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Affection / 하카마·은성·그중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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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카마·은성·그중 여섯

보육 구역에서 0.4km 떨어진 지점.

안전 구역의 대략적인 범위를 파악한 뒤, 2시간 동안 나무 사이를 혼자 걸었다.

보육 구역의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방법은 없었다. 밤이 지나고 해가 뜨면, 움츠러든 생존자들은 최대한 구석으로 숨었다.

"있지도 않은 의미를 위해, 지상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묘지를 더 파야 하는 걸까?"

이 말을 입증이라도 하는 듯, 눈앞에는 왜소한 나무 그루터기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작은 언덕에 올라간 뒤에야, 그 익숙한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은 유난히 화사했다.

공중 정원에서 바라본 모습보다 사람들은 더 많은 그리움을 이곳에 남겨뒀다.

우주로 날아갈 수 있다고 해도, 버릴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었다.

별빛을 바라보는 그녀도 역시 그럴까?

하카마 옆에 가만히 서서 고개를 들고, 머리 위 밤하늘을 같이 바라봤다.

하카마가 바람에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할 때까지, 시간에 대한 감각이 조금씩 흐려졌다.

지휘관님은 땅에서 별 보는 일이 거의 없지 않나요?

야간에 활동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때에는 멀리 떨어진 별들을 볼 수 있었어요.

밤하늘은 매우 조용해서, 저장된 정보와 사고 기록을 정리하기에 매우 좋습니다.

고민...

지휘관님도 발코니에 바람 쐬러 가실 건가요?

발아래가 바로 언덕이었고, 추위와 저녁 바람이 모이는 곳이었다.

제 실험 결과 분석에 따르면, 지휘관님이 제공한 전제 조건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지역, 대기 그리고... 지휘관님이요.

하카마

……

데이터 추측에 따르면, 지휘관님의 체온이 미약하지만,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체온을 일정 구간 내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난로와 비슷한 효과를 줄 수 있습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카마가 다가오더니 내 팔을 잡았다.

따뜻한 느낌이 온몸에 퍼져나갔다. 그녀의 말처럼 둘 사이에 따뜻함이 가득했다.

인간의 손은 참으로 부드럽네요.

군인으로서 이 말을 다른 사람에게 했다면, 상대방은 도발의 의도가 있는지 고민했을 것이다.

환원 유전 현상이 생각보다 약하네요. 복슬복슬한 느낌도 없고요.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요.

인간의 다양성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보면,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다음 순간, 하카마는 예상치 못하게 내 소매 한 귀퉁이를 걷어붙이고서는 안쪽의 붕대를 드러냈다.

추측이 정확합니다. 새로운 상처네요.

다시 한번 전신 검사를 진행합니다.

인간의 몸은 나약합니다. 그러므로 100%의 확신이 필요합니다.

이전 기록과 비교했을 때, 지휘관님의 손목 회전 속도가 약간 이상했습니다.

지휘관님에 대한 모든 걸 제가 따로 구역을 만들어서 저장해 놨으니, 숨기려 하지 마세요.

상황이 그 정도로 좋지 않나요?

복잡하게 얽힌 불행은 보육 구역에 셀 수 없이 많았다.

하지만 기적이 나타나든 나타나지 않든 누군가는 나서야 했다. 위험할지언정 한낱 희망이라도 놓치지 말아야 했다.

오래 걸은 탓인지 땅바닥에 주저앉았고, 흙 속에 손끝을 박고 그 일부를 손에 꼭 쥐었다.

그리고 다른 사물이 내 눈앞에 나타날 때까지 계속 쥐고 있었다.

고개를 들자, 하카마는 기대가 가득 찬 눈길로 나를 바라봤다.

하카마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붓을 건넸다.

그리고 내 옆에 앉은 뒤, 그림책 한 권을 펼쳤다.

곁눈질로 보니, 그녀는 밤하늘의 색깔을 채우고 있는 듯했다.

나도 붓을 대려고 했지만, 그 다급한 소리를 어떤 식으로든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붓끝의 선이 점점 뒤엉켜 서로 꼬였다.

"왜 여길 떠나지 않는 거지?" "있지도 않은 의미를 위해, 지상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묘지를 더 파야 하는 걸까?"

……

네.

처음에는 무척 힘들겠죠.

그리고 항행 날짜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우선 나머지 인간에 대한 대대적인 개조가 필요할 겁니다.

인간 내부의 통합은 공중 정원이 직면하게 될 첫 번째 난관이 될 것입니다.

연산 결과가 차갑게 느껴졌지만, 사실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건 내가 듣고 싶은 내용이 아니었다.

다음은 정착할 수 있는 행성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지적 문명과 접촉할 확률도 고려해야 합니다.

낯선 행성 환경은 인류 문명을 완전히 다른 미래로 이끌지도 모릅니다.

환상에 비하면, 적어도 하카마가 말한 내용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어서 지루했다.

하카마는 미지를 지향했다. 그녀 자신은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밤하늘을 좋아하는 것도 그런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지구상의 신비로움은 이미 황금시대에 사라지고 없었다. 그 시절은 지표면에서 가장 부유했던 시대이자 가장 척박한 시대였다.

모든 것을 포함한 데이터베이스 덕분에 하카마는 신화 속의 신이 자기 작품 속을 서성거리는 것처럼 비밀이 없는 대지를 걸었다.

변수가 없으니, 심심해져서 하품하고 싶었다.

그들이 발길을 멈추고 지켜볼 수 있는 것은 인간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신들의 손길이 닿지 못한 수없이 많은 미지의 별들을 품고 있는 먼 하늘의 별까지.

네?

하카마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아마도 웃으면서 배웅하지 않을까요?

자라난 아이를 대하는 어머니처럼요.

평온함, 기대, 별빛에 의해 부드러워진 얼굴을 보이며, 슬픔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면서 하카마의 입꼬리가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살짝 올라갔다.

하지만 기억, 희망 그리고...

기적을 가지고 가잖아요.

전 그걸로 충분할 것 같아요. 맞아요. 그걸로 충분해요.

지나왔던 길을 잃어버렸다고 해서 막막해하지 마세요.

집이라 해도 같은 밤하늘 아래에 있다면, 언젠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저녁 바람이 모래언덕을 스쳐 지나가며, 소녀의 웃음을 기억 깊은 곳에 새겨 넣었다.

기적. 허무맹랑해 보이지만, 인간이 평생 추구해온 희미한 빛이다.

가장 어두운 밤에도 수많은 별을 찾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곁눈질로 색깔의 변화를 눈치챘고, 난 호기심에 고개를 돌려서 봤다.

그러자, 하카마는 그림책을 바로 덮어버렸다.

일기는 프라이버시이므로, 훔쳐보는 것을 권하지 않습니다.

……

방금 생각에 잠겼을 때, 산만하게 그린 낙서가 하카마의 주의를 끌었던 것 같았다. 다음 페이지로 넘기는 게 좋을 것 같다.

질문드려도 될까요?

지휘관님도 일기를 쓰시나요?

하카마는 이 말을 기다렸다는 듯, 갑자기 그녀의 하얀 모자로 내 시야를 가릴 정도로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 내 "그림"이 그녀의 눈앞에서 활짝 펼쳐졌다.

지휘관님은... 포스트 반격 시대의 초현실주의 추상파이신가요?

얼른 다음 페이지로 넘겼다. 그 도화지가 내 것이라면, 화염 수류탄으로 즉시 불태워버렸을 것이다.

하카마는 잠깐 침묵한 뒤, 천천히 그림책을 펼쳤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을 접어 아래쪽으로 숨긴 뒤, 내가 맨 위 페이지만 볼 수 있게 했다.

하카마의 그림은 예술 협회가 찾아올 만큼 훌륭했다.

심지어 어떤 의미에선 공중 정원에 소장된 그림과는 사뭇 다른 특성이 있었다.

원인을 알아내는 것보다 그럴듯한 작품을 보여주는 것이 더 급했다.

그래서 난 도화지에 뭔가를 남기려고 머리를 쥐어짜기 시작했다.

……

……

책 다음 페이지에 숨겨져 있던 스케치 작품은 사실 평범했다.

그림 안에는 한 명의 인간만 있었고, 영원히 마르지 않을 것 같은 부드러운 웃음과 함께 거울에 비친 그림자처럼 또렷한 형상이었다.

시간은 그렇게 조용히 흘러갔다.

첫 햇살이 하늘을 밝히며, 밤의 끝을 알렸다.

하카마와 작별 인사 후, 공중 정원으로 돌아온 난 긴 대기 상태에 들어갔다.

기나긴 구조 임무의 종료는 모든 참여자가 어마어마한 작업 보고서와 직면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원인, 견해, 결과. 좋아. 다 채웠다. 드디어 모든 보고서를 작성했다.

약간 뻐근한 어깨를 움직이고는 개인 단말기를 닫고 의자를 밀어내며 일어섰다.

한가한 시간에 눈앞의 우주를 바라보다 보면, 항상 그날 밤이 떠오른다.

하카마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아직도 위험한 지역에 있을까? 아니면 별 보기 좋은 곳을 찾아서 공중 정원의 방향으로 보고 있을까?

어쨌든 폭풍우는 다가오고 있었고, 지금은 폭풍전야일 뿐이었다.

지휘관님, 수송 부대가 출발 준비를 마쳤어요.

얼마 전 정비했던 권총을 꺼내 홀스터에 넣은 뒤, 개인 단말기를 품에 안았다.

옷자락을 털어서 군복을 가다듬은 뒤,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는 그레이 레이븐 소대로 걸어갔다.

마지막 작별 인사 때 했던 약속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지상의 소녀는 별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 소중한 그림책을 봤다.

그녀는 머릿속에 있는 영상보다 초상화를 펼쳐보는 것을 더 좋아했다. 손을 올려 그 윤곽을 살며시 만졌다.

하지만 종이에게도 단점이 있었다. 종이를 자주 접었다 펼쳤다 해서 종이의 귀퉁이가 조금 구겨졌다.

다음에 몇 장 더 그리자. 책을 덮은 하카마는 조심스럽게 그림책을 챙겼다. 이것은 곧 휴식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호수 같은 눈동자가 가끔 주의를 훑었다.

찾지 못했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왜냐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기대가 천천히 쌓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별빛 속을 거닐며, 하카마는 만화 속 마법사처럼 자신만의 주문을 외웠다.

같은 밤하늘 아래 우리는 결국 만나게 될 것이고, 서로를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