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Affection / 곡·계명·그중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곡·계명·그중 하나

>

수송기가 대기권 경계를 넘어가자, 가장자리의 공역이 대낮의 화려함을 벗어던지고 밝은 파란색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햇빛이 비치는 방향으로 보석 같은 색깔이 시야의 끝까지 퍼져 나갔다.

기압과 온도의 급격한 변화로 공중 정원 소속의 소형 수송기가 잠시 흔들렸고, 이로 인한 간헐적인 진동이 항진 구조를 통해 기내로 전달되었다.

이 순간, 창문 밖을 내다보니 희미하지만 아름다운 푸른색 행성의 윤곽이 한눈에 보였다.

여기 오기 전까지 이렇게 흥미로운 풍경이 펼쳐질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어. 지구에서 조금만 멀어져도 이렇게 넓은 우주가 눈앞에 펼쳐지다니, 최근 몇 년 동안 공중 정원이 항공우주 기술에 정말 큰 성과를 이뤄낸 것 같군.

이런 생각도 들더군. 만약 항행 기술을 궤도 수송에만 사용하지 않고 성계 여행에도 응용할 수 있다면, 사람들이 퍼니싱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이야. 그때가 온다면 공중 정원이든 구룡의 주민들이든 모두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거야.

인간은 언젠가 광활한 우주로 나아갈 수 있을 거야.

적어도 난 항상 그렇게 생각했어.

지휘관과 곡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수송기가 기류를 만나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수송기는 방금 전부터 계속 흔들리기만 하는군.

공중 정원은 손님 대접을 이렇게 하나?

소형 수송기라도 엔진을 더 좋은 것으로 교체하거나 완충판을 추가하면 적지 않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야.

공중 정원까진 얼마나 더 가야 하지?

창밖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뜬 곡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네가 날 초대한 거 아닌가?

공중 정원에서 날 초대한 거라면, 나도 별 관심 없었을 거야.

여러 세력이 나와서 환영해 주는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아. 힘들기만 할 뿐, 대부분 의미 없는 회의에 시간만 낭비하는 거니까.

네가 초대했으니 온 거야. 우리 사이에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잖아. 그리고 나도 공중 정원을 직접 둘러보고, 그곳이 구룡과 어떻게 다른지 알고 싶었어.

내 가이드가 되어줄 수 있겠나? 믿을 만한 사람이 옆에 있었으면 해.

그럼, 기대해 보지.

가느다란 검지로 머리를 살짝 받친 곡이 나른한 표정으로 창밖에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무심한 눈길이 자신 앞에 있는 테이블로 옮겨졌다. 테이블 위에는 막 끓인 차가 놓여 있었다.

찻주전자를 들어 올린 곡은 뜨거운 물을 먼저 주전자 안쪽에 돌린 후, 찻잎과 뜨거운 물을 섞었다.

곡은 찻주전자를 조심스럽게 기울여, 정교하게 만들어진 찻잔에 차를 천천히 따랐다.

독특한 생활 습관도 구룡 문화의 일부분이야.

곡은 지휘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찻잔을 들어 올려 천천히 한 모금 마셨다.

보기 드물게 여유와 편안함이 가득한 곡의 표정에서 안정되고 지적인 느낌이 물씬 풍겼다.

바로 그때, 수송기가 기류를 만나 또 한 번 심하게 흔들렸다.

그러자 기내도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미리 예측하여 미세 조정을 할 수 없었다는 듯...

곡이 들고 있던 찻잔은 한쪽으로 기울여지고 말았다.

그러자 찻잔에 있던 차가 곡의 옷에 그대로 쏟아졌다.

옷이 젖자 곡은 차분하게 찻잔을 내려놓았다.

집중해. 그리 수평축과 지평선을 확인해.

곡의 시선은 지휘관을 지나 수송기 조종 패널의 관측 지표로 향하고 있었다.

지휘관은 곡의 경고를 듣고 즉시 관측 패널을 확인했다. 수송기의 자동 순항 기능에는 문제가 없었고, 지표도 정상이었다. 걱정할 만한 일은 없어 보였다.

최신식 공중 정원 수송기에는 긴급 회피 시스템이 장착되어 있어, 작은 흔들림으로는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지 않았다.

고개를 돌렸을 때, 곡은 차가 쏟아진 위치에 예쁜 수건을 하나 덮어두고 있었다.

옷을 꼼꼼히 닦고 있던 곡은 자신을 향한 시선이 느껴지자, 찡그리며 고개를 들었다.

이렇게 쉽게 정신 팔리면, 얼마 안 가서 또 격렬한 흔들림을 겪게 될 거야.

파오스 군사 학교의 수석이라고 들었는데, 그들이 과대평가한 거 같군.

기류를 만났을 때, 수송기보다 나를 먼저 걱정하다니.

비행 수첩에 그렇게 적혀있나?

아니면 내가 너무 신경 쓰이는 건가?

왜?

그래서 긴장했던 거야?

신경 쓸 필요 없어. 이번엔 구룡을 대표해서 온 게 아니니까.

정말 솔직하군.

그런 각오라니 기쁘긴 하네.

곡에게 일침을 들은 지휘관은 수송기 조종에 집중했다.

그러자 수송기 내부는 다시 조용해졌고, 엔진 소리 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느긋하게 다리를 꼬고 앉은 곡은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듯, 날카로운 눈빛으로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지휘관과 시선이 마주치자, 곡은 다시 고개를 돌려 창밖 풍경을 감상했다.

몇 차례 반복 후, 곡은 이런 상황에 싫증이 난 듯 지휘관의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했다.

오늘 공중 정원에 온 건 너와의 약속 때문만은 아니야. 다른 일도 있어.

궁금하지 않아?

그럼, 알려줄게.

그래? 그런데 임무의 세부 사항을 파악하는 것도 네 일 아닌가?

게으름 피우지 마. 알고 있는 게 좋을 거야.

한 달 반 전쯤에 공중 정원에서 온 편지를 받았어.

처음엔 좀 의아했지. 공중 정원은 구룡처럼 잉크나 편지봉투와 같이 전통적인 걸 쓰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 보통 이메일로 정보를 전하잖아.

근데 발신자 이름을 보고 바로 이해할 수 있었어.

보낸 이는 형저(衡杼)라는 분이야. 퍼니싱이 습격하기 전에 그는 구룡 천문대의 관리 담당자이자, 구룡 건설에 많은 조언을 해주셨지. 그는 부하가 아니라 나에게 스승이기도 해.

나는 그가 퍼니싱 폭발로 목숨을 잃으신 줄 알았는데 살아계셨어. 현재는 공중 정원으로 이주하셔서 천문학자가 되셨더라고.

다만 반가운 마음으로 편지를 열었을 때, 문득 깨달았어.

인간의 나이로 친다면, 지금 형저 선생님께서는 노인이 되셨을 거라는 사실을 말이야.

이 시점에 선생님께서 보내신 편지를 받게 되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어.

선생님의 성정상, 구룡을 떠났다는 건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런 분이 자존심을 굽혀 내게 편지를 보내셨다니,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내 예상대로 그건 작별 편지였어.

구룡엔 부하가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꼈을 때, 편지를 써서 군주에게 이별을 고하는 전통이 있어.

형저 선생님께서는 구룡을 떠났어도 그 전통을 잊지 않으셨던 거지.

그 편지는 아마 병상에서 쓰신 거 같아. 그리고 얼마나 힘들게 쓰셨는지도 느낄 수 있었어.

한때는 내 밑에서 계셨던 분이니, 마지막으로 한 번은 뵙고 싶어.

우리가 만나는 게 외교 문제로 확대되는 걸 막기 위해, 개인의 신분으로 선생님을 방문하기로 결정했던 거야.

번거로움을 줄이려면 조용히 진행하는 게 좋을 거야. 무슨 뜻인지 알겠지?

공중 정원 항공 관리국입니다. 귀하의 수송기가 저희 측 구역에 진입했습니다. 식별 번호를 말씀해 주십시오.

공중 정원의 통신 AI가 말하는 안내가 지휘관과 곡의 대화를 끊었다.

진입이 허가됐습니다. 예정된 궤도로 진입하신 후 302초 후에 감속해 주십시오.

즐거운 항행 되십시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

다 왔나? 이 단계에선 흔들림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군.

다시 창밖을 바라본 곡은 멀지 않은 곳에서 동기 궤도에 떠 있는 공중 정원을 볼 수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공중 정원의 규모는 우주 보루와 맞먹을 정도였고, 실제로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여기 네가 사는 곳이군. 어떤 의미에선 '웅장'이라는 말이 어울리네.

그래? 그렇다면 이번 여행이 지루하진 않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