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레나는 무너진 기와와 담장들을 지나, 말라비틀어진 사과나무 앞에 멈춰 섰다.
적조에 뒤덮인 땅은 더 이상 꽃을 피울 수 없었지만, 흙 위에서는 생명이 떠나갈 때 남긴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세레나는 몸을 숙여 새하얀 손끝으로 땅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그녀는 아라시네 기체의 적조 감지 능력으로 이곳을 지나간 이들의 하지 못 한 이야기를 조심스레 들여다보았다.
이번에는 환상 속에서 누더기를 걸친 여자아이가 보였다.
굶주림에 지쳐 앙상해진 소녀는 황무지를 뒤지며, 자신이 발견하지 못한 먹을거리가 있는지 찾아 헤매고 있었다.
먹을 거다!
소녀는 눈을 반짝이며 언덕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잠깐의 질주에도 발바닥의 상처가 벌어져서 피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여자아이는 아픔도 잊은 채, 나무에 달린 사과만을 바라보았다.
소녀는 주위에 널브러져 있는 벽돌로 작은 발판을 만들어 올라갔다.
아야!
거친 벽돌에 발이 찢긴 소녀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그녀는 필사적으로 까치발을 세우고 나뭇가지를 들어 사과를 떨어뜨리려 애썼다.
흔들리는 사과 하나가 곧 떨어질 듯 보이자, 소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거의 다 됐어...
사과가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비탈길을 따라 데굴데굴 굴러가기 시작했다.
잠깐, 잠깐만...
아!
깊은 구덩이 아래, 적조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 광경에 세레나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만약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떨어진 사과는 가파른 경사면을 타고 그대로 구덩이 속으로 굴러떨어질 터였다.
그 순간, 여자아이가 벽돌 발판에서 몸을 날려, 굴러가는 열매를 붙잡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너무도 긴박한 상황에, 세레나는 이곳이 환상 세계이며, 이 모든 장면이 과거의 기록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순간적으로, 아이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 하나만이 그녀의 몸을 움직이게 했다.
그쪽으로 가면 안 돼!
세레나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이 아이를 적조의 잠식으로부터 구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마침내 그녀는 거대한 구덩이 가장자리까지 달려가, 아이와 손이 닿을 듯한 거리까지 다가갔다.
하지만 그녀의 손은 환영에 닿지 못했다. 차갑게 뻗은 손끝이 아이를 잡으려는 찰나, 구덩이 끝에 서 있던 여자아이의 실루엣은 안개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허상을 통과한 세레나의 손에 무언가가 잡혔다.
세레나는 반사적으로 그 팔을 꽉 붙잡았다.
환상이 풀리자, 세레나는 자신이 적조 구덩이로 뛰어든 여성 구조체를 붙잡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현실 속의 이 여성 구조체와 환상 속 여자아이의 위치가 거의 일치했다.
세레나는 우연히 적조의 유혹에 몸을 던지려 한 공중 정원의 군인을 구해낸 것이었다.
목숨을 건진 여성의 얼굴은 공포로 일그러져 있었고, 그녀는 절벽 끝에서 세레나의 손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었다.
절대 손 놓지 마요!
제가 끌어올려 줄게요!
세레나는 온 힘을 다해 여성 구조체를 땅 위로 끌어올렸다.
제 손을 잡고 올라오세요! 좀 더 힘을——!
몇 분 후, 기진맥진한 세레나와 낯선 여성 구조체는 적조 구덩이 근처의 안전한 곳에 나란히 주저앉았다.
헉, 헉...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괜찮아요... 앗!
문득 정신을 차린 세레나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 떠올라, 재빨리 후드를 뒤집어쓰고, 그 자리를 떠나려 했다.
그때 여성 구조체가 세레나에게 다가왔다.
괜찮으세요? 저를 끌어올려 주지 않으셨다면, 정말로 떨어져 죽었을 거예요.
저처럼 이 근방에서 임무 수행 중인 구조체인 건가요? 방금은 정말 감사했어요!
별일 없어서 다행이에요. 저는 그냥 지나가는 길이었어요.
세레나가 조심스럽게 후드를 뒤집어쓰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세레나는 눈앞의 구조체에게 해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대행자가 선물한 자신의 기체는 적조로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우리 참새 소대는 은혜는 꼭 갚는 것이 원칙인데... 제가 있는 보육 구역에서 좀 쉬다 가시지 않으실래요? 방금은 정말 위험했어요!
참, 자기소개를 깜빡했네요. 하하, 저는 참새 소대의 리아라고 해요.
잠시만요. 지금 바로 보육 구역 출입 자격을 신청해 드릴게요.
세레나가 제지할 틈도 없이, 리아가 단말기를 빠르게 조작해 출입 자격 신청을 마쳤다.
음, 기체 번호가 필요한데...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제 기체 번호는...
세레나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기억의 상당 부분이 소실된 상태라, 기체 번호라는 단어가 생소하게 다가왔다.
기체 번호는... BPF-06... 어?
기체 번호가 저절로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세레나는 조심스럽게 망토를 벗어보았다.
가슴에 있는 푸른 코어가 이전과 달리 맑고 투명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BPF-06...
이상하네요. 인식 불가라고 뜨는데요? 기체 번호의 구성은 틀리지 않았는데...
잠시 단말기를 조작하던 리아는, 문제를 일단 접고 고개를 들어 세레나를 바라보았다.
데이터베이스 점검 중인 것 같네요. 번호로 보면 공중 정원 소속이시니, 우린 동료라고 할 수 있죠! 일단 같이 돌아가요.
리아가 세레나의 어깨를 토닥였다.
조심해요!
세레나는 본능적으로 외치며 몸을 돌려 리아를 피하려 했지만, 결국 둘의 기체가 맞닿고 말았다.
왜 그러세요? 방금 봤던 적조의 환영에 놀라신 건가요?
눈앞의 구조체는 퍼니싱에 침식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세레나의 기체도 퍼니싱 농도 초과 경고가 울리지 않았다.
아... 아니에요.
세레나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망토 속 손가락을 살짝 움직였다.
생체공학 피부 아래는 여전히 진홍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세레나의 몸을 구성하는 퍼니싱이었다.
퍼니싱이 사라지지 않았는데도, 리아는 어째선지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았다.
손가락을 다시 구부린 세레나는 느꼈다. 퍼니싱이 예전만큼 자신을 둘러싸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퍼니싱... 공중 정원...
저기, 정말 괜찮으세요? 제가 구조체 의사를 불러드릴까요?
괜찮아요. 저는 멀쩡해요.
세레나는 무언가가 바뀌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며,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세레나는 이제 떠돌이 생활을 그만하고, 보육 구역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기체 안의 퍼니싱을 잘 제어해, 일반적인 "구조체"처럼 될 수만 있다면...
입술을 깨물며 잠시 망설이던 세레나는 작은 희망을 품은 채, 주변의 퍼니싱 농도를 살피며 리아의 발걸음을 따라갔다.
한 걸음.
푸른 코어에서 맑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친애하는 낯선 이에게: 우편함에서 이 낯선 편지를 보게 되면, 조금은 당황하시겠죠. 업무가 바쁘셔서 이런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으시다면, 그냥 이 편지를 버려주세요.
두 걸음.
심판의 "하늘의 빛"이 둥근 천장에서 쏟아져 내렸다...
오페라의 어떤 부분이 불편하셨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건 내가 물어보고 싶네? 그 오페라를 통해 뭘 표현하고 싶은 거지?
영웅의 용기를 노래한 건가? 아니면 전쟁의 위대함을 찬양하려고? 그것도 아니면, 죽은 자를 바라보며 느낀 자신의 슬픔과 동정을 털어놓은 건가?
탄탈-193 공중합체 상성 정도 양호, 구조체 수술 성공 확률 최후 판정: 높음.
<i>사랑하는 [player name] 님에게:<i>
<i>편지를 쓸 기회가 이렇게 또 생길 줄은 몰랐네요.<i>
<i>위로해 주셔서 고마워요. 비록 몇 개월 후에 받았지만, 그래도 많은 위로가 됐어요.<i>
<i>그리고 말씀드려야 할 게 있는데... 전 이제 구조체가 됐어요.<i>
세 걸음.
의식의 바다를 덮고 있던 안개 같은 무언가가 서서히 걷히는 것 같았다.
여기는 고고학 소대 멤버 세레나. 공중 정원 응답 바람! 현재 우리 부대는 국제 우주 정거장에서 정체불명의 퍼니싱 개체와 교전 중이며, 그 잔해 중 하나를 확보해 퇴각 중입니다. 하지만 퇴로가 막혀 있어, 긴급 지원을 요청합니다!
마지막 고고학 소대의 동료가 세레나 앞에 쓰러졌다.
버텨야 해. 거의 다 왔어. 쓰러지지 마, 세레나. 쓰러지면 안 돼...
정말 미안해. 너희를 데리고 나가지 못할 것 같아. 하지만 세레나, 네가 가지고 있는 그 조각은 아마 아주 중요한 열쇠일 거야.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공중 정원으로 가져가야만 해...
네 걸음.
오랫동안 방치된 수정구슬의 먼지를 털어냈다.
...▅▂...▃▅▇...
세레나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 인간이 남긴 검은색 바늘을 품에 안더니, 힘껏 자신의 동력원에 꽂았다.
그녀는 모든 것을 끝내려 하는 것 같았다.
고개를 들었을 때, 세레나는 마치 하늘의 빛을 본 듯했다.
순간, 세레나는 모든 고통을 잊었다...
모래 알갱이 속에서 세상을 보았고, 한 송이 꽃으로부터 천국을 보았다.
다섯 걸음.
소녀는 대지를 걷고 있었다.
그리고 세레나는 <M>그</M><W>그녀</W>의 부름을 들었다.
모든 것이 허상처럼 느껴질 만큼 아름다웠다. 이건 용사의 꿈인 걸까? 아니면 피리 부는 사나이의 망상인 걸까? 어쩌면 둘이 공유하는 환각일지도 모른다.
당신… 인가요?
오랫동안 주고받은 편지의 "발신자", 그녀 마음속의 버팀목... [player name].
[player name] 님 당신인가요?
세레나의 입가에 밝은 미소가 번졌다.
당신께 외로운 황혼과 장엄한 저녁노을을…
황야 위의 고독한 달빛과 한여름의 출렁이는 물결을…
기억 속, 아이리스 꽃이 만개하던 그 장면들을…
당신에게... 저의 슬픔, 기쁨 그리고 애수를 드릴게요.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되는 그때요.
여섯 걸음.
세레나는 고래의 노래를 들었다.
시간이 멈춘 듯 세상이 고요해지면서, 세레나는 깊은 바닷속으로 홀로 가라앉는 듯했다.
그리고 그 순간, 밝은 햇살이 내려왔다.
세레나는 지금 이 순간만큼 "정신이 맑았던 적"이 없었다.
저는 세레나... 이리스...
왠지 모르게 손끝이 떨렸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히 느껴졌다.
세계의 "쓸모없는" 갈래들이 모두 제거된 듯했다.
세레나는 자신의 존재를 앵커링하여, 이 세계와의 연결점을 발견했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을 되찾았다.
그녀의 이름은 세레나.
동시에 "이리스"이기도 했다.
세레나는 마침내 모든 기억을 되찾았다. 공포와 절망의 순간들, 고통과 혼란조차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의식의 바다 가장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보석처럼 빛나는 추억들 또한 말이다.
저기... 괜찮으세요?
리아는 세레나 앞에서 다급히 손을 휘저으며, 넋을 놓은 채 서 있는 그녀가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애썼다.
괜찮아요.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갑작스러운 말에 사고의 흐름이 끊긴 세레나는, 과부하된 의식의 바다를 애써 진정시키며 리아의 뒤를 따랐다.
보육 구역에 도착한 뒤, 세레나는 공중 정원과 연락하기 위해 통신 단말기를 빌려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리아와 참새 소대의 멤버들은 흔쾌히 동의했다.
그녀는 단말기 앞으로 다가가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한 번호를 입력했다.
안녕하세요. 혹시… 예술 협회인가요?
근처의 보육 구역
같은 시각
같은 시각 근처의 보육 구역
"전쟁 후유증"으로 지휘관이 생명의 별로 보내진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군은 의도적으로 그레이 레이븐의 임무를 줄였지만, 지휘관의 요청으로 가끔 세리카를 통해 간단한 업무를 받아 처리하고 있었다.
이곳의 업무를 인계하고 수송기에 오르려던 순간, 단말기에서 긴급 알림음이 울렸다.
예술 협회에서 갑자기 연락이...?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 지금 시간 괜찮을까? 맡기고 싶은 긴급 임무가 있어.
그래, 군에서도 이미 알고 있어. 대략적인 상황부터 설명할게.
시간이 없으니까 빠르게 얘기할게. 지표면에서 임무 중이던 한 소대가, 공중 정원 소속으로 보이지만 조회되지 않는 구조체를 발견했어.
그 기체 번호는... 과거 우주 정거장에서 실종된 예술 협회 고고학 소대 대원, 세레나의 번호와 일치해.
정확한 위치는 곧 네 단말기에 동기화될 거야.
세레나의 기체 번호는 소수만 알고 있어. 지표면에서 전송된 영상 데이터도 대조해 봤는데, 겉모습이나 기체는 약간 달라져 있지만…
난 그녀가 세레나라고 믿고 있어.
미안. 내가 좀 흥분했네.
그때,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고래의 노래가 귓가에 스쳐 지나갔고, 햄릿에서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환상 속에나 있을 법한 이름이 입가에 맴돌았고, 결국 그 이름을 내뱉은 지휘관은 어떻게 대화를 이어 나가야 할지 망설였다.
세레나를 공중 정원으로 데려와 줘… 온전한 상태로.
세레나의 겉모습은 예전 구조체였을 때와 많이 달라졌어. 과거 우주 정거장 임무에서 희생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는데.
햄릿을 통해 "고래의 노래" 데이터를 수집한 결과, 그녀가 생존해 있다는 신호를 확인했어. 이건 예술 협회 내에서만 알고 있는 사항이야.
난 그 구조체가 세레나라고 확신해. 그런데 아직 신분에 대해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산더미야.
공중 정원 군 측은 미확인 구조체를 그냥 두지 않을 거야. 그래서 내가 이 정보를 먼저 가로챘어. 니콜라 총사령관님께 보고하고, 이후엔 네가 직접 이 임무를 맡아 줬으면 해.
만약...
앨런의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결국 말을 꺼냈다.
내 판단이 틀린 거 라면, 아마 승격자가 세레나로 위장한 거겠지.
설령 그 구조체가 세레나가 아니더라도... 부탁이니 그녀를 데려와 줘. 진짜 세레나를 찾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해.
...
통신 너머의 목소리가 멈추더니, 이어서 작은 한숨이 들려왔다.
[player name], 네가 직접 확인해 줘.
좋은 소식을 가지고 돌아오길 바라.
앨런의 마지막 말과 함께, 통신이 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끊겼다.
지휘관은 말없이 침대에 앉아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조심스레 제복 안주머니에서 낡은 편지봉투 하나를 꺼냈다.
우아한 아이리스 문양이 새겨진 고풍스러운 편지봉투로, 로열 블루 잉크로 쓰인 섬세한 필체가 돋보였다.
조심스럽게 분리해 둔 봉랍을 들추어 부드러운 편지지를 펼치자, 익숙한 글씨체가 눈에 들어왔다.
<i>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네요. 저는 당신이 하늘의 빛깔을 되찾기를 바라요.<i>
<i>방랑하는 그림자 속에서, 저는 고래의 노래를 들었어요.<i>
<i>여행자이자 제 친구인 당신께, 제가 마침내 이곳으로 돌아왔음을 전하고 싶어요.<i>
이 편지는 공중 정원에 있는 지휘관의 숙소 우편함에서 발견된 것이었다. 언제 도착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필체며 문장의 끝에 펜촉을 살짝 들어 올리는 습관까지, 분명 세레나의 것이었다.
지휘관은 편지지 뒷면에 남은 울퉁불퉁한 필체 자국을 손끝으로 더듬으며, 글자 하나하나에 담긴 감정 이해하려 애썼다.
물론 그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지휘관은 편지를 정성스럽게 접어 다시 안주머니에 넣었다.
...
이름 모를 관찰실 안에는 성하가 흐르고 있었고, 지나가는 그림자가 손을 들어 올리자, 고요한 수면 위로 잔물결이 퍼졌다.
물결 속에서 자비로운 자는 희미하게 빛나는 점 하나를 발견했고, 그 빛은 점차 밝아져 갔다.
아이리스 꽃...
자비로운 자는 이 "소장품"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은 무수한 윤회 속에서 우연히 건져 올린 빛 중 하나였다.
자비로운 자는 구원의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 그녀는 이 작은 빛들이 밝은 등불로 타오르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기뻐했다.
이중합 탑이 "사라져서" 그런 거구나...
자비로운 자는 적조로 파손된 구조체를 복원했지만, 예상과 달리 시간의 흐름이 왜곡되었고, 적조가 점차 이화되면서 여행자는 길을 잃게 되었다.
기체는 재구성할 수 있지만, 기억과 의식의 바다는 물리적 수단으로 메꿀 수 없었다.
시간 선이 정리된 후, 너도 기억을 되찾은 거야? 정말이지...
유리 덮개 안, 몽환적인 보랏빛 꽃잎은 겹겹이 말려 쌓인 채로 떠 있었다.
이야기는 계속될 거야.
분홍 머리의 여성이 흥미로운 듯 미소를 지었다.
이번 '결말'은, 어떤 모습일지 한번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