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돌로 뒤덮인 도로는 마른 이끼로 평평하게 됐고, 이동한 나무들은 곧은 통로를 열어 줬다.
시냇물의 흐름이 멈추고, 부드러운 물결이 호박 차를 가볍게 들어 올려, 반대편으로 옮겨줬다.
합쳐진 협곡은 균열 하나 남기지 않았고, 올 때의 위험은 온데간데없었다.
다람쥐들이 어디선가 튀어나와 호박 차 주변을 에워쌌다. 그리고 벌레와 새들이 지저귀며, 이 특별한 팀을 응원하는 것 같았다.
이때, 지평선의 끝에서 시작과 끝이 보이지 않는 양 떼를 볼 수 있었다. 양 떼는 한결같이 안장을 뛰고 있었으며, 비켜줄 생각이 없는 것만 같았다.
아우~ 너희들은 잠을 못 자게 하는 나쁜 아이들이야!
이때, 상어 인형 한 마리가 뒤에서 튀어나와, 호박 차를 넘어, 양 떼를 향해 돌진했다.
이 상어 인형을 보자, 양 떼도 당황한 듯 보였다. 상어 인형에게 쫓기게 되면서 사방으로 도망치게 됐다. 이로써 길이 열리게 됐다.
숲 전체가 각자의 방식으로 이 구조를 지원하고 있었다.
이윽고 첨탑 아래에 도착하게 됐다.
세월의 흔적이 남은 벽돌과 기와에는 검붉은 넝쿨이 타고 있었다.
그리고 햇빛이 비치지 않는 그늘 속에서 그것이 불길한 나무못처럼 핏빛 땅에 박혀 있었다.
어쩌면...
늪에서 나온 손이 구원을 갈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휘관과 리브가 먼지 가득한 대문을 열자, "삐걱삐걱"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희미한 빛이 문 앞의 작은 구역을 비췄다. 흩날리는 먼지는 방문자를 환영하기도, 오랜 시간을 호소하는 듯했다.
나선형 계단은 둘로 나뉘어 있었다. 그리고 위도 아래도 끝은 보이지 않았다.
지휘관님, 센티렐라 아가씨가 말한 그 괴물이, 지휘관님한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제가 막을게요.
붉은 가시덤불에 뒤덮인 계단을 오른 리브가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지휘관은 땅속 어둠으로 뻗은 돌계단을 향해 걸음을 내디디며, 리브의 말에 답했다.
첨탑으로 오면서 이미 목표를 정해둔 지휘관과 리브는 망설이지 않았다.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면서, 어둠은 방향에 대한 감각을 박탈했다. 그리고 단조로운 발소리는 시간에 대한 흐름을 흐리게 했다.
의식이 약간 흐려질 때, 소곤거리는 말소리를 들렸다.
그건 리브가 깨어난 다음, 히포크라테스와 나눈 대화였다.
교수님,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어요.
무슨 일인데?
마인드 연결에 관한 거예요.
전 마인드 연결이 지휘관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고 싶어요.
네 지휘관과 네가 심층 마인드 연결했을 때, 그 사람도 너처럼 은통이나 죽음의 환각을 경험하게 되는지가 궁금한 거니?
그건 확실하게 말해줄 수 있지. 영향 없어.
이 기술로 널 치료하는 원리는 네 은통을 "분배" 하는 것이 아니야.
마인드 표식을 빌린 심층 연결로 너의 의식을 안정시키는 거야.
바다 위에 떠 있는 배처럼, 풍랑을 만나 파도 따라 흔들린다면 배 내부도 엉망이 되겠지.
하지만 닻이 있다면, 그 어떤 풍랑이 와도 배는 안정될 수 있어.
그리고 심층 마인드 연결은 피해를 입히지 않아.
하지만 그것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 네 지휘관은 의식의 바다에 여러 번 잠복해야 해.
이 과정에서 그런 은통과 죽음의 환각은 지휘관한테 실질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어.
저번처럼 말이야.
……
이 계획을 중지시키고 싶니?
아직 물러설 곳이 있을 때...
후방의 퇴로를 무시하고 거침없이 내려갔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차가운 공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바깥의 빛은 으슥한 탑 밑을 전혀 비추지 못했다.
소지한 라이트를 빌어 겨우 발밑의 길을 밝혔다. 파손된 돌계단이 내려가는 지휘관을 힘들게 했다.
갑자기, 앞쪽 벽돌과 기와 사이로 희미한 하얀 빛이 비쳤다.
틈새로 다가가 들여다보니, 희미한 뒷모습만 볼 수 있었다.
이번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건 교복을 입은 뒷모습이었고, 교복 등에는 지휘관이 익숙한 표식이 있었다.
이렇게 생각하는 동시에 눈앞의 빛이 갑자기 눈부시게 변했고, 이로 인해 시야와 의식이 박탈당했다.
뭘 하려고 했지?
눈앞에는 파오스 교관의 사무실이었고, 지휘관 앞에는 매서운 표정의 노인이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내가 자네의 선택에 간섭하진 않겠지만, 교관으로서 이런 선택을 한 이유를 알아야겠다.
지휘부의 요청을 거절하고, 최전선의 집행 부대 지휘관을 신청한 이유가 뭔가?
교관의 눈빛은 매처럼 매서웠고, 강철처럼 차가웠다. 입학한 이래, 교관은 모든 사람을 이런 눈빛으로 지켜봐 왔다.
교관의 말투에서는 그 어떤 격려와 불만도 느낄 수 없었고, 그저 숙연하고 엄숙할 뿐이었다.
조금의 거짓말이나 변명한다면, 가차 없이 들통날 것이 틀림없었다.
이것이 바로 그때 지휘관이 말한 대답이었다.
그때 지휘관의 머릿속을 스친 건, 교과서에서 빛나는 이름들이었다. 이 이름들을 기억한 것은 시험 치기 위해서가 아닌 일종의 동경이자, 지휘관의 오래된 꿈이었다.
뛰어난 전공의 이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던 때의 지휘관에겐 빛나는 명예의 말들이 엄청나게 매혹적이었다.
오늘날 예전에 생생했던 그 이름들의 대부분은 기념비에 영원히 남겨졌다.
지구의 상황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고, 예전에 이뤘던 성과들도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지금의 지휘관은 아직도 그때와 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지휘관님은 이 일을 아시나요?
당연히 알지. 그래서 망설이지 않고 동의서에 서명했어.
교수님, 구조체의 의식과 지휘관의 마인드 표식은 배와 닻의 관계라고 하셨죠.
……
배가 폭풍을 무사히 이겨내도록 닻이 도와주듯이, 배도 닻을 싣고 멀리 갈 수 있어요.
지휘관님은 위험과 걱정이, 앞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고 했어요. 우리가 몸을 맞대어 온기를 나누는 건, 움츠러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해서라고 했죠.
아낌없이 믿음을 주는 도움의 손길을 받을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에요.
리브는 머리를 들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점차 뚜렷해졌다. 주홍색 결정군, 암홍색 조수 그리고 진홍색 토양이 주위를 억압된 분위기로 채웠다.
리브는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리브의 뒤에서 조용히 잠복하고 있던 암홍색 식물은 더 이상 입에 들어오는 사냥감을 기다릴 수 없었다.
멀지 않은 곳에 붉은 그림자가 악몽에서 기어 나온 듯한 괴이한 생물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었다.
왜...
맞은편의 노인은 말하지 않았고, 지휘관의 해석을 기다리는 듯했다.
"그 기적들이 보이는 것처럼 좋은 면만 있는 게 아니야.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참고할 수 있는 선례가 없고, 수많은 사람이 어둠 속에서 조금씩 찾고 있어서 이 기적들이 일어날 거예요."
"그들 중, 어떤 이는 걸음을 잘 못 디뎌 심연으로 추락하면서, 뒷사람에게 이 길은 통하지 않는다는 표식을 남겼어요."
"어떨 땐 사람들 사이에 충돌이 발생해 제각기 제 갈 길을 갈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영혼과 존엄을 불태우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열악한 환경에서 살 곳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피와 살로 방어선을 구축했다.
과거의 경험이 물 흐르듯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주변에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말투가 확고해졌다.
현실 고증을 거친 후, 이 꿈의 무게는 더욱 선명해졌다.
자네가 용사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여기가 어딘지 잘 생각하고 말하게. 우린 잠자기 전 이야기를 토론하는 건 아니야.
다른 곳에 있으면, 더 큰 작용을 발휘할 거란 생각은 안 해본 건가?
"제가 이런 선택에 확신을 가질 수 있게 해준 사람들이 바로 교관님들이에요."
"수석으로 졸업하면, 바로 작전 사령부로 진급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파오스는 최전선 지휘관을 육성하기 위해 설립된 거잖아요."
우린 자네 지휘 능력을 인정하기 때문에, 그런 이점을 정했던 거야.
"앞으로 이 자리에 있는 대부분 사람은 전투 브리핑의 한 숫자가 될 거야."
"직접 경험하지 못했다면, 영원히 이 숫자들에 담긴 생생한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을 거야."
"그리고 우리가 모두 힘을 합치는 건, 단체가 우릴 대신해 잘못된 선택의 대가를 감수하는 게 절대 아닐 거라고 생각해."
최전선 지휘관의 평균 수명을 알아본 적이 있나?
일단 결정되면, 번복할 가능성은 없다.
나가도 좋다.
교관의 말투는 한결같이 돌처럼 딱딱했다.
늙었지만 힘센 두 손이 지휘관을 가볍게 앞으로 밀었다.
길 끝에 다다랐다. 뒤에 있는 부러진 계단에서 떨어진 돌멩이는 한참 뒤에서야 착지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벽돌과 기와 사이로 가녀린 그림자를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전 지휘관님을 보호할 거라고 약속했어요.
지금 그 약속을 지키러 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