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호 재건 보육 구역에서 14.5km 떨어진 지점.
끝없이 펼쳐진 사막은 추방의 길 끝자락 같았고, 단조로운 광경은 시각 센서마저 마비시킬 것만 같았다.
그 속에서 고장 난 로봇이 걷고 있었다. 혹은 그녀 자신이 이미 고장 났다고 생각해야만 했을 수도 있었다.
그녀는 로봇이었다. 그녀를 전진하게 하는 것은 계산과 확률뿐이며, 그 밖의 세계는 그녀에게 있어서 발밑의 사막과도 같았다.
따라야 하는 신념도, 쫓아야 하는 숙원도 사막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시도는 모두 끝나야 했다.
이건 모래 폭풍?
"탕!", "탕!"
총알이 침식체의 무릎을 깨트려 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러나 모래 폭풍에 숨어있는 대군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성과였다.
하늘에 흩날리는 모래는 시야에 엄청난 제약을 줘서, 침식체의 위치를 알 수 없게 했고, 어디로 도망쳐야 할지 판단할 수 없게 만들었다. 단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포위되어 죽게 될 수도 있었다.
등 뒤에 어디로 통하는지 알 수 없는 동굴이 하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최악의 선택이었다. 만일 깊이 들어갔다가 모래 폭풍의 영향까지 겹치게 되면, 그레이 레이븐 소대 대원들과의 연락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시야의 사각지대에서 휙 하는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칼날이 튀어나왔다.
새빨간 눈이 나를 향해 치명적인 공격으로 날린 녹슨 칼날이 코끝을 스쳤다.
언제 이렇게 가까워졌지?
고개를 돌려, 내 생애에 구조체와 가장 비슷한 속도로 동굴 속으로 뛰어들었다. 등 뒤에선 참격으로 인해 암석이 떨어지는 소리가 연이어서 들려왔다.
모래 폭풍이 종료되기까지 예상되는 시간 2시간.
하카마는 땅 위를 걸으면서부터 수치의 선택 사이에서 존재를 유지해 왔다.
어디로 가든지 방대한 계산으로 짜인 결론은 이미 정해진 결말로 보이지 않는 손이 그녀를 떠밀었다.
인간 한 명이 나타나기 전까지, "기적"이라는 빛이 하나밖에 없는 오아시스 너머에서 반짝거렸다.
스며 나오는 온기를 따라 그녀는 옛길에서 벗어나, 사막 너머의 세계에 다가가기 위해 계속해서 시도했고, 거의 닿을 뻔했다.
그러나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그것은 인간의 것이지, 졸렬한 모방으로 획득할 수 있는 먼 기적이 아니었다.
모래 폭풍이 종료되기까지 예상되는 시간 1시간 57분.
교회에서 온 경고. 인간 부대의 활동 흔적이 발견...
수정. 공중 정원 집행 부대의 인간 지휘관과 구조체가 같이 있어. 사고 발생 가능성을 다시 확인... 2%, 확인해볼 만한 수치야.
하지만 지난번 산발적인 기록에 따르면 다시 만날 확률은 0.039%야. 만약 이것이 기적이고 유발할 수 있다면, 2%의 확률은 과연 낙관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여기까지 생각한 하카마는 벌떡 일어섰다. 로봇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똑같은 계산으로 획득한 결론인 만큼 바로 실행에 옮겨야 했다.
또 무엇을 믿으려고 하는 거지?
한순간 발걸음이 멈췄다. 경계에 닿으면 흘러나오는 경고 목소리가 반복 재생처럼 사고 회로 안에서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했다.
"하지만, 스스로 뭐라도 하지 않으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아."
만약 인간이 이 사막에 있다면...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모래 폭풍으로 뒤덮인 사막에서 그 인간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것은 너무나도 많았다.
어떤 의미에서 만날 수 없는 확률 99.961%야말로 자신이 원하는 결과일 수도 있었다.
구조에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은 0.011%로 기적을 바라는 욕심이야.
하지만 우선순위는 이미 달라졌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것이었다.
붐비고, 좁고, 어두웠다. 갈림길이 생겼을 때, 어떤 선택이든지 불길한 느낌이 들기는 마찬가지였다.
땡그랑 하는 소리가 계속 따라와서, 어디로 가야 할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다만, 지하로 통하는 선택지를 배제함으로써 도박에서 이길 확률을 높일 수 있었다.
달리고, 오르고 또 달렸다. 그렇게 비틀거리며 개활지에 다다랐다.
좋은 소식은 스캐빈저가 살았던 흔적을 발견했다. 그러면 어디엔가 비상 출구가 있을 것이고, 그 출구의 끝은 지면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나쁜 소식은 뒷문이 존재하는 이상, 기괴한 무언가가 동굴 안으로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다.
삐~
침식체는 앞뒤로 날 막는 데 성공했다. 뒤돌아봐도 막다른 길이어서 앞으로 돌진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은 움직이기 시작했고, 달리는 도중에 호흡을 조정해 발걸음과 심장 뛰는 소리를 하나가 되게끔 한 뒤 조준했다.
아직 안 돼. 더 가까워야 해. 탄창 한 개밖에 없어서 반드시 근접 사격을 해야 해!
삐~
방아쇠를 당길 무렵이 돼서야, 침식체가 자신의 무기를 들기 시작했다.
갑자기 조준한 머리에서 삼류 코미디 영화처럼 낫 하나가 튀어나왔다.
위를 스쳐 지나가다가 다시 빠른 속도로 움츠러들었다.
삐~
대화는 필요 없다는 듯, 하카마는 밀려오는 침식체를 향해 날카로운 칼을 휘둘렀다.
우선은 로봇 팔, 그다음은 몸통, 다량의 액체가 강철 부스러기와 섞여서 불꽃과 함께 사방으로 뿌려졌다.
하카마가 머리를 절단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후에야, 쓰러지는 로봇의 몸통들이 완전해지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영혼 없는 냉정함으로, 기계적인 절단만 수행했다.
길을 막은 잔해를 걷어차고, 휘감긴 케이블도 다음 스윙으로 끊어버렸다.
사신이 자신의 보리밭에서 수확을 마치자, 소란스러운 소리도 완전히 사라졌다.
잔해를 하나씩 넘은 그녀가 다양한 색상의 액체가 묻은 낫을 손에 쥔 채 내 앞에 섰다.
……
관찰 결과에 따르면, 당신의 신체 기능은 손상되지 않았어요. 혹시 제 도움이 있어야 일어날 수 있나요?
낫은 안달이 난 듯 가볍게 흔들렸다. 그녀가 낫으로 나를 일으키기 전에 빨리 일어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이쪽으로 등을 돌려주세요.
이쪽으로 등을 돌려주세요.
이어서 손바닥이 등에 닿았다.
단단한 금속이 등을 더듬었고, 남은 온기가 조금씩 등 전체로 퍼졌다.
상태는 양호합니다. 다음에는 위험한 행동을 하기 전, 자신의 상태를 고려해보는 것을 제안합니다.
등 뒤는 눈으로 볼 수 없으므로 촉각의 보조가 필요합니다. 아니면 시각 관찰 조건을 제공해드릴까요?
그럼 계속하겠습니다.
인간은 너무 약합니다. 지휘관님도 알지 못하는 상처가 생겼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이 믿는 길로 용감히 나아갈 수 있는 걸지도 모르죠.
하카마의 목소리에 힘을 느낄 수 없었다. 따질 겨를도 없이 그녀는 제자리에서 두 발짝 물러났다.
검사 완료. 신체 상태 양호합니다.
그녀는 전투의 흔적을 지울 생각도 하지 않고, 무장만 정리한 채 생각에 잠긴 듯 가만히 서 있었다.
내가 소지품을 뒤졌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을 정도였다.
내 몸짓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보던 첫 만남과 달리, 지금의 하카마는 내 뺨에 땀구멍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있었다.
그렇다면...
확인된 구역을 우선으로 위험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노선 계획이 완성됐습니다. 이제 우리는 갈 수...
하카마의 얼굴에 손이 닿았을 때 소리가 뚝 그쳤다. 그래도 할 수 없었다. 얼굴 옆에 묻은 액체를 최대한 부드럽게 닦아내기란 정말 어렵기 때문이었다.
사용 수첩에는 총기 손질할 때, 사용하는 플란넬이 가장 적합하다고 나와 있지만, 난 주저하지 않고 내 손수건으로 얼굴에 묻은 얼룩을 닦아냈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차가운 느낌이 없었다. 오히려 이와 정반대로 온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었다.
손바닥의 따뜻한 기운이 가녀린 얼굴에 스며들어, 원래 부드러운 움직임을 더디게 만들었다.
……
침식체가 파손된 후 튄 액체는 저를 침식시킬 수 없으므로, 어떠한 피해도 줄 수 없어요.
이런 액체들은 시각 모듈을 가리지도, 행동 능력에 지장을 주지도 않는데 왜...
……
하카마는 머뭇거리다가, 두 눈을 감고 무언가를 감추려는 듯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아니요.
얼굴 부위를 다 닦은 후, 어깨 쪽만 조금 남아 있었다.
효율적 측면에서 봤을 때, 금속 소재의 세면도구를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모래 폭풍이 멈춘 지, 4시간 가까이가 지났다.
좌표 전송에 성공한 뒤, 하카마와 함께 모래언덕 위로 올라왔다.
하카마의 전투 능력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났지만, 그렇다고 이 사막에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인근 보육 구역 명단에서 하카마라는 이름은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player name] 지휘관님.
내가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통신기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지휘관님을 볼 수 있는 구역에 있습니다.
하지만 지휘관님 옆에 식별할 수 없는 구조체가 있습니다. 신분 확인을 부탁드립니다.
하카마의 신분?
통신기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고, 내 감정도 조금씩 호수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최근에 스캐빈저가 황금시대에 만들어진 침식되지 않은 로봇을 목격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신분 확인을 해주실 수 없다면, 저희가 그 로봇이라고 판단해도 되겠습니까?
하카마의 앞을 가로막고 싶었지만, 수색 구조대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그리고 수색 구조대는 저격용 총 같은 원거리 정밀 무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었다.
더 큰 문제는 보육 구역의 열악한 상황이 주둔하고 있는 구조체 소대들을 극도로 민감한 상태로 만들고 있었고, 그로 인해 그들이 사격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할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만, 보육 구역의 조례가 개정되면서, 모든 우발적 상황에 대처해야 합니다. 저희가 목표를 무력화시킬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녀의 프로그램에 보육 구역을 위험에 빠뜨릴 만한 내용은 없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본 소대는 상급 지상 지휘관으로부터 명령받아 임무를 수행하는 소대입니다. 비록 저의 계급은 지휘관님보다 낮지만, 충돌이 발생할 경우 지휘관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습니다.
[player name] 지휘관님, 제자리에서 대기하십시오.
……
……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이...
하지만 내가 행동하기 직전에 부드러운 기운이 뒤에서 나를 감싸 안았다.
말리는 것 같기도 하고, 위로하는 것 같기도 했다.
금속 팔로 서툴지만, 따뜻한 포옹을 해줬다.
죄송하지만, 여기서 헤어져야겠어요. 조심히 가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지휘관님의 도움으로 제가 원하는 답에 더 가까워진 것 같아요.
그럼, 전 제 임무를 수행하러 가겠습니다.
사막에서 나온 다음부터, 당신과의 다음번 만남이 기대된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곤, 하카마는 나를 놓아주었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계속해서 이쪽을 응시했고,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기 전에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뒤돌아서 선 두 사람의 발자취가 남겨진 울룩불룩한 모래언덕 속으로 조금씩 사라져갔다.
죄송합니다. 현재 상황을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두 분께 실례한 것은 제 책임입니다.
괜찮으시다면, 저를 대신해 그 여성 구조체에 유감을 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오늘 밤, 야심한 시간이 돼서야 하카마는 임시 휴식처로 돌아왔다. 그녀는 보육 구역에 버려진 쓸모없는 것들을 찾으러 나간 모양이었다.
텅 빈 방에 화실의 모양을 본떠 하나씩 배치했다.
붓 하나, 도화지 몇 장 그리고 어디서 잘랐는지 알 수 없는 금속판.
그림 도구는 부족하지만, 그녀는 최선을 다해 백지 한 장에 그림을 그렸다.
맑은 하늘, 흩어진 모래 속에서 혼자 걷는 모습들이 서로 만나 두 줄의 발자국을 만들었다.
그리고 같은 방향으로 끝없이 뻗어나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