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송기가 천천히 이륙했다.
앨런의 도움으로 공중 정원에 도착한 세레나는, 곧바로 과학 이사회의 정밀 검사를 받게 되었다.
얼마 후, 단말기에 검사 결과가 도착했고, 그걸 확인한 아시모프가 급히 달려왔다.
지금 세레나의 기체는 손상이 심각해. 코어와 의식의 바다만 이전의 기체에서 가져왔다고 할 수 있어.
나머지는... 기체라기보다는 적조로 만들어진 창조물에 가까워.
그래. 공중 정원의 기술로는 이 기체를 복구하는 게 불가능해. 그건 좋은 선택이 아니야.
세레나의 경우는 카무나 노안과는 달라.
카무의 기체는 퍼니싱 침식을 견딜 수 있지만 소모율이 높아서 주기적으로 카무이의 기체로 의식 되돌려야 해. 노안의 경우는 구조체가 승격자에 의해 개조된 거고.
검사 보고서를 넘기던 아시모프는 생각에 잠겼다.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위험 부담이 커.
세레나의 의식의 바다는 여전히 "구조체"의 것으로 머물러 있어. 그 의식의 바다를 온전히 유지한 채, 기존 기체에서 "구조체" 부분을 새 기체로 옮길 수만 있으면, 가능성이 있을 거야.
환주 기체는 구조체가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졌어. 그래서 수격자의 의식의 바다와 호환되게 하려면 개조가 필요해.
하지만 지금까지 비슷한 선례가 없어서 큰 위험이 따를 거야.
만약 지금 이 "기체"를 유지할 수 있다면...
이 기체는 온전한 곳을 찾기 힘들 정도야. 적조로 구성된 "부품"들에 의지해 간신히 움직이고 있을 뿐이지.
여과탑 밖을 계속 떠돌게 둘 거라면, 현재 기체를 사용하는 건 문제 없어. 다만 퍼니싱 농도가 낮은 구역으로 진입할 경우, 세레나는 지금처럼 상태가 점점 악화될 거야.
아시모프는 격리실에 있는 세레나를 가리키며, 미간을 찌푸린 채 계속해서 보고서를 넘겼다.
격리실 안의 세레나는 창백한 얼굴에 두 팔을 축 늘어뜨린 채 기력을 잃은 모습이었다.
...
하지만 세레나는... 이미 너무 오랫동안 떠돌아다녔어요.
누구도 이런 결과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기체를 변경할 거면, 서둘러야 해. 새 기체를 준비하는 데 시간이 필요할뿐더러, 세레나도 오래 버티지 못할 거야.
하지만 위험이 너무 크다면... 차라리...
앨런은 눈살을 찌푸리며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
앨런은 한 걸음 물러서며, 지휘관이 방안의 세레나와 통신을 연결하도록 내버려두었다.
[player name] 님?
기운은 없어 보였지만, 세레나는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제 기체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세레나는 앨런의 걱정 가득한 눈빛을 놓치지 않고,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네 "기체"는 의식의 바다와 코어를 제외하면 전부 적조로 구성돼 있어.
해결책은 하나뿐이야. 공중 정원에 남아있는 적응 가능한 환주 기체를 개조해서, 지금 기체의 의식의 바다와 코어를 전이하는 거야.
"수격자"인 제가... 그 기체에 적응할 수 있을까요?
공중 정원으로 돌아온 뒤, 세레나는 과학 이사회에서 자신과 같은 "구조체"를 수격자라 부르는 걸 이미 들었다.
위엄한 건 전이 과정뿐이야. 전례가 없는 시술이라 성공을 장담할 순 없어.
그래도 과학 이사회가 이룬 수격자 연구 성과를 봤을 때, 전이만 성공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야.
기체를 변경한 후에는 손상된 기체 부품만 자주 교체하면 돼. 그럼 예전처럼 중도 재난 지역을 돌아다닐 수 있어.
...
물론, 지금 기체를 유지하는 선택도 있어. 당장의 위험은 피할 수 있겠지만, 여과탑 근처의 보육 구역이나 공중 정원에는 오래 머무를 수 없을 거야. 더구나 완전히 이화되어, 침식체가 될 가능성도 존재해.
생각할 시간은 1시간 20분 정도뿐이야. 지금 상태로는 이곳에서 오래 버티지 못해.
기체 변경에 동의해요.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실패하게 된다면, 넌 아마...
앨런이 초조한 목소리로 대화를 끊었다.
플로라를 향한 존경심이든, 예술 협회 멤버를 보호하려는 마음이든, 앨런은 세레나가 이런 위험을 감수하길 원하지 않았다.
앨런 회장님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래도 전 기체를 바꾸고 싶어요.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니, 뭐라도 시도해 봤으면 해요.
침식체로 변할 위험을 안은 채, 불안에 떨며 살고 싶진 않아요. 모두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도 않고요.
전 이제야 기억을 되찾았고, 과거와 미래를 보게 됐어요.
동료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살아남을 거예요.
빛을 본 후에는 어둠 속에 머물고 싶어 하지 않는 법이다.
낙관적인 기대도, 맹목적인 순종도 아니었다. 세레나의 대답은 폭풍우 같은 시련과 어두운 협곡을 지나온 끝에 얻은 결론이었다.
그렇기에 세레나의 그 각오를 존중해야만 했다.
더 이상 고민할 시간은 필요 없어요…
아시모프 님, 최대한 빨리 기체 변경 프로그램을 시작해 주세요.
세레나의 예상 밖의 결단에 아시모프는 이내 고개를 끄덕인 뒤, 옆방으로 자리를 옮겨 환주 기체 개조를 시작했다. 앨런도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이내 세레나의 새 기체 공동 개발을 신청하기 위해 예술 협회로 향했다.
[player name] 님...
격리실 안에서 세레나가 간신히 단말기를 움켜쥐며, 작은 목소리로 지휘관을 불렀다.
예전에 제게 하셨던 말씀 기억하시나요?
맞아요.
그 글들은... 제가 텅 빈 미로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저를 지켜준 앵커 포인트였어요.
세레나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아이리스 같은 보랏빛 눈동자로 격리실 창 너머의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이리스."
예술은 인간성을 지키는 가장 부드러운 방식이에요.
지금의 자신을 의심할 순 있어도,
모든 걸 부정하지는 마세요.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는 당신은,
이미 누구보다도 찬란히 빛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우리도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그건 제가 구조체 개조를 결정하기 전, 지휘관님이 보내주신 마지막 편지였어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 편지를 받았지만, 저는 지금까지도 그 편지에서 많은 위로를 받아요.
세레나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다.
편지를 받고 나서, 참 오래 고민했어요. 처음 만날 때 뭐라고 인사하면 좋을지…
하지만 그 고민들은 결국 무용지물이 되었죠. 우리의 첫 만남은 너무 급작스러웠고, 제 모습은 참 초라했으니까요.
그래도 괜찮아요. 이제 우린 새로운 기회를 얻었으니까요.
저는 가장 완벽한 모습으로 당신 앞에 서고 싶어요. 그러니 새 기체로 바꾸게 되면…
그때를 우리 진짜 첫 만남으로 여겨주실 수 있을까요?
첫 만남 때 전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요.
그 순간이 오기를 쭉 기대했거든요.
감사해요.
보랏빛 눈동자가 반짝이고, 설렘 가득한 미소가 그녀의 얼굴에 번졌다.
세레나 씨? 기체 데이터 수집이 필요한데, 지금 데이터 수집실로 와주실 수 있을까요?
대화를 나누던 중,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아, 알겠습니다. 지금 갈게요.
[player name] 님... 이따 뵐게요.
작은 속삭임 같은 마지막 인사를 남긴 그녀는 고개를 돌려 격리실 창 너머의 지휘관을 한 번 더 바라본 뒤, 이내 몸을 돌려 작업자를 따라 사라졌다.
공중 정원의 햇살은 예전과 다름없었다.
특수한 상황인지라, 기체 적합 과정은 과학 이사회의 폐쇄된 시험 구역에서 진행됐다. 이 기간에는 면회가 전면 통제되었다.
지휘관은 절차를 우회해서라도 세레나를 만날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휘관은 무심결에 우편함을 열어보았고, 그 안에는 익숙한 봉랍 문양과 함께 아이리스 향이 배어있는 편지봉투가 놓여있었다.
<i>[player name]에게:<i>
<i>다시 펜을 드니, 예전과는 또 다른 기분이 들어요. 공중 정원에서 또 지휘자님께 편지를 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i>
<i>당신의 단말기 번호를 저장하긴 했지만, 그래도 편지로 제 생각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글자는 가장 아름다운 저장 장치잖아요?<i>
<i>앨런 회장님께서 신청하신 공동 개발이 승인되었어요. "고래의 노래" 데이터 수집에 참여했던 레오니 씨도 지금 함께하고 있어요.<i>
<i>"고래의 노래"... 얼마나 아름다운 비유인가요.<i>
<i>아시모프 님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또 다른 환주 기체를 제작할 거라고 하셨어요.<i>
<i>개발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예비용 기체로 바로 대처할 수 있도록요.<i>
<i>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될 거예요.<i>
<i>지휘자님과 만나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어요.<i>
<i>당신의 이리스가<i>
비록 얼굴을 마주하진 못했지만, 글을 통해 마음은 전할 수 있었다.
시간은 오래전, 햇살 가득한 파오스의 창가에서 편지를 열어보던 때로 돌아갔다. 그 편지에는 은은한 우드 향이 감돌고 있었다.
지휘관은 세레나가 예전에 선물했던 만년필을 조심스레 집어 들고 생각에 잠겼다.
은은한 빛이 편지지 위로 스며들어, 펜 끝이 써 내려가는 모든 글자에 따스한 색채를 물들였다.
모든 게 잘 마무리될 거야.
너와 만날 날을 기대하고 있을게.
너의 [player name](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