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오후, 바쁜 일정을 마무리한 지휘관은 겨우 휴게실 소파에 기대어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찻상 위에 놓인 체리 맛 사이다 병뚜껑을 땄다. "치익" 소리와 함께 탄산이 퍼졌고, 하루 종일 쌓였던 피로가 조금은 가시는 기분이었다.
합성 향료지만 체리 특유의 새콤달콤한 맛을 꽤나 그럴듯하게 재현해 냈다. 달콤하면서도 시큼한 그 맛에 지휘관은 사이다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곤 조용히 소파에 기대어, 푹신한 쿠션에 몸을 맡겼다. 점점 현실의 소음이 멀어지고, 어렴풋한 백일몽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
뒤쪽은 정신없이 바쁜데, "주범"은 여기서 태평하게 낮잠이나 자고 있네.
서늘하면서도 부드러운 감촉이 이마에 닿으며 지휘관을 꿈에서 깨웠다. 눈을 뜨니, 테디베어가 검지로 지휘관의 이마를 살며시 누르고 있었다.
테디베어는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달콤한 쿠키 같은 향이 은은하게 풍겨왔다.
게다가 오늘따라 "주범"이라는 단어를 유난히 또렷하게 강조하며, 귀찮아하던 설명까지 조목조목 덧붙인다. 지휘관은 곧 테디베어가 "연기"를 하고 있음을 눈치챘다.
진짜 몰라서 묻는 거야? 지난번 임무의 중요한 실험 데이터를 제출 안 하고, 방금 5분 조는 사이에 공중 정원의 방화벽이 뚫렸다고.
지금 거리에 수색팀 풀렸어. 다들 너 잡으려고 난리야.
변명은 그만해.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화난 프로그래머들의 수색을 피하려면, 나랑 이 휴게실에 숨어있는 수밖에 없어.
오늘 오후는 꼼짝도 못 해.
테디베어가 손을 내밀었다. 손목시계에서 튀어나온 미니 단말기의 스크린엔 "경보" 두 글자가 계속 깜빡이고 있었다.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테디베어는 진지한 눈빛으로 "봐, 거짓말 아니지?"라고 말하는 듯 지휘관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뭐가 이상한데?
흥.
지휘관의 말이 끝나자마자, 테디베어의 얼굴에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미소가 스쳐 갔다.
며칠 안 봤더니 말솜씨가 늘었네.
됐어. 이런 핑계로는 널 못 속일 줄 알았어.
테디베어는 찌푸렸던 표정을 풀고, 등 뒤에서 개인용 태블릿 단말기를 꺼내 지휘관에게 툭 던졌다.
진실이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봐.
지휘관은 단말기의 잠금을 해제하고, 임무 알림 기록을 확인했다. 그리고 재빨리 자신의 이름 아래에 있는 "최신 알림"을 눌렀다.
선명한 빨간 글씨로 표시된 "긴급 임무"가 눈에 들어왔다.
넌 진짜 운도 없지.
저번엔 전원 추첨에 걸리더니, 이번엔 생일날에 임무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긴급 임무에 당첨되다니.
난 아침 일찍부터 가게에서 베이킹파우더와 슈거 파우더 준비하느라 바빴다고. 심지어 그 귀찮은 오빠한테까지 부탁해서 보육 구역에서 갓 딴 체리까지 공수해 왔는데.
너 때문에 다 허사가 됐어. 이거 어떻게 책임질 거야?
지휘관은 그제야 테디베어 몸에서 과자 향이 났던 이유가 이해됐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바로 "다음"이야.
지휘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테디베어는 손으로 지휘관의 입을 막았다.
난 원하는 건, 바로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거든.
[player name], 이런 말 들어본 적 없어? 유통기한이 지난 체리 통조림은 절대 기존의 맛이 나지 않아.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머금은 테디베어는 지휘관의 손에서 단말기를 가볍게 빼앗았다.
미안. 사실 방금 한 말도 거짓말이었어.
사실 네가 잠든 사이에 그 귀찮은 임무는 내가 다 처리해 놨어.
그런데 내가 준비한 체리 음료도 다 마시고, 눈앞의 깜짝선물까지 못 알아보면… 나라도 서운하지 않겠어?
그래서 장난 좀 쳐 봤어, 이 정도는 괜찮잖아?
테디베어의 미소는 몸에서 풍기는 달콤한 향기만큼이나 위험해 보였지만 그녀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오늘 남은 시간 동안 어떻게 보상해 줄 건지 생각해 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