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관은 생활 구역에서 열리는 야외 음악회에 초대받아 참석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단말기로 받은 메시지에는, 생활 구역의 생태 조절 모듈에 이상이 생겨 물순환이 제어에서 벗어났다는 내용이 있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주최 측도, 관객들도 당황했고 모두가 근처 건물로 대피해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비 부대가 긴급히 수리에 나섰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아쉽게도 시스템 하드웨어가 고장 난 거라, 관련 부품을 전부 교체하기 전까지 한동안은 계속 비가 내릴 거야.
회백색 제복을 입은 여성이 어느새 지휘관 곁으로 다가와 창밖을 함께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큰 피해 나기 전에 고장을 발견한 건 다행이지. 이 비, 어쩌면 "때맞춰" 내려준 거라 할 수도 있겠네.
이스마엘...
요즘 따라, 그녀와 이렇게 마주치는 일이 잦았다.
안녕.
저녁에 다른 일정 있다고 했지? 비가 한동안은 더 올 것 같은데, 내가 데려다줄까?
지휘관은 이스마엘이 들고 있던 긴 우산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가 "우산을 가지고 있다"라는 사실보다 방금 전 건넨 말이 더 의외였다.
지휘관은 최근 관심이 생긴 책이 있다. 요즘 시간이 없어서 읽지 못했는데 오늘 여유 시간이 드디어 생겼다.
그리고 지휘관은 이 일을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다.
넌 항상 스케줄을 꽉 채워놓잖아.
이스마엘은 마치 지휘관의 마음을 읽은 듯, 부드럽게 웃으며 우산을 살짝 들어 보였다.
마침 나도 그쪽에 볼 일이 있는데, 같이 갈까.
{226|153|171}~
이스마엘은 지휘관과 나란히 걸으며 익숙한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무슨 노래인지 알겠어?
맞아.
내가 이번 강연에 참석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노래 때문이야.
이 노래랑 어울리는 스텝도 알고 있다고 들었는데.
하지만 이것 역시 이스마엘에게 말한 적 없는 내용이었다.
그럼, 나랑 한 곡 추지 않을래?
지휘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스마엘은 조용히 걸음을 멈추고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폭우는 장막처럼 퍼져나가 모든 소리를 삼켜버렸고, 흐릿한 가로등 불빛만이 빗속을 비추고 있었다.
마치 무대 위에 단둘이 선 듯한 느낌이었다.
괜찮아. 가까이 있으면 안 맞아.
지휘관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조금 더 다가섰다. 그리고 오른손을 그녀의 허리 쪽으로 조심스레 얹었다.
긴장하지 마. 스텝이 조금 틀려도 괜찮아. 그냥, 즐기면 돼.
지휘관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조금 더 다가섰다. 그리고 오른손을 그녀의 허리 쪽으로 조심스레 얹었다.
긴장하지 마. 스텝이 조금 틀려도 괜찮아. 그냥, 즐기면 돼.
잠깐의 정적 이후, 이스마엘이 낮게 멜로디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지휘관은 그 선율에 발을 맞추며 조심스럽게 첫발을 내디뎠고, 이스마엘도 자연스럽게 호흡을 맞췄다.
앞으로 한 발, 뒤로 한 발. 그녀의 움직임은 유려하고 정확했다. 단순히 리드하는 것을 넘어서, 함께 춤을 추는 상대를 자연스럽게 이끌어주는 느낌이었다.
그 와중에도 우산은 두 사람의 머리 위를 완벽히 가려주고 있었다.
좀 더 빠르게 가볼까?
지휘관의 귓가에 진짜 바이올린 반주가 울리는 듯했다. 멜로디가 고조될수록, 마음 깊은 곳에서 기쁨이 솟구치면서 동작이 점점 더 경쾌해졌다.
스텝은 경쾌해졌고, 회전과 기울임이 반복되며, 우산은 두 사람의 손길 사이를 유영하듯 움직였다. 빗방울이 사방으로 튀었고, 춤은 절정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던 중, 지휘관은 무의식적으로 이스마엘의 손을 놓아, 그녀를 멀리 보내듯 한발 물러섰다. 그 순간, 우산이 빗금 같은 곡선을 그리며 멈췄고, 그제야 지휘관은 우산 밖으로 나와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비는 떨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이 정지된 것처럼, 수천 개의 빗방울이 공중에 멈춰선 듯한 착각이 들었다.
팔에 살짝 당기는 힘이 전해졌고, 이스마엘은 부드럽게 회전하며 지휘관의 품에 안겨 춤의 마지막을 완성했다. 우산이 머리 위를 덮자 다시 빗소리가 들려왔다.
마무리 장면으로는 딱 좋네.
자세를 가다듬으며 머리카락을 정리하는 그녀의 얼굴엔, 전보다 더 진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
이걸로 선물은 준비 끝.
돌아가면 알게 될 거야.
그 후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휘관을 문 앞까지 데려다준 이스마엘은 간단한 인사를 하고 떠났다. 방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녀가 했던 말이 계속 생각났다.
책장 위에 두었던 책 옆에는 낯선 화집 하나가 놓여 있었다.
펼쳐보니 간단하면서도 생동감이 넘치는 스케치들로 가득했다. 누군가의 긴 여정 중에 있었던 재밌고 잊지 못할 순간들이 페이지마다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펼치자, 지휘관과 이스마엘이 빗속에서 춤추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림 아래에는 정갈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있었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 지휘관, 생일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