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Affection / 오블리크·재율·그중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

오블리크·재율·그중 둘

>

그리 넓지 않은 임시 숙소 안에서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난감한 실랑이가 조용히 이어지고 있었다.

푸른 머리의 구조체는 몸을 반쯤 낮춘 채 인형을 들고, 구석에서 안절부절못하는 훈련견을 향해 온갖 다정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한 걸음 다가서면, 크솔리는 낮게 으르렁거리며 뒤로 물러나 벽에 몸을 바짝 붙였다.

안 되겠네요.

이 과정은 한 시간 동안 수차례 반복되고 있었다.

지휘관과 오블리크는 온갖 음식과 장난감을 동원해 첫 만남의 성공을 되살리려 했지만, 극도로 예민해진 크솔리에게 좀처럼 다가갈 수 없었다.

낯선 환경, 낯선 냄새... 주위의 모든 것을 위협으로 느끼는 것 같아요. 어떤 기분일지, 조금은 알 것 같네요.

둘의 시선이 동시에 크솔리의 목에 걸린 이름표로 향했다.

그 장치는 훈련사의 단말기와 연결되어 동물의 감정을 분석할 수 있었다. 감정이 격해지면, 그 원인이 된 기억의 조각까지 추출해 훈련사가 문제의 근원을 정확히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였다.

연결됐어요, 지휘관님. 그럼 시작하시죠.

너무 피곤해. 배고파. 겨우 먹을 걸 찾았는데...

고작 이게 다야? 이걸 누구 코에 붙여. 저리 꺼져! 오늘 네 밥은 없어.

인간이 뺏어갔어. 너무 배고파, 힘들어...

주인님 기분이 안 좋아 보여. 같이 놀자고 하면, 분명 좋아하겠지.

저리 가, 귀찮게 하지 마! 한가하게 놀아줄 시간 없어. 짐승 따위가 뭘 안다고...

발로 차여서 아파, 슬퍼.

너무 춥고, 어두워.

왜 이렇게 시끄러워! 너, 저놈 입마개 씌워서 멀리 가둬 놔!

시끄러워 죽겠네. 그나마 냄새를 잘 맡아서 데리고 있는 거지, 아니면 진작에 내다 버렸을 거야.

너무 춥고, 어두워.

......

길바닥에서 쓰레기나 주워 먹고... 꼭 버려진 강아지 같아.

짐승에게 무슨 생각이 있겠어. 임무나 완수해. 뒤처지는 놈은 벌을 받을 거야.

…다들 어디로 간 거지? 설마 또 버려진 건가…

......

구조체 소녀는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슬픔이 미간에 드리웠다. 무릎 위에 포갠 두 손은, 붙잡을 수 없는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잡으려는 듯 강하게 움켜쥐고 있었다.

지휘관이 낮게 이름을 부르자, 그녀의 속눈썹이 살짝 떨렸다.

지휘관님?

아... 또 멍하니 다른 생각 했네요. 죄송해요.

지휘관님?

아니에요. 지휘관님 손의 온기 때문에... 안심이 됩니다. 사과할 사람은 저예요.

말씀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네요.

이제, 크솔리를 어떻게 도와야 할지 알 것 같아요.

크솔리는 영리한 만큼 상처도 깊은 아이예요. 먹이나 장난감에 대한 기억이 늘 좋았던 게 아니에요. 오히려 그것들로 인해 상처를 받았죠.

지금 크솔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안정감"이에요. 먹이를 빼앗기지 않고, 선의를 오해받지 않고, 사람들에게 도구처럼 쓰이다 버려지지 않는다는 확신이요.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먼저 안정감을 느껴야, 비로소 "내일"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으니까요.

지휘관님이 하신 말씀을 마음 깊이 새겨뒀어요.

과거에 짓눌려 숨조차 쉴 수 없었을 때, 지휘관과의 연결을 통해 전해진 생각은... 마치 속박을 베어내는 날카로운 칼날 같았다.

푸른 머리의 구조체는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훈련견을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부드럽지만 단단한 결의가 깃들어 있었다.

희망과 성취감을 되찾아 준다면, 이 아이는 놀라울 만큼 달라질 거예요.

지휘관님이 제 편이 되어주셨던 것처럼, 저도 크솔리 곁을 끝까지 지키겠어요.

"우리"... 맞아요. 이건 협력 임무죠.

아직 지휘관과 함께 난관을 헤쳐 나가는 데 익숙하지 않은 그녀에게, 조금 더 확신을 심어줄 필요가 있었다.

그럼, 바로 물자를 정리해서 지휘관님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습니다.

구조체 소녀의 눈빛이 갑자기 진지해지더니, 방 안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선반 위 먼지, 저 쿠션 커버는 세탁해야겠네요. 커튼 끈도 다시 꿰매야 하고... 사소한 것들이라 금방 처리할 수 있겠어요.

아니에요, 제가 할게요.

하인 역할은, 임무를 위한 위장이긴 하지만… 집안일을 하다 보면, 의외로 마음이 차분해져요.

클래식 음악까지 틀어놓으면 더더욱 그렇고요.

단순히 책임감이나 감사한 마음 때문만은 아니에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하면 기분이 좋아져요.

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맑고 투명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과거의 그늘에서 벗어나 솔직하게 바람을 말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의 호의를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답해주는 일이, 그녀에게는 더 큰 의미일 수도 있었다.

네!

익숙한 일을 맡아서일까. 오블리크의 손놀림은 물 흐르듯 빠르고 정확했다. 평범한 집안일이 경이로운 예술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경계심을 늦추지 않던 크솔리조차 그녀의 움직임에 끌려 귀를 쫑긋 세웠다.

상자 속 물품들은 순식간에 제자리를 찾았고, 푸른 머리 구조체가 찻잔을 건네는 몸짓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지휘관님을 위해, 마음을 안정시키는 캐머마일 차를 준비했습니다.

찻잔을 받아 한 모금 마시자, 향긋한 내음과 딱 맞는 온도가 느껴졌다. 그녀의 정성은 평범한 재료마저 특별하게 만들었다.

지휘관의 칭찬 한마디에, 구조체 소녀는 큰 격려라도 받은 듯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꿀 한 스푼이 부족하네요. 공중 정원으로 돌아가면, 꼭 이 아쉬움을 채워드리겠습니다.

지휘관의 권유로, 오블리크도 구조체 전용 음료를 들고 와 마주 앉았다.

그녀는 무릎을 가지런히 모으고 앉아 있었고, 음료 캔을 만지작거리는 손끝에는 어색함이 묻어났다.

고개를 들어 지휘관과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시선을 피하며 괜히 음료를 한 모금 마셨다.

저... 실례가 안 된다면, 옆에 가서 앉아도 될까요, 지휘관님?

훈련사끼리 가깝게 있으면, 크솔리도 더 빨리 저희를 받아들일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지휘관이 생각에 잠긴 듯 보이자, 구조체 소녀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망설였다.

......

그냥… 쉬고 계시는 지휘관님을 보면… 곁에 있고 싶어져요.

오블리크의 귓불이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의자를 옮겨 지휘관 곁에 앉더니, 잠시 머뭇거리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의 회색빛 치맛자락이 지휘관의 무릎에 살짝 닿았다.

창밖의 맑은 햇살이 뜨거운 찻잔을 지나 둘의 무릎에 내려앉았다. 고요한 온기가 몸을 감싸자, 시간마저 느려진 것 같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오블리크의 나직한 목소리가 지휘관을 현실로 끌어냈다.

[player name] 님, 저기 보세요.

크솔리가 몇 번이고 망설이며 꼬리를 살짝 흔들더니, 벽 구석에서 천천히 다가왔다.

거리가 좁혀질수록 오블리크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고, 지휘관의 심장도 그 리듬을 따라 뛰기 시작했다.

마침내 크솔리가 둘의 발치에 몸을 뉘었다. 거친 털이 구조체와 인간의 다리에 닿자, 상처 입었던 생명의 온기가 천천히 되살아났다.

음료 캔과 찻잔이 가볍게 부딪히며 맑은 소리를 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