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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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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적막한 의식 속으로 살짝 둔탁한 감각이 밀려왔다.

귀에 물결 소리와 새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고, 어둠이 걷히며 빛이 시야를 채워갔다.

……

으음.

라미아는 이마를 감싸고 낮게 신음하며 몸을 일으켰다.

허망의 경계에 갇혀 있던 때와는 달리, 몽롱한 상태에서 떠오른 기억들은 뚜렷하지 않았다. 하지만 떠오른 기억들은 충분히 선명했다.

아파. 정말 죽는 줄 알았네.

빠져나온 건가?

고개를 숙인 라미아는 연못에 비친 자신의 피곤한 눈빛이 보였다.

따스한 빛과 시원한 물이 라미아에게 안심이 되는 현실감을 주었지만, 마음속 깊은 허전함은 지울 수 없었다.

아, 역시 옷도 없어졌네.

어깨에서 가슴까지 손끝을 미끄러뜨리자, 물방울이 살며시 흔들렸다. 마치 그 예쁜 옷이 아쉬운 듯도 하고, 다른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듯도 했다.

이번 꿈은 진짜 길었어.

멍하니 연못에 다시 몸을 뉜 라미아는 눈을 깜빡이지도 않은 채, 튀어 오르는 물방울 속에서 잡히지 않는 풍경을 보는 것만 같았다.

라미아는 해당과 어제 구조한 젊은이를 데리고 모래사장에 구덩이를 판 뒤, 물고기와 새우를 고르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한숨 자고 났는데도 기억나는 게 없어? 우리가 도와 줄 순 있지만, 단서가 없으면...

이름은? 사람 이름이나 지명 같은 건... 설마 이름까지 잊어버린 건 아니지?

둘은 모닥불 한쪽, 사람들에게서 적당히 떨어진 곳에 앉았다.

아쉽네. 내 요리 솜씨를 보여줄 겸 직접 저녁 만들어주려고 했는데.

하지만 공짜로 한 끼 얻어먹고, 내가 해야 할 것도 없으니, 손해는 아니야. 괜찮아.

라미아는 나른하게 하품하며, 소매를 잡고는 어깨에 기댔다. 그러자 머리가 흔들리더니 고개가 아래로 기울어졌다.

라미아

어? 당연히 팔아야지. 그래서 너한테 이걸 맡긴 거야. 으음... 움직이지 마. 좀 더 자게 해줘. 너무 졸려. 쿨... 쿨...

라미아

응? 너 소라 피리 몰라? 난 해안가에 사는 사람들은 다 아는 줄 알았는데.

어부들에게는 어디서든 조개나 소라를 주워서 연주하는 게 일종의 놀이거든.

라미아는 천천히 눈을 감고는 소라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따~ 따따~ 따따~

소라 피리의 음표가 흐르는 물소리와 어우러졌다. 물보라 속 풍경은 많은 소녀들이 감히 상상하지 못할 만큼 고요했고, 너무나 평화로운 일상이었으며, 너무나 단순한 기쁨이었다.

그것은 무리에서 벗어난 물고기가 감히 바랄 수 없는 따스한 바다였다.

바스락... 바스락...

문득 연못가의 소리에 멍하니 있던 라미아가 정신을 차렸다.

히익. 누... 누구야?!

본능적인 두려움과 경계심 속에 그녀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한 기대가 숨어 있었다.

그 사람일까? 전에 감옥에서처럼 갑자기 자신의 곁으로 올까?

스쳐 지나가는 헛된 생각에 라미아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용기를 더 냈다.

거기 누구야? 나오지 않으면 공격할 거야.

쏴...

검은 그림자가 튀어나오며 라미아와 눈을 마주쳤다.

동공 속에는 맑고 순진한 의혹이 반짝이고 있었다.

다람쥐

직... 직?

…………

정말 바보 같네. 무슨 쓸데없는 생각을 한 거야.

풀이 죽은 라미아는 손가락을 뻗어 다람쥐의 머리를 쿡쿡 찔렀다.

[player name]이(가) 여기 있을 리가 없잖아. 보육 구역에서 달려온다고 해도 이렇게 빨리 올 수는 없을 거야.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만약 깨어났다 해도 휴식도 취하지 못하고 바로 다음 임무를 수행하러 갔겠지. 항상 그런 일로 바쁘니까.

몸이 괜찮았으면 좋겠어. 의식의 바다에서 받은 상처는 정말 골치 아프니까 말이야.

다람쥐

지... 직.

다람쥐의 낮은 울음소리에 라미아가 정신을 차렸다.

미안. 내가 아프게 했니?

라미아가 손을 놓으려 했지만, 다람쥐는 라미아의 손가락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울면서 뒤를 자꾸 돌아보았다.

무슨... 응?

라미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다람쥐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감지를 펼쳤다. 그러자 숲 밖에서 그림자 셋이 다가오고 있었다.

임시 소대 A41 목표 지점에 도착했습니다. 현재 좌표 지점을 전송 중이며 수색 경로를 교정하고 있습니다.

길을 잘못 들지는 않은 것 같아. 보육 구역에 남은 연결이 이 구역을 가리키고 있어.

…………

히익... 공중 정원이야. 그들이 여길 찾았어!

거리가 꽤 멀었지만 라미아는 반사적으로 입을 가렸다.

큰, 큰일이다. 저들을 해치워야 하나? 그래야 하나? 으음...

아니야. 그냥... 그냥 빨리 도망가자. 그래. 맞아. [player name]은(는) 내가 공중 정원의 인원을 해치는 걸 보고 싶지 않을 거야.

맞아. 분명 그럴 거야. 그리고 저 무서운 소대와 맞서고 싶지 않아.

라미아는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상태에서 스스로를 설득하며 도망가려 했다. 그때, 무언가와 부딪혔다.

쿵...

?!

(저 녀석들이 벌써 여기까지 온 건가!)

무기를 잡고 내리치려는 순간, 상대방의 어깨 바로 위에서 억지로 멈췄다.

…………

서로 마주 보면서,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 라미아는 멍하니 자신이 휘두르려 했던 창을 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삐삐삐삐...

다행히 상대방의 단말기에서 갑작스럽게 울리는 진동음이 어색함을 끊어주었다.

여기는 보육 구역 사건 임시 연합 지휘 센터입니다. 정기 통신으로, 임시 소대 A42와 수신 확인합니다.

발견하셨습니까? 단서가 있다면 즉시 보고하셔야 합니다. 이번 임무 목표는 승격자입니다. 대상의 신분과 전투력이 불명확하니 독단적인 행동은 삼가 주십시오.

말을 하려다가, 라미아의 멍한 표정을 본 지휘관은 갑자기 다른 대답을 했다.

연합 지휘 센터 수신했습니다. 다른 소대들이 A42의 현재 좌표를 기점으로 분산 수색할 예정입니다. 안전에 주의하십시오.

단말기를 끄자 다시 서로 마주 보는 상황이 됐다.

저... 저기...

라미아는 입을 열었다가 금방 다물었다. 무기를 거두고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무기에 날린 옷자락을 정리해 주었다.

그리고는 목을 움츠리며 불안한 듯 중얼거렸다.

괜... 괜찮아?

걱정스러운 안부를 물으려 했지만, 쉽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곳은 가상의 세계가 아닌 현실이었고, 둘의 신분은 분명히 달랐기 때문이었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겨우 이어갈 수 있는 화제를 덧붙였다.

아? 어... 아... 오... 해당...

그녀가 괜찮다니,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다.

라미아는 먼저 멍해졌다가, 가슴을 살짝 두드리며 안심하는 시늉을 하면서 몰래 지휘관의 반응을 살폈다.

그... 그럼, 다른 사람들은?

오...

분명 이 화제도 길게 이어질 순 없었다. 라미아는 한참이 지나서야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모두 괜찮다면, 그... 럼, 난 먼저 갈게?

입술을 깨문 라미아는 떠날 허락을 구하려는 듯 머뭇거리며 서 있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허망에서 현실로 돌아와 다시 만나게 됐는데, 다른 사람들은 제쳐두고, 지휘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정말 없었을까? 만약 없다면...

라미아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눈빛이 흐려졌다.

알았어. 그럼... 갈게. 해당 소식 알려줘서 고마워.

짧은 작별 인사는 망설임으로 가득했다. 마지막으로 라미아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떠났다.

지휘관은 라미아가 숲 사이로 사라지는 걸 조용히 지켜보다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자기도 정리하기도 힘든 감정들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돌아서려는 순간, 숲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겁에 질린 그림자가 다시 돌아왔다.

저... 저기!

라미아가 고개를 내밀었고, 나무줄기를 잡은 두 손은 살짝 떨리고 있었다.

혹... 혹시 말해줄 수 있어? 왜 날 찾아온 거야? 그냥 다른 사람들 소식만 전해주려고 한 거야?

보육 구역 일 때문이라면, 왜... 왜 거짓 보고를 한 거야?

라미아의 동공에는 다시 한번 희미한 빛이 떠올랐다. 확신에 찬 눈빛은 아니었고, 여전히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이례적으로 도망가려는 기색은 없었다.

라미아는 지휘관이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라미아는 지휘관과 이야기하고 싶었다.

말로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그 눈동자에 담긴 마음은 이미 드러나 있었다.

뭐라도 말해야 했다.

무엇이라도.

그렇지 않으면 여기 온 의미가 없지 않은가?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이상한 감정을 누른 지휘관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인 라미아는 점점 더 진지한 눈빛으로 뒷말을 간절히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여러 번 망설이며 말을 골랐다. 그건 마음을 최대한 정확하게 전달하면서도, 상대방의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무엇이 오해일까? 왜 오해가 생기는 것일까?

너무 많은 것을 고려한 대답이 정말 자신이 전하고 싶었던 말일까?

다시 라미아를 바라보니, 평소 움츠러들었던 소녀의 얼굴에는 간절함만이 남아있었다.

그 순간, 모든 혼란스러운 생각들이 사라지고, 가장 단순하면서도 분명했던 본래의 의도만이 남았다.

몇 시간 후, 보육 구역 임시 연합 지휘 센터

복귀 점검 작업 중에 단말기가 울려서, 연결하자 아시모프의 모습이 천천히 나타났다.

성과가 없었던 모양이네?

그렇긴 하지. 그들은 다양한 수단을 쓰기 때문에 우리가 예측하기 어려워. 그래서 더 신중하게 대처해야 해.

정말?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최소한 자신의 단말기를 확인하지 않은 건 실수였어. 상대가 어떤 수단을 썼는지 알아봐야 했는데.

복귀 과정에서 그런 게 발견된다면, 귀찮은 일이 많이 생길 거야.

됐어. 다음엔 이런 사소한 문제는 알아서 잘 처리하길 바랄게.

통신을 끊고 단말기의 저장 파일 화면을 열어 최근 날짜로 이동했다. 그곳엔 얼마 전에 생성된 raw 파일이 조용히 놓여 있었다.

그것을 잘라내어 개인용 오프라인 시설로 내보냈다. 파일이 전송되자 열렸고, 영상이 단말기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라미아

………………

라미아는 말을 듣고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표정은 계속해서 바뀌었다.

마침내 라미아는 앞으로 걸어와 고개를 숙이고는 옷자락을 만지작거렸다.

라미아

다음에는...

라미아

다음에도 날 찾아올 수 있어? 아니면 내가 너를 찾아가도 좋아.

띵...

파일 전송이 완료되고 영상이 사라지자 회상도 끊겼다.

라미아의 질문이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다.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고 곧바로 일어나 운송 장비로 향했다. 그렇게 다음 임무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