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에 표시된 날짜가 단오에 가까워지자,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넓은 평원을 가로질러, 왕성에서 멀지 않은 마을에 도착했다.
이곳은 우리가 지나가는 8번째 마을로, 멀리 떨어진 숲 사이로, 웅장한 건물의 윤곽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각자 해결해야 할 다른 일들이 있었다.
이건 그레이 레이븐이 선물하는 8번째 상자로, 리브가 원료 상자를 촌장에게 건네줄 때마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 연출됐다.
촌장님, 이 상자는 금화를 대가로 드리는 게 아니에요. 차후 올바른 곳에 사용해 주신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군중들이 억눌린 놀라움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괴물이 즐비한 대나무 숲에 들어가, 대나무 잎을 수집하는 것은 마을 사람들에게 있어서, 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계속되는 감사의 인사 속에서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마을 사람들에게 또다시 "포위"당하지 않기 위해, 재빨리 자리를 떴다.
이름 없는 현자가 마을 외곽에서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벌써 8번째 마을이에요. 리브 님.
이대로 가다간, 갖고 있는 원재료를 모두 내어줄까 봐 걱정돼요.
아니면, [용들의 고향]에 들어갈 때, 사용할 몫을 미리 제게 맡기시는 건, 어떠세요?
저희가 여유분을 따로 나누지 않았어요.
하마터면, 그 일을 잊을 뻔했네요. 다 나눠줘도,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서, 다시 모으면 되지 않을까요?
이름 없는 현자는 나를 바라보며, 설득해 보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이름 없는 현자는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전 다시 수집하는 시간 때문에, 여러분이 최적의 시기를 놓칠까 봐 걱정돼요.
보통 이맘때가, 모험가들이 [용들의 고향]을 찾기 위해, 떠나는 최적의 시기예요. 이 시기에 비경이 나타날 확률이 가장 높다는 게,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내려온 경험담이거든요.
나타날 확률이요?
제가 조사한 바로는, 이건 판타지 세계에서 흔히 사용되는 설정으로, 임무 목표 구역은 존재하지만, 어떤 이유인지 볼 수는 없는 상태에요.
그 구역이 스스로 숨어버린다는 건가요?
게다가 북쪽의 괴물들이 최근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서, 언제든 남쪽으로 내려올 가능성이 있어요.
얼마 전에 젊은이들이 토론하는 걸 들었어요. 북부 황야의 괴물들이 서로 싸우던 수라장에 알 수 없는 큰 녀석이 나타나, 대규모 사냥을 벌였다고 해요.
떠돌이 마법사에게서 얻은 용사의 기록을 보니, 북쪽 황야의 아래쪽 적색 동그라미가 쳐진 넓은 구역에 [용들의 고향]의 대략적인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다.
이와 동시에, 난 이름 없는 현자의 표정에서 이상한 모습을 발견했다.
……
아니에요. 전 그냥 계속해서 지체된다면, 괴물들이 바로 [용들의 고향]으로 쳐들어가지 않을까 걱정될 뿐이에요.
안심하세요. 가능한 한 빨리 그곳에 도착하도록, 이동할 거예요.
그런가요? 정말 감사해요. 그럼 용사님들은 바로 출발하실 건가요?
이 일에 관해선, 우린 아직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어쩌면, 혹시, 아마도 제가 그렇게 말한 적이 있을 거예요. 무엇이 필요하세요?
확실하세요? 저한테는 [용들의 고향]에서 가져온 물품이 없어요. 근처 마을에 보관 중인 [트윈스 소울]은 모조품을 만들 때, 다 소모돼서 쓸 수 있는 여분이 없을 거예요.
됐어요. 어차피 마지막엔 여러분들도 왕성에 가서 운을 시험해 볼 수 있어요. 왕성에 [용들의 고향]에서 가져온 [고대의 트라이앵글]의 모조품이 있을 거예요.
말을 마친 이름 없는 현자는 망토에서 지팡이 한 개를 꺼냈다.
리는 내 지시에 따라, 지팡이를 받아서 감정하기 시작했다.
[탐색의 지팡이]는 물품을 통해 원래 소지자의 대략적인 위치를 가리켜요.
리가 루시아와 리브를 한 번 쳐다보자,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각자 구석에 서서 작은 공간을 만들었다.
리는 떠돌이 마법사에게서 빼앗은 옷을 꺼내, [탐색의 지팡이]의 보석 위에 올려놨다. 그리고 손을 떼고, 지팡이가 넘어지게 놔뒀다.
이름 없는 현자는 [탐색의 지팡이]의 보석이 자신을 가리키자, 뒤에 있는 숲을 한 번 보고는, 옆으로 비켜섰다. 그러자 지팡이가 데굴데굴 굴러가며, 방향을 바꿨다. 다시 옆으로 비켜선 이름 없는 현자는 뒤편의 평원을 바라봤다.
이름 없는 현자가 계속해서 자리를 옮기는 것을 본 루시아, 리 그리고 리브는 거의 동시에 미소를 지었다.
힘들지 않으세요. 좀 쉬세요?
아, 감사해요. 용사님. 그런데, 이 지팡이가 살짝 고장 났나 봐요. 그러니까...
괜찮아요.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이번엔 천천히 하셔도 돼요.
섬광 마법!
손에서 눈 부신 빛을 뿜어낸 이름 없는 현자는 모두가 목표를 놓친 틈을 타, 풀쩍 뛰어올랐다.
저번 마을에서 신부님이 주신 [마법 방어]가 인챈트 된 목걸이를 사용할게요.
루시아, 민첩 판정을 시작할게요.
전 이전 마을 사람들이 준 [행운의 반지] 아이템을 사용해, 루시아의 성공률을 높일게요.
알겠어요. 그럼, 결과를 계산할게요. 루시아, 대성공이에요!
루시아가 던진 칼집에 명중당한 이름 없는 현자는 파리채를 맞은 날벌레처럼, 잔디밭에 고꾸라졌어요.
아이라는 이름 없는 현자를 위해 행운을 계산했다. 현자는 성공적으로 루시아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그 자리에서 기절하지 않은 것은 정말 불행이었다.
4명의 얼굴이 하늘을 가릴 만큼, 현자를 둘러싸자, 이름 없는 현자는 무의식적으로 팔을 들어 얼굴을 감쌌다.
잡았어요. 사기 중개인.
사기 중개인이라뇨! 전 용사를 소환하고, 도움을 준 현자예요. 남을 속이는 짓은 해본 적이 없어요!
떠돌이 마법사가 아니었어?
누가 떠돌이 마법사죠? 전 몰라요.
처음엔 우릴 공중에서 떨어뜨렸고, 그다음에는 많은 임무를 완료하도록 했어요. 그런데 모든 보수와 일부 원료를 가지고 도망가 버렸죠.
숨기 편하다는 이유로, 일부러 우리를 아이로 만든 다음, 자기는 도망쳤어요.
그때 지휘관님이 말씀하셨어요. 다시 그놈을 만나면, 한 대 때려주겠다고요.
그레이 레이븐 소대 전체가 위협 주사위를 던졌어요. 주사위 결과는 성공, 성공, 성공, 성공이에요.
미소 짓는 4명의 얼굴을 본 이름 없는 현자는 하늘이 빙빙 도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겁에 질려 끊임없이 고개를 저었다.
이러지 마세요. 저도 한때는 용사였습니다. 무릎에 신비한 탄알을 맞아서, 용사를 못 할 뿐이에요.
네, 보상할게요.
이름 없는 현자가 위장 마법을 해제했고, 떠돌이 마법사가 모습을 드러냈어요. 그리고 금화 10개를 자신 앞에 한 줄로 펼쳐놨어요.
떠돌이 마법사는 보상으로 금화 5개를 더 꺼냈어요.
떠돌이 마법사는 보상으로 금화 1개를 더 꺼냈어요.
그만, 더 이상 절 괴롭히지 마십시오. 이렇게 된 거, 제 비장의 카드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갑자기 떠돌이 마법사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자, 신호탄 같은 빛의 공이 하늘로 치솟더니, 불꽃놀이처럼 터졌다.
제 동료이자, 용사였던 여러분. 어서 절 구해주세요!
곧바로,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서, 방금 전과 비슷한 빛의 공이 공중에서 폭발했다. 그러자 혀를 내밀고 있는 세 명의 얼굴이 나타나면서, 목소리를 전달하는 마법이 시전됐다.
"꼴 좋다."
……
지휘관님, 이제 어떻게 할까요?
떠돌이 마법사는 순식간에 과장된 각도로 몸을 돌려, 땅과 하나가 된 것처럼,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았다.
살려주십시오. 용사님. 반드시 잘못을 뉘우치고, 과거의 잘못을 철저히 고쳐, 새사람이 되겠습니다.
얌전히 가져갔던 물건들 내놔요.
그게 죄송하지만, 모두 써버렸습니다.
보육원의 지출이 많아지면서, 다 썼습니다.
뭘 하시려는 겁니까?! 살려주십시오! 이 사람들이 나쁜 짓을 하려고 합니다!
지휘관님이 던진 주사위가 판정에 성공했어요. 확실히 그에게는 금화가 얼마 없으며, 그중에 어린아이의 낙서가 있는 감사 편지가 있어요.
이번에는 거짓말을 하지 않은 것 같네요.
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안 돼요. 마법사 씨. 이건 원래 지급해야 할 보수고, 무엇을 하려던 간에, 먼저 다른 사람의 동의를 구했어야 해요.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보육원은 파산했을 겁니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고개를 들어 서로의 눈빛을 확인했다.
어쩔 수 없는 게 아니에요. 마법사 씨.
다른 사람들에게 각자의 몫을 다 돌려준다는 전제하에, 마법사 씨는 우리의 몫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하지만 전 이제 그렇게 많은 돈이 없습니다.
그럼 다른 사람에게 진실을 말하고, 상의해 보세요.
만약 그들이 납득하지 않는다면, 금화를 벌어서 되돌려주는 방법을 찾아보세요.
리브를 본 떠돌이 마법사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생각하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졌습니다. 여러분 같은 용사는 처음 봅니다.
좋아요. 약속을 지키시길 바라요. 마법사 씨.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어졌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짧은 상의 끝에 계속해서 왕성을 향해 이동하기로 했다.
당신들은 무엇을 하러 가시는 겁니까?
일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어요. 전에 말한 대로, 우린 계속해서 세계를 구할 거예요.
……
뭐, 제가 부탁한 일이니, 합당한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더구나 용사님들은 정말로 용들의 고향을 찾아서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랜 시간 동안, 아무도 [용들의 고향]에 들어간 적이 없습니다.
정말로 "신용 거래" 한 번 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용사님들께서 작은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면, 모두에게 진정한 도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그놈이 또 무슨 일을 저질렀다는 거야? 아니면 누가 그를 괴롭힌다는 거야?!
갑자기 터져 나온 함성에, 놀란 떠돌이 마법사는 잔디밭에서 펄쩍 뛰었다.
완전히 무장한 모험가 몇 명이 숲속에서 튀어나와, 그레이 레이븐 소대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또 말썽을 부렸나 보군. 정말 마법사를 알고 나서, 이런 일이 끊이지 않아.
저기 현역 용사들! 우리가 용사였던 것을 봐서라도, 적당히 때린 후, 우리에게 넘겨주는 게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