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지휘관, 안녕~
공원에서 산책하던 중, 베라의 미소가 담긴 인사를 듣게 됐다. 지휘관의 평온했던 기분은 갑자기 긴장감이 감돌았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결국 무시하고 빠른 걸음으로 떠나려 할 때,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방금 잘못 들은 것 같은데?
잠시 멍하니 있는 사이, 베라가 다가왔다.
지휘관, 오늘 생일이지? 생일 축하해. 항상 행복했으면 좋겠어.
베라가 아주 정중하고 부드럽게 생일 축하를 전하고 있어서 지휘관은 순간, 듣는 자세가 잘못됐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을 꼬집었다. 아픈 걸 보니 꿈은 아닌 것 같았다.
지휘관의 행동 때문인지, 원래부터 휘어 있던 베라의 눈은 조승달처럼 가늘어졌다. 결국 숨길 생각도 하지 않고 박장대소를 하기 시작했다.
너 방금 그 행동... 하하... 날 웃기려고 한 거야?
베라가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왔다.
미소 지으며 정중하게 인사하는 베라보다는, 지휘관을 과감하게 놀리는 베라가 더 편하게 느껴졌다. 전자는 좀 번거로운 느낌을 주기 때문이었다.
내 각도에서 보면 네 표정이 얼마나 웃겼는지 알 수 있을 거야.
요즘 임무가 없어서 좀 지루했는데, 오늘이 누군가의 생일이라는 게 생각나서 재미있는 걸 좀 찾아보고 싶어서 왔어.
역시 내가 예상한 대로야.
어. 그래서 처음부터 말했잖아. 요즘 너무 심심하다고.
간만에 이렇게 재미있는 일을 만났는데, 놓치면 아깝잖아?
음? 이 말 뜻은 뭔가 더 있다는 건가?!
아직 고마워하기는 일러.
1년에 한 번뿐인 생일을 "생일 축하해." 한 마디로 끝낼 수는 없잖아.
따라와.
널 위해서 특별히 준비한 아주 재미있는 선물이 있거든~
베라가 말한 "아주 재미있는"이라는 표현이 선물 자체를 가리키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머릿속에 그 생각이 스치자마자, 베라는 예상이라도 한 듯 미소를 지으며 한 발짝 다가와 지휘관의 손목을 잡았다.
다른 사람들이 지휘관과 베라가 가까이 붙어 있는 모습을 본다면 아주 친한 사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지휘관이 베라에게 관절이 꺾여 있는 상태로 조금만 움직여도 극심한 통증을 느끼게 되는 상태였다.
사양하지 마.
베라와 함께 공원 내부로 들어가자, 장의자 위에 하얀색 금속 상자가 놓여 있었다. 상자 위 로고를 보니, 생명의 별에서 가져온 것 같았다.
베라는 장의자에 앉아 금속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알코올 같은 액체와 다양한 금속 막대들이 들어 있었다. 그녀는 손으로 그중 몇 개를 꺼내 가볍게 만져보더니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 내가 인사했을 때, 혹시 귀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의심했었지?
그럼 됐어.
베라는 자신의 다리를 탁탁 두드렸다.
이리 와서 누워봐. 내가 네 귀 좀 청소해 줄게.
베라의 미소와 그녀가 다루고 있는 다양한 금속 도구들을 본 지휘관은 귀 청소를 하려는 건지 아니면 귀에 형벌을 가하려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반짝이는 금속 도구들이 좀 무섭긴 했지만, 베라의 초대는 거부할 수 없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거절한다 해도 결국 강제로 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베라의 오른쪽에 앉아 몸을 기울여 오른쪽 귀를 위로 향하게 했다.
왜 이렇게 긴장해? 이곳은 생명의 별과 가까워. 나를 믿지 못해도 그들은 믿을 수 있잖아.
그곳 단골인 넌 잘 알겠지만, 내가 이 물건을 네 귀에 찔러 넣어 머릿속까지 들어간다 해도 그들은 널 아무 문제 없었다는 듯 완벽하게 치료해 줄 수 있을 거야.
힘이 세거나 약하면 말해. 물론 나는 듣지 않을 거지만.
차가운 금속이 귀에 들어오자 몸이 본능적으로 긴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세한 소리와 함께 가벼운 간지러움이 느껴지자 이상하게도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인간의 귀 안에는 많은 신경 말단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귀 청소를 하면, 신경들이 자극을 받아 몸의 반응을 일으키고, 이를 통해 쾌감과 이완감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황금시대에는 이 작업이 오락의 일종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조금은 편안해지기는 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안해서 완전히 긴장을 풀 수는 없었다. 그건 기술이 서툴러서라기보다는 베라가 귀 청소를 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
사탕으로 둘러싼 화약처럼 겉모습은 맛있어 보이지만, 다음 순간 입속에서 터질까 봐 불안해하는 것과 같았다.
(베라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왜 이런 걸 하는지 알고 싶어?
(독심술이라도 배운 건가?)
지휘관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표정을 보고 싶었거든.
네 귀를 청소해 주는 건 덤이야. 알려줄 게 한 가지 있는데, 귀를 청소해 줘야 네가 잘 들을 수 있지 않겠어?
생일이 재밌다고 생각하지 않아?
다른 날들, 예를 들면 네가 파오스에서 졸업한 날이나 너와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최초로 만난 날 등은 모두 너와 다른 것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만들어진 것들이잖아.
생일만이 오직 너만의 것이고, 네가 태어난 날과 함께 생긴 유일한 날이지.
갑자기 베라가 고개를 숙여 귓가에 속삭이는 것만 같이 그녀의 목소리가 귀 가까이에서 들렸다.
그래서 지휘관, 너에게 통보할 게 하나 있어.
난 네 생일에 관심이 많아. 그래서 언젠가 그걸 빼앗아 내 것으로 만들어 버릴 거야.
이 말을 완전히 이해하기도 전에, 베라는 몸을 일으켜 지휘관이 자신의 무릎에서 내려오게 했다.
물론, 반항하는 걸 잊지 마.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냥감이 더 가치가 있는 법이거든.
그제야 귀 청소가 끝났음을 깨달았다.
베라가 방금 속삭였을 때 너무 가까이 있어서, 귀... 귀보다는 몸이 더 고생했다. 귀 청소하는 내내 긴장을 하고 있어서인지 몸이 굳어졌고, 목도 뻐근해졌다.
그래서 어째서인지 하나도 편안해지지 않은 것 같았다.
금속 도구를 청소하던 베라는 몸을 푸는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네 귀는 하나야?
연습은 끝났어. 이제부터 진짜 재미있는 시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