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길지 않았던 항행이 끝난 뒤, 지휘관과 곡은 공중 정원에 도착하게 됐다.
하지만 방금 전 흔들림 때문에 곡이 가지고 있던 신고 서류에 차가 쏟아져 있었다.
결국 자동 입국 시설이 서류의 글자를 인식하지 못해서, 지휘관과 곡은 입구에서 "문전박대"를 당하고 말았다.
공중 정원을 방문하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나도 예외는 없는 건가?
지휘관은 구석으로 이동해, 단말기로 세리카와 통신을 시작했다.
하아, 졸리네요. 무슨 일이세요, 수석님? 지금 근무 시간이 아닙니다만.
어떤 도움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업무 관련인가요 아니면 개인적인 부탁인가요?
지휘관은 세리카에게 곡을 공중 정원으로 데려온 일을 사실대로 말했다.
데이트를 위해 수송기를 신청하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 입국 허가까지 요청하시다니, 공중 정원이 무슨 커플 호텔인 줄 아시는 건가요?!
수석님이시라 해도, 제가 눈감아 드릴 순...
야, 이번 한 번만이요?
다음엔 절대 안 돼요.
세리카의 도움 덕분에 지휘관과 곡은 공중 정원에 무사히 입국할 수 있었다.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했군. 너를 데리고 오길 잘한 것 같아.
내 예상이 맞다면, 아는 이에게 부탁했겠지?
수석이라는 신분이 정말 대단한 통행증이구나.
그럼, 부탁할 일이 하나 더 있어. [player name], 형저 선생님을 뵈러 같이 가줄 수 있을까?
내 동반자라는 이름으로 병문안을 갔으면 해. 갑작스러운 부탁인 건 알지만...
왜... 싫어?
선생님께서는 항상 나만의 동반자를 찾길 바라셨어. 하지만 그때 구룡은 재건이 필요했던 시기라 그럴 여유가 없었어.
그 후로 많은 일을 겪으면서 조금씩 선생님의 의도를 이해하게 됐어.
그리고 많은 어려움을 혼자서 해결할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어. 너 같은 동반자가 곁에 있어준다면...
언젠가 내가 모든 걸 잃더라도, 적어도 누군가...
그냥 내 혼잣말이라고 생각해. 어쨌든, 같이 갈 수 있는지 없는지만 말해줘.
그럼, 지금부터 너와 나는 동반자다.
내 동반자가 되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이야?
근데 선생님께서 어디 계시는지 전혀 감이 안 와.
요양원이라...
좀 씁쓸하군. 선생님께서 그때 구룡에 남으셨다면, 지금 어떻게 됐을까?
아마 이때까지 살아남지 못하셨을 거야. 그때 전황은 너무 치열했으니까.
어쨌든, 공중 정원이 구룡 출신 학자들을 받아준 것에 대해선 정말 고마워.
시간 없어. 어서 가자.
지휘관과 곡은 공중 정원의 요양원에 도착했다.
요양원의 건축 양식은 우아하고 독특했다. 부드러운 조명이 건물 주위를 비춰주면서,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건 일반적인 "조명"이 아니고, 주위에 배치된 홀로그램 투영에서 나오는 희미한 빛이었다.
꽃과 나무들이 서로 잘 어우러져 있군. 요양원의 풍경 투영인가?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한눈에 가짜라는 걸 알 수 있어, 참 아쉽군.
곡은 잠시 멈춰서 경치를 감상했고, 곧장 요양원 안으로 들어갔다.
대기실 복도에는 자율 로봇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간호사 한 명만이 안내 데스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형저 선생님을 뵈려고 왔는데, 방 번호가 어떻게 되지?
형저 선생님이요? 잠시만요. 확인해 볼게요. 형저 선생님은 406호실에 계셨어요.
혹시... 406호실 형저 선생님의 소식을 못 들으셨나요?
어떤 소식을 말하는 거지?
형저 선생님께서는 지난주에 돌아가셨어요. 정말 유감이에요.
갑작스러운 소식에 놀라셨겠지만, 부디 마음을 잘 추스르시길 바라요.
……
곡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리고 깊고 어두운 눈빛은 어떤 감정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부드러운 바람이 곡의 머리카락을 흩날리면서, 그녀의 말 못 할 슬픔을 대신 전해줬다.
하지만, 그 순간 곡의 차가운 눈빛이 흔들리는 모든 감정을 억눌렀다.
괜찮아. 이런 가능성도 생각하고 있었어.
선생님 연세가 많으셨으니, 스스로도 준비하고 계셨을 거야.
그래도 아쉬움은 남네.
날 보좌해 줬던 부하들 중 많은 이들이 돌아오지 못했어.
눈을 감은 곡이 옛날을 떠올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 대부분은 퍼니싱과의 전투에서 죽었거나, 퍼니싱의 습격으로 행방불명됐지. 가끔 그들에 대한 새로운 소식을 얻게 되더라도, 오늘 같은 결과인 경우도 많았어.
작별 편지는 늘 늦게 도착해. 그리고 나 역시도 너무 늦어버렸군.
구룡의 주인으로서, 많은 시간을 고독과 함께해야 한다는 걸 잘 알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면 적어도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여전히 마음은 힘들군.
내 걱정은 하지 마. 오히려 네가 괜히 나 때문에 고생만 했네.
갑자기 생각난 게 있는데, 형저 선생님께서 어떤 물건을 맡기면서, 나중에 구룡에서 온 사람에게 전해주라고 제게 말씀하셨거든요.
그게 어떤 물건이지? 한 번 보여주실 수 있을까?
물론이죠. 선생님께서는 당신을 여러 번 언급하셨어요. 아마 이 물건을 당신께 드리려고 하셨던 것 같아요.
간호사는 황동색 금속 기기를 곡에게 건넸다.
이건... 육분의인가?
곡은 육분의를 건네받자, 잠시 멈칫하며 옛 추억에 잠겼다.
당시 구룡은 아직 퍼니싱의 침입을 받지 않아서 번화했었고, 곡은 별을 관측하는 걸 좋아해서 자주 천문대에 가곤 했다.
그때 천문대 관리 담당자였던 형저는 곡에게 천체의 변화를 설명해 줬다.
형저 선생님, 손에 들고 계신 게 무엇이죠?
곡 님, 이건 육분의라고 하는데, 천체와 수평선 사이의 각도를 측정하는 도구죠.
육분의요? 아직도 그런 구닥다리 도구를 가지고 계세요?
지금의 천문대는 첨단 복합 관측 기술을 가지고 있는데, 굳이 그런 걸 사용할 필요가 있나요?
솔직히, 휴대하기 편하다는 것 말고는 장점이 없는 것 같은데요.
곡 님이 말한 게 맞아요. 하지만, 육분의는 초기 천체와 수평선 각도를 측정하는 도구로서, 지금의 첨단 기술의 시초이기도 하죠. 그리고 인간의 무한한 개척 정신을 상징하기도 해요.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모든 성과는 과거의 노고와 선조들의 노력 덕분이지요. 그리고 그들의 개척 정신 때문에, 저 또한 더 먼 별을 탐험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게 되었고요. 앞으로도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는 데 최선을 다할 생각이에요.
천문학이 이렇게 빠르게 발전하는 걸 보면, 언젠가 사람들이 저 광활한 별들로 나아갈 수 있는 거죠.
안타깝게도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퍼니싱이 폭발해 전 세계에 퍼졌어.
인간은 별로 향하기도 전에 대재앙을 맞이하게 된 거지.
우린 끊임없이 몰려오는 침식체와 싸워야 했고, 결국 만세명 계획을 가동할 수밖에 없었어.
그 후, 난 별하늘을 바라볼 때마다 인간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
형저 선생님께서 이 육분의를 나에게 주신 건, 아마도 내가 그분을 대신해 인간의 미래를 위해 희망을 개척하길 바라셨던 것 같아.
형저 선생님께서 생전에 두 가지 유언을 남기셨어요. 첫 번째는 이 육분의를 곡 님에게 전해달라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곡 님께서 적합한 동반자를 찾길 바라셨어요. 이제 보니, 형저 선생님도 미련이 없으실 것 같네요.
그래.
동반자가 수석님이시라, 정말 좋네요.
맞아.
참, 얼마 전에 선생님 제자도 찾아왔었어요.
선생님을 위해 설계한 새로운 천문대 때문에 왔다고 했어요. 그런데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더군요.
공중 정원의 새로운 천문대? 형저 선생님께서 이곳에서도 천체 연구를 하고 계셨을 줄은 몰랐네.
그 학생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나?
천체 연구소에서 연구 과제를 맡고 있을 거예요. 정확히는...
알겠어. 나중에 그 아이를 찾아가 보지.
그 학생을 만나는 것 말고도, 공중 정원의 천체 관측대도 한번 보고 싶어.
그럼,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