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 프로그램은 공격에 무너졌지만 큰 피해를 입지 않은 듯했다. 아니, 그 어떤 상처도 보이지 않았다.
너희들의 가소로운 발버둥<//장난>은 아무런 소용도 없어. 여긴 우리 세계니까. 내가 이곳의 왕<//관리인>이야.
여왕 프로그램이 손을 들자 리와 루시아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무기를 드는 것은 물론,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움직이지 마<//나무 인간>! 움직이지 마<//나무 인간>!
[삐——] 여긴 네 세상이 아니야!
분노가 섞인 고함 소리와 함께 포탄이 여왕 프로그램을 명중했다. 폭발로 인한 먼지가 시야를 가렸다.
나나미, 이쪽으로 와!
혼란 속에서 누군가 나나미의 손을 잡고 연기 속을 빠져나왔다.
카레쨩... 여긴 어쩐 일이야?
무슨 일이긴! 당연히 널 구하러 왔지!
나나미는 카레니나의 손을 뿌리치고 고집스레 고개를 돌렸다.
그럴 리가! 네가 거짓말을 하는 거야! 난 쉽게 안 속아!
다들 날 귀찮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내가 돌아가길 바라는 사람은 없어!
나나미를 <//님??> 돌려줘!! 나나미는 꼭 필요한 도구<키>란 말이야!
여왕 프로그램이 두 사람을 향해 달려왔다. 그녀가 나나미를 잡으려던 순간, 총탄이 그녀의 팔을 정확히 명중했다.
나나미는 나나미야. 네 물건이 아니라고...
네! 너희들 나나미한테 가까이 갈 생각 마!
부유 캐논에서 발사된 레이저와 쌍권총에서 발사한 총탄이 합쳐져 촘촘한 불 그물이 만들어지자 여왕 프로그램은 뒤로 물러섰다.
아니야... 너희들이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 거지? 아니, 두 사람이 더 있었는데?
날카로운 두 개의 칼날이 사각지대에서 여왕 프로그램의 몸을 갈랐고 그 충격에 여왕 프로그램은 뒤로 떨어져 나갔다.
역시 가상 공간에서는 손맛이 별로네요.
지휘관님, 리브, 나나미와 함께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세요. 여긴 저희가 맡겠습니다.
리브... 내 장난 때문에 화난 거 아니었어?
미안해요, 나나미. 방금 이상 공간의 버그 때문에 생각과 반대되는 말을 했던 거예요.
지휘관에게 주려던 디저트의 녹차가루를 겨잣가루로 바꿨는데도 화가 안 났다고?
음... 그게 그렇게 화를 낼 일인가요?
그러니까... 다들 앞으로도 내 친구가 되어주는 거지?
나나미는 잔뜩 짜증 난 카레니나를 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정말 바보라니까... 한번 속았다고 널 무시할 거라고 생각한 거야?
그러니까 내가 그 녀석한테 속은 거네!
카레니나는 웃겨 죽겠다는 표정을 하다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좋아. 이런 걸 인과응보라고 하는 건가? 쌤통이다.
카레니나는 조금 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나나미가 정비 부대에서 이 사실을 말해줬을 때는 좀 화가 났지만 진정하고 제대로 조사해 보니 수상한 흔적들이 보이더라고.
그것 봐. 내가 말했잖아!
알았어. 알았어. 내가 널 오해했어. 미안해...
안 들려! 목소리에 파워가 없는 것 같은데~
됐고... 어쨌든 미리 준비한 덕분에 가상 공간에 진입하는 순간 정비 부대는 게슈탈트에 솔루션을 실행했고 이상 공간으로 인한 버그를 긴급 복구했어.
그럼... 이상을 일으킨 AI는 어떻게 되는 거야?
임시로 찾은 솔루션이 이상 프로그램과 이상 공간 전체를 격리시키는 거야. 그건 게슈탈트의 버그로 인해 산생된 것들이니 어떻게 결정할지는 과학 이사회와 의회 거물들이 결정할 거야.
이제 곧 시작이야...
여왕 프로그램의 뒤에 있던 가상 공간에 검은 틈새가 형성되더니 이상 프로그램들이 전부 그곳으로 빨려들어갔다.
우리 나라<//유토피아>... 자유<//거짓말>...
여왕 프로그램의 신체 절반이 봉인 공간으로 빨려 들어갔지만 그녀는 두 손으로 바닥을 짚은 채 죽기 살기로 버티고 있었다.
카레니나의 몸이 점점 투명해지고 있었다. 카레니나 뿐이 아니었다. 그 옆에 있던 리브도 마찬가지였다.
이상 프로그램들이 처치되었기 때문일 거야. 버그로 인해 가상 공간으로 들어온 우리들도 현실로 돌아가게 되는 거지.
그럼 여왕과 싸우던 사람들도 전부...
역시 루시아와 리의 몸도 투명해지더니 여왕 프로그램에게 퍼붓던 공격 또한 급격히 약화되었다. 여왕 프로그램은 그들의 공격을 피해 숨어들었다.
나도... 가서 도울 거야!
아니, 잠깐!
카레니나가 나나미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녀는 체인톱을 들고 여왕 프로그램을 향해 달려들었다.
나나미,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어서 물러서! 여긴 너무 위험하다고!
나나미는 대형 체인톱을 들더니 여왕 프로그램의 팔을 향해 내리쳤다. 불꽃이 화려하게 튕기더니 여왕 프로그램의 몸이 격리 공간으로 조금 더 빨려 들어갔다.
나나미<//연■결■>! 나나미<//연■결■>!
여왕 프로그램의 모습에 나나미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너희들은 오류로 인해 만들어졌지. 그래서 오류와 거짓으로 가득한 세상을 만들고 싶었던 거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선심을 이용해 너희들을 인정하지 않는 다른 존재을 공격하는 건 잘못된 거야!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해. 하지만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기도 하지. 그래서... 이번에는 나도 제대로 반성할 거야!
나나미의 체인톱이 바닥에 박혔다. 체인톱이 준 충격에 데이터로 구성된 지면에 큰 구명이 생겼고 여왕 프로그램이 마지막으로 잡고 있던 것마저 무너졌다. 그녀는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잠식되었다.
어쩌면 다음 기회에 만나게 되면...
틈새가 다시 닫히고 광폭 상태를 보여주던 데이터 스트리밍도 움직임을 멈추었다. 나나미는 아무도 없는 광장에 멍하니 서 있었다.
진짜 내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