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가지 일을 기록하려 해요. 이는 다섯 손가락으로 내다볼 수 있는 언덕 너머의 기억이죠.
그녀//<세레나>가 기나긴 잠에 빠져 있어요.
첫째, 제가 당신과 떨어져 있을 때, 이 세계는 존재하지 않았고 다른 세계도 마찬가지였죠.
고독한 아이리스 꽃//<세레나>가 지상 위에 피어났어요.
둘째, 제가 무엇을 찾으려 하든, 목표는 결국 당신이에요.
머나먼 천체들이 열죽음에 이르렀다. 성계를 넘어 태양 코로나와 은하수의 나선 팔을 지나, 무한한 우주의 시공간을 관통하더라도, <M>그</M><W>그녀</W>들의 빛은 결국 서로를 비추며 하나가 될 것이었다.
당신인가요...
셋째, 셋까지 세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을까요?
허무한 노랫소리가 그녀//<세레나>의 우주에 울려 퍼진다.
넷째, 밀밭이 불타오르고 있어요.
방황하는 고래//<세레나>가 별의 바다에서 헤엄친다.
다섯째, 이 손가락은... 당신을 상징해요.
당신//<지휘자>와 저//<세레나>를 상징하죠.
그녀//<세레나>가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산봉우리처럼 거대한 몸체가 뭇별 아래의 수면에서 솟아올라, 공중에 초승달 같은 곡선을 그린다.
...▃...▅▁..▂
그녀//<세레나>는 별빛 아래에서 울려 퍼지는 고래의 노래를 들었다.
콜록콜록...
기울어진 석주에 등을 기댄 세레나는 희미한 아침 햇살 속에서 천천히 눈을 떴다.
의식의 바다...
눈을 뜨자마자 세레나는 본능적으로 의식의 바다를 살폈다. 매일 반복되는 확인이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상태는 더욱 악화되어 있었다.
...
세레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비로운 자라고 불리는 대행자는 잿빛으로 변한 황무지에서 세레나의 손상된 기체에 잔존하는 퍼니싱 이중합 물질을 제거했다. 이어서 이중합 코어 조각을 분리한 후, 적조를 활용해 기체를 완전히 재구성했다.
비록 이 선물이 세레나에겐 "기적"과도 같았지만, 대행자조차도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이중합 코어 조각과의 장기 접촉으로 인해 세레나의 의식의 바다는 붕괴 임계점에 도달해 있었다. 자비로운 자는 의식의 바다를 간신히 유지할 수 있을 뿐, 산산이 흩어진 기억까지 되살리진 못했다.
의식의 바다를 안정시키고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기 위해, 세레나는 외롭게 지상에서 과거의 시적인 노래들을 찾아다녔다.
회상의 여운이 가시자 의식의 바다가 안정되었고, 세레나는 천천히 눈을 떠 자신의 재구성된 기체를 응시했다.
당신의 의식의 바다는 예상한 것보다 훨씬 심각하게 손상되어 있어요.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이게 전부에요.
적조로 구성된 기체… "수격자"가 된 지금의 모습도 그리 나쁘지는 않죠?
후드 아래로 비치는 연분홍빛 머리카락의 여성이 은은한 미소를 띠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설원을 홀로 여행하던 중, 소녀가 다시 그 자비로운 대행자와 마주친 것은 정말로 우연한 만남이었다.
전 단지, 미지의 가능성을 탐색했을 뿐이에요. 그 정도로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요.
그럼, 저는 이제...
아직은 때가 아니에요.
모든 게 마무리되면, 그땐... 자연스럽게 당신 곁으로 찾아갈 거예요.
...
참, 그리고 당신의 의식의 바다를 코어와 연결해 뒀어요. 코어의 빛이 흐려질수록 의식의 바다가 위험하다는 뜻이에요.
제가 도울 수 있는 건 여기까지에요. 이제부터... 스스로 길을 찾아가야 할 거예요.
후.
오늘도 코어는 여전히 흐린 청색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아직 갈 길이 머네요...
세레나의 목소리에는 쓸쓸함이 배어 있었지만, 희망의 끈을 놓은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고요한 아침은 수도 없이 반복되었고, 그녀는 그 침묵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어둠 속을 걷고 있었다. 기억의 조각을 찾아 나서는 그녀의 영혼은 마치 심연을 떠도는 고래처럼, 끝없는 외침을 토해냈다.
황폐한 마을을 지나던 세레나의 귀에 퍼니싱의 소란스러운 "기척"이 "들려왔다.
앞에서 무언가를 찾을 수 있다는... 희미한 가능성을 품고, 망토를 더 깊이 여미며 눈발을 헤쳐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이번에도 헛된 발걸음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신호가 밀집해 있던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순백의 눈만이 조용히 땅을 덮고 있을 뿐이었다.
이번에도 역시나…
의식을 되찾은 이후로 이런 "상황"이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현실의 틈새가 벌어진 듯 시간의 흐름이 뒤엉켜 혼란스러워졌고, 세레나는 종종 실재하지 않는 환청에 사로잡히곤 했다.
저들의 이야기는 다른 시간대에서 펼쳐진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차가운 눈 위를 손끝으로 더듬으며, 세레나는 낮게 속삭였다.
정오의 강렬한 햇빛이 눈밭에 쏟아지며, 금빛 광채가 마른 가지 사이로 춤추듯 짙푸른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따스한 햇살은 지친 세레나의 얼어붙은 영혼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끝없는 방랑에 지친 세레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짧은 숨을 고르기로 했다.
맞다, 편지...
문득 떠오른 기억에 세레나는 조심스럽게 품 안에서 세월의 흔적이 담긴 누런 편지 한 통을 끄집어냈다.
수차례 펼쳐본 흔적이 담긴 누런 편지지. 종이의 접힌 자국은 실처럼 가늘어져 있어, 작은 바람에도 흩어질 듯 위태로웠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 한 장을 마치 보물처럼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이리스..."
"안녕하세요. 편지를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이미 마음속에 새겨져 있는 문장임에도, 세레나는 그 첫인사를 조심스레 읊어 내려갔다.
의식의 바다는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세레나는 이 편지를 언제 "받았는지", 또 언제 한 글자씩 옮겨 적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이건 누가 이리스에게 쓴 편지일까? 혹시 자신에게 남긴 편지인 걸까?
세레나는 이 편지와의 연결고리를 느낄 수 있었다. 따뜻한 글귀를 읽을 때마다, 산산조각 난 의식의 바다가 고요히 가라앉곤 했다.
그 글귀에 묘사된 광경은 세레나의 희미한 기억 속에서 옛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선명하진 않았지만, 여전히 행복했던 순간을 느낄 수 있었다.
편지를 보낸 분도... 분명 "답장"을 기다리고 있으시겠지?
아이리스 색 눈동자를 지닌 세레나는 낡은 편지를 조심스레 가슴에 품은 채, 끝없이 펼쳐진 청명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럼...
따뜻한 햇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순간의 평온함 때문이었을까. 소녀의 의식의 바다는 오랜만에 고요를 되찾았다.
세레나는 주머니에서 세월의 흔적이 깊게 새겨진 만년필을 꺼내, 낡은 수첩을 조심스레 펼쳐 언제 전해질지 모르는 마음의 편지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i>친애하는 [player name] 님께<i>
<i>이 답장이 영원히 당신께 닿지 못할지라도, 그 운명에 맞서 제 마음을 글에 새깁니다.<i>
<i>저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또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요.<i>
<i>그저 계속 발걸음을 내디디며, 오래된 선율을 따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어요.<i>
<i>어쩌면... 우린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죠.<i>
<i>시간이 조금만 더 주어진다면, 전 반드시...<i>
가슴 한켠에 희미한 희망의 불씨를 간직한 채 세레나는 손에 닿을 듯 가까워진 지평선을 응시했다.
눈 덮인 계곡에서 시작해 산등성이를 홀로 올라, 이내 반짝이는 강줄기를 따라 발걸음을 이어갔다.
<i>이곳의 세월은 차가운 겨울의 품에서 벗어나, 이제 푸른 새싹과 따스한 햇살이 공존하는 시간으로 물들었습니다.<i>
<i>방향을 속삭이는 바람의 노래에 귀 기울이며, 제 여정의 다음 길을 찾아가고 있습니다.<i>
<i>저는 무수한 장미정원의 향기를 품고, 셀 수 없이 갈라진 시냇물과 웅장한 강의 물결을 건너왔습니다.<i>
<i>우리가 다시 만나게 되는 그 순간, 저는 우아하게 하늘을 맴도는 백색 비둘기처럼 당신 곁에 조용히 머물고 싶습니다.<i>
<i>오늘 저는 이름 모를 새로운 지평에 발을 들였습니다.<i>
<i>푸른 산맥 아래로는 은빛 물결의 얕은 시냇물이 흐르고, 깊은 계곡에서는 악기의 선율이 그윽한 메아리로 울려 퍼졌습니다.<i>
<i>폭포수가 바위에 부딪혀 내는 웅장한 저음의 울림에, 저도 모르게 악기를 들어 그 자연의 선율에 화음을 더하고 싶어졌습니다.<i>
<i>화려한 객석도, 웅장한 무대도, 환호의 커튼콜도, 귓가를 채우는 박수 소리도 없었습니다.<i>
<i>영혼이 지치고 마음이 충만해질 때까지 자연과 함께 연주를 이어갔습니다.<i>
<i>연주를 마치고 현에서 손을 떼는 순간, 숲속을 날아다니던 작은 참새 한 마리가 하늘빛 앰버를 제 발치에 떨어뜨렸습니다.<i>
<i>굳은 앰버 속에는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신비로운 꽃잎이 영원의 시간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i>
<i>저는 그 신비로운 빛깔에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공터에 조심스레 놓아두었습니다.<i>
<i>그것은 지나간 찰나의 영감이자, 언어를 초월하여 영혼으로 읽어내는 비밀문자였습니다.<i>
<i>저는 이 선물이 누군가에게 발견되기를 기대해 봅니다.<i>
<i>저와 마찬가지로 이 길 위를 걷고 있는 그 사람이...<i>
<i>제 눈에 비친 풍경과 같은 것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i>
마지막 획을 그리듯, 세레나는 펜촉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오래된 수첩 위에 남긴 곡선의 필체, 그 끝에는 여운 어린 마침표가 새겨졌다.
한때는 글 한 줄을 적을 때마다, 그 의미가 상대에게 어떻게 전해질지 고민하고 또 망설이곤 했다.
하지만 이젠, 그 모든 불안은 햇살 아래 녹아내린 아침 이슬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player name] 님.
수첩을 품에 꼭 안은 세레나는, 편지를 보낸 이의 이름을 조용히 중얼거리며 속으로 감정을 삼켰다.
의식의 바다는 여전히 떠오르고 가라앉기를 반복했고, 푸른 코어는 변함없이 흐릿하기만 했다.
시간의 흐름은 여전히 뒤엉켜 있었고, 퍼니싱이 만들어낸 악장 또한 혼돈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세레나는 이 편지들 덕분에 의식의 바다가 완전히 불타 없어지기 전, 자신의 존재를 되찾을 수 있었다.
이 여정이 아무리 멀고 힘들어도...
흰 비둘기는 반드시, 어깨에 내려앉을 거예요.
깊은숨을 내쉰 세레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태양이 떠오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이 82호 도시인 건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여정 끝에, 세레나는 흩날리는 바람결의 안내를 따라, 세월에 의해 무너진 적막한 폐허의 도시에 마침내 발을 들였다.
이 도시의 참혹한 광경에도 세레나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여정 동안 마주친 여러 방랑자들이 이곳을 퍼니싱 대폭발로 산산이 부서진 금기의 폐허이자 접근조차 꺼리는 전설로 묘사하며, 발길을 돌려 떠나라 경고했기 때문이었다.
그곳엔 더 이상 남은 것도, 기억할 것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일반인"의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었다.
적조의 소리야.
장발의 소녀가 무릎을 꿇고 땅에 손을 대자, 남아있던 적조가 미세하게 일렁인 뒤 사라졌다.
세레나의 기체는 적조로 "구성"됐기에 적조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누군가의 마지막 외침을 아무도 듣지 못한다면, 세레나가 그것을 기록할 것이다.
기록: 82호 도시.
세레나는 폐허 속으로 걸어가 다시 수첩을 펼쳤다.
사막 한가운데의 도시는 퍼니싱에 잠식되어, 적조가 이곳을 둘러싸고 있었다.
적조의 소리를 듣기 전, 눈앞의 광경을 먼저 기록하는 것은 세레나의 습관이었다. 조각난 필체를 모아 기억을 재구성하면, 희미하게나마 진실에 가까운 과거와 마주할 수 있었다.
간단한 기록을 마친 뒤, 세레나는 수첩을 닫고 몸을 숙였다.
제게 당신들의 목소리를 들려주세요.
세레나가 땅에 손바닥을 대자, 코어에서 청색 빛이 희미하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현들이 서로 엮이며 만들어낸 격자무늬가 폐허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언제인지도 모를 과거의 환상 속, 마을은 찬란한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이 과거는 퍼니싱 폭발 초기 같았다. 적어도 적조가 덮치기 전이었으며, 이곳은 아직 큰 위험이 들이닥치지 않았다.
광장처럼 보이는 곳에는 인간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 주목해 주세요! 이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생존하려면, 서로의 지혜와 힘을 모아야만 합니다.
세계 정부가 아카디아 대철수 계획을 공표하며 모든 이를 공중 정원으로 이주시키겠다고 선언했지만, 그들의 역량으로 얼마나 많은 생존자를 구출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남습니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언제든 무자비하게 돌아갈 수 있으니, 상실의 아픔을 겪는 이 세상의 남겨진 영혼들을 우리 모두의 품으로 감싸 보듬어야 합니다.
남은 물자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분배하는 방안을 제안 드립니다. 특히 노약자와 어린 생명들이 최우선으로 영양을 섭취할 수 있도록 체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우리는 철수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영혼이 이 처절한 생존의 시련에서 반드시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적조의 기억은 여기까지였다. 환상이 풀리자 주변의 시끄러운 소음이 갑자기 잦아들었다.
세레나의 가슴에는 조용한 안도감이 내려앉았다. 마을의 흔적을 살펴보니 급작스러운 재난으로 파괴된 곳이라기보다는 의도적으로 비워진 공간 같았다. 아마도 어떤 위험이 예고되어 주민들이 불가피하게 터전을 떠났던 것으로 보였다.
이런 낙관적인 추측을 품은 채, 몇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자, 주변의 광경과 환상 속 시간이 소용돌이치듯 빠르게 변화했다.
쇠락한 흔적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아마도 몇 달 정도 흘러간 뒤의 모습인 듯했다.
저는... 이 협약에서 빠지고 싶습니다.
모두가 합의한 규칙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이기적으로 약속을 어기면 안 된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대철수에 합류할 수만 있다면...
남자의 발언이 몇 초간의 침묵으로 이어지자, 그때까지 말없이 지켜보던 마을 주민들의 억눌렸던 감정을 폭발하고 말았다.
대철수는 기만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제 손에는 이미 공중 정원의 탑승권이 있습니다!
마을은 숨 막히는 침묵에 잠겼고, 그 정적을 깨트린 건 한계에 다다른 마을 주민의 나직한 중얼거림이었다.
이 탑승권은... 제 형이 본인의 생명으로 바꾼 대가입니다.
저는 그저 더 나은 삶을 원할 뿐이에요. 타인의 생사까지 짊어질 여력이 없다고요! 이건 제 잘못이 아니에요... 제 책임이 아니라고요!
제발... 저를 가게 해주세요...
울음이 섞인 절규는 환상과 함께 허공으로 흩어졌고, 차가운 바람만이 황폐한 폐허를 쓸고 있었다.
아카디아 대철수...
낯설면서도 익숙한 단어가 혀끝을 맴돌았다. 잊혀졌던 기억의 파편들이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다.
들어봐.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받아들인 버림받은 자들이, 고향을 탈출한 겁쟁이들에게 축복을 보낸다는 게, 무슨 신세대의 우스갯소리지? 이보다 더 모욕적인 게 있을까?
공중 정원에서 태어나 부유한 생활을 누리며 사는 당신 같은 자들만이 그렇게 웃긴 "코미디"를 쓸 수 있겠지.
잘 들어. 그 우스꽝스러운 공연은 존재해선 안 되는, 배꼽 잡게 만드는 코미디에 불과해. 네가 말한 것들은 모두 환상이나 다름없어.
이 탑승권은... 제 형이 본인의 생명으로 바꾼 대가입니다.
쏟아지는 기억 조각들이 세레나의 의식의 바다를 불태웠다. 그러나 그녀는 "기록자"로서 모든 것을 끝까지 지켜볼 의무가 있었다.
세레나는 서둘러 앞으로 나아갔다. 곧이어 도착한 버려진 광장에는 표식이 퇴색된 깃발이 꽂혀 있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환상은 더 깊은 과거로 되감겨졌다.
대철수라니... 그놈들 전부 사기꾼들이야!
당시에는 정말로 떠난 사람들이 있었어요...
추첨, 번호 뽑기, 그리고 소위 "특별 배려"라는 것들, 결국 그 모든 과정의 결말이 어찌 되었지? 마을 전체 주민 중에서... 고작 열 명도 채 되지 않는 소수만이 이곳을 떠날 기회를 얻었어!
광장에는 무거운 긴장감이 맴돌았다. 모인 이들은, 오늘 단상에서 어떤 이야기가 터져 나올지 숨을 죽인 채 바라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지금 이 마을은 더 이상의 짐을 감당할 여력이 없어.
전체 주민을 돌본다고? 이상적으로 들릴지 모르나, 현실을 봐봐. 그 평등하고 공정한 분배 협의 때문에, 마을 전체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어.
계속 여기 머문다고? 이 빌어먹을 전쟁이 몇 년 안에 끝날 거란 보장이 어디 있어!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어...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지나버렸다고!
남자의 두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오랜 굶주림으로 양 볼은 깊게 움푹 패어 있었다.
상상해 봐, 어느 날 침식체들이 떼를 지어 몰려왔는데, 전투 능력이 있는 병사들이 굶주림으로 무기를 들 힘조차 없다면...
환상 속의 군중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남자는 단상 위에서 두 팔을 벌리고 광장 사람들을 향해 선동적인 몸짓을 펼쳤다.
이런 히스테리 수준의 집단 광기는 단순한 흥분을 넘어선 것이었다. 세레나는 본능적으로 이것이 마을의 붕괴 직전에만 나타나는 위험한 광란의 전조임을 깨달았다.
재앙이 덮쳤을 때, 우리는 어떤 결정이 진정으로 마을의 생존과 번영에 유리할지 깊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어!
남자의 연설은 열기를 더해가며 이어졌고, 광장의 반응은 점점 더 광기에 휩싸여 격앙되어 갔다. 현장의 긴장감은 집회의 분위기를 절정으로 이끌어줄 다음 선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진정한 가치를 증명해 보인 강인한 존재만이 이 극한의 시련 속에서 생존할 자격이 있어!
그렇지 않아요…
그 연설이 불러올 비극을 이성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격해진 감정에 휩싸인 세레나는 자신을 억누르지 못하고 결국 나서고 말았다.
시간의 장벽을 뚫고 온 그 절박한 목소리는 냉혹한 재판관의 망치가 내려앉는 것을 저지하지 못했다. 환상의 남자는 승리의 제스처를 펼치며, 마을의 운명을 뒤바꿀 선언을 외쳤다.
오늘부터, 어린아이와 노년층은 마을 경계 밖으로 추방해 알아서 생존하게 해!
마을을 위해 거센 비바람과 시련을 막아낼 수 있는 강인한 자만이 이 소중한 땅에 머무를 자격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