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후.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아이리스가 드디어 편지를 보내왔다.
친애하는 [player name]에게:
편지를 쓸 기회가 이렇게 또 생길지 몰랐네요.
위로해 주셔서 고마워요. 비록 몇 개월 후에 받았지만 그래도 위로가 많이 됐어요.
그리고 알려야 할 게 있는데... 전 이제 구조체랍니다.
네, 구조체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개조 수술이 성공적이어서 이렇게 펜을 들 수 있었어요.
이젠 숨길 필요도 없겠네요. 저는 공중 정원 예술가 협회의 고고학 소대 중 일원이 되었어요.
구조체가 되는 건... 정말 놀라운 느낌이네요. 세상을 보는 시선이 확연히 달라진 기분이랄까요.
가끔은 편지를 쓰고 있는 제가 그때의 제가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예요.
얼마 전에는 무기를 사용하는 법과 전투하는 방법도 배웠어요.
보조형 구조체이긴 하지만 저도 다른 사람을 지킬 힘이 생겼네요.
구조체로 되기만 하면 전장으로 출전해 임무를 수행하여
전장의 어느 곳에서 당신과 만나 이 힘으로 지켜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근데 뭔가 이상한 것 같아요. 고고학 소대는 전선에서 싸울 필요가 없는데...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구시대의 인류 유산을 조사하여 이를 회수하고 복원하는 것으로 보내요.
그래도 다행이네요.
이런 미숙한 모습으로 만나고 싶지는 않거든요. 제일 좋은 상태에서 당신을 만나야 하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너무 많은 일을 알려주고 싶지만 편지로는 이런 감정을 담을 수가 없네요. 얼굴을 보면서 제 입으로 말해주고 싶어요.
사실 다음 달, 예술 협회에서 무도회를 열 예정이래요.
제 파트너가 되어 주실래요?
진심을 담은,
아이리스
...
아이리스:
모든 게 안정됐다니 다행이네.
무도회라면...
나도 영광이지.
하지만...
다음 날, 답장이 도착했다.
[player name]에게:
꼭 말해줘야 할 것 같아서 편지를 보내요.
그런 일로 고민할 필요 없어요. 춤을 추는 목적은 즐겁기 위해서지,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그리고 춤을 못 추는 사람은 없어요. 추고 싶냐 아니냐에 달린 거죠.
그대만 원한다면 서툴러도 제가 완벽한 사교 댄스로 이끌 수 있어요.
어릴 때 받았던 교육 덕분에 어떤 스텝이든 쉽게 따라갈 수 있어요.
탱고, 왈츠, 룸바... 모르는 사교 댄스가 없을 정도죠.
전에는 힘이 부족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쉽게 당신을 팔로 감쌀 수 있을 거예요.
저만 믿고 제 스텝만 따라오세요. 문제없을 거예요.
그럼 이렇게 결정해요.
주소는 아래에 적었어요. 이번에는 꼭 와야 해요.
기다릴게요.
귀에 제비붓꽃을 꽂을 테니 알아볼 수 있을 거예요.
약속한 날이 다가왔다.
예술 협회의 회관 밖은 불빛으로 환하게 비쳤고 아름다운 정원에는 예술 협회 멤버로 가득했다.
구조체도 있고, 인간도 있었다.
문 앞에서 한참을 기다렸지만 귀에 제비붓꽃을 꽂은 소녀는 보이지 않았다.
웅장한 관현악이 회장에서 흘러나왔다. 고전 탱고곡, '포르 우나 카베사'였다.
정말 곡 제목 대로 무도회가 끝날 때까지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와 우편함을 열어보았다.
조금 전에 도착한 편지가 놓여 있었다.
[player name]에게:
정말 미안해요. 앨런 회장이 갑자기 임무를 맡겼지 뭐예요.
공중 정원이 우주 정거장과 만나는 궤도에 진입하게 돼요.
고고학 소대의 일원으로서 우주 정거장의 자료를 회수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어요.
긴급한 상황으로 바로 움직여야 해서 무도회에는 참석하지 못하게 됐어요.
바로 이 소식을 전하고 싶었지만 주소 외에는 아는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정말 왜 예의에 얽매여 메신저 아이디조차 물어보지 않았는지 후회했어요.
언제 이 편지를 받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읽고 있을 때쯤이면 이미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거예요.
항상 이런 식으로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아요.
한걸음 차이로 만남이 무산됐잖아요.
아직 할 말이 많은데... 조금만 기다려요. 이번에는 꼭 그 한 걸음을 내딛고 말 거예요.
세레나, 뭘 그렇게 꿈틀대는 거야? 곧 출발이라 집행 부대 사람들이 재촉하고 있다고.
아... 죄송해요. 편지를 쓰고 있었어요.
편지를 급하게 봉함하고 세레나는 급하게 일어섰다.
오래 기다리셨죠. 편지 보내고 바로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뭔데 그렇게 정중하게 보내?
설마 집행 부대 사람들처럼 출전하기 전에 유서를 쓰는 건 아니지... 우린 그냥 고고학 소대일 뿐이야.
아니요. 그냥 개인적인 우편물일 뿐이에요.
설마 연애편지인건...
놀리지 마세요.
세레나는 드물게 매서운 목소리로 상대를 탓했지만 부정은 하지 않았다.
제비붓꽃보다도 아름다운 미소가 그녀의 입가에 피어올라 모든 감정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에덴의 꽃은 몰랐다. 이건 폭풍우 전의 고요함이라는 것을.
이게 그녀가 마음껏 웃을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