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기념일 이벤트 스토리 / 시간이 속삭이는 목소리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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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과 함께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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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따라 천천히 돌계단을 오르자, 고요하고 평화로운 구룡의 산골짜기가 보였다.

숲을 스쳐 지나는 바람 소리 사이로, 바닥을 쓸어내는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몇 걸음 더 나아가자, 구룡의 복장을 한 노인이 마당을 쓸고 있었다. 노인의 표정에는 한가로움과 여유가 깃들어 있었고, 지휘관과 눈이 마주치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노인과 짧게 인사를 나눈 뒤, 마지막 계단을 오르자 마침내 목적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굴뚝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이미 발소리를 들은 함영은 집 안 창문을 열어 놓고 지휘관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지휘관님.

지휘관도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폭포처럼 흘러내린 함영의 머리카락이 아침 햇살 속에서 반짝이며 그녀의 미소를 더욱 맑게 비췄다.

삼색 고양이 한 마리가 함영의 품에서 빠져나와 창틀을 타고 땅으로 뛰어내린 뒤, 마당의 울타리를 넘어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장 깊숙한 곳으로 달려갔다.

함영은 찻상에 놓아두었던 비녀를 집어 들고 긴 머리를 정갈히 묶은 뒤, 빠르게 마당으로 내려와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방금 고양이 소리가 나길래 지휘관님이 일찍 도착하신 줄 알았어요. 설마 창문으로 뛰어들 줄은 몰랐네요.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건넨 함영은 지휘관을 방 안으로 안내한 후, 고양이가 쓰러뜨린 물건들을 하나하나 차분히 정리했다.

창가에 놓인 찻상에 앉자,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이 시야 가득 들어왔다. 숲은 바람에 일렁이고, 햇살은 따뜻하면서도 부드러웠다. 멀리 시냇물은 물레방아를 돌리며 논밭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함영은 다과가 담긴 바구니를 찻상 위에 내려놓고, 물을 끓이기 위해 화로에 불을 붙였다.

지휘관님 생일을 축하드리고 싶어서 제 마음대로 초대해 버렸네요…

그녀는 바구니의 덮개를 조심스레 열다가 잠시 말끝을 흐렸다.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서, 오히려 제가 더 당황했어요.

그래도 다과는 미리 준비해 두었답니다. 한번 드셔보시겠어요?

함영은 찜통에서 따뜻한 계화 빵을 꺼내 지휘관 앞에 내밀었다.

지휘관이 조심스레 빵 하나를 집어 들고 맛보자, 은은한 계화 향이 입안에 퍼졌다.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이 미각을 자극했고, 달지 않으면서도 은근한 단맛이 입안을 감쌌다.

괜찮으시다면, 돌아가실 때 싸드릴게요.

찻주전자가 조용히 끓기 시작하자, 함영은 조심스럽게 주전자를 들어 첫 잔을 우려냈다.

창가에 놓인 화초들이 지휘관의 시선을 끌었다. 장미 몇 송이가 만개해 있었고, 창밖에는 남설화가 무성했으며, 반대쪽에는 동백나무 묘목이 싱그럽게 자라나고 있었다.

그 시선을 눈치챈 함영은 연노란 장미 한 송이를 꺾어 지휘관에게 건넸다.

짙은 장미 향이 방 안 가득 퍼지며, 계화 향조차 잠시 묻혔다.

함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꽃들은 모두 작년 오늘, 지휘관님과 함께 거닐었던 정원에서 옮겨 심은 거예요.

사계절 내내 피는 식물들이라, 언제 오셔도 활짝 핀 모습을 보실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함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장미꽃을 지휘관의 가슴 주머니에 꽂아주고, 옷깃을 가지런히 정리해준 뒤 방 안쪽으로 향했다.

잠시 후, 함영이 들고 나온 건 정갈하게 접힌 구룡풍 의복이었다.

지난번 뵀을 때부터 지휘관님께 옷을 한 벌 만들어드리고 싶었어요.

괜찮으시다면 한번 입어보시겠어요?

함영에게서 옷을 건네받자 손에서 섬세한 촉감이 느껴졌다. 얼핏 보기엔 단색이지만, 살짝 쓸어보니 옷감에 은은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회흑색 바탕에 단아한 비취색 장식이 조화를 이루며, 마치 함영의 옷과 한 세트처럼 잘 어울렸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 아래 옷감에 새겨진 무늬가 살아 움직이는 듯 생생하게 빛났다.

...

지휘관님. 어떠세요?

옷을 갈아입고 거울 앞에 선 지휘관은 예전에 봤던 구룡 그림 속 인물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행이네요.

함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함영은 안도한 듯, 미소가 한층 더 밝아졌다.

사실 너무 화려하면 다른 자리에서는 입기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어요.

그래도 지휘관님께서 이곳에 오실 땐, 꼭 어울리는 옷이 있었으면 했어요. 이 옷은 지휘관님만의 것이고, 오늘 같은 순간을 위해 만든 거예요.

작은 부탁이라고 생각해 주시겠어요?

지나가는 바람이 함영의 머리카락을 흔들었고, 꽃망울들이 가지와 함께 살랑거리며 은은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함영의 눈동자가 잠시 반짝였지만, 곧 원래의 차분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음... 아직 시간도 이른데, 차 한 잔 더 하면서 조금만 더 곁에 있어 주세요.

구룡산 속 작은 집에서 새로 우려낸 차 반 잔이 찻잔에 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