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호 재건 보육 구역에서 3.9km 떨어진 지점.
도서관 내 작은 책장들 속에서 하얀 모자 하나가 보였다.
책장에 기대고 있는 하카마는 고개를 들어 꼭대기 층의 책들을 힘겹게 훑어봤다.
언제까지 찾을 거예요?
글쎄요. 최악의 결과는 이 구역의 모든 책을 훑어보는 겁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죠?
스프너, 우리의 데이터베이스는 아직 인간의 모든 지식을 담을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전 부족한 것이 보이면, 그때그때 데이터를 추가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제가 대신 다 입력해줄까요?
……
스프너, 인간이 "기적"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아나요?
아마도... 아주 작은 확률이지만, 실제로 일어난 상황에 대한 사후 결론 같은 거 아닌가요?
만약 그것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면요?
그럼, 반복적인 상황을 없애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하카마는 가장 재미없는 답안을 들은 듯 다시 책장에 집중했다.
……
스프너?
뭐라고 자세하게 말할 수 없지만, 좀 이상하네요.
이 구역을 말하는 건가요?
아니요. 당신이 이상해요. 사고의 언더레이에서부터 시작된 변화에 저는 놀랐어요.
지금의 하카마는 교회와 비교했을 때, 조금 특별하게 보여요. 그래서 전 그 녀석들이 이 변화를 보고만 있지 않을 거 같아요.
흡수, 소화, 자아 완성, 이런 것도 제 사고의 일부분이에요.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방주 계획이에요.
……
무슨 일이에요?
여긴 아무래도 당신 혼자 처리해야 할 것 같네요.
괜찮아요. 어디 가시게요?
오랜 친구가 왔어요.
얼버무리긴 했지만, 스프너의 행동을 볼 때, 무기로 상대를 대하는 방식은 아닌 것 같아서, 하카마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하카마는 인간의 일부 문헌을 해독할 수 있는 참고 서적을 찾아야 했다.
인공지능 자료를 보려면, 프로그램 지식에 관한 책을 먼저 봐야 한다. 그렇다면 "기적"이란 것도 그에 따른 입문 방식이 있을 것이었다.
<너를 만난 100번째 주말>... 첫 번째 주말은? 어디에 있는 거지?
책장 사이를 어슬렁거리다 보니 찾아야 할 책이 점점 더 쌓이고 있었다. 하카마는 이런 내용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책들을 연구하기 시작했었다.
다만 모든 질문이 정해진 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 책은 번호가 있네. 이 책의 첫 번째 책은?
여기 있어.
시선 속에는 한 손에 쥐어진 책 한 권이 소리 없이 하카마 앞으로 배달됐다.
"쏙!"
어렴풋이 무서운 바람 소리가 들렸다.
예상처럼 장난은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5센티미터나 되는 책이 벽돌로 사용되어 나를 공격하려고 했다.
지휘관님이시군요.
책은 멈췄고, 공격의 의도도 마주친 시선 속에서 사라졌다.
목소리로 판단하지 못했다면, 지휘관님은 이미 생명을 잃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잘 오셨어요.
말이 끝나자, 하카마는 손에 들고 있던 책을 건넸다.
이 책에 적힌 정보에 대한 인간의 해석이 필요합니다.
계산해본 결과로는 이 책 전부입니다.
가능하다면 나열된 모든 내용의 분석도 같이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난 하카마가 지켜보는 가운데 책장들 속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그녀가 지나온 곳으로 가서, 책의 다음 편이 있는지 찾아봤다.
책장 옆에 앉은 하카마는 손에 든 책의 첫 페이지를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기적"이 맨 앞에 쓰여 있었다.
이 뜻인즉슨 "기적"의 존재를 받아들여야 제대로 읽을 수 있다는 건가요?
손끝은 표제지의 구절을 가볍게 만지면서, 시선은 책장으로 향해 있었다. 그러자 인간의 그림자가 글씨와 겹쳐졌다.
기적, 기적을 받아들인다?
하카마는 문득 자신의 사고 회로가 이유 없이 활발해졌다는 것을 감지했다.
산더미처럼 쌓인 의혹은 사라지지 않았고, 우선순위가 더 높은 무언가에 의해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게 됐다.
발코니 실험과 비슷하네요?
하카마는 가슴을 어루만지며 깊은 생각에 빠지려고 했지만, 자신의 등 뒤에서 이상이 감지되어 오래가지 못했다.
당신이 왜 여기 있는 거죠?
드디어 날 발견했네요. 일부러 무시하는 줄 알았잖아요.
제로와 하카마는 같은 책장의 양쪽에서 서로 등을 맞대고 앉아서는 둘만 들리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하카마도 녹슬었네요. 인간 때문인가요?
교회는 이번 작전에 당신이 포함될 거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겸사겸사, 여기가 재미있을 거 같은데요. 놓치면 너무 아쉽잖아요.
제로가 이 책들에 관심이 있는 건가? 침식된 로봇도 그런 미친 소리를 혼잣말로 내뱉지 않을 것이었다.
스프너가 말한 "오랜 친구"라는 걸 생각해 보면, 그녀만 여기에 온 게 아닐 것이었다.
그 인간의 뒷모습이 자신의 시선 안에 있는 한...
하카마, 요즘 당신의 사고 연산 속도가 많이 느려졌던데, 어떤 오류가 하카마의 판단을 방해하고 있는 걸까요?
만약, 방주 계획에 지장 줄 정도의 위험이라면,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야지 않겠어요?
이 도서관은 인간 보육 구역의 관리 범위 안에 있어요.
인간의 뇌는 파괴하기 쉽죠. 죽처럼 깔끔하게 휘젓기만 해도, 동료들에게 알릴 수 없게 되거든요.
게다가, 구조체들은 망가진 장난감들 회수에 바빠서, 혼자 남겨진 인간에게 사고가 닥쳐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할 거예요.
로봇 톱니바퀴의 맞물림 소리와 함께 낫이 빠르게 펼쳐지면서, 베어진 책들 속에서 수많은 종이가 흩어졌다.
하카마는 텅 빈 책장 앞에서 떨어지는 종이들을 바라봤다.
지금이라도 당장 멈추세요. 제로.
익숙한 얼굴이 새하얀 종이들 사이로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예전의 장난스러움은 없었고, 놀라움과 난해함이 뒤엉켜 있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뒤쪽에서 되돌아오는 발소리와 함께 제로의 모습은 공중에서 흩날리는 종이 속으로 사라졌다.
이건 하카마의 뜻이에요. 당신들의 추측과는 완전히 달라요.
그것참 재밌습니다. 전 파견 명령을 받아 여기로 온 겁니다.
기계 교회 대표로 바로 뛰어 들어가서 짠하고 등장할 생각인 건가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이 도서관에서 인간이 숨긴 물건을 몇 개 발견했습니다.
이제 그들이 사용하질 못하니, 제가 유용한 곳에 써야겠습니다.
……
아직은 없습니다.
책상에 마주 앉았다. 하카마는 날 계속 힐끔거려 펼친 책을 몇 페이지 못 넘겼다.
침식체가 접근할 확률은 1%도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걱정하는 건 침식체가 아니라...
……
우리가 만날 확률이 이 수치보다 훨씬 낮은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갑자기 화제 전환한다고?
하카마는 대답 대신 창밖을 보다가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꼭 어떤 의식을 보여주려는 것 같았다.
(뭐라도 해줘서 고맙군.)
필요가 없나요?
난 손에 있는 책을 펼쳤다. 현재와 동떨어진 지난 세계에 대한 아름다운 환상일 뿐이지만, 그것들은 인간들이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는 일부분이었다.
기록된 내용에 근거하면, 전제 조건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
추측에 따르면, 근처에 특별 기능을 갖춘 건물이 없어서, 지휘관님이 제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이 도서관이 존재하지 않았을 경우, 계산 결과는 0.08%도 안 되는...
하카마는 말하다가 멈췄다. 비록 하카마의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난 그녀가 뒤에 이어지는 결론에 대한 거부감을 느낄 수 있었다.
바람이 창문으로 들어와, 책의 귀퉁이를 건드리고는 책 페이지를 넘기게 했다.
구름층을 뚫은 햇빛은 조금씩 눈부시게 빛나며, 새하얀 종이에 적힌 글자들을 반짝반짝 빛나게 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말이 있다.
내가 하는 모든 것이 하카마 및 보육 구역 사람들의 마음속 어두움을 쫓아낼 수만 있다면 서툴러도 괜찮았다.
……
펄럭거리는 종이를 누르며, 하카마는 다시 한번 위의 구절을 어루만졌다.
그러다가 바람이 몰고 오는 평화에서 이상한 냄새를 느꼈다.
그녀는 벌떡 일어났다. 넘어진 의자도 신경 쓰지 못하고 따라오라는 듯 날 쳐다보았다.
넓은 통로에서 두 사람은 앞뒤로 빠르게 걷고 있었다.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곳은 사전에 설치된 소방 통로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냥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었을 뿐이에요.
폭파.
쾅!
굉음이 순식간에 모든 것을 덮쳤다. 창문은 깨졌고, 검은 연기가 솟아올랐다. 뒤로는 뜨거운 열기가 지옥의 연장선처럼 탐욕스럽게 이쪽을 덮쳤다.
하카마는 로봇 신체의 장점을 살려서, 빠른 속도로 소방 문 쪽으로 향했다.
"보십시오. 하카마는 살상 구역을 쉽게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 약한 인간만 이곳에 영영 파묻힐 겁니다."
"에너지를 좀 아끼십시오. 스프너. 여기서 저와 다투기보다는 하카마를 어떻게 하면 예전대로 되돌릴 수 있을지를 고민해 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하카마는 두꺼운 문을 몸으로 부딪쳐서 연 후 몸을 돌렸다. 그리고 고온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곤경에 빠진 인간에게 손을 내밀었다.
(추측에 따르면, 인간의 이동 속도가 너무 느려서, 빠져나가는 데 실패할 확률은 98.3%입니다.)
1.7%의 성공률로도 충분했다. 그래서 난 그 작은 가능성을 믿어보기로 했다.
!!
어느새, 두 손을 그녀에게 얹고는 그녀를 이곳에서 밀어냈다.
기적은 그녀의 덧없는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 연기 중에 섞인 화염은 지나치는 모두 곳을 집어삼킨 뒤 건물 안에서 쏟아져 나왔다.
야심한 밤, 거점에 도착했을 때는 깊은 밤의 장막이 소란을 가라앉힌 뒤였다.
하카마는 그림을 보관하는 방으로 돌아왔다. 예정된 복원 작업에 사고의 측면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녀는 모두 거절했다.
그림 도구를 움직여서 깔끔하고 예리한 선으로, 낡은 책장과 높낮이가 다른 책들 그리고 들쑥날쑥한 틈새를 그려냈다.
그리고 붓끝은 가운데 핵심 부위에 닿았을 때만 멈추게 됐다.
오류...
회의에서 내린 결정을 다시 분석해 본다. 인간 보육 구역에서 구조체를 놀라게 하여, 기계 교회가 노출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이유로 일시적으로 제로의 모든 행동을 취소시켰다.
행동권은 빼앗기진 않았다. 그리고 전차도 제로의 말만 들었을 뿐이라는 이유로 처분 받지 않았다.
이젠 스프너도...
자신을 도와 상대방을 비난하던 스프너도 회의 직후, 회의에서 나왔던 비슷한 내용으로 대화를 나눴다.
기계 교회의 중요 멤버들은 보고를 듣고는 예외 없이 같은 의견을 냈다.
자기 행동이 로봇 사고방식의 행동 모드를 완전히 이탈했다는 의견이었다.
만약 이곳에 먼저 와서 지키지 않았다면, 이 방안의 그림들은 모두 평가를 위해 모두 가져갔을 것이었다.
오류... 그 인간에 대한 처리가 오류인가요?
위장, 관찰 또는 많은 정보를 획득하기 위해서 등의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한 목소리가 제일 먼저 대답했다.
"그래."
이는 사고의 깊은 곳에서 올라온, 의도적으로 무시했었던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
여명이 밝아올 때까지, 그림 가운데의 인물에 대해 그린 게 없었다.
새벽녘이 대지를 비출 때까지 텅 빈 방에는 방치된 붓과 망연자실한 얼굴만 남아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틈을 만들기 위해 발버둥 쳤다. 난 간신히 생존했음을 확인했다.
의식을 잃기 직전의 순간을 떠올렸다. 그 상황에서 탈출할 수 없음을 판단하여, 하카마가 생존할 수 있는 행동을 했었다.
그럼 나는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깨어나신 건가요?
흐릿한 실루엣은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흑백의 모습이 내 눈의 초점을 잡을 수 있게 했다.
소리 내지 마세요. 근처에 침식체가 돌아다니고 있어요.
낮은 벽 뒤에 나를 눕힌 것 같았고, 하카마는 조심스럽게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머릿결이 내 손에 닿자, 머릿결이 더 이상 부드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제야 은백색 머리끝에서 눈에 거슬리는 검은색을 봤다.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의 동료가 이미 출발한 것으로 보입니다.
손상 정도를 물어보고 싶었으나 목소리를 낼 수 없었고, 이와 동시에 어둠이 다시 의식을 향해 밀려왔다.
이런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안 돼. 청각이 흐려졌다.
당신을 만난 후의 모든 경험을 다시 한번 살펴볼 겁니다. 부디 제가 답을 찾을 수 있기를...
시선에 검은 장막이 드리워졌다.
이런 이유로 당신에게 기약 없는 작별 인사를 하려고 합니다.
마지막 힘을 다해 머리끝을 잡으려고 했지만, 손에 남은 것은 으스러진 찌꺼기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