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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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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하는 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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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 두 대가 앞뒤로 장대비를 뚫고 마을로 향했다.

라미아는 앞쪽 마차에 타고 있었고, 여전히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사제는 라미아의 감정을 헤아린 듯, 옆에 앉아 부드럽게 말을 꺼냈다.

라미아, 처음 이 마차에 탔던 때를 기억하시나요?

그건...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였어.

그래요. 그때는 마차에 당신 혼자가 아니었지요.

거리는 북적거렸다. 사람들은 거리의 양옆에 서서 신전의 행렬이 중앙 통로를 천천히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마차 안에서는 여사제가 어린 소녀들 앞에 앉아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음 의식을 주관할 사람이 여러분 중에 선발될 겁니다. 그렇기에, 이 일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길 바라요. 선발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이 마을의 안위와 관련된 매우 중요한 일이니까요.

소녀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각자의 눈에서 혼란과 불안을 읽었다. 여사제는 그런 분위기를 눈치챈 듯, 따뜻하고 격려하는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물론... 지금 당장 긴장하라는 건 아닙니다. 신전에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좀 있으니, 의식의 주관자가 될 경우, 여러분은 무엇을 원하는지 말해보세요. 뭐든 좋습니다.

주근깨가 있는 소녀

저는... 예쁜 옷과 치마를 갖고 싶어요!

트윈테일 머리를 한 소녀

오늘처럼 사람들이 저를 구경했으면 좋겠어요?!

안경을 쓴 소녀

다른 사람들이 다 제 말을 들었으면 좋겠어요.

소녀들이 저마다 소원을 말하자, 마차 안은 시끌벅적해졌다. 그러다 여사제가 갑자기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한 뒤, 안쪽에 있는 한 소녀에게 웃으며 말했다.

귀엽게 생긴 당신은 어떤 말을 하고 싶나요? 여기서는 손을 들 필요가 없습니다.

내... 내가 뽑히게 되면, 먹을 걸 줄 수 있어?

먹을 거요?

미... 미안. 내 요구가 너무 지나친 거야. 나... 난 조금만 있어도 되는데.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의 요구가 너무나 소박해서 그렇습니다.

먹을 것이라... 만약 선발이 된다면, 세계에서 가장 달콤한 케이크를 원하신다 해도 신전에서는 매일 제공해 드릴 겁니다.

나... 난 케이크 같은 건 필요 없어. 그냥 먹을 수 있는 거면 다 괜찮아. 해변에는 무서운 바람과 비가 계속 몰아쳐서 마을에 먹을 게 많지 않아. 그래서 모두 배고파해.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다른 사람들에게 음식을 남겨주기 위해, 스스로 문을 열고 나갔어. 나... 난 그런 걸 원하지 않아.

이리 오세요.

여사제는 라미아를 끌어안고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이 얼마나 소박한 소원입니까? 폭풍을 막아서 마을 사람들이 먹을 수 있도록 당신은 신전의 마차에 올라탔습니다. 정작 당신은 무엇을 마주하게 될지 모른 채 말입니다.

지친 듯 눈을 감은 라미아에게 기억 속 동경과 순수함이 가득했던 목소리들이 조금씩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 목소리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다. 대부분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을 것이고, 가끔 들리는 목소리마저도 원망과 두려움만 있을 것이다.

진실은 꿈처럼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것을 무시하게 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흐릿함은 베일을 벗게 된다.

이 길에서 힘들게 여기까지 오셨군요. 고생하셨습니다.

벌써... 이렇게 오래됐네.

라미아는 무의식적으로 여사제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래요. 정말로 오랫동안을요. 당신은 그 마을을 정말로 아끼는군요.

당연한 거야. 여기는... 내 집이니까.

어촌에서 처음으로 들려온 파도 소리부터 라미아가 눈을 뜬 그 순간까지의 혼란스러운 조각들이 다시 떠올랐다.

라미아는 여기서 오랫동안 살았고, 이곳의 삶에 익숙해져 있었다.

라미아는 어부처럼 바다에 나갔고, 잡은 물고기를 시장에 팔러 가곤 했다.

맑은 날씨에 기뻐했고, 폭풍 때문에 걱정하기도 했다.

해변에 사는 모든 사람처럼, 밀물과 썰물 속에서 잠들고, 바닷바람과 갈매기의 노래 속에서 깨어났다.

의심의 여지 없이, 라미아의 안식처는 바로 여기였다. 그녀는 이 땅과 바다를 소중히 여겼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그것을 지켜야 합니다.

의식을 치르지 않으면, 바다신의 분노가 홍수와 무시무시한 것들과 함께 대지를 휩쓸 겁니다. 그때가 되면...

여사제가 라미아의 어깨를 잡았다.

당신의 집은 사라지게 될 겁니다. 그걸 보고 싶으세요?

아니. 보고 싶지 않아.

여사제는 부드럽고 차분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무도 그렇게 되길 원하지 않아요. 그리고 의식은 도살장이 아니에요. 그것은 인간이 행복으로 가는 다리이며, 신을 섬기는 문이에요.

이 모든 걸 완수한다면,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어요.

정말... 그래?

라미아는 피곤했다. 마차 밖에선 차가운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그녀는 마치 햇살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모처럼의 여유로움과 평온함이 얼굴에 스며들자, 라미아는 살짝 눈을 감았다.

물고기는 깊은 밤보다 밝은 낮을 더 동경한다.

나뭇가지 사이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꽃과 풀의 향기를 덮어버렸고, 의식이 열리는 연못은 밤의 장막 속에서 으스스하고 섬뜩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사제와 호위병을 따라 의식 장소에 도착한 둘은 멀리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라미아를 평온하게 바라본 인간의 얼굴에는 두려움의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반면 라미아는 손에 의식용 단검을 꽉 쥐고 있었고, 발걸음은 불안하고 떨리는 듯했다.

라미아의 숨은 더욱 거칠어졌고, 의식용 단검을 쥐고 있는 손은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마른 입술을 핥았다.

이제 그만하세요! 당신은 말이 너무 많군요. 어서 의식을 진행하세요. 라미아.

라미아에게 평화롭게 말을 걸던 태도와는 달리, 죄수는 여사제의 재촉을 차갑게 잘라냈다.

혼란에 빠진 라미아는 끊임없이 침을 삼키며, 어떻게 선택해야 할지 분간하지 못했다. 상대의 말이 끝난 후, 침묵이 의식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펑!

갑자기 천둥소리가 울리면서, 강한 빛이 순간 라미아의 시야를 가렸다. 그녀는 그 순간 멀리 떨어져 있는 마을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장대비가 조금씩 더 굵어지더니 마을을 완전히 삼키려는 듯했다.

안 돼.

라미아가 입술을 깨물자, 피가 비와 섞여 입술을 적셨다. 마침내 결심을 굳힌 그녀는 앞으로 돌진했다. 그리고... 라미아는 그 눈과 마주치게 됐다.

그 눈에는 놀라움, 분노, 두려움을 찾아볼 수 없었고, 당황함조차 없었다. 오직 희미한 실망감만이 있었다.

난...

라미아가 그 실망감을 느낀 순간, 그녀의 심장은 조여들었고,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도 극도로 긴장하게 됐다. 바로 그때, 인간의 눈동자 속 실망감 아래 숨겨진 다른 의미를 읽어낸 라미아는 의문이 솟구쳤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왜... 내가 칼을 휘둘러야 하지... 어떻게 내가 이 사람에게 칼을 휘두를 수 있지...

이런 이질감에 라미아는 생각을 멈추고 잠시 멈칫했다. 바로 그 순간, 상대가 움직였다.

타이밍이 너무나 절묘해서 옆에 있던 사제와 호위병들조차 반응하지 못했다.

풍덩.

사방으로 튄 물보라마저 비에 휘말려 곧 사라져 버렸다. 순간적으로 상대에게 밀려버린 라미아는 연못 속으로 함께 빠져들었다.

얕은 연못이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끝이 없는 심연처럼 느껴졌다. 서로 껴안은 둘은 그렇게 끝없이 가라앉았다.

음...

따뜻한 물이 라미아의 생각을 부드럽게 달래주자, 그녀는 잠시 정신을 되찾았다.

자신의 상황을 인식하게 된 라미아는 무의식적으로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라미아의 허리를 감싼 팔에 힘이 실렸고, 다른 한 손으로는 의식용 단검을 쥔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라미아는 그 힘에 움직임이 제한되었다. 둘은 그렇게 물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얽혀 있었다.

코끝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워진 상태에서 상대의 눈 안에 라미아의 동공이 들어오자, 그녀는 멍해졌다. 그러면서 움직임이 조금씩 둔해졌다.

[player name]

속삭임인지 부르는 것인지 모를 소리와 함께 라미아의 손에선 힘이 빠졌다. 그러자 의식용 단검이 손에서 미끄러져 상대방의 손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라미아는 그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힘이 풀린 그녀의 손은 어느새 상대의 뺨을 쓰다듬고 있었다.

[player name]...

라미아의 속눈썹은 미세하게 떨렸고, 시선은 초점을 잃은 채 흔들리고 있었다.

허공으로 흩어진 수많은 기억의 조각이 라미아의 머릿속에서 날아다녔다.

???

아직 두 가지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어.

라미아

어... 어서 말해!

???

왜 날 구하려고 했지?

라미아

왜냐하면...

???

붙잡힐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왜 여기에 온 거야?

라미아

그건...

내 소원이 가장 완벽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길 원했기 때문이야.

???

그 소원에 여기 서 있는 사람도 포함되어 있는 건가?

라미아

그래.

그러니까, 제발 "그녀"를 데리고 가줘.

라미아의 입술이 떨리면서, 초점 없이 흔들리던 눈빛이 고통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은 조금도 놓을 생각이 없었다.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머릿속의 혼란은 정리되지 않았지만,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책감이 그녀를 집어삼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상대가 입을 떼려는 그 순간...

말이 나오기도 전에 라미아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