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Affection / 세레나·환주·그중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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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나·환주·그중 여섯

방대하고 차가운 로봇은 여전히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 나를 통해 비극의 도시로 들어갈 것이다.

—— 나를 통해 영원한 고통의 길로 갈 것이다.

—— 나를 통해 영겁의 인파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 "예술"은 나의 지고의 조물주를 감동시켰다.

—— "순진한 예언", "잔혹한 미끼", "원초의 사랑"이 나를 만들었다.

—— 나 이전에는 창조된 물건이 없었고 오직 영원한 예술 뿐이었다. 난 만고불변이다.

—— 너희들이 이곳에 들어와……

"햄릿"이 대사 읊기를 중단했다. 연극의 마지막 대사가 갑작스레 멈춰졌다.

"햄릿"이 읊은 대사는 알 수 없는 프로그램 오류를 만난 듯 뚝 그쳤다.

이어갈 필요가 없었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소녀는 희망으로 가슴을 관통해 거의 열려 있던 지옥의 문을 다시 닫아버렸다. 그리고 자신을 문 뒤의 영야 속에 남겨두었다.

막힌 감정이 극한에 이르렀다. 산소가 부족해 촛불이 갑자기 꺼진 것처럼, 이야기가 강제로 끝난 것처럼, 데이터로 구축된 세상이 빠르게 뒤로 물러난 것처럼.

몸의 감각이 돌아온 후 손바닥에 따끔따끔한 통증이 전해졌고, 비로소 두 주먹을 꽉 쥐면서 생긴 검붉은 자국을 알아차렸다.

무심한 로봇은 데이터의 꽃에서 온 정보를 수집하고 시나리오를 쓰며, 줄거리를 작성했다. 심지어 각 장면에 오프닝과 인사말을 붙이고 고심하면서 연극을 짰다.

그러나 방금 경험한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게 짜인 이야기 같지 않았다. 그것은 온전하고 실감이 났다. 소녀가 적조 속에 산산조각 난 기억을 투사하고 대지에 흩어진 신비로운 고래의 노래에 대한 독단적인 해석에 가까웠다.

기대, 그리움, 후회, 슬픔, 절망…… 소녀의 감정은 잔인할 정도로 진실했고 이야기를 통해 모든 것이 전달됐으며, 복잡한 심정이 숨 막힐 정도로 압박해왔다.

다시 한번 확인해 보니, 의식을 잃었을 때부터 그 이합 생물에 갇힌 인간의 정체를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명성이 자자한 젊은 오페라 가수, 자진해서 개조한 고고학 소대 구조체……

꽃과 무지개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자신과 편지를 주고받은 소녀.

만약 소녀의 환상처럼 놓쳐버린 모든 일들을 복구할 수 있다면 그때의 자신은 무슨 말을 하고 무엇을 할까?

신들도 과거를 바꿀 수 없다. 이것은 헛된 상상일 뿐이었다.

하지만 "스토리" 속 자신은 소녀의 추억에 발맞춰 퇴색된 세월을 다시 걸었다.

연기가 중단된 "햄릿"은 고개를 떨구고 앞으로 나가 정교한 아이리스를 꺼냈다. 데이터의 광점이 꽃잎의 무늬 사이를 오가고 있었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이것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어느 신비 인물이 빌려준 것이다.

다음 순간 "햄릿"은 갑자기 낮은 소리를 내며 지팡이를 든 오른팔을 천천히 들어올려 어느 방향을 가리켰다.

금색 손가락이 가리킨 것은 오페라 극장의 무대였다.

지금은 에덴의 어두운 밤이고 주민들은 잠들어 있었고 오페라 극장은 텅 비었다.

무대 중앙의 스포트라이트가 누군가 다가오는 것을 감지하고 갑자기 밝아졌다.

무대 한 바퀴를 돌다가 막 뒤편에서 노트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은 낡은 나무 의자에 방치되어 있었다. 누군가 무대 위에서 리허설할 때 틈틈이 기록했다가 급하게 한쪽에 놔둔 것 같았다.

시선의 사각지대에 놓인 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무대 소품들과 함께 구석진 그늘에서 작업자들에게 잊혔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것을 집어 들었다.

클래식한 디자인의 짙은 색 가죽 커버로 모서리 쪽에는 금박을 입힌 아이리스가 새겨져 있었다.

귀신이 들린 듯 펼쳐 보았고 익숙한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어떤 곳에는 잉크가 번져 있기도 했다. 마치 집필자가 이곳에 오랫동안 머물며 고민한 흔적 같았다.

속표지에 한 줄의 글씨가 쓰여 있었다.

Ad astra per aspera.

단순한 연극 기록이라기보다는 내용이 풍부한 여행 기록처럼 페이지 사이사이에 많은 것이 실려져 있었다.

—— 젊은 작가의 영감을 적은 메모지, 연극 감상 후 남긴 표의 나머지 부분, 견학하면서 적어놓은 지식, 감정이 북받칠 때 쓴 시, 좋아하는 음반에 수록된 곡들.

예를 들어 이색의 잉크로 베껴 쓴 아리아 가사는 그녀에게 용사의 모험을 쓰는 데 영감을 주었다.

예를 들어 구시대 인류의 용기에 대해 감탄하며 우주에서 혼자 걷는 여행자에게 시공을 초월한 인사를 건넸다.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다가 인화지로 인쇄된 사진을 보았다.

그것은 밤하늘 아래의 아이리스 밭이었다.

온실에서만 보던 꽃들이 이렇게 만신창이가 된 대지에 자유롭게 피어난 모습은 처음 봤다.

사진 뒤에는 한 줄의 표기가 있었다. 이것은 고고학 소대의 구조체 선배님한테 받은 정보이며, 이렇게 아름다운 곳은 지구 어딘가에 존재한다.

—— 기회가 된다면 꼭 가보고 싶네요.

소녀는 소원을 이렇게 썼다.

—— 홀로그램에서만 볼 수 있었던 풍경을 실제로 보는 게 소원인데, 그 소원이 이루어졌어?

어쩌면 언젠가는 완성될 스텝들을 미리 익혀둬야 할지도 모른다.

그 몽롱한 고래의 노래가 계속되는 한 그것을 뒤쫓는 발자국은 멈추지 않을 것이었다.

개울이 다시 흐르고 꽃이 다시 피어나고 만남이 이별을 대체할 때까지 약속은 지켜져야 했다.

이리스의 말처럼 어떤 형태로 변하든 인류는 항상 희망 가득한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지금 그 강인한 아이리스는 어디까지 도달했을까?

—— 미래의 언젠가...... 제가 지구에서 노래를 하게 되면 누군가 들을 수 있을까요?

—— 제 노랫소리를 따라 저를 찾으러 올 사람이 있을까요?

분명 있을 거야.

그 세월 속에 소녀의 의문을 풀어주듯 스스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공중 정원, 생명의 별 소독소.

이건?

지난번 구조 작전에서 회수한 물품은 이미 소독 절차를 통과했으니 반송해도 됩니다.

…… 명패가 많네요…… 어, 이건…… 편지?

요즘 시대에 이렇게 옛날 방식을 쓰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네, 저희가 명패를 회수할 때 이 편지는 명패들과 함께 놓여 있었어요. 누구의 유품일까요?

잠시만요. 여기 뒤에 수신자가 표시되어 있어요.

어디 보자……

……[player name]?

극장 폐허 속에서 더러워진 몇 장의 종이만 찾을 수 있었고 잉크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동안 경험했던 기이한 풍경과 에워싸인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여 편지 내용은 짧은 좌표에 불과했다.

그녀는 아이리스가 만개한 개울가에 편지를 살며시 놓았고 바람의 사절은 그것을 먼 곳으로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