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기념일 이벤트 스토리 / 천년의 연가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

봄과 아수라

>

밤이 되자, 카타니아는 회색 베일을 덮은 듯 은은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집마다 불이 켜지면서 따스한 불빛들이 산꼭대기부터 내려와, 울창한 산기슭을 감싸고 해변까지 이어졌다.

모래사장에서는 사람들이 장의자에 누워 밤의 여유를 즐기거나, 바비큐 그릴 주위에 모여 웃으며 노래하고 있었다.

지휘관은 루시아와 함께 조용한 구석을 찾아 나란히 앉았다.

카타니아의 밤은 정말 활기차네요.

이렇게 활기찬 모래사장을 본 건... 영화의 샛별 이후로 처음인 것 같아요.

기억나세요? 그때 다른 소대의 멤버들과 함께 아찔하면서도 즐거운 휴가를 보냈었잖아요.

영화의 샛별... 휴가...

노는 게... 뭐죠?

전 당신을 피하려고 휴가를 온 게 아니에요. 그저 "여유"를 가지라는 임무를 받았을 뿐이죠.

옆에 있는 루시아를 바라보자, 지난날의 기억들이 부서지는 파도처럼 머릿속으로 밀려들었다.

그때의 저는...

루시아는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저으며, 머릿속의 부끄러운 기억들을 떨쳐내려 했다.

지휘관님, 지금의 저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나요?

루시아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맑은 달빛 아래, 짧은 대화가 다시 한번 마음속 추억을 불러일으켰다.

지휘관의 마음속 루시아는...

처음에는 조금 서먹했던 동료였다.

그러나 함께 시련을 헤쳐나가며, 그녀는 그레이 레이븐의 든든한 날개로 성장했다.

인간에게 승리와 희망을 가져다준 지금의 그녀는 "여명".

지휘관 휘하의 유일무이한 대장,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전우.

그녀는 언제나 지휘관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어떤 위험이 닥쳐도, 그녀는 지휘관과 함께 맞서 싸웠다.

깊이 얽힌 둘의 운명은 이제 더 이상 길을 잃지 않았다.

지휘관은 루시아와 함께한 시간들을 되짚으며, 곁을 지켜온 그녀에게 진심을 담아 답했다.

그렇군요...

지휘관의 대답에 루시아의 눈빛은 기쁨으로 물들었다.

지휘관님에게 힘이 되고 있다니... 저도 조금씩 성장했나 보네요.

앞으로 우리에겐 더 밝은 미래가 있을 거예요.

함께라면 어떠한 재앙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고, 모든 고난을 끝낼 수 있어요.

루시아는 해변 너머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며, 밝고 아름다운 미래를 그렸다.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 미래가 너무 멀고 불가능해 보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지휘관님과 함께한 순간들이 제게 알려줬어요. 그런 미래가 이제 그리 멀지 않다는걸요.

번화한 섬의 불빛과 반짝이는 별들이 루시아의 눈동자에 어우러져 찬란하게 빛났다.

지휘관은 루시아의 손을 살며시 잡고, 밤하늘 아래 빛나는 불빛들을 바라보았다.

모래사장에는 어느새 전통적인 예복을 갖춰 입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고개를 숙인 채 서로의 손을 맞잡은 사람들은 대리석 조각상을 둘러싸 원을 그렸다. 이는 어떤 오래된 전통 의식인 것 같았다.

신도 여러분, 저와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카타니아에 은총과 힘을 베풀어 주시어, 신앙 아래 하나 됨을 통해, 그분의 나라에서 살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군중 한가운데에는 얇은 베일로 눈을 가린 수녀의 조각상이 우뚝 서 있었다.

자애로운 표정의 그 조각상은 밤낮으로 바닷바람을 맞으며 한결같은 기도 자세로 이 땅을 축복하고 있었다.

저 조각상은... 성녀 루키아예요.

네, 제 이름과 비슷하죠. 우연의 일치라고 해야 할까요.

성녀 루키아는 4대 순교 성녀 중 한 분이에요. 그리고 그녀가 순교한 곳이 바로 우리가 서 있는 이 카타니아죠.

루시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 닮아서인지, 어릴 때부터 성녀 루키아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사랑과 희생에 관한 전설이에요. 지휘관님도 관심 있으시면 제가 들려드릴게요.

잠시만요...

루시아는 눈을 감고 조용히 루키아의 전설을 되새겼다.

루시아

아주 오래전, 나폴리라는 왕국이 있었어요...

주인공 루키아는 이 고대 왕국의 공주였죠.

루시아

어느 날, 나폴리에 끔찍한 역병이 돌아 왕국 전체가 시체로 뒤덮였고, 열 집 중 아홉이 텅 비어버렸어요.

타고난 선한 마음과 깊은 신앙심을 지닌 루키아와 그녀의 애인은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전설 속 소원을 이뤄준다는 네잎클로버를 찾아 이 재앙을 멈추고자 했죠.

루시아

그렇게 두 사람은 카타니아를 향한 여정을 떠났어요.

루시아의 차분한 목소리를 따라, 깊어져 가는 밤하늘 아래 옛 전설이 이어졌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카타니아의 천상곶은 천국과 가장 가까운 곳이며, 신이 직접 그곳에 기적을 일으키는 네잎클로버를 심었다고 하죠.

루시아는 무릎을 끌어안고 먼바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도착해갈 무렵, 갑자기 거센 바람과 파도가 몰아쳤어요. 그 순간, 루키아의 애인이 순식간에 파도에 휩쓸려 버렸죠.

그리고 악마가 파도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는데, 알고 보니 애인을 데려간 건 바다가 아니라… 악마의 마법이었어요.

악마는 루키아에게 두 눈을 바치는 것만이 연인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어요.

악마가 신과 내기를 했기 때문이에요. 루키아가 사랑과 빛을 잃어도 네잎클로버를 찾을 만큼 굳건한 의지가 있는지 시험하려 했던 거죠.

루키아가 네잎클로버를 찾으면 애인은 돌아오겠지만, 그녀는 평생 어둠 속에서 살아가야 했어요.

잠시 말을 멈춘 루시아가 무거운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루키아는... 결국 자신의 빛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어요.

그 후, 루키아는 두 눈을 잃은 채, 홀로 카타니아를 헤맸어요.

그녀는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높은 절벽 위를 걷는 듯했죠.

높은 산을 오르고 깊은 골짜기로 떨어지며,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도 그녀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어요.

이는 단순한 신의 시험이 아닌, 애인과의 맹세였어요. 영광과 치욕의 순간에도, 부유함과 가난함 속에서도,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하겠다는 그 맹세요.

루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루키아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애인의 품에 안겨 숨이 점점 멎어가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의 손에는 루키아가 찾아낸 네잎클로버가 들려있었죠.

하지만 기적의 네잎클로버는 단 하나의 소원만 이룰 수 있었어요.

그때 루키아의 애인에게는 두 가지의 선택지밖에 없었죠.

루키아를 구할 것인가, 아니면 나폴리의 백성들을 구할 것인가?

그때, 달빛이 흐릿하게 스며들어 루시아의 어두운 표정을 비췄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루시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루키아는 마지막 힘을 짜내 애인의 귓가에 소원을 속삭였고, 그 말이 애인의 마지막 선택을 이끌었죠.

죄송해요, 지휘관님. 이 이야기의 결말을 제가 함부로 단정 짓고 싶진 않아요.

루시아는 루키아의 마지막 소원을 말하지 않았다.

제가 함부로 결말을 정해버리면, 루키아의 "진실"과는 거리가 멀어질 것 같아요.

루시아가 고개를 들어, 은하수의 반짝이는 별들을 올려다보았다.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에게는 루키아가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애인이 나폴리의 백성들을 구하길 바랐다고 전해져 왔어요.

하지만 현대의 고고학적 연구 결과,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어요. 중세 시대의 기록에 따르면, 루키아의 마지막 소원은... 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었다고 해요.

깊어져 가는 밤하늘의 별빛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고, 태초부터 변함없이 그 자리를 빛낸 듯했다.

어둠 속 도시의 불빛이 깜빡이던 그때, 밤바람이 불어와 루시아의 앞머리가 흩날렸다.

그래서 수 세기 동안 루키아의 이야기는 극작가들에 의해 계속 재해석되어, 수많은 결말이 만들어졌어요.

그중에서도 희생과 도덕을 강조한 이야기는 교훈적이라는 이유로 가장 널리 퍼졌고요.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에게 루키아는 자신을 바친 성녀로 기억된 거예요.

마치 트로이 원정을 위해 희생된 이피게네이아처럼... 역사는 숭고한 희생만을 기록했을 뿐, 실제 개인의 진실된 모습은 외면했죠.

맞아요. 루키아가 끝까지 나아갈 수 있었던 건, 신앙심만이 아닌 애인을 다시 만나고 싶은 간절함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녀가 어떤 선택을 했든, 분명 마음 한편에는 후회가 남았을 거예요.

곧이어 루시아가 고개를 돌려,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지휘관님이 루키아라면, 어떤 선택을 하실 건가요?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루시아는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많은 생명을 구할 것인가, 아니면 사랑하는 이를 구할 것인가? 이런 선택의 순간이 지휘관 앞에 펼쳐진다면...

루시아가 손을 뻗어, 지휘관의 손등 위로 포갰다.

그녀의 눈동자엔 단호한 빛이 어려 있었다.

네... 저도 지휘관님께서 자신의 안위를 가장 우선으로 여기셨으면 해요.

지휘관님만 무사하시다면, 모든 것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거라 믿어요.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부디 자신을 희생하는 선택만은 하지 말아주세요.

돌이킬 수 없는 재난이 닥치더라도... 지휘관님의 그런 선택만큼은 제가 어떻게든 막아내겠다고 약속드릴게요.

그녀의 목소리는 흔들림 없었고, 눈빛은 더없이 진지했다.

지휘관의 대답에 루시아는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요한 바람과 밝은 달빛 아래, 둘은 잠시 침묵했다.

지휘관의 질문에 루시아는 고개를 떨구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선택해야 하는 대상이 지휘관님이라면, 쉽게 결정을 못 내릴 것 같아요.

저는 지휘관님과 함께 평온한 세상을 보고 싶어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지휘관님.

지휘관과 루시아는 나란히 앉아, 달빛이 비치는 모래사장을 바라봤다.

조각상을 둘러싼 의식이 끝나자 광장에는 모닥불이 피워졌고, 곧이어 흥겨운 연회가 시작되었다.

그때, 해변에서 맑은 피아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서 바이올린, 색소폰,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더해졌다.

경쾌하고 아름다운 선율 속에서 젊은 카타니아의 연인들이 짝을 이뤄, 환한 미소와 함께 열정적인 춤을 추기 시작했다.

저, 저, 저기요. 저랑 추, 춤 한 번 추실래요? 딸꾹!

술 냄새를 풍기는 여성이 지휘관과 루시아 앞에 나타났다.

오, 오늘 밤은 젊은 연인을 위한 축제의 밤이잖아요! 딸꾹! 제 파트너는 술에 취해 쓰러졌거든요. 그래서 혹시 제가... 딸꾹!

술에 취한 여성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얼굴을 찌푸리더니, 입을 막은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축제의 밤이요?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은 모두 열정적으로 무도곡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지휘관은 루시아의 시선이 느껴졌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하지만, 제겐 파트너가 있어요.

루시아가 일어나 지휘관에게 손을 내밀었다.

카타니아의 전통 춤인 타란텔라는 독거미의 이름을 따왔다고 했다.

거미의 독을 해독하기 위해서는 격렬한 춤을 추어야 했는데, 그 광란의 몸짓에서 타란텔라라는 이름이 비롯된 것이었다.

의상이나 기교에 얽매일 필요 없었다. 그저 즐거운 분위기에 푹 빠져, 자신들이 자라난 땅을 열정적으로 밟으며, 자유롭게 몸을 맡기면 그만이었다.

두 줄로 늘어선 사람들 사이에서 지휘관과 루시아는 마주 선 채, 주변의 춤추는 사람들을 따라 음악에 맞춰 스텝을 밟았다.

죄, 죄송해요, 지휘관님!

긴장한 탓인지 스텝이 자꾸 어긋났고, 두 사람은 서로의 발을 밟을 뻔했다.

달빛이 해변을 부드럽게 감싸안고, 무도곡의 선율은 밤을 은은하게 물들였다.

점차 스텝에 익숙해진 루시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이제 좀 감을 잡았어요, 지휘관님.

그러나 안도할 틈도 없이, 무도곡이 갑자기 빨라지기 시작했다. 군중이 일제히 앞으로 나와 파트너와 함께 재빠르게 스텝을 밟으며 사교춤으로 전환했다.

이에 지휘관은 사람들을 따라 큰 걸음으로 나서서, 오른손으로 살며시 루시아의 허리를 감쌌다.

리듬의 빨라진 걸 눈치챈 루시아는 옅은 미소와 함께, 한 걸음 다가와 지휘관의 손을 잡았다.

둘은 다시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군중 속에서 리듬에 몸을 맡겼다.

저녁 바람이 살랑이는 해변 위, 둘은 자신들만의 속도로 스텝을 밟았다.

선율은 해안을 따라 맑게 퍼졌고, 루시아의 치맛자락은 파도처럼 부드럽게 흔들렸다. 그 모습은 마치 하얀 깃털이 밤하늘을 유영하는 듯했다.

[player name]...

루시아는 지휘관의 팔에 손을 얹고 빙그르르 몸을 돌리며 춤을 추었다. 그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정확히 마주쳤다.

은은한 달빛 아래, 루시아는 지휘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 지휘관님과 춤을 추고 있으니… 정말 행복해요.

품 안에서 전해지는 따스한 눈빛에 지휘관의 스텝도 어느새 한결 가벼워졌다.

돌아가면 다른 춤도 같이 배워볼까요?

그때, 해안에서 갑자기 불꽃 하나가 하늘로 솟구치더니 오색찬란한 빛을 터뜨렸다.

지휘관님, 불꽃놀이예요!

불꽃과 함께 유성처럼 빛들이 잇따라 터졌고, 환호성이 해변을 가득 메웠다.

곧이어 단상 위로 축제 주최자가 올라서며 크게 외쳤다.

신도 여러분, 거룩한 12시, 거룩한 자정이 찾아왔습니다!

주께서 여러분의 축제를 기뻐하시니, 곧 축복이 내려질 것입니다!

이제 이마를 맞대어, 영혼이 서로 닿게 하십시오!

축제 주최자의 지시에 따라, 춤추던 사람들이 일제히 서로 이마를 맞대었다.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조금 당황한 루시아는 고개를 돌려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지휘관님, 우리도 저렇게 해야 하나요?

모두가 파트너를 끌어안으며 고개를 숙이는 가운데, 넓은 해변에는 지휘관과 루시아만이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서 있었다.

상황을 채 파악하기도 전에, 지휘관은 목 부분에서 루시아의 따스한 손길이 느껴졌다.

지휘관님...

화려한 불꽃이 쏟아지는 하늘 아래, 둘의 시선과 숨결이 맞닿았다.

눈을 감고, 처음 만났던 그 순간을 떠올려 보세요.

저 혼자예요.

그때 느꼈던 기쁨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세요.

어떤 시간, 어떤 공간에서든 지휘관님께서... 저의 지휘관님이 되어주세요.

그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제가 저로 있는 한, 어디에 계시든… 꼭 찾아갈 거예요.

함께 겪어온 고난을 이겨내세요.

루시아

그럼, 잠시 뒤에 뵐게요, 지휘관님.

그리고 이제 여러분의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세요.

지휘관님, 약속 하나 해주시겠어요?

영원히 함께하겠다는 약속이요.

이로써 의식을 마치겠습니다.

지휘관이 눈을 뜨자, 애틋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루시아가 눈에 들어왔다.

그 눈동자에 담긴 교감은 마치 은하수가 잔잔히 흐르는 듯했다.

광활한 하늘을 수놓던 오색찬란한 불빛이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마지막 불꽃이 꺼지자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밤하늘을 울렸다.

청명한 종소리와 함께 모래사장이 다시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춤추고 노래하는 이들로 가득했으며, 축제의 열기는 새로운 하루로 이어졌다.

카타니아의 밤은 정말 활기차네요.

조금도 지치지 않고 계속 축제를 즐기고 있어요.

지휘관님, 우리도 저쪽으로...

프랭크

크흠.

둘이 아직 축제의 분위기에 취해있던 그때, 등 뒤에서 익숙한 중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례하겠습니다.

프랭크?

멀리서 오시느라 고생하셨을 테고, 내일 극장에서 와인도 받으셔야 하니, 오늘은 이만 쉬시는 게 어떠신가요?

축제의 열기에 빠져, 지휘관과 루시아는 잠시 시간을 잊고 있었다.

둘은 프랭크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순간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네요. 시간이 늦었으니, 지휘관님은 쉬셔야겠어요.

죄송해요,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요.

네...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 아래, 지휘관은 루시아의 손을 놓지 않은 채, 저택으로 돌아갔다.

저택에 도착하자, 가문에서는 둘을 위해 고급스러운 침실을 준비해 놓았다.

향긋한 유목 바닥, 바람에 나부끼는 금빛 커튼, 생동감 있는 종교화… 방 안은 고풍스럽고 우아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침대가... 하나뿐인 건가요?

루시아는 방 안의 더블베드를 보고는 의아한 듯 입을 열었다.

제, 제가 야간 경계를 설 테니, 지휘관님은 편히 쉬세요.

하지만...

루시아가 쭈뼛쭈뼛하며,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저, 저는 쉬지 않아도 돼요.

이 기체로 바꾼 뒤로는 휴면이 필요 없어져서 임무 수행 시간이 훨씬 늘어났거든요.

지휘관은 말을 이어가며 폭신한 매트리스에 앉았다.

저는...

루시아는 눈을 감은 채,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어요, 지휘관님.

잠시 망설이던 루시아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침대 끝자리에 조심스레 앉았다.

지휘관이 눕자, 그녀도 조용히 옆에 누웠다.

눈을 감은 채 몸의 긴장을 풀며, 깊어져 가는 밤의 고요 속에 마음을 맡겼다.

그때 이불 스치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온기가 서서히 지휘관에게 다가왔다.

루시아가 조심스레 몸을 움직여, 지휘관의 곁으로 온 것이었다.

따스한 기운 속에서 지휘관은 이마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쓸리는 것이 느껴졌다.

루시아

안녕히 주무세요...

지휘관이 누운 것을 보며, 루시아가 살짝 미소 지었다.

안녕히 주무세요, 지휘관님.

루시아는 부드럽고 포근한 이불을 지휘관의 가슴까지 덮어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카타니아의 고요 속, 의식이 점점 흐려지는 가운데, 달빛 아래 파도 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신화, 춤과 노래, 섬...

수많은 기억들이 스쳐 지나가며 물거품처럼 흩어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지휘관은 여전히 잠들지 못한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몽롱한 상태가 이어지던 그때, 바닥에서 가벼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떠보니 방은 여전히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

지휘관이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자, 창가에 서서 밤하늘을 바라보는 루시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은은한 달빛 아래 그녀의 머리칼은 미풍에 살랑이며, 마치 비단처럼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루시아가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지휘관님?

죄송해요, 저 때문에 깨셨나요?

몸을 일으킨 지휘관이 창밖을 바라보자, 수평선 너머로 밝은 달이 해안가의 불빛을 은은히 비추고 있었다.

네. 오늘 밤은 유독 빨리 지나간 것 같네요.

이곳의 밤, 그리고 지휘관님과 함께한 이 시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어요.

조금은 아쉬운 듯한 루시아의 시선이 먼바다로 향했다. 불빛으로 활기를 띠던 해변과는 달리, 바다는 고요하고 차분했다.

침대에 누워 오늘 하루를 되짚던 지휘관 역시 그 말에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추억에 잠긴 듯한 표정을 보며, 지휘관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네?

지휘관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루시아는 순간 눈이 동그래졌다.

하지만...

지휘관은 말하며, 루시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

지휘관의 제안에 그녀는 기대에 가득 찬 눈빛과 함께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알겠어요, 지휘관님.

요청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럼, 즐겁게 놀아볼까요.

루시아가 지휘관의 손을 잡고 창문을 열자, 시원한 밤바람이 두 사람을 감싸안았다.

서염 기체의 루시아가 지휘관을 끌어안더니, 순식간에 하늘을 가르며 솟아올랐다.

지휘관님, 꽉 잡으세요.

귓가에 바람 소리가 스쳐 갔고, 발 아래로는 푸른 파도가 넘실거렸다.

달과 별빛 아래, 루시아와 지휘관은 해안가를 따라 오늘 밤의 축제를 향해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