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기가 막혀!
가상 공간에서 돌아온 나나미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그레이 레이븐 소대 휴게실에 덩그러니 누워있었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 멤버들과 지휘관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고... 여기서 기다리는 건 너무 지루한데...
내가 먼저 찾으러 가는 게 좋겠어. 깜짝 놀라게 해줄 수도 있잖아?
그레이 레이븐 소대 멤버들과 지휘관을 찾아가겠다고 나섰지만 공중 정원 내부 노선을 잘 모르는 나나미가 제대로 찾아갈 리가 없었다. 나나미는 목적지도 모른 체 돌아다녔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나나미는 광장처럼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그 아래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여긴 엄청 북적거리네. 사람이 정말 많잖아!
혹시 집회 같은 게 있는 건가?
나나미는 고양이처럼 베란다 난간에 몸을 기댄 채 흥미진진하게 북적이는 인파를 바라보았다.
시간은 조용히 흘렀고 이곳에는 나나미의 신분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사람들 속에서 평범한 소녀처럼 인간들과 함께 이 순간을 즐겼다.
누나... 누나!
이때 누군가의 소리가 들려왔다. 멍하니 생각에 잠겼던 나나미는 누가 자신의 옷깃을 잡아당기고 있음을 느꼈다. 고개를 돌려보니 처음 보는 인간 아이였다.
누나...? 나나미한테 누나라고 부른 거야?
누나 이름이 나나미예요?
그래. 내 이름은 나나미야~
이상한 이름이네요...
하나도 안 이상하거든. 나는 이 이름이 좋단 말이야.
그래요. 이름이 뭐든 상관없죠. 나나미 누나, 저 좀 도와주실래요?
물론 가능하지. 난 천하무적 나나미! 전지전능 나나미인걸!
나나미 누나, 우리 소오를 좀 찾아주세요!
"소오"? 그게 뭔데? 아~ 알겠다! 혹시 네 엄마야?
엄마 이름이 소오일 리가 없잖아요!! "소오"는 제가 키우고 있는 앵무새거든요. 그런데 나무 위로 올라가서는 내려올 생각을 안 하네요...
나나미는 남자아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생체공학 나무에 앵무새 한 마리가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에는 착한데 오늘은 아무리 불러도 계속 저를 무시하더라고요, 설마 이제 제가 싫어진 걸까요?
음, 누나 생각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소오가 겁먹은 것 같은데?
그럼 어떡하죠?
어디 보자... 그래. 저 정도 생체공학 나무라면 내 체중을 감당할 수 있을 거야... 누나가 나무 위로 올라가서 데리고 올게!
생체공학 나무는 그다지 튼실해 보이진 않았다. 나나미는 발 부분 달려있는 바퀴 덕분에 나무줄기를 밟고 생체공학 나무의 꼭대기까지 쉽게 올라갈 수 있었다.
올라왔다! 소오야, 겁먹지 마. 널 데리러 온 거야.
하지만 소오가 서 있는 나뭇가지는 너무 얇아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이때 남자아이가 아래에 서서 나나미를 보며 말했다.
나나미 누나, 손을 뻗어서 시도해 봐요.
그래, 알겠어. 이 몸이 간다!!! 으악!
하지만 나나미가 나뭇가지를 밟는 순간, 발을 삐끗해서 중심을 잃고 나무에서 떨어졌다... 그나마 다행히도 놀라운 신체 능력 덕분에 안정적으로 착지했다.
나나미 선수의 완벽한 착륙! 점수 10점!
그런데 참 이상하네... 왜 발을 헛디딘 거지? 참, 소오는?
나나미는 급급히 고개를 돌려 나무 위를 올려보았다. 나무 위에 있던 앵무새는 여유롭게 하늘을 한 바퀴 돌더니 남자아이의 손에 착지했다.
하하하~ 성공! 소오, 누나가 속았어!
속~았~지~롱~ 삑삑~ 속~았~지~롱!
뭐야! 소오를 이용해서 나를 속인 거였어?
나나미는 그제야 방금 전 자기가 밟은 "나뭇가지"는 고정밀도 홀로그램인 걸 발견했다. 그래서 방금 추락했던 것이다.
누나, 소오는 사실 생체공학 로봇 새라고요. 이건 우리 둘만 가능한 만우절 장난인 셈이죠!
성~공~했~어~ 삑삑~ 성~공~했~어~
생체공학 로봇은 AI 기능이 탑재되어 있었지만 주인의 명령을 어길 수 없었다. 그러니 애초에 "말을 듣지 않는 상황"이 일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하하, 그렇구나...
사실 나나미는 소오가 진짜 새가 아니라는 걸 진작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 로봇과 로봇 외의 기타 생명체는 딱히 차이가 없었다.
오늘은 만우절이니까 절대 화내면 안 돼요, 누나!
나는 다 큰 어른이야. 어린애의 장난에 화내지 않아. 하지만 다른 사람이었다면 화를 냈을 지도 몰라.
야! 이 자식이 정말! 그새 어디로 사라진 거야!
누군가 잔뜩 화난 목소리가 아래쪽에서 들려왔다. 잠시후 어떤 여성이 씩씩거리며 계단을 올라왔다.
으악, 엄마다! 소오야, 얼른 도망쳐!
도! 망! 쳐! 삑삑~
상황을 파악한 나나미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더니 허리춤에 손을 얹고 아이의 앞을 막아섰다.
난 절대 화난 게 아니고 그냥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를 도와주고 싶어서 이러는 거야.
지금 화풀이하는 거잖아요!
아들이 나나미에게 장난을 친 사실을 안 엄마는 아이의 머리를 꾹 누르며 그녀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이 녀석이 예의 없이 그런 장난을 쳤네요. 얼른 누나한테 사과해!
쳇, 오늘은 만우절이잖아요~ 그게 무슨 상관인데요...
아이의 엄마가 미간을 찌푸리자 겁을 먹은 아이는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타인의 선심을 이용해 그 사람을 속이는 건 절대 안 돼. 알겠어?
그리고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하면 앞으로 네가 진실을 말해도 믿어줄 사람이 없어.
알, 알겠어요.
남자아이는 나나미에게 사과한 뒤 엄마의 손을 잡고 자리를 떴다. 나나미는 그 자리에 남아 베란다 난간에 기댄 채 북적이는 인파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도 카레쨩이 베푼 선심을 이용해 장난쳤는데... 그래서 그렇게 화를 낸 거였어... 카레쨩뿐만 아니라 오늘 많은 사람을 속였지.
윽... 내가 먼저 사과해야 하는 건가? 그리고...
나나미는 방금 봤던 모자가 광장을 거니는 것을 바라보았다. 남자아이는 나나미를 발견하고 손을 저었다.
나나미는 합성 캔디를 꺼냈다. 방금 전 그 남자아이가 사과의 의미로 나나미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가격은 저렴하지만 밤하늘처럼 아름다운 포장지에 쌓여있었다.
게슈탈트에서 발견한 버그를 그대로 방치하면 일반인의 삶에도 영향이 가겠지...
나나미는 포장지를 뜯어 사탕을 입안에 넣었다. 특별히 달콤하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로 충분했다. 나나미는 반투명한 포장지를 눈앞에 두고 그것을 통해 앞을 바라보았다. 공중 정원 사람들이 알록달록하게 변한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는 인간이 좋은 걸 어떡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