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의 평범한 오후.
소녀는 책상 앞에 앉아 편지지 위에 예쁜 글씨체로 써 내려갔고, 따스한 인공태양은 창문을 통해 흔들리는 붓끝을 비추며 글씨를 따라가며 빛을 남겼다.
—— 기다릴게요.
—— 귀 옆에 아이리스를 꽂을 테니 알아볼 수 있을 거예요.
마무리 구절에 힘을 너무 쓰다 보니 종이에 먹 자국이 약간 번졌다. 그녀는 만년필의 잉크를 깨끗이 닦은 후 필통에 다시 넣었다.
편지지를 집어 들고 반으로 접었고 편지지를 봉투에 넣어 접힌 자국을 정리한 후 밀봉시켰다.
일련의 동작을 마친 소녀는 가볍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그는 두 손을 포개서 봉투를 가슴에 얹고 잠시 기도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편지를 품에 안은 체 침대에 누웠다.
그녀는 천장의 조명을 간단하게 장식해서 별이 빛나는 하늘로 만들었다. 지금은 오후라서 "뭇별"이 반짝이지 않았고 다소 어두워 보였다.
잠시 후, 그녀는 이 편지를 보낼 예정이다.
만약 진짜로 [player name]을(를) 만나게 된다면 첫마디를 뭐로 시작해야 할까?
그녀가 첫인사말 하나로 이렇게 고민할 줄은 몰랐다.
"처음 뵙겠습니다"라고 하면 너무 어색할까?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편지를 주고받은 지 오래됐기에 그녀는 이미 서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그들은 이미 에덴 어느 곳에서 우연히 지나쳤을 수도 있었다.
과연 그 사람도 이렇게 이번 만남을 기대하고 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편지에 담기에는 버겁고 그래서 그 사람과의 만남을 더욱 기대했다.
진짜 고민되네……
넘치는 생각을 억제할 수 없던 소녀는 침대에서 한 바퀴 뒹굴다가 부드러운 베개에 머리를 묻고 끙끙 소리를 냈다.
약속한 날까지 시간이 좀 남았지만 그녀는 벌써 그날에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만났을 때의 자연스러운 인사말, 춤출 때의 적절한 리드, 그리고…… 지나치게 들뜬 마음을 억누르고 부적절한 행동을 면할 것......
무도회에 입을 드레스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가장 믿음직하고 훌륭한 지도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몸을 뒤집어 침대 머리맡에 놓인 디자인 원고에 시선을 집중했다, 창작자는 그 원고에 평어와 주해를 달아두었다.
해당 기체의 코팅은 탱고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했다.
구조 또한 댄서의 복장을 참고하여 움직이기 편하게 설계하여 춤에 매우 적합한 기체였다.
너에게 아주 중요한 무도회가 있다고 말하지 않았어?
참, 지난 번에 나몰래 개조한 적이 있었지, 난 아직도 삐져있다고!
그러니까 이번에는 날 믿고 맡겨!
아, 맞다! 드레스에 결정적인 액세서리가 하나 부족한데, 어떻게 생각해? 너의 의견이 궁금해.
얼마 전, 그녀의 절친이 통신으로 신규 기체에 대한 디자인 영감을 신나게 들려줬다.
예정대로라면 예술 협회의 무도회가 열리는 날에 그 기체는 아직 초기 적응 단계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실전에 투입되지 않았지만 무도회 한번 다녀오기에는 충분했다.
그녀가 생각을 하던 중, 시선을 손에 쥐어진 봉투로 옮겨졌다. 봉투는 화칠로 봉함됐고 인감은 6개 금색 꽃잎의 꽃 모양이었다.
그녀는 문득 생각났다.
"예의 바른 영혼이여, 당신의 명성은 계속해서 인간 세상에 남아, 세월과 함께 영원하리다."
……
정신을 차렸을 때, 시야에 보이는 것들이 갑자기 왜곡되었다.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저으며 그 희미한 위화감을 떨쳐버리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눈앞의 모든 것이 다시 변해져 갔다.
이곳은 오페라 극장 앞 아름다운 정원이고 화려하게 차려입은 하객들로 가득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왈츠 멜로디가 들려와 멈췄던 생각이 회복됐다.
그래. 난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로 가고 있었어.
그것을 떠올렸을 무렵, 갑자기 은은히 노래를 읊는 소리가 아득하면서 길게 울려 퍼졌고, 존재하지 않는 어떤 존재에서 온 것 같아서 바로 그 근원을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고개를 들어 틈을 살피니 작은 은방울이 가볍게 울렸고 밝은 보라색이 눈앞을 스쳐갔다.
멀리서 소녀가 고개를 돌려 부드러운 보조개를 드러내며 다가왔고 긴 머리카락이 걸음을 따라 하늘거렸다. 마치 울새의 날개 같았다.
안녕하세요.
혹시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지 않나요?
소녀의 귀에 걸린 아이리스는 밤하늘에 피어있었고, 이렇게 순수한 보랏빛이 그녀의 눈동자에도 들어와 그녀의 감출 수 없는 기쁨을 밝게 빛냈다.
그녀는 분명히 그 사람을 알아보았다.
[player name].
이리스는 조용히 반복하더니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드디어 만나게 됐네요.
생각은 행동보다 빠르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그 이름을 불렀다.
소녀는 깜짝 놀랐고, 보라색의 두 눈은 안개로 뒤덮인 것 같았다.
다음 순간 그녀는 다시 웃음을 보였다.
제가 당신의 이리스입니다.
[player name], 드디어 만나 뵙네요.
두 사람은 말없이 마주 보고 있었다.
할 얘기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았는데, 이 순간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서로의 얼굴만 묵묵히 바라보았다.
무도회가 시작되고 손님들이 입장하는 가운데 이곳을 지날 때마다 의아한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 그 유명한 젊은 오페라 가수가……
—— 구조체……
—— 루머가 아니야. 그녀까지 그럴 줄은……
—— 이게 <아카디 대철수> 무기한 중지 선언과 관련이 있나?
—— 야, 누가 가서 사인 좀 받아와.
—— 그녀가 예술을 그만둔 거야?
이런 속삭임이 귀에 들어왔다.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리며 앞으로 다가가 제각각인 시선을 가렸다.
네?
소녀의 맑은 두 눈은 당신을 주시하고 있어 자신이 모두의 관심 대상이 된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면 그냥 과거의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인 채 더 순수한 신념과 사랑만을 품고, 폭풍우 속에서 전사의 자세로 강인하고 당당하게 맞서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녀의 영혼...... 본연의 모습과 같았다.
이때 파티 현장에서 흘러나오던 왈츠가 마지막 음절을 마치고 잠시 멈췄다가 은은한 탱고 한 곡이 다시 울려 퍼지며 흘러나왔다.
새로운 무대가 시작되었다.
그제야 방금 한 걸음 다가간 것으로 인해 지금 무도회장의 중앙에 서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망설임 없이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소녀는 눈을 깜빡이며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무엇을 떠올리며 고민하듯 가슴 위에 겹쳐진 손가락만 힘껏 꼬았다.
먼저 말을 꺼내야 했는데......
거의 들리지 않는 속삭임은 그녀가 편지에서 언급한 "리드"를 떠올리게 했고, 그녀의 작은 고민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깨닫고 미소 짓게 되었다.
소녀는 손을 당신의 손바닥 위에 올렸다. 다소 차가운 촉감이지만 느낌만은 부드러웠다.
제 영광이에요. [player name].
그렇게 그녀의 손을 잡고 불빛 찬란한 무도회장으로 들어갔다.
지휘관으로써의 일상은 임무와 전투 훈련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처음 이런 곳에 왔을 때 무도회장에 높이 걸려있는 등불과 홀에서 춤추는 손님들을 보며 한동안 당황해했었다.
이리스는 당신이 잠깐 주저한 걸 느꼈다.
[player name].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었다. 그것은 분명히 초대를 하고 싶어 하는 손짓이었다.
저랑 같이 한곡 추시겠습니까?
소녀가 내민 팔은 가늘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소녀는 알고 있었다. 구조체가 된 자신은 팔이든 마음이든 이미 충분히 강력한 힘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라색 아이리스 빛깔을 담은 그 눈동자는 마치 소리 없이 나를 부드럽게 격려하는 것 같았다.
망설임 없이 그녀의 손바닥에 손을 얹었다.
그렇게 이리스의 손을 잡고 불빛 찬란한 무도회장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