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 재건 보육 구역에서 2km 떨어진 지점.
잿빛 하늘의 구름층에 구멍이 생겼다. 희미한 햇빛이 그 사이로 스며들어 우뚝 솟은 빌딩 위에 드리워졌다.
바람은 건물을 통과해 소녀의 옷깃을 살며시 흔들었다.
부러진 팔걸이 사이에 그녀가 서 있었다. 그곳은 발코니 바깥 가장자리로, 도시가 날아다니는 새에게 넘겨준 안식처였다.
눈에 띄는 구식 여성 모자 아래 연한 금빛 눈동자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론적으로 균형을 유지하는 부품만 문제없다면, 철근이 썩을 때까지 안전하게 서 있을 수 있었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금속으로 엮어 만든 황금비율 몸매는 가장 강한 육체보다 단단했다.
근데 왜 거기에 서 있지?
어느 각도로 보나 외로운 비둘기처럼 보인다. 추락할지 말지의 접전에서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았다.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난번 경험으로 볼 때 적개심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양손을 벌려 몸 앞에 놓고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그녀가 나를 볼 때까지 그렇게 이동했다. 그녀의 두 눈은 변함없이 고요한 호수처럼 맑았다.
"발코니에서 바람 좀 쐬고 먼 곳을 바라봐." 저는 이 일을 그대로 수행하고 있을 뿐입니다.
건물이 가려져 있으므로, 계산해 보면 이곳이 최적지예요.
혹시 다른 제안이 있으신가요?
……
내가 여기까지 온 이유를 정리하자면, 떨어지는 물체를 피해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모 구조체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칫하면 최초로 울타리에 맞아 중상을 입은 집행 부대 지휘관이 될 뻔했다는 것이었다.
저는 무력 정찰을 수행하기 위해 파견됐는데, 지금은 휴식 단계입니다.
그리고 그 금속 울타리는,
계산 결과에 따라, 그 울타리가 "발코니에서 바람 쐬기"와 관련된 실험에서 최적의 수행 위치에 있어서 울타리 제거 행동을 진행했을 뿐입니다.
바람에 날리는 귀밑머리를 지그시 눌러주는 소녀의 말투는 책상 위의 책을 어디에 뒀는지를 묘사하는 듯 담담했다.
일기에 따르면, 발코니에서 바람을 쐬면 걱정을 덜 수 있다고 합니다.
일기에 대한 고민입니다.
소녀는 가지런히 묶인 노트 한 묶음을 들었다.
하루에 수집할 수 있는 양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평가 결과 수량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저는 이 불완전한 일기보다 좀 더 상세한 기록이 필요합니다.
더 상세한 기록이라고?
일기란 하루 내내 주체와 관련된 모든 기록이 포함되어 있어야 합니다.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활동 기록, 사고 기록, 시각 기록, 청각 기록, 후각 기록...
촉각 기록, 감정 시뮬레이션 기록, 기체 상태 기록...
교전 기록, 무기 정비 기록, 손상 기록...
소녀는 쉴 새 없이 예를 들었다. 공중 정원에서 대충 요약해서 보고하는 놈보다 더 심했다.
"숨을 돌릴 필요가 없으니 좋네요. 단숨에 다 읽으니 상쾌한데요. 모 구조체가"
이곳에서 그녀를 저지하지 않으면, 의식의 바다에 편차가 일어날 것이었다.
……
제가 나열한 것 중에 문제가 있거나 놓친 게 있나요?
중요한 거요?
제가 앞에서 언급한 데이터 모두 최고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상황보다 더 중요한 데이터가 있는지 확인 중입니다.
……
"10월 21일, 오늘은 배가 좀 아파서 위약을 몇 알 먹었는데."
오류 보고 및 정비 기록.
소녀는 침묵에 잠겼다.
그래도 눈치챈 것 같았고, 직관적인 방식이 조금 부족했던 것 같았다. 만약 글자가 안 된다면...
그림이요?
그림 한 점만 그릴 수 있나요?
그렇군요. 제가 모든 데이터를 그림으로 그릴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였군요.
추측에 따르면, 해당 실험의 실행 가능성의 성공률이 높은 것으로 나왔어요. 과거 시각 기록은 기억 저장 구역에 있지만, 인간과 비슷해지기 위해선 별도로 추측을 기록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24시간 원시 시각 기록을 말하는 건가? 보육 구역 구조체들은 이런 기능도 탑재하다니...
하지만, 혼자 움직이는 구조체치고는 방어가 너무 허술해.
심장 박동 수에 이상이 없는 경우, 당신의 이전 진술이 거짓일 가능성이 적습니다.
무엇보다 당신의 제안은 실행할 수 있습니다. 이건 당신이 기만 의사가 있고 없고 와는 무관합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기존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당신은 저에게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눈을 마주치자, 그날 마주쳤을 때 눈 깜짝할 사이에 제압당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빛 때문인지 차분한 얼굴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것처럼 느껴졌다.
웃는다고... 이럴 때는 웃으라고 제안하시는 건가요?
됐어. 지금은 고민할 시간이 없어.
상대방의 상태를 확인했으니, 이제 내 임무에 집중해야 했다.
보급품의 공중 투하가 이미 시작됐고, 난 충분한 보급품을 가지고 근처 보육 구역으로 돌아가야 했다.
지금 가시게요?
다음 만남이요? 다음에 만날 수 있는 확률은 이번의 1.4%에서 0.12%로 하강합니다. 주관적으로 무시할 수 있는 범위입니다.
보충해야 할 내용이 있다면, 가능한 한 빨리 보충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녀의 묘사가 왜 이렇게 불길한 걸까?
하카마에요.
하카마라... 깔끔한 그녀의 대답을 되새기면서, 그녀가 내 기억 속 그 어떤 리스트에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정책 결정자들은 신규 구조체 멤버를 충원함으로써, 기근에 시달리는 보육 구역을 절망의 심연에서 끌어낼 수 있기를 아마도 바라고 있을 것이다.
기적? 극히 작은 확률로 발생하는 일을 말하는 건가요?
우연히 생각난 질문일 수도 있었고, 아니면 구조 성공률을 평가하는 보고서에 칼로 벤 상처에서 떨어지는 피 같은 빨간 숫자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난 하카마가 기적을 이렇게 정의하는 걸 바라지 않았다.
그것은 단편적인 인식일 뿐이고, 기적이란 것도 사건 후의 결론일 뿐입니다.
정정하겠습니다. 이번 만남의 확률은 1.4%로 인간이 내리는 정의상 기적의 범주에 들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제가 기적의 존재를 받아들이기를 원하시는 겁니까?
……
하카마는 그 인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본 기체의 행동 목적이 당신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당신의 진술은 처음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녀의 사고가 앞서 결론을 냈지만, 이건 하카마가 어떤 방식으로도 전달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내가 구조체였다면, 이미 공감했을지도 있었다. 로봇으로 개조되기는 했지만, 구조체는 인간과 같은 영혼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가 구조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로봇은 실수하지 않습니다. 항상 그렇습니다.
그 인간은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한 후 복도 끝으로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그 말을 들었을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지나가는 바람에 종이가 펄럭일 때까지, 그 복도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나도 떠나야 할 때가 됐다.
그림을 그릴 수 있게, 준비를 다시 해야겠어요.
땅거미가 질 무렵 대지가 조용해지자, 거점으로 돌아온 하카마는 종이를 꺼내 화판 위에 평평하게 펼쳤다.
백지는 조금씩 알록달록한 색깔과 선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한 가운데에는 인간의 뒷모습이 반대 방향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이 그림은 하카마가 몇 년 만에 그린 첫 그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