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로부터 아이리스에 관한 모든 건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수납장에 쌓인 편지가 아니라면 상상 속의 인물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고...
그 소녀에 관한 모든 것도 기억의 한 구석에 묻어두게 되었다.
어느 날.
개인 우편함에 또다시 익숙하면서도 낯선 편지가 들어있었다.
하지만 편지 봉투나 편지지는 너무 초라하고 지저분해서 낯설었다.
익숙하다는 것. 그 필체는 이미 과거에 각인되어 잊을 수가 없었다.
이 편지의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는 것이다.
지구의 좌표와 마른 제비붓꽃.
묻어뒀던 기억과 편지의 내용이 밀물처럼 밀려와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 세월은 마치 어제와도 같았다.
조사를 해보니 좌표는 지상의 수복된 도시 근처였다.
침식체도, 고농도 퍼니싱도 없었다.
준비를 하고 혼자 이 좌표로 향했다.
여기는 버려진 오페라 극장 같았다.
이런 곳은 다 무너져 내려도 무너진 아름다움이 있다.
주위는 너무나도 고요했고, 지붕의 구멍으로 쏟아지는 달빛이 유일한 광원이었다.
(그녀가... 있을까...)
오페라 극장에 들어가니 그녀는 나를 등지고 달빛 아래 서 있었다.
발걸음 소리를 들었는지 소녀는 고개를 천천히 돌린다.
제비붓꽃 같은 보라색 눈동자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이리스의 말이 맞았다.
만난 적은 없지만, 우리는 서로가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맞다는 것을 첫눈에 알아버렸다.
소녀는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어떠한 질문도, 어떠한 말도 필요 없었다. 그녀가 손을 내밀자, 나는 이 행동의 뜻을 바로 깨달았다.
그녀의 손은 너무 차가워 나도 모르게 으스스 떨렸다.
그녀는 손을 잡고 가사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오프닝의 곡조는 나른하고 부드러워서 마치 연인들의 속삭임 같았다.
처음엔 좀 버벅거렸지만, 소녀는 파트너의 서툰 모습에 영향을 받기는커녕 부드럽고 꿋꿋하게 파트너를 이끌었다.
그래서 나도 점점, 그녀의 리듬을 따라갈 수 있었다.
편지에서 말한 대로 그녀는 완벽한 "안내자"였다.
아니, 이미 완벽한 "안내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갑자기 음조가 바뀌며 멜로디는 급하고 격정적으로 흘러갔다.
그녀는 갑자기 자세를 돌려 "유도"에서 "따라가기"로 바뀌며 모든 것을 나에게 맡겼다.
나도 자세를 돌려 그녀가 했던 모습처럼 "유도"하는 스텝으로 바꾸었다.
이상하게도 힘이 들지 않았다. 파트너가 그녀라면 다음 스텝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그녀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지켜보고, 인도한 그 세월처럼 말이다.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맑은 눈동자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동자에 고여있던 순진함은 사라졌지만, 낭만은 남아있었다.
변한 것 같으면서도, 그대로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예전에 두 사람 사이에 있는 한 걸음 차이가 지금은 존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