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파도가 부서지면서, 순수한 욕망, 슬픔과 증오를 상징하는 껍데기가 쓰러졌다.
거친 숨을 몰아쉰 라미아는 더 이상 자신의 형체를 유지하지 못한 채 물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마침내 끝난 것인가?
라미아는 문득 홀가분하면서도 망설여졌다.
지휘관은 무사할까? 자신이 깨어난 후엔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
이를 알 수 없었던 라미아는 그저 눈을 감고 싶었다. 눈꺼풀 너머로 빛이 조금씩 옅어지자, 라미아는 더 깊은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촤아아...
물속에서 들을 수 없는 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그리고 라미아는 멍하니 눈을 떴다.
콜록... 콜록콜록...
다행히 너한텐 영향이 없었나 보네. 네가 아무 일 없어서 정말 다행이야.
라미아의 목소리가 조금씩 약해지면서, 그녀의 형체도 점점 희미해져 갔다.
이러는 걸 보니...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것 같네?
그렇구나. 그... 그럼, 마지막으로... 내가...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라미아는 침을 삼켰다. 목소리는 조금 변했지만, 그래도 힘겹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난... 알고 싶어 졌어. 처음 이 세계에 왔을 때... 그러니까... 내가 바다에서... 널 데리고 집으로 왔던 그 이틀 동안...
너... 콜록... 콜록콜록... 행복... 했었어?
그래. 그럼, 다음엔... 더 행복하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
현실에서 열심히...
다행이다. 이 세계가 존재했던 게 의미가 없진 않았네.
라미아의 목소리가 조금씩 아득해져 가더니, 마침내...
이게 꿈이라면... 정말... 깨어나서도...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바닷바람 속으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