 평온한 학교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즐거웠고, 그녀의 소원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하루만 더 함께하고 싶다.”에서 “이 하루가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로—
하늘이 선택한 자와 영원히 함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바랐다.
하지만 쇼코가 작별 인사를 건넨 그 순간, 제타비는 자신의 본분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다.
특별한 날은 오늘 하루뿐이라는 걸 저희도 잘 알고 있어요... 내일부터 다시 보육 구역에서 원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도요.
비록 단 하루였지만, 저희와 함께해 주시고, 이렇게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오늘이 지나면, 지휘관은 공중 정원으로 돌아가야 했고, 제타비도 다시 임무를 수행하러 가야 했다.
그녀는 이 평화로운 학교생활이 계속 지속될 수 있도록 학생들을 지켜야 했다.
오늘 하루, 너랑 함께해서 너무 즐거웠어. 그래서 하마터면… 잊을 뻔했네.
아무리 행복한 시간도, 언젠가는 끝이 난다는 걸…
제타비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등을 돌렸다.
처음엔, 보육 구역에서 자란 아이들이라면 "평범한" 삶을 살고 있을 거라 생각했어.
그런데 이렇게 하루를 같이 보내고 나니까, 이젠 나도 잘 모르겠더라.
어쩌면 세상이 원래 이런 걸지도 몰라. 행렬을 벗어나도, 게스트리고 밖에 있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고민에 얽매여 살고 있잖아.
제타비는 고개를 들어, 수억 광년 너머 반짝이는 견우성과 직녀성을 바라보았다.
오늘 하루는 너무 짧아. 결국 난 끝까지 "평범"한 고등학교가 뭔지, "평범"한 학교생활이 어떤 건지 알 수 없었어.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해…
제타비는 천천히 밤하늘에서 시선을 거두고 지휘관을 바라봤다.
너와 함께한 매 순간이, 나에겐 전부 소중하다는걸.
("행렬" 속에서 처음으로 눈을 뜨고, "하늘이 선택한 자"로서의 너를 알게 된 순간부터...)
(요람을 벗어나, 현실에서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으로서의 너를 알아보기까지...)
(그리고 오늘 나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 [player name] 까지도...)
(이 모든 기억은 내 저장 모듈 안에 영원히 새겨질 거야.)
전자의 바닷속에서 태어나, 수없이 반복되는 윤회를 지나온 소녀는 마침내 따스한 요람을 떠나, 현실을 마주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녀가 선택한 길에는 늘 희망과 고통이 함께 따랐다.
제타비는 이제 그 고통까지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현실의 고통을 달콤함과 함께 삼켜버리기로 말이다.
웃음과 눈물로 채워진 "지금 이 순간"들은, 전부 대체할 수 없는 "추억"이 되어 그녀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찾을 수 없는 답이라면, 굳이 찾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이젠 더 이상, "평범함"이 뭔지 고민하지 않으려고 해.
다만, 이것 하나만은 확인하고 싶었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 말이야.
달빛이 물 위를 잔잔하게 비추고, 은빛 물결은 마치 부서지는 파편처럼 수면위로 번져나갔다.
제타비는 수영장 중앙에 서서 팔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손가락 사이로 쏟아지는 달빛이 마치 그녀의 손에서 흘러나오는 듯했다.
그녀는 눈을 감고, 마음속을 떠도는 수많은 감정들을 하나로 모아 천천히 말로 옮겼다.
다음 여름도, 그다음 여름도… 앞으로의 모든 여름에도—
항상 네가 곁에 있어 줘.
제타비 얼굴에 다시 한번 환한 미소가 번졌다.
하늘이 선택한 자, 나 소원 정했어.
제타비는 달빛 아래에서 팔을 넓게 벌리며, 마치 무언가를 포근히 안아주려는 듯 지휘관에게 다가갔다.
너한테서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을 배워보고 싶어.
예전에 잘 알지 못했던 것들도…
너라면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아. 어떤 데이터베이스에도 없는 그 답 말이야.
지휘관도 물살을 거슬러 제타비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둘 사이에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어 보였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이 통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이든, 기계체든, 지금 이 순간만큼은 가슴 깊은 곳에서 동일한 감정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설렘"이라는 울림이었다.
"행복"이 뭔지 가르쳐줘.
제타비는 자신 앞에 선 지휘관을 감싸안았다. 따뜻한 물방울이 그녀의 가슴을 따라 흘러내렸다.
두 눈을 감자, 낮게 울리는 심장 소리와 조금은 들뜬 그녀의 숨소리가 조용히 귓가에 맴돌았다.
여름은 곧 끝나고, 이 짧은 밤도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다.
해가 뜨기 전, 절대 잊지 못할 추억 하나를 더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