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체 관측소의 장비실은 예상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어두운 철문 뒤에는 깔끔한 파오스 군사 학교의 준비실과는 완전히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잡동사니 캐비닛이 여기저기 쌓여 있었고, 거미줄과 먼지가 가득했다. 심지어 공기도 통하지 않았다.
문을 여는 순간, 곰팡이 냄새가 퍼져 나왔다.
중요한 장비를 망가뜨리지 않았길 바라야겠군.
제가 한번 볼게요. 산소 발생기는 아직 작동하지만 방호복 상태는 별로 좋지 않아요.
자력 신발은 멀쩡하네요. 선생님께서 몇 번만 사용하셨던 거라 그럭저럭 쓸 수 있을 거예요.
목숨을 지켜주는 장비는 사용할 수 없고, 필요 없는 것들만 잔뜩 있군.
하지만 이게 다예요. 지체할 시간이 없으니 어서 가지죠. 조금 있으면 소규모 운석우가 올 거예요.
방호복과 야외 작업용 장갑을 착용하는 데 시간이 소모됐다.
그리고 곡의 도움으로 자력 신발을 조정한 뒤, 관절 보호대를 고정했다.
난 내 습관에 맞춰 한 번 조정해놨어. 괜찮은지 다시 한번 확인해 봐.
좋은 대답이야. 그럼, 나도 네 신뢰를 저버리지 않을게.
장비가 반개방형이라, 넘어지면 피부가 다칠 수도 있어. 조심해.
만일을 대비해서, 의료 상자를 엘리베이터 근처에 뒀어. 필요하면 그걸로 응급 처치를 해.
잠시 휴식을 취한 지휘관은 곡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에 도착한 다음, 외장 영역으로 걸어갔다.
외부로 연결된 갑문이 열리자, 광활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건 푸른 행성과 거대한 공중 정원의 중심축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상상조차 못한 광경이었다.
오른쪽 다리를 내밀어 보니, 신발의 자력이 발바닥을 외부 케이스의 아머에 단단히 붙게 만들었다.
옷 주름이 마치 철판처럼 딱딱해진 것 같았다. 아마도 우주에 가까운 쪽은 바람이 거의 없기 때문인 것 같았다.
지휘관이 깊게 숨을 들이마셔 봤다. 폐는 여전히 그 기능을 수행했지만, 곧바로 무력감과 피로가 몰려왔다.
산소가 희박해지면서, 작은 움직임에도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게 됐다.
곡의 부축을 받으면서 5미터도 걷지 않았는데, 왕복 달리기를 두 번이나 한 것처럼 느껴져서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서 있는 것보다는 앉아있는 것이 더 편해서, 몸을 낮추고 쉬기로 했다. 지휘관은 팔을 합금 케이스에 대고 휴식을 취했다.
곡은 이런 지휘관을 탓하지 않고, 허리를 굽혀 지휘관의 헬멧 통신 시설을 두드렸다.
외부 공간에서는 소리가 전달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지휘관은 서둘러 통신을 켰다.
어때? 인간은 이런 환경에서 극도의 불편함을 느낄 텐데.
산소 발생기가 좀 더 작동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겠어.
심폐가 적응되면 좀 수월해질 거야.
잠시 기다리자, 지휘관은 드디어 몸을 다시 일으킬 수 있었고, 불편함도 조금은 사라졌다.
곡은 멀리 보이는 지구를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고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했다.
인간이라는 생물은 참 신기하지 않아?
응. 연약한 상태로 태어나, 새로운 환경을 접할 때마다 다시 적응해야 하잖아.
구조체는 달라. 설계 단계에서부터 악조건 속 생존율을 고려하지.
모든 과정이 외부의 불확실성에 최대한 저항할 수 있도록 준비하잖아.
영혼이 완벽한 그릇에 오래 갇혀 있다가, 언젠가 혼란을 느끼게 될까 봐 난 그게 걱정돼.
혼란이라기보다는 그냥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지. 나 자신에 대해 그리고 인간의 미래에 대해서 말이야.
난 네가 그 사람이 되어줬으면 해.
이제 갈 수 있겠어? 그럼, 계속 가자.
앞으로 나아갈수록 몸이 떠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신발에 자력이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조마조마했다.
자력이 강하다고 꼭 좋은 건 아니야. 긴급 제동이 걸리면, 무릎 위쪽 부분이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
어차피 날아가게 된다면, 온전한 상태로 날아가는 게 더 나아.
다 왔어. 저 앞에 있는 게 천체 망원경의 외부 기구야.
앞에는 회색 외부 구형 로봇이 있었고, 내부 시설은 뒤쪽 상자형 구조에 배치되어 있었다.
로봇 앞에 다가가 보니 조작 패널에 수동과 자동 버튼이 마련돼 있었다.
오류, 오류, 오류.
기라 말이 맞았어. 비밀번호 인증 모듈이 다른 전자 부품과 같이 고장 나버렸어.
인간의 힘으론 부족해. 여긴 내게 맡겨.
곡은 반 발짝 물러섰다가, 손잡이를 잡고는 힘껏 당겼고 조금의 조정 후 바로 앞 덮개를 뒤로 젖혔다.
하지만 앞 덮개를 열고 겨우 10초가 지났을 때, 곡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안에 압박감이 너무 강해서 좀 이상해. 예전에 이걸 열 때 어떤 로봇으로 지지했던 것 같아.
서둘러. 내 팔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
지휘관이 허둥지둥 지침서를 뒤적이며 손상 가능성이 있는 부품들을 하나씩 점검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30초가 흘렀지만, 여전히 평온한 곡의 표정만으론 그녀의 상태를 파악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곡이 자신을 걱정시키지 않으려 애쓴다는 걸 알게 된 지휘관은 더욱 허둥대기 시작했다.
진정해. 난 괜찮아.
지휘관이 걱정한다는 걸 눈치챈 곡이 평온한 목소리로 안심시켰다.
곡의 그 한마디에 집중하기 시작한 지휘관은 손상된 부품을 교체하기 시작했다.
외부에서는 손상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부품들을 직접 하나씩 교체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때, 발밑에서 강한 진동이 느껴졌다.
조심해!
반응할 새도 없이, 지휘관은 강한 흔들림에 휩쓸렸다.
그러다 자력 신발이 지면과 떨어지면서, 지휘관은 우주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지휘관의 몸이 공중 정원의 중력이 미치는 끝자락을 벗어나기 전에, 누군가가 팔을 잡아주었다.
간발의 차였어.
몸을 반쯤 웅크린 곡은 흩날리는 머리카락이 공중에 멈춘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놀라운 팔 힘으로 지휘관을 다시 끌어당겼다.
이렇게 어려운 동작을 매번 성공할 거라고는 장담 못 해.
간신히 목숨을 건졌는데, 지금 그걸 신경 쓰는 거야?
날 꽉 안아. 꾸물대지 말고! 지금 예의를 차릴 때가 아니야.
어서!
곡의 요구대로 지휘관은 곡을 꽉 안았다. 하지만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몸을 굽힌 곡은 뒷다리로 지면을 지탱한 후, 마치 활처럼 앞으로 빠르게 도약했다.
그러자 지휘관은 내장이 관성에 의해 심하게 당겨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곡은 그 로봇 앞에 멈춰서서, 팔로 앞 덮개를 지탱했다.
겨우 어떻게 맞췄네. 반 초만 늦었어도 이 장비는 닫혔을 거야. 좋은 소식은 24시간을 다시 기다릴 필요가 없지.
근데 언제까지 안고 있을 거야? 이제 위험하지 않은데, 아쉬워서 그래?
얼마 지나지 않아, 지휘관과 곡은 복원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천체 관측소 내부로 돌아왔다.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이에요. 그런데 예상보다 시간이 더 걸린 것 같네요.
특별한 상황이라도 있으셨나요?
별일 아니야. 그냥 밖에서 조금 더 머물렀어.
관측 장비는 고쳤으니까,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해 봐.
잠시만요. 로봇A, 이리 와.
관람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최신 관측 지도를 출력해 줘.
네. 알겠습니다.
로봇A의 몸이 가볍게 진동하더니 서툴게 작업을 시작했다.
출력 완료했습니다! 출력 완료했습니다!
곡은 로봇A의 배에서 새로운 성상도를 꺼냈다.
이전의 칠흑 같은 어둠과는 달리, 성상도에 우주 먼지로 이루어진 성운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음...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군.
노력이 헛되지 않았어. 기라, 이제 약속 지켜야지?
물론이죠. 두 분의 도움 덕분에 이후에 진행되는 천체 연구도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 거예요.
이제부터는 홀로그램 투영을 좀 해보려고 하는데, 잠시 자리 좀 비켜줄래?
그럼, 편안히 천문대를 사용해 주세요. 저는 실험실에 다녀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