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조각 난 아이리스가 고요하고 깊은 어둠 속에 끝없이 가라앉았다.
오랜 무중력 상태 끝에 세레나는 발끝이 땅에 닿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그녀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촉감이었다. 공중 정원 오페라 극장의 나무 바닥, 그녀는 이 바닥을 수없이 밟으면서 기쁨, 그리움, 불안, 망설임 그리고 땀의 흔적을 이곳에 남겼다.
익숙한 모든 것이 눈앞에서 둘로 갈라졌다.
왼쪽 눈은 멸망, 오른쪽 눈은 영광을 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반쪽이 무너진 담벼락 속에서 홀로 부르는 노랫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공중 정원의 오페라 극장은 전쟁의 불길에 휩싸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불타버린 유적 일리가 없었다.
어디선가 끈적끈적한 물결 소리가 들려왔지만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해서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여긴…… 도대체 어디일까?
그의 물음에 답하듯 왼쪽 눈의 풍경이 달라졌다.
부서진 기둥이 다시 이어졌고 신성한 조각에 균열이 지워졌으며, 벗겨진 벽화가 다시 빛났고 돔 꼭대기에서 쏟아지는 하늘빛이 그녀의 면전에 떨어졌다.
그녀는 망설이며 그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순간, 귀를 막았던 두 손을 떼어낸 것처럼 박수와 함성 소리가 다시 광활한 오페라 극장을 가득 채웠다.
그녀는 금빛 찬란한 무대에 서서 쏟아지는 박수와 찬사를 마주했다.
무의식적으로 관객석을 훑어봤지만 찾지 못했다. 그녀는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비록 그 사람의 생김새를 모르지만 지금 관객 속에 없다는 것은 확신했다.
무대 아래를 가득 메운 관객들 속에서 그녀의 멘토, 절친, 구조체 병사, 집행 부대의 리더를 보았다. 그들은 경직하게 서 있었고 공허한 눈빛과 함께 사방에서 몰려온 시선이 그녀를 찔렀다.
손을 드는 사람도 입을 벌리는 사람도 없었지만, 박수와 갈채는 어디선가 들려왔고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의 부끄러움과 후회를 끄집어내 그녀를 두렵게 했지만 빠져나갈 곳이 없었다.
이러지…… 마세요……
내가 어디 있는 거야? 이곳은 또 어디지?
누가 좀……
제발 …… 누가 저를 살려주세요.
지난날의 연기는 망령처럼 그녀의 의식을 사로잡아, 그녀를 끝없는 나선 속에 빠져들게 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자신이 엮어낸 환상의 꿈속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외딴섬이 폭풍우 치는 바다 가운데에서 자신을 위해 연약한 둑을 쌓아 모든 외로움과 슬픔을 막는 것이 이것만으로도 평안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끊임없이 그녀의 지난 인생을 반복하고 그 결말을 수정했다.
소중한 동료들과 함께 협력 작전을 진행했고 모두의 미래를 구하기 위해 고전하는 동료들도 구했다, 그녀는 빛나는 진실의 악장을 계속 써 내려갔고 지키지 못한 모든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내닫지 못한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디뎠다.
다시 한번 선택하고 싶었고 다시 한번 만회하고 싶었으며...... 다시 한번 속죄하고 싶었다.
이런 환상들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고난으로 구색을 맞추는 걸까?
만신창이가 된 영혼에 의지해 마지막 한 방울의 피까지 흘린 몸은 진정한 악장을 쓸 만큼 예술을 창조하는 힘을 가졌을까?
의문은 풀리지 않았고 모든 것은 그녀의 가상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잔혹한 진실 앞으로 떠밀려 갔다.
그녀는 누구도 구하지 못했고 이중합 코어의 조각조차 아이라에게 넘겨주지 못했다.
그 이후…… 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녀는 자신의 몸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음을 느꼈다.
진홍빛 바다가 그녀를 덮친 후 잠식, 분해, 파열, 융합...... 그리고 구축했다.
의식은 몸과 분리되어 있는 것 같았고 피를 내뿜는듯한 고통의 비명은 재앙의 소리가 전해지는 거 같았고 그녀의 영혼은 머리 위의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구에서 본 밤하늘. 그것은 기억 속에서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상상했던 "뭇별"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황금시대 사람들은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을 매일 볼 수 있었단 말인가?
이 아름다운 광경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많은 먹과 편지지가 있어야 그녀의 생각을 온전하고 또렷하게 담을 수 있을까?
아주 먼 과거에 아이리스 같은 소녀가 비슷한 고민을 한 적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때 그녀는 어떻게 대답했을까?
—— 괜찮아. 편지에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들은 만나서 이야기하면 돼.
—— 이렇게 되면 서로 만날 시간을 영원히 기대할 수 있어.
—— 어쨌든, 우리에게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어.
소녀의 의식은 영겁의 고통 속을 헤매고 있었다.
그 기나긴 시간 동안 말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 세레나!
그 외침은 거센 바람과 비를 뚫고 허황되고 무질서한 기억을 지나 하늘의 빛 한줄기가 되어 가슴을 꿰뚫는 듯했다.
목소리에 담긴 감정은 그 어떤 환상보다 더 절실해 그녀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세월 속에서 영겁을 겪은 후, 그녀는 드디에 뚜렷한 부름 소리를 들었다. 나이팅게일의 울음보다 더 듣기 좋았고 흰긴수염고래의 노래보다 더 길었다.
그것은 그녀가 줄곧 기다려왔던 목소리였다. 그녀가 꿈속에서 수없이 재구성시켰던 목소리였다.
바로 이 목소리의 주인이 그녀를 항상 지켜보고 위로하며 인도했다.
꿈속에만 나타났던 그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전력을 다해 신체의 주도권을 되찾았다.
지금 이 순간, 부름 소리는 길잡이가 됐다. 잠시 동안 눈이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그녀로 하여금 자신이 짊어진 모든 책임과 사명을 떠올리게 했다.
그녀는 손을 뻗어 그 사람이 건네준 물건을 받아 들고서는 자신의 부러진 팔로 마지막 힘을 다해 인간을 밀어냈다.
그녀는 인간이 해가 비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발걸음은 잠시 주춤했지만 뒤돌아보지 않았고, 뒷모습은 점차 빛과 융합됐고 그녀에게는 차가운 희망을 남겼다.
그녀는 에우리디케가 아니다. 그녀는 검은 색깔의 바늘을 자신의 동력원에 찔러 넣었다.
빛이 쏟아지는 마지막 순간에 그녀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모든 고통과 갈망은 사라지는 꿈과 함께 지금 이 순간에 정체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