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 단말기에 수상한 메일 한 통이 들어왔다.
메일을 연 순간, 첨부 파일이 저절로 실행되더니 코드들이 스크린을 뒤덮었다.
이윽고 깜빡이는 데이터 스트림 한가운데서 글자들이 하나둘 모여, 두 줄의 짧은 두 문장을 만들어냈다.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
>>>>>절 도와주세요! :(<<<<<
문자들이 나타난 뒤, 곧바로 공중 정원 아래층 구역의 좌표가 나타났다.
보안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첨부 파일을 삭제하기 전, 지휘관은 재빨리 그 좌푯값을 암기하였다.
메일 본문으로 돌아가 보니, 간단명료한 문장 하나만 적혀있었다.
"혼자 와".
지휘관은 좌표를 따라 아래층의 창고를 돌아다녔다. 어두운 조명 아래의 이곳은 구조가 미로와 다를 바 없었다.
복도 끝에 다다르자, 옆에 있는 방에서 갑자기 시끄러운 전자음이 들려왔다.
방에 들어서는 순간, 쾅 하는 소리가 어두운 공간에 울려 퍼지면서, 뒤쪽의 철문이 닫혔다.
흠. 명성이 자자한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님, 안녕하세요.
그때 옆의 TV가 갑자기 켜지더니, 노이즈로 가득한 실루엣이 스크린에 나타나 변조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난 은하를 떠도는 음유 해커야. 오늘은 기분이 좋아서 너와 게임을 하나 해볼까 해~
이 방에는 공중 정원에서 온 행운의 인질 한 명이 묶여 있어.
희미했지만 어둠 속에는 정말로 누군가가 있었고, 지휘관은 인질을 확인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움직이지 마. 이 층은 내가 폭탄으로 가득 채워놨으니, 한 발짝이라도 더 움직였다간 공중 정원에 커다란 구멍이 생길 거야.
그럼, 너와 인질은 우주 쓰레기가 되어, 엔진 배기가스를 따라 우주여행을 하게 되겠지~
내 질문 하나에 대답만 하면 돼. 답이 마음에 들면, 너와 인질을 풀어줄게.
역사상 오늘, 어떤 큰 일이 있었을까?
대답할 기회는 단 한 번뿐이야.
과거에 일어난 일이 얼마나 많은데... 질문이 너무 애매하잖아.
어서. 망설이지 말고,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걸 말해봐.
푸흡... 결국엔 홍보영상 하나만 나왔지. 아마 프로젝트의 폴더조차 만들어지지 않았을 거야.
그 생각만 하면 아직도 화가 나. 그날 냉장고에 쟁여놨던 체리 치즈 뿜뿜이 다 상했다고.
하하, 애쓰고 있네.
방금 뒤에서 어떤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그때, TV에서 다시 날카로운 전자음이 울렸다.
크흠, 아쉽지만 오~ 답~ 이~ 야~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 큰일이네~ 이제 기폭 장치를 눌러야겠어.
짜잔☆!
순간 방안이 환해지면서, 알록달록한 깃발, 풍선, 인형 등 온갖 장식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시야의 한가운데에는 "생일 축하해요"라고 적혀있는 커다란 현수막과 함께, "인질"이 서 있었다.
장난스레 입을 가리고 웃는 건 테디베어... 아니, 그녀의 투영인 건가?
역사상 오늘은...
귓가에 장난기 가득한 속삭임이 들려와 고개를 돌리자, 분홍빛 곱슬머리의 구조체가 바로 뒤에 서 있었다.
지휘관의 생일이잖아~
그녀의 왼손에는 케이크가 들려있었고, 하얀 생크림 위에는 분홍색 잼으로 그린 귀여운 작은 곰이 있었다.
지난번에 지휘관 사무실에 갔을 때, 지휘관의 단말기에 내 인증서를 추가해 뒀거든. 덕분에 이번에는 쉽게 해킹했어.
많이 놀랐어?
오~ 그래? 그럼, 조금 전 화들짝 놀란 사람이 누구였을까? 설마 지휘관은 아니겠지?
어? 녹화본을 보면 그렇지 않던데?
저 카메라에 지휘관의 표정이 다 찍혔는걸~
테디베어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구석에 놓인 카메라를 흘긋 쳐다보았다.
내가 우연찮게 들은 바로는 어떤 음유 해커가 데이터 삭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하더라고.
가격은 말이지...
빙고☆~
어때? 음유 해커한테 부탁해서 도움을 받아볼래?
그래그래, 방랑 해커가 알겠대. 작은 선물도 하나 더 준비했다고 하네.
그럼, 방랑 해커가 답례품을 하나 더 주면 어떨 것 같아?
테디베어가 지휘관과 시선을 마주치며, 천천히 한 걸음 다가와 오른팔을 들더니...
딱! 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방 안의 조명이 어두워지면서,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곧이어 화려한 장식들이 춤추듯 돌아가며, 은은한 빛이 더해져, 무도장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음유 해커가 준비한 선물은 바로 지휘관만을 위한 촛불 무도회였다.
매년 이맘때면 지휘관은 너무 바빠서 생일이라는 것도 잊어버린다고 들었어.
마침 나는 기억력이 상당히 좋거든.
나와 약속 하나 하는 거 어때?
앞으로는 프로그램이 모든 일정을 제때 알려주듯이, 지휘관의 생일을 기억하는 해커가 한 명 있을 거야.
그리고 매년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지휘관 곁에 와서 이렇게 말할 거야.
생일 축하해.
그리고 그 대가로...
테디베어가 천천히 들어 올린 케이크에는 하얀 촛불이 은은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매년 오늘, 소원과 행운을 나에게도 나눠줘.
쉿, 촛불이 꺼지겠어.
구조체는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듯한 손짓을 취했다.
촛불이 음유 해커의 장난스러운 표정을 비췄고, 그녀의 분홍빛 눈동자 속에는 지휘관의 모습이 반사되었다.
자, 이제...
같이 초를 불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