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의 공간은 좁고 어두웠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쳤고, 손에 들린 무전기만이 희미한 초록빛을 내고 있었다.
조금 전, "게임 규칙"에 따라 지휘관과 팔지는 각각 다른 방으로 안내되었다.
흐흐흐... 드디어 10년 만에 너희 둘을 잡았구나.
갑자기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섬뜩한 웃음소리에 지휘관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정수 중학교“에서 빠져나가고 싶다면, 힘을 합쳐 그날의 진실을 찾아내야 할 거야...
쾅! 여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벽이 진동하며 먼지가 우수수 떨어졌다
잠, 잠깐만요, 손님! 이 벽은...
폭발음과 함께 벽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더니, 익숙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오,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 여기 있을 줄 알았어.
손, 손님... 스테이지를 건너뛰셨어요! 원래 결말 전까지는 절대 만날 수 없게 되어 있는데…
어라? 벽에 틈이 있길래, 숨겨진 통로인 줄 알았는데.
두... 두 분 모두 안내 사항은 잘 읽어보셨죠? 그럼, 시설 파손 비용은...
음, 비용은 내가 낼게. 근데 초자유도 리얼 방 탈출이라며? 이 정도면 자유도가 낮은 거 아니야?
오늘 네 생일이잖아. 새로 생긴 공포 테마 방 탈출이라길래 같이 체험하면 재밌겠다 싶었어.
흔한 선물은 잊히기 쉽잖아. 이런 짜릿한 추억은 오래 남을 테니까.
들어오기 전에 직원들이랑도 미리 이야기해 뒀지.
크흠! 10년 전, 큰 화재로 접수 중학교는 잿더미가 됐다. 하지만 아무도 그 잿더미 아래에 꽃다운 나이의 소녀가 묻혀 있는 사실을 몰랐지.
때마침 무전기 소리가 울리며, 벽과 함께 무너진 몰입감을 간신히 살려냈다.
분위기가 섬뜩하네... 잡담은 여기까지만 하고, 슬슬 가보자. 지휘관.
왜, 이런 거 무서워해?
걱정하지 마. 내가 앞장설 테니까 귀신한테 잡혀가지 않게 꽉 잡아.
팔지가 내민 오른손을 잡은 지휘관은 어둠 속에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공간은 으스스했지만 퍼즐은 비교적 간단했다. 간혹 깜짝 효과음이 나오긴 했지만, 걱정했던 여자 귀신은 튀어나오지 않았다.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생각보다 쉽네?
말이 끝나자마자 큰 소리가 울렸다. 소리 나는 쪽을 보니 교실 옆문을 막고 있던 널빤지가 휘어져 있었고, 마치 누군가 문을 부수고 들어오려는 듯 위태로워 보였다.
꼭꼭 숨어라. 내가 잡으러 간다!
팔지는 즉시 지휘관의 손을 더욱 세게 움켜쥐고, 반사적으로 동력 팔을 펼치며 전투 자세를 취했다.
쳇, 그럼, 어떻게 하고 싶은데?
주위를 둘러보니 교실 안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어서 구석에 있는 캐비닛 몇 개 말고는 숨을 공간이 없어 보였다.
팔지는 재빨리 달려가 여러 개의 로봇 팔을 펼쳐 캐비닛 문을 동시에 당겼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거 왜 이래? 다 잠겨있잖아!
그때 지휘관은 우연히도 유일하게 잠겨 있지 않은 캐비닛을 열게 되었다.
좀 더 안으로 가 봐, 너무 좁잖아!
미처 수납하지 못한 팔지의 동력 팔이 뒤에서 실타래처럼 엉켜 좁은 공간을 더욱 비좁게 만들었다.
간신히 캐비닛 안에 들어간 두 사람은 서로의 숨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이 마주 서 있었다.
잠깐, 네 뒤에 뭐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캐비닛 안쪽 벽이 갑자기 무너졌고, 서로 기대고 있던 팔지와 지휘관은 뒤로 넘어지며 밝은 공간 속으로 떨어졌다.
뒤에 있던 냉기가 사라지자 경쾌한 음악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시야의 한가운데에는 "생일 축하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그 아래에는 새하얀 케이크가 놓여 있었다.
어쩌다 보니 클리어한 것 같네. 내가 준비한 케이크야. 마지막 지점에 갖다 놨을 줄은 몰랐네.
팔지는 일어나 팔을 쭉 펴며 몸을 풀었다. 조금 전까지 긴장했던 표정도 서서히 밝아졌다.
휴... 무섭긴 했는데 별일 없이 끝나서 다행이다. 어땠어?
어떤 운동이든 긴장과 이완이 필요해. 너는 일할 때 완벽해지려고 하잖아. 퇴근 후에는 좀 풀어줄 필요가 있어.
팔지는 지휘관의 손을 잡고 테이블 앞으로 다가가, 숟가락으로 케이크를 한 조각 떠서 천천히 내밀었다.
오래 돌아다녀서 배고프지? 한 번 먹어봐. 고르는 데 꽤 애먹었어.
따뜻한 달콤함이 미각에 퍼지며 오랫동안 쌓였던 피로를 날려 버렸다. 팔지는 지휘관의 만족스러운 표정을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쉬는 모습 보니까 재밌네.
생일 축하해. [player name].
다음엔 좀 더 재밌는 곳으로 데려가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