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우... 여기 계셨네요. 한참 찾았다고요!
먼지 가득한 방에서 세레나를 발견한 리아가 그녀를 밖으로 데려온 뒤, 단말기의 메시지를 읽어주었다.
통신 끊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방이 메시지를 또 보냈어요.
그쪽에서 보낸 메시지는...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을 파견했으니, 제자리에서 접선을 대기하라는 내용이었어요. 발신자는 예술 협회의 앨런 회장님이시고요!
그레이 레이븐 소대... [player name]?!
그 말을 들은 세레나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는 듯 가슴 앞에 손을 가져다 댔다.
세레나의 의식의 바다에 낡은 편지지의 서명들이 떠올랐고, 편지마다 담긴 이야기와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당신이군요...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엄청난 분들이시잖아요! 그분들과 인연이 있으신 걸 보니, 당신도 굉장한 구조체이신 것 같네요!
리아가 계속 조잘거리고 있었지만, 세레나는 이미 리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초조한 상태였다.
아니요. 저는 그렇게 대단한 구조체가 아닌걸요... 혹시 통신에 다른 내용은 없었나요?
주소도 있었어요. 이 지도에 표시했는데 한번 봐보세요.
리아가 건넨 종이엔 간단히 그려진 지도가 담겨 있었고, 세레나는 조심스럽게 그 종이를 가슴에 꼭 안았다.
너무 기뻐요...
별하늘에 있는 사람들은, 그녀를 잊지 않고 있었다.
보육 구역 외곽 비행기 계류장
같은 시각
수송기의 엔진 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 진동과 함께 연결 계단이 내려오고, 알루미늄 합금 문이 천천히 열렸다.
풀과 흙 내음이 섞인 공기가 수송기 안으로 스며들었다.
지표면의 공기는 공중 정원에서 재현할 수 없는 특별한 신선함이 깃들어 있었다. 수많은 지상 임무를 수행하면서, 문을 열 때마다 느껴지는 그 청량한 기운은 매번 지휘관을 설레게 했다.
수송기에서 막 내린 지휘관은 보육 구역의 담당자를 찾아 상황을 파악하려 했고, 마침 그때 단말기에 앨런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세레나에게 근처 폐극장으로 가서 너와 합류하라고 했어. 좌표는..."
지휘관은 단말기를 주머니에 넣고, 수송 대원에게 임무 특성상 단독 행동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대원은 고개를 끄덕인 뒤 수송기를 몰고 구역 반대편으로 향했다.
그렇게 그곳에는 지휘관 혼자만 남게 되었다.
안개가 걷히며, 시야의 끝에서 앨런이 말한 폐극장이 희미하게 윤곽을 드러냈다.
폐극장 근처
몇 킬로미터 밖
하아... 하...
세레나는 폐허로 이루어진 미로 속을 내달렸다.
그녀는 저 앞 어딘가에서 지휘관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확신했다.
한시라도 빨리 <M>그</M><W>그녀</W>의 곁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콜록콜록!
무리한 움직임 탓에 손상된 기체는 위태로워 보였지만, 그녀의 발걸음은 멈출 줄 몰랐다.
고통은 늘 따라붙었고, 세레나는 실수로 인한 엇갈림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player name] 님!
세레나는 연주홀의 대문을 열고, 황폐한 극장 안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적막한 극장 안에는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고, 가쁜 숨소리만이 원형 복도를 맴돌 뿐이었다.
[player name] 님?
그녀는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녹슨 좌석 사이를 지나며, 지휘관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하지만 대답 대신 돌아온 건 적막한 정적뿐.
세레나는 넋이 나간 채, 그대로 얼어붙었다. 무너진 지붕 사이로 스며드는 빛줄기 속에서, 반짝이는 먼지들이 그녀의 발자국을 따라 고요히 내려앉았다.
그때, 갑작스레 세상이 기울어지는 듯한 현기증이 몰려왔다.
그리고—등 뒤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폐극장의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걸 본 지휘관은 문을 열려다가 본능적으로 팔을 움츠렸다.
안에 있는 게 정말 세레나라면… 혹은, 세레나가 아니라면…
지휘관은 방호복과 무기를 재점검하며 깊게 숨을 고르고, 꽉 쥐었던 주먹을 살짝 풀었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그 문을 밀쳐 열었다.
들어오는 햇빛에 안개가 걷혔다.
곧이어 눈부신 아침 햇살이 극장을 가득 채우면서, 파란 머리의 소녀가 금빛 광채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세레나는 공연 속 오페라 배우처럼, 낡은 무대 위에 서서 돔 천장을 뚫고 쏟아지는 햇살을 올려다보았다.
어두운 머리카락이 세레나의 얼굴을 가려, 그녀의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한 소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설렘 가득한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한 인간의 그림자가 세레나의 눈에 들어왔다.
[player name] 님...
의식의 바다가 거의 멈출 지경이었지만, 세레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만난 적은 없었지만, 세레나는 자신의 펜팔을 한눈에 알아볼 거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 확신은 틀리지 않았다.
무대 위에서 돌아선 소녀의 푸른 머리칼이 햇살 속 먼지 사이로 반짝이며 빛났다.
지휘관은 예전에 고래의 노래에서 세레나를 본 적이 있었다. 예술협회에 보관된 영상도 여러 번 반복해서 봤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그녀를 본 순간,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세레나의 겉모습이 어떻게 변했든, 그리고 그동안 무슨 일을 겪었든, 그건 지휘관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눈앞의 그녀는 깊고 맑은 보랏빛 눈동자를 가졌으며, 온화하면서도 단단한 의지를 지닌 소녀였다.
그녀는 지휘관과 끊임없이 편지를 주고받았던 "이리스"였다.
세레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말없이 지휘관을 향해 손을 뻗었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세레나가 손을 내밀자, 지휘관은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세레나는 조금 차가운 촉감에 살짝 움찔했지만, 공기 중 퍼니싱 수치가 오르지 않는 걸 확인하곤 지휘관의 손을 꼭 잡았다.
...
그녀는 조용히, 이름 모를 노래를 흥얼거렸다.
나긋한 스텝 속에서 소녀는 눈물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세레나는 뭔가 말하고 싶은 듯했지만, 주저하며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혹여나 이 고요한 순간이 깨질까 봐 마음을 졸였다.
죄송해요. 저...
"꿈"에서 이런 장면을 많이 봤었어요.
우아한 스텝은 멈추지 않았고, 그녀의 춤사위는 자연스럽게 지휘관의 발걸음을 이끌었다.
보고 싶었어요... [player name] 님.
세레나가 속삭이듯 말을 이어갔다. 그녀는 이 고요한 순간이 깨질까 봐 모든 게 조심스러웠다.
제가... 정말 여기 있는 게 맞나요? 이 시간... 이 곳에...
고난과 상처는 결국엔 온화한 시간 속에 잠겨 사라지게 되어 있다.
세레나는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이번엔, 더는 눈물을 숨기지 않았다.
환상의 소나타는 현실의 음표 속에서 끝을 맺었다. 그 찬란한 선율은 긴 고통의 끝에서 그녀를 부드럽게 감싸안았다.
외로운 고래가 마침내 자신의 길을 되찾았다.
세레나의 스텝이 점점 느려졌다. 수송기가 도착할 때까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다.
석양의 따스한 빛이 유리 돔을 타고 내려왔다. 빛과 그림자가 춤추듯 어우러지며, 세레나의 머리카락을 금빛으로 물들였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그 순간, 둘은 무대 가장자리에 앉아, 그간 겪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긴 여정인 듯 느껴졌지만, 되돌아보면 한순간처럼 스쳐 간 시간이기도 했다.
걸어온 길에서의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기엔 충분히 긴 시간이었으나, <M>서로</M><W>서로</W> 엇갈린 날들을 되찾기엔 너무나 짧은 순간이었다.
해가 지고, 세상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고 따스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단말기에서 급박한 알림음이 울려 퍼졌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긴 건가요?
제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공무가 있으시다면...
시간이 정말 금방 지나가네요.
시간이 정말 금방 지나가네요.
세레나는 살짝 아쉬운 듯 웃었다.
감사해요, [player name] 님.
잃었던 기억을 되찾고 나니, 당신을 만나는 그날을 수없이 상상했더라고요.
하지만 이렇게 초라한 모습일 줄은 몰랐어요.
그 모습은 세레나가 보여준 용기이자, 그녀만의 훈장이었다.
그녀는 마침내, 거센 비바람을 뚫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았다.
그렇게 놀리지 마세요…
그녀의 눈동자가 환하게 빛났다. 창밖으로 스며든 석양에 비쳐, 아이리스 색 눈동자는 찬란한 물결처럼 반짝였다. 말을 꺼내려던 찰나, 착륙하는 수송기의 굉음이 정적을 찢었다.
...
지휘관이 위로의 말을 꺼내려 하자, 세레나가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지휘관의 어깨에 앉은 먼지를 쓸어냈다.
괜찮아요… 이렇게 다시 돌아와서, 지금 여기 서 있잖아요.
앞으로 우리에겐... 시간이 많잖아요. 그렇죠?
미래라는 긴 시간이 둘에게 주어졌다.
수송기의 소리가 점점 커지자, 세레나는 눈에 띄게 초조한 기색을 보였다. 지휘관은 조심스레 다가가, 그녀의 떨리는 손을 따뜻하게 감싸 쥐었다.
죄송해요. 아무래도...
현재의 저는, 예전과 다른 "구조체"니까요. 공중 정원에 어떤 파장을 일으키게 될지...
세레나는 이미 기체의 출처와 관련된 모든 일을 지휘관에게 털어놓았다.
이미 카무와 노안 같은 선례도 있었고, "수격자"에 대한 연구도 현재 공중 정원에서 진행 중이었다.
그동안 앨런은 과학 이사회에 연락을 해두었다. 공중 정원에 도착하면, 세레나는 특별한 신분으로 과학 이사회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네.
세레나의 미소에 예전의 순수함은 사라졌지만, 그녀의 따스함은 변함없었다.
폭풍이 몰아치고 비바람이 불어와도, 세레나의 내면만은 흔들리지 않았다.
셀 수 없이 많은 시련을 지나온 그녀는 여전히 처음의 그 세레나였다. 비 갠 들판 위에 피어난, 꺾이지 않는 강인한 아이리스 꽃처럼.
그럼... 함께 돌아갈까요.
모두가 있는 그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