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차 한 대 더 못 사?
원래 좁았던 마차는 이제 더 앉을 곳이 없을 만큼 꽉 차 버렸다.
카레니나와 테디베어가 합류하게 되면서, 반즈는 마차 지붕 위에 묶여서 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경계 서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와 함께 있는 카무는 무표정하게 멀리 바라봤다. 후자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반즈를 묶은 밧줄을 잡고 있었다.
마차 안에서는 카레니나의 아이템 상자가 어린이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행은 자리를 재분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조정해도 공간은 한정돼 있었기에 일행은 어쩔 수 없이 서로를 밀착하고 있어야 했다. 예를 들면, 루시아는 카레니나의 허벅지 위에 앉아 있었다.
힘들면 말해요. 애쓰지 말고요.
나 그렇게 약하지 않아. 이 정도 무게는 별거 아니야.
그러니까 왜 마차를 하나 더 안 사는 거야? 말도 좋고, 마차는 직접 만들 수도 있잖아.
도시 안에서 그렇게 큰 소동을 일으켰는데, 어떻게 시장을 돌아다닐 여유가 있겠어요.
그래서 다음 도시에 도착하기 전까지 좀 불편하더라도 참아봐야겠네요.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사실 아무도 진짜로 불편해하는 기색은 없었다.
어쩌면, 이렇게 서로 밀착하는 경험은 어떤 면에서 귀중한 것일 수도 있었다.
마법사는 정말로 동료를 불러 모으지 않을 생각일까요?
이곳과는 대조적으로, 멀리 앞쪽에 있는 마차의 공간은 넓은 편이어서 다소 외롭게 느껴질 정도였다.
떠돌이 마법사는 혼자 마차 지붕에 앉아서 노래를 흥얼거리며 느긋하게 말을 몰고 있었다.
떠돌이 마법사는 1년 전처럼, 동료들끼리 싸워서 불러 모을 수 없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우리가 떠난 이후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요.
하지만 그를 계속 혼자 행동하게 둬서는 안 돼. 정말 위험하다고.
게다가 우리가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혼자서 용들의 고향으로 가는 건 현명한 선택이 아니야.
누군가를 고용해서 알아보는 게 어떨까?
고용이요? 떠돌이 마법사도 소피아와 창위를 만난 적이 있나요?
어. 날아다니는 잔치국수 괴물교에서 활동할 때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어.
그럼, 어쩔 수 없네요. 우리 모두를 알고 있으니, 가까이 다가가기엔 너무 위험해요.
……
하지만 떠돌이 마법사는 내 목소리와 소피아의 목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어.
목소리... 무슨 뜻이죠?
고개를 끄덕인 창위가 구석에 있는 소피아를 가리켰다.
곧 상황을 파악한 소피아는 리브에게 마법 지팡이를 빌린 후, 물자 상자에서 모포 몇 장을 꺼냈다.
창위가 가르쳐준 사자춤과 같아.
지휘관. 이 일은 우리에게 맡겨줘.
봄비가 내린 뒤의 진흙 길을 걷던 떠돌이 마법사는 마차 뒤로 다가갔다.
떠돌이 마법사는 하늘의 색을 한번 바라보고는 익숙하게 텐트를 꺼내 공터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혼자서 설치했기 때문에 작업 진행이 그리 빠르지는 않았다.
무슨 일인가요? 지나가는 여행자이신가요?
별다른 건 아니야. 이 계절에 누군가가 어떻게 혼자서 용들의 고향으로 가게 됐는지 궁금해서 말이야.
"용들의 고향"이라는 말을 들은 떠돌이 마법사는 하던 작업을 멈추고 상대를 바라봤다. 그는 망토를 통해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려는 듯 집중하는 눈빛이었다.
이 망토를 쓴 이는 몸을 구부리고 있었고, 얼굴은 마법에 의해 가려져 있었다. 그 외 나머지는 왜곡된 어둠만이 남아 있었다. 그는 값이 제법 나가 보이는 짧은 지팡이를 들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매우 신비로워 보였다.
……
정말 괜찮은 거야? 방금 다리가 살짝 떨렸던 것 같은데.
걱정하지 마. 대장. 창위가 나에게 사자춤을 보여줬어. 이런 상황은 그에게 별거 아니야.
이보다 위에 있는 소피아가 정보를 얻어낼 수 있을지가 더 걱정이야.
크롬과 카무이는 멀지 않은 언덕 위에 엎드려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상황이 변한다면, 즉시 소피아와 창위를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여행자님. 많은 것을 아시는 것 같은데, 이 일에는 관여하지 않는 편이 좋을 거예요.
왜냐하면...
최근에 벌어진 귀신 소동 때문에 전 거의 파산 직전이거든요. 왕이 준 선금도 저주를 해제하는 물약을 사는 데 다 써버렸죠.
그래서 여행자님께서 절 털려고 하신다면, 제가 당신을 이길 수 있든 없든, 결국 당신은 아무것도 얻지 못할 거예요. 그러니 우리 서로 평화롭게 지내는 게 좋을 거 같네요. 명확하게 경계를 지키고 각자의 길을 가는 편이 좋을 거예요.
……
……
갑작스러운 말들에 당황한 소피아는 다소 혼란스러워했다. 창위는 애써 상대방의 말을 정리한 후에야 상대방이 자신들의 의도를 오해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창위는 위에 있던 소피아를 흔들어서 그녀에게 상황을 알리려고 했다.
하지만 떠돌이 마법사의 눈에 이 신비한 여행자가 다소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보였다.
하? 도둑들도 이제 사기를 치나요? 업계 변화가 참 빠르네요.
도둑은 너잖아.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세요. 전 남을 속이지 않고, 환대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마법 지팡이를 들고 절 찾아온 이유는 뭔가요?
궁금했을 뿐이야. 당대의 용사가 왜 혼자서 용들의 고향에 가게 된 건지 말이야.
정보를 조금 흘리자, 떠돌이 마법사는 다시 한번 자기 앞에 있는 신비한 여행자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피아와 창위는 설명할 생각이 없었다. 가끔은 설명하지 않는 것이 더 효과적일 때도 있었다.
그리고 신비한 여행자의 손에 들린 마법 지팡이가 치유 마법에 특화 제작된 것임을 확인한 후 떠돌이 마법사는 조금 경계심을 내려놓았다.
그래서 떠돌이 마법사는 큰 외투 속에 숨겼던 자신의 마법 지팡이에서 손을 뗐다.
이렇게 많이 알고 계시니, 저도 굳이 돌려 말할 필요 없겠네요.
필요 없어요.
떠돌이 마법사는 몸을 숙여 바닥에 있는 돌을 집어 들고는 텐트를 고정하기 위해 밧줄과 못을 계속 두드렸다.
필요 없다고? 당대의 용사 실력이라면 혼자서도 충분히 갈 수 있다는 건가?
장난치지 마세요. 제가 알고 있는 가장 강한 인간들, 즉 전대의 용사들도 용들의 고향으로 무리 지어 갔어요.
제가 필요 없다고 말한 건, 돈으로 고용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용병들은 대부분 너무 약해서 용들의 고향에서 제 발목만 잡을 뿐이기 때문이에요.
게다가 정직하지 못한 용병들은 믿을 수가 없어요. 만약 그들이 전대의 용사처럼 교활하다면 전 망하고 말 거예요.
그래서...
동료가 없어?
……
물론 있죠.
하지만 그들만큼은 다시 불러 모으지 않을 거예요.
왜? 동료라면 당연히...
제 말을 들어보세요. 신비한 여행자님.
떠돌이 마법사가 소피아의 말을 끊고, 멀지 않은 언덕을 바라보며 천천히 일어섰다.
우리 모두가 영웅이었던 그 시절로부터 벌써 십여 년이 흘렀어요.
그 바보 같은 기사는 결국 결혼했고, 신의 사수는 마침내 자기만의 유파를 세웠죠. 대장장이 노인은 아마도 과수원에서 손자를 돌보고 있을 거예요.
모두가 자신만의 삶이 생겼고, 신경 쓸 일들이 생겼어요.
그런 그들에게 다시 "우리 함께 모험을 떠나요."라고 말을 할 수는 없어요.
저녁 바람이 잔디밭을 스치며 떠돌이 마법사의 망토를 휘날리게 했다. 그러자 그 사이로 검은 옷 아래의 빛바랜 훈장이 희미하게 보였다.
모험을 사랑한 떠돌이 마법사는 시간을 게을리 보내며 동료들과 함께 모험을 떠나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그래서 그는 십 년 전에 그 이상한 용사들을 만나 숨 막히는 경쟁을 펼칠 수 있었다.
동료들과 함께 시끌벅적한 황야로 들어가, 승리할 때마다 축하하며 건배했던 추억은 떠돌이 마법사가 평생 기억하기로 결심한 추억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건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이 됐고, 떠돌이 마법사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로 남아 있다. 그가 소중히 여기던 동료들은 이제 각자의 가정과 사업 그리고 미래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는 동료들을 그들이 추구하는 길에서 끌어내릴 순 없었다. 그것만큼은 절대로 시도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떠돌이 마법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모든 동경과 갈망을 마음속 깊이 묻어두고, 평생 다시는 건드리지 않는 것뿐이었다.
아아아. 너무 몰아붙이지 마세요. 일이 이렇게 됐으니, 제 진짜 실력을 보여드릴 수밖에 없네요.
떠돌이 마법사가 갑자기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자, 신호탄처럼 보이는 라이트볼이 하늘로 솟구쳐 올라간 후, 폭죽처럼 터졌다.
옛날의 용사들이여. 저의 동료들이시여. 어서 와서 절 구해주세요!
이런 마법은 떠돌이 마법사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음. 용들의 고향에 문제가 생기는 건 시간문제였어요. 이 세상 사람들은 이미 익숙해졌거든요.
전대의 용사가 모른 척하기로 하셨으니, 이젠 저 혼자 나서야겠어요.
이제 와서 그들에게 가족과 작별 인사를 하게 할 수는 없잖아요.
……
……
침묵하는 신비한 여행자를 마주한 떠돌이 마법사는 상대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무거운 분위기를 쫓아내려는 듯 손을 휘저었다.
이해되셨나요? 궁금증이 해결되셨어요? 그럼, 신비한 여행자님의 야영지로 돌아가 주세요.
솔직히 신비한 여행자님의 얼굴에 있는 마법이 조금 무섭네요. 밥도 먹지 못할 지경이에요.
신비한 여행자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려 가까운 언덕으로 걸어갔다.
반짝이는 별빛 아래 떠돌이 마법사는 어렵게 모은 식재료로 기뻐하며 춤을 췄다. 그러다 다 만든 요리를 들어 올릴 때 갑자기 멈추었다.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들어 올렸던 손을 천천히 내리며, 무의식적으로 꺼낸 그릇들을 하나씩 원래 자리에 돌려놓았다.
저녁 바람이 소매를 스치며 으스스한 느낌을 들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