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
녹슨 철창이 쨍그랑 부딪치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라미아는 신전의 신앙을 상징하는 옷도 벗겨진 채 감옥 안으로 던져졌다.
그녀의 손목과 발목에 채워진 거친 쇠사슬이 짙은 붉은색 멍을 남겼다. 차가운 표정의 사제가 바닥에 웅크린 라미아와 눈을 맞췄다.
하지만 라미아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연못에서 일어난 일로 가득 차 있었다.
촤아아...
물 떨어지는 소리가 귀에 들어오면서, 라미아는 연못에서 끌려 나왔다.
후... 후... 후...
라미아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무언가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사제와 호위병들의 분노에 찬 표정이었다.
이와 동시에, 차가운 감각이 목덜미에서 느껴졌다. 의식용 단검이 피부에 바짝 붙어 있어서 살짝만 힘을 줘도 피가 흐를 것만 같았다.
그럴 수 없습니다!
여사제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치자, 주변의 호위병들이 앞으로 나서려 했다.
으...
차가운 감촉이 목에서부터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갔다.
멈추세요!
누구를 제지하려는지 모를 그 외침은 모두를 멈추게 했다.
냉정한 요구가 입 밖으로 나온 후, 인간은 라미아의 귓가에다 속삭이기 시작했다. 그 뜨거운 숨결이 간지러움을 자아냈다.
나... 모르겠어.
상대는 라미아를 인질로 삼으며 뒤로 물러났다.
신전은 당신에게 실망했습니다. 라미아.
의식을 다시 열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그러니 신전이 제물을 다시 찾아오기를 기도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제물은 당신이 될 겁니다.
여사제는 냉정하게 말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녀가 뒤에 손을 흔들자, 작은 실루엣이 나타났다.
라미아는 눈을 크게 뜨며,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기억이 현실로 다가와 흐릿했던 의식을 더욱 흔들어놓았다.
네 선택은 참 이상해. 왜 그렇게 하는 거야?
그렇게 하면 모두가 배고프게 될 거야. 폭풍도 계속될 거고, 마을에 있는 많은 사람이 죽게 될 거야.
넌 다른 사람들을 보호하고 싶지 않은 거야? 네 집을 보호하고 싶지 않은 거야? 보호하고 싶지 않은...
어린아이의 말은 스위치처럼, 여사제에 의해 중단된 기억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라미아는 의식용 단검이 목에 닿은 상태로, 사제와 호위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player name]... 나 좀 놔줄래. 난 더 이상 널 해치지 않아.
난 그냥... 내 집을 보호하고 싶을 뿐이야.
뒤에서 들려오는 체념 섞인 대답은 피곤한 기색을 띠고 있었다.
여기가 내 집이 아니면... 어디가 내 집이야?
그녀와 여기 남아 있는 많은 사람들은 기억 속 얇은 베일 뒤의 진실을 알고 있었다. 다만 앞으로 나아가기를 거부했고, 스스로 예전의 자신을 잊으려 했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진실을 찾는다 해도 그 뒤에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었다.
라미아는 이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무언가 말하려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말은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못했다.
너무나도 간단한 이 질문에 라미아는 조금씩 더 긴장하기 시작했고, 얼굴의 땀은 점점 더 많아졌다.
라미아는 지금, 이 순간 자기 생각이 둔해지면서도 활발해지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이런 세세한 것까지 신경 쓸 여유가 있다는 것에도 의아해했다.
하지만... 하지만 왜 내가 땀을 흘리는 것일까?
내... 내 몸에서 응축액만 나와야 하는 게 아닌가?
모든 것을 깨닫게 된 라미아는 고개를 들어 상대와 시선을 마주쳤다.
넌 다른 사람들을 보호하고 싶지 않은 거야? 네 집을 보호하고 싶지 않은 거야? 보호하고 싶지 않은...
말이 끝나자마자, 라미아와 앞에 있는 아이는 거의 동시에 그 이름을 읊었다.
아틀란티스...
같은 발음이지만,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 두 개의 이름이, 이 순간 라미아의 온몸에서 힘을 앗아갔다.
이 비난에 가까운 질문을 던진 아이는 여사제의 손을 잡고 떠나버렸다. 라미아는 감옥 안에서 힘이 빠진 채 주저앉아, 두 사람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라미아의 몸이 마침내 두 번 가볍게 떨렸다. 그리고 정신을 차린 듯, 본능적으로 감옥 구석으로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곧 무언가가 그녀에게 닿는 게 느껴졌다.
이건...
그건 감옥 구석에 쌓여 있는 낡은 물품들이었다. 손상된 소라 껍데기, 찢어진 천 조각 그리고 먹다 남은 건어물 몇 조각.
이 물품들이 나타나자, 희미하게 퇴색된 기억이 라미아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고, 이 물품들의 출처를 기억해 냈다. 그것들은 모두 과거의 자신이 남긴 것들이었다.
신전에 들어가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그리고 인정을 받더라도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했다. 조금의 실수라도 있다면 사제에게 벌을 받아 감옥에 갇히곤 했다.
감옥에서 반성하는 것은 매우 지루한 일이었고, 라미아는 스스로 할 일을 찾아야 했다.
(이건 할아버지가 몰래 준 건어물이고...)
(이건 내가 어부의 노래 멜로디를... 기록하던 천 조각이야. 그리고 이건...)
라미아는 소라 껍데기의 옅은 무늬를 매만지며, 예전에 일어났던 일들을 떠올렸다. 그러다 잠시 생각이 멈췄다.
(이건... 해당이 만들어준 소라 피리야.)
라미아는 무의식적으로 소라 껍데기에 입술을 대고 부드럽게 불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멈췄다. 지금 자신이 연주하고 있는 곡이 무엇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가... 이 노래를 부를 자격이 정말 있을까?
낮의 물고기가 기억을 되찾으면서, 깊은 바닷속에 감춰져 있던 과거도 햇빛 아래 드러나게 되었다.
라미아는 사람을 죽였다. 그리고 한 명만이 아니었다.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거짓 세계에서, 그 공허한 거짓말을 유지하기 위해 라미아는 의식용 단검으로 살아 있는 생명을 하나씩 앗아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그 사람에게 칼을 들이댈 수 있었을까?
라미아의 마음은 순간 가라앉았다가 이내 평온을 되찾았다. 하지만 그녀의 동공에 담긴 무심함은 지금의 평온이 미래에 대한 포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라미아는 이대로면 됐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어차피 지휘관도 잘 도망쳤을 것이고, 죄 없는 사람들을 모두 구해낼 것이다. 그리고 감옥에는 이 모든 일의 원흉만 남게 될 것이다. 이게 더 좋을 거라 생각했다.
자신만이 진실을 아는 세계에서, 거짓되고 잔인한 일을 저지른다 해도 그 사람은 신경이라도 쓸까? 그리고 어차피 결말은... 현실에서 깨어난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흑... 흑흑... 흑흑...
옷깃이 젖어들었고, 라미아는 방금 아문 입술을 다시 깨물었다.
분명 약속했었다. 변할 것이며, 당당하게 그 사람 곁에 서겠다고.
하지만 자신은...
제물 대신 내가 죽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무의식중에 라미아가 중얼거릴 때...
라미아는 멍해졌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철창 밖에 있어서는 안 될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왜... 넌 분명... 왜... 왜 돌아온 거야?
흥분한 라미아가 기어 올라왔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는 기쁨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 어서 가. 넌 여기 있으면 안 돼. 사제와 호위병들이 널 발견할 거야. 난 이 세계가 가짜라는 걸 알아.
난... 난 그저 내 욕심... 내 욕심 때문에... 그러니 제발... 날 위해 위험을 무릅쓰지 마. 난... 난 그럴 가치가 없어.
철창 밖 지휘관이 쪼그리고 앉더니, 주머니에서 열쇠 하나를 천천히 꺼냈다.
어... 이건...
라미아 언니... 라... 라미아 언니 방에 열쇠가 있을 거예요.
라미아 언니는 예전부터 자주 감옥에 갇혔었거든요. 나중에 언니가 말해줬는데, 신전이 내리는 벌 중 하나였는데, 정해진 시간이 되면 스스로 나올 수 있대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라미아 언니... 라미아 언니는 저를 친언니처럼 많이 돌봐줬어요.
그러니까... 부탁드려요. [player name] 님. 제발 라미아 언니를 구해주세요.
해당이... 왜... 분명히... 내가 거의 죽일 뻔했는데...
말을 마친 지휘관은 감옥 문을 열었다.
마음속으로 항상 동경해 오던 이가 손을 내밀자, 입술을 깨문 라미아는 떨리는 손으로 지휘관의 손을 잡았다.
해당을 위해서인지, 눈앞의 그를 위해서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감옥 창문으로 스며드는 빛 속에서 라미아가 일어섰다.
문득 그녀에게 슬픔이 몰려왔다. 조금 전까지 라미아 자신은 마음속 등대와 어긋나 버려서 영원히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라미아는 기뻤다. 비록 가짜 세계이고, 텅 빈 허상 속이지만, 결국 그날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인어와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이 당당히 설 수 있는 그날이 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