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레는 그나마 배짱이 좀 있었지만, "철두"는 이미 도망가 버렸다. 그는 이리저리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지휘관을 편전 반대편으로 데려갔다.
긁힌 자국으로 가득한 편전의 문을 용기 내어 두드리자, 곧바로 시끄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 어느 눈치 없는 놈이야? 설마 그 붉은 눈 기계체일까?
안에서 옷깃을 스치는 소리와 총 장전 소리가 들리자, 투레는 이미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잠깐, 들여보내.
무거운 나무문이 천천히 열리자, 편전 안에는 양쪽으로 총을 겨눈 채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는 승복 차림의 "승려들"이 서 있었다.
뭐? 시비 걸려고 온 거야? 죽고 싶어 환장했어?
누굴 무시하는 거야? 혼 좀 나볼래?
일단 무슨 말을 하려는 지 들어보지.
하지만...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했다. 세주. 형님의 그 말씀을 다 잊은 거냐?
산조직은 "임협"이지, 불량배가 아니다.
위엄 있는 목소리가 전각 안에 울려 퍼지자, 거만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던 젊은이들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패목 아버지.
하지만... 이 사람이 바로 소주께서 데려간 "사냥감"입니다. 저희는 소주랑 말 한마디도 나누지 못했는데...
그래?
중년 남자의 눈에서 미묘한 빛이 번쩍였다. 마치 온몸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지휘관을 평가하는 듯했다.
일단 들어와서 얘기하지.
팽팽했던 긴장감이 조금 누그러졌고, 적대적인 시선들 속에서 편전 안에 자리를 잡았다.
도망칠 기회를 놓친 투레도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왔다. 그가 몰래 뭔가를 하려는 기색이 보이자, 몇몇이 "친절하게" 덩치 큰 몸으로 그의 앞을 막아섰다.
투레가 갖고 있던 잡동사니들, 무기라 하기도 애매한 것들은 곧 "정중하게" 압수당했다.
패목 아버지라 불리는 사람이 그들의 수장인 듯했다. 희로애락을 전혀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예의를 지키는 모습이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님을 직감하게 했다.
무슨 일로 우릴 찾아왔나?
말도 안 되는 소리! 저 녀석들은 오늘 쌀을 훔쳤다면, 내일은 총을 훔칠 놈들이라고. 근데 그냥 놔두라니... 그걸 용납할 리 없잖아!
당신들도 아무런 이유 없이 우리 쪽 사람들을 공격했잖아요! 그래서 갚아준 것뿐이라고요!
투레는 말을 마치자마자 재빨리 지휘관 뒤로 숨었다. 세주가 노려보자, 지휘관은 서둘러 투레에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화제를 돌렸다.
뭐? 위험하다고? 그걸 우리가 모를 것 같아? 우리가 어떤 각오로 여기에 왔는지 알기나 해?!
세주는 큰 소리로 외치며 주먹을 꽉 쥐고 기세등등하게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뒤에 있던 부하들도 일제히 일어섰고 현장은 일촉즉발의 긴장감에 휩싸였다. 패목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말리지도 않았다.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이들은 성격이 급하고 거칠며 연이은 습격으로 이성적인 판단이 어려운 상태였다. 무기도 없는 상황에서 싸움이 벌어진다면, 홀자서 저 많은 사람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대로 고립무원의 처지가 되어버린 것일까? 지휘관은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교착 상태가 계속되는 가운데, 지붕에서 갑자기 미세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정전기가 일어난 듯한 가벼운 소리였다.
알파인가?!
그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는 순간, 한 줄기 차가운 빛이 번쩍이더니 비수 하나가 정확하게 날아와 앞에 있는 낮은 탁자에 꽂혔다.
뭐야?! 어디서 날아온 거야?
비수의 손잡이에 흠집이 조금 있었지만, 칼날은 잘 관리되어 매우 날카로웠다.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주인이 매우 아끼며 다뤄온 흔적이 역력했다.
사람들은 크게 동요했다. 맑게 빛나는 칼날에 비친 각자의 표정이 모두 달랐다.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는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이 그리고 두려움에 휩싸인 이들의 모습이 칼날에 선명히 비쳤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속으로 감탄하며 겉으로는 최대한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려 애썼다.
지휘관은 최강의 후원자가 있다는 든든함에 저절로 허리가 곧아졌다. 다만 그녀가 이 비수로 반대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제거하겠다는 의도만 아니길 바랄 뿐이었다.
소주를 대신해 왔다는 말을 듣자, 패목의 눈빛이 마침내 변했다.
모두들 물러서거라.
공중 정원의 사람이라고 했었나? 소주와는 어떤 관계지?
중년 남성은 손가락으로 낮은 탁자를 두 번 두드리고는 양손을 맞잡고 턱을 괴었다. 그러자 부하들이 얌전히 물러났다.
자네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사원에 모셔진 이 보검은 황금시대의 도공 마사무네가 평생을 바쳐 만든 거다. 사용된 재료가 매우 특별해서 세상에서 찾아보기 힘들지.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아직 날이 서 있어서 쇠도 종이 베듯 자를 수 있지. 원래 우리 형님의 것이었으니, 형님이 안 계신 지금 우리가 보관하는 게 맞다.
우린 형님의 가족으로서 이 보검을 방치된 채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는 말이다.
다만...
내가 형님의 검술을 못 알아볼 리가 없어. 저 모습... 형님께서 언급하셨던 계승자가 분명해.
소주가 이 칼을 가져가겠다고 하면, 우리는 막지 않겠다.
세주가 참지 못하고 뭔가 말하려 했지만, 패목이 손을 살짝 들어 제지했다.
우리같이 버려지고 집 없는 떠돌이들에게 형님은 은인과도 같은 분이셨다. 그분의 인의와 신념을 이어가는 건 산조직의 당연한 의무라 할 수 있지.
여기 있는 모든 이들이 내 소중한 자식들이라 어떻게든 보호하겠지만, 외부인들 일에는 관여하고 싶지 않다.
형님의 사원은 우리 조직이 직접 지키겠다.
맞습니다!!
세주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이쪽을 노려봤다. 목소리가 클수록 기세가 있어 보일 거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여러분의 고집은 이해하겠지만, 지금은 해결해야 할 현실적인 문제가 있어.
침식체들이 아직 대전 안에 잠복해 있어서,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상황이고,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는 새로운 사상자가 나오지 않게 할 수 없을 테지.
당신은 부하들을 죽음으로 내몰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지휘관은 특별히 "죽음"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예상대로 그들은 조직적이었고, 동료를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침식체들이 설산 부근을 배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이유로 이곳까지 찾아온 걸 보면, 그들의 결심과 의지는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원을 지키고 이곳에 자리 잡기엔 그들의 힘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현재의 이해득실을 더 분명히 파악해야 했다. 결심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하나의 구역을 차지하긴 쉽다고 쳐도, 그 구역을 지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테니, 내 제안을 고민해 봤으면 좋겠어.
침식체 문제는 나랑 알파... 아니, 소주와 함께 처리할게.
누군가가 경멸하듯 코웃음을 치며 전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협상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 목소리를 한층 더 높였다.
사원을 다시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려면 아직 많은 노력이 필요하잖아.
이곳의 질서를 세우기 위해 공중 정원에서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겠음을 약속할 수 있어.
공중 정원의 지휘관이 어떤 존재인지 전혀 개념이 없어 보이는 투레는 놀란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봐. 지금 이곳의 유랑민들이 당시 집 없이 떠돌던 당신들과 뭐가 다르지?
과거 당신들을 받아줬던 그 형님께서도 지금 이 순간 더 나은 선택을 하길 바라겠지.
패목은 마침내 마음이 움직인 듯했다. 그는 엄숙한 표정으로 잠시 앉아있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이 대결도 끝을 향해 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기세를 몰아 마지막 한마디를 덧붙였다.
양쪽에게 <b>윈윈</b>인 상황이 더 좋지 않나?
음, 일리 있는 말이군, 그쪽이 정말 침식체를 처리할 수 있다면...
아버지?! 이대로 넘어갈 순 없습니다!
그럼, 너한테 더 좋은 방법이라도 있나? 세주야, 체면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지금 식량도 무기도 바닥인 상황이다. 무기는 밥이 되지 않아.
세주는 험악한 눈빛으로 지휘관을 노려보며 꽉 쥔 주먹을 떨었다. 그러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더니, 심호흡을 몇 번하다가 갑자기 폭발했다.
네가 뭔데?!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죽고 다쳤는지 알아? 그런데 말 몇 마디로 이걸 해결하겠다고? 이 구역은 조직의 목숨줄이라고, 그걸 그냥 공유하자고?
아버지, 못마땅하시면 싸워서 결판내셔야 합니다. 우리는 늘 그렇게 살아왔잖아요!
이건은 네가 날뛸 자리가 아니...
세주가 품 안의 총을 꺼내려 하자 패목의 포커페이스가 처음으로 무너졌다. 그는 말을 끝내거나 그 녀석을 막을 겨를도 없었다.
거리는 딱 적당했다. 조직폭력배라고는 하나 상대의 움직임은 너무 느렸다. 그래서 다른 이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지휘관은 상대의 총을 걷어차고 이어서 완벽한 업어치기를 시전했다.
세주처럼 자존심이 강한 상대에게는 손목 관절을 제압하는 것도 좋은 기술인 것 같았다.
"쿵" 하는 큰 소리가 편전에 울려 퍼졌고, 곧이어 비명 소리가 이어졌다.
바닥에 누워 고통에 일그러진 세주를 내려다보았다. 사실 그의 말이 다 틀린 건 아니었다. 때로는 무력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
이제 협상이 끝났다고 봐도 되겠지? 앞서 말했던 "인의"를 지켜줬으면 하는데
지금은 실수할 기회라도 있지만, 실전에서는 그런 기회조차 없을 거야.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지휘관이 일어서자 주위에 있던 부하들이 황급히 뒤로 물러나 자리를 비켰다. 모든 상황이 정리되자 패목은 창백해진 얼굴로 이마를 짚으며 하늘을 보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흉한 꼴을 보여줘서 미안하군. 내가 제대로 가르치질 못했어.
세주. 조직의 일원으로써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지?
이번엔 네가 잘못했다.
패목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탁자에 꽂혀 있는 비수를 가리키자, 편전 안이 순식간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알... 알겠습니다. 아버지.
풀이 죽은 채 코피를 닦은 세주는 다른 이들의 부축을 받으며 왼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비수는 차가운 빛을 번뜩였다.
손가락 하나면 되겠지? 이 녀석의 무례함을 사죄하는 의미로 말이야.
이건 우리 내부의 룰이다.
세주를 붙잡고 있던 이들이 아버지의 안색을 살피며 망설이다 그를 놓아주었다. 세주는 거친 숨을 내쉬며 지휘관을 착잡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주변의 적대적이던 시선도 미묘하게 변해 있었다.
급히 비수를 회수했고, 주인이 개의치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중년 남성은 지친 기색으로 부하들에게 나가라고 명령한 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편전의 불상 앞에서 타오르는 등불을 바라보았다.
형님은... 의리를 목숨처럼 여기던 분이었다고, 모두의 존경을 받았지. 게다가 타고난 검술 실력으로 평생 적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힘으로 남을 억압하진 않으셨어.
그런 형님이 적들에게 약점을 잡혀 모든 걸 잃었고, 이 산에 올라와 스스로 모든 분쟁에서 멀어지기로 하셨다. 형님이 남기신 보검은... 소주가 잘 써주길 바라.
편전을 나서자 투레는 해방된 듯, 지휘관에게 어색하게 인사하고는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눈 속에서 붉은 동백꽃이 오히려 더욱 화려하게 피어있었다.
날씨는 흐렸지만, 석탑에 기대어 팔짱을 낀 채 서 있는 하얀 머리의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녀를 본 순간 안심이 됐다.
얼굴에 떨어지는 눈꽃을 애써 털어내며 그녀 곁으로 걸어갔다.
알파는 대답 없이 어깨 위의 눈을 털어냈다.
알파라면 무시하고 지나치거나 아예 밟고 지나가는 게 더 쉬운 해결책이었을 것이다.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농담을 참 재미있게 하네.
근처에서 떠돌던 침식체는 다 처리했어. 더 이상 방해되지 않을 거야.
걱정하거나 의심할 필요 없었다. 그 누구도 그녀를 막을 순 없기 때문이다.
비수 다 썼으면 돌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