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블리크·재율·그중 하나
>이른 아침, 보육 구역은 벌써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맑고 상쾌한 공기 덕분에 약속 장소로 향하는 발걸음도 저절로 가벼워졌다.
길가의 풍경은 다른 구역과 사뭇 달랐다. 인간과 구조체 곁에는 동물 친구들이 함께했고, 크고 작은 개들의 목엔 이름표가 달려 있었다. 녀석들은 신나게 뛰놀거나 훈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한적한 집 앞에 이르러 초인종을 누르려던 순간, 문이 먼저 열렸다.
좋은 아침입니다, 지휘관님. 역시 약속 시간은 정확히 지키시네요.
푸른 머리의 구조체는 아침 햇살을 받아 은은한 금빛을 두른 듯했다. 겉으로는 차분해 보였지만, 그 눈빛에는 작은 설렘이 일렁이고 있었다.
멍!
그녀의 등 뒤에서 복슬복슬한 털 뭉치가 불쑥 고개를 내밀더니, 지휘관을 향해 반갑게 짖어댔다.
집 안에서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 냄새가 풍겨왔다.
어서 들어오세요. 아침 식사는 이미 준비해 두었습니다.
오늘 메뉴는 소시지구이, 토마토 콩조림, 그리고 버터에 구운 감자입니다. 따뜻할 때 드세요.
네, 대접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인걸요.
크솔리의 "꾹꾹이 수호자" 이벤트 훈련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에 준비한 것이니 마음껏 즐겨주세요.
지휘관님의 취향은 잊지 않고 기억해 두겠습니다.
크솔리는 칭찬을 알아들은 듯, 꼬리를 더 힘차게 흔들었다. 그래도 훈련받은 대로 얌전히 앉아 있었다.
푸른 머리의 소녀는 몸을 숙여 훈련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식사 후 홍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겠네요.
"반려견 정류소"
지상 보육 구역
일주일 전
일주일 전, 지상 보육 구역 "반려견 정류소".
지난번 지휘관님께서 주신 의견 덕분에 작업견 훈련 계획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역시 공중 정원의 수석 지휘관님은 다르시네요. 지상에서의 경험이 정말 풍부하신 것 같아요.
바쁘신 와중에 이렇게 "반려견 정류소"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젯밤은 편히 쉬셨나요? 이쪽으로 오시죠, 앞에 보이는 곳이 작업견들의 견사입니다.
지상 보육 구역이 점차 자리를 잡아가면서, 사람들은 과거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이자 조력자였던 강아지들에게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 견사의 강아지들은 대부분 난민들과 함께 이곳에 온 녀석들이었다.
과거의 경험은 개들이 수색, 구조, 물자 탐색, 장애인 안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특별한 잠재력을 지녔음을 보여주었다. 이에 보육 구역은 전문 기관을 설립해 본격적으로 작업견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마침 비교적 한가했던 지휘관은 이곳 "반려견 정류소"의 초청을 받아, 임시 자문가로서 몇 가지 조언을 해 드릴 예정이었다.
좋은 소식도 하나 있습니다. 드디어 충분한 후원을 받아, 더 많은 참가자를 수용할 수 있는 훈련 선발 행사를 열 수 있게 됐습니다! 이름하여, "꾹꾹이 수호자"!
부담 없이 편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일부러 그렇게 지었습니다. 규칙도 간단합니다. 두 명의 훈련사가 한 팀이 되어 훈련견 한 마리를 맡아 매뉴얼대로 훈련한 뒤, 최종 경연에 참가하는 방식입니다. 우수한 성적을 거둔 개는 곧바로 정식 임무 팀에 합류하게 됩니다.
지휘관님도 한번 참여해 보시겠습니까?
지휘관이 대답하기도 전에, 멀리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둘러싸 모여 있었다.
주인이 살아있을 땐 안 저랬는데... 얼마 전 주인이 세상을 떠나면서 이곳에 오게 됐거든요. 근데 안타깝게도...
맞아요. 지금은 사람을 너무 무서워하니... 아무래도 그냥 포기하는 게 낫겠죠?
하지만 크솔리는 이전 테스트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 줬어요. 가능하다면, 제가 한번 맡아보고 싶어요.
낑...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성갑충 소대의 오블리크였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진지함과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울타리 안에는 갈색과 흰색 털이 섞인 개 한 마리가 귀를 축 늘어뜨린 채, 무서운 듯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사람들 중,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고개를 저으며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꼬마 아가씨, 사람이 무서워 다가오지도 못하는 개가 성적이 좋으면 뭘 합니까? 우리는 그저 당신의 안전이 걱정될 뿐입니다.
지휘관님? 여기서 뵙게 될 줄은 몰랐네요.
푸른 머리 구조체는 지휘관을 발견하고 놀란 듯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 모습을 본 정장 차림의 남자도 지휘관을 알아보고는 반색하며 다가왔다.
아니, 이분이 바로 그 유명한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님 아니십니까! 영웅을 뵙게 되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지휘관님, 이분은 저희의 새로운 후원자, 케이지 님이십니다.
이런 사소한 문제로, 자문가님께까지 번거롭게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냥 처리해 버리면 그만이죠. 행사와 대회에 차질이 생기면 안 되니까요. 다만, 이 구조체 아가씨가 워낙 완강해서 말입니다…
케이지는 이 말과 함께, 곤란하다는 눈빛으로 오블리크를 쳐다보았다.
......
가까이 서 있던 지휘관은, 푸른 머리 소녀가 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차가운 표정에 순간 공허함이 스쳐 지나건 걸 똑똑히 보았다.
아직 단정 짓기는 이릅니다, 지휘관님.
크솔리는 과거에 수차례의 학대와 유기를 당했습니다. 마지막 주인마저 세상을 떠나, 그 충격으로 현재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고요.
저는 예전부터 종종 이 아이를 돌봐왔습니다. 저를 잘 따르던 아이였어요. 만약 저를 받아들여 준다면... 지금의 상태도 바꿀 수 있을 겁니다.
엘리트 소대 구조체의 자기방어 능력은 믿을 만했다. 케이지는 지휘관의 태도에 설득된 건지, 눈을 가늘게 뜨며 한발 물러나 오블리크에게 공간을 내주었다.
푸른 머리 소녀는 몸을 낮춰,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작은 생명체와 눈을 맞췄다.
크솔리... 크솔리? 나야, 오블리크.
강아지는 앞발을 불안하게 움직이며, 도망칠 곳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연신 주위를 살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악몽에서 벗어나려는 듯 낮게 신음했다.
멍! 멍!
다 내 탓이야... 다들 날 버렸어... 아무도 날 원하지 않아!
......
크솔리, 내가 돌아왔어. 널 데리러 왔어.
그 순간, 누구도 예상치 못한 변화가 일어났다. 땅을 긁어대던 크솔리의 앞발이 멈췄고, 목구멍에서 새어 나오던 괴로운 신음이 잦아들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소녀와 강아지의 거리가 서서히 좁혀졌다. 소녀가 내민 손은, 강아지의 헝클어진 털에 살포시 닿았고, 다들 그 모습을 숨죽인 채 바라보고 있었다.
크솔리는 피하지 않았고, 오히려 고개를 들어, 주저하듯 그녀의 팔을 핥았다.
세상에, 크솔리가 마음을 열다니! 정말 다행이네요! 제가 뭐랬습니까, 이 녀석 재능이 아깝다고 했잖아요! 잘만 하면 상위권도 노려볼... 아야, 왜 꼬집으세요?
하하, 그러게나 말이에요. 정말 의외네요…
......
소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두 손을 앞으로 모았다. 지휘관을 향해 안도의 미소를 지은 뒤, 주위를 둘러보다 케이지에게 시선이 멈췄다.
보시는 것처럼, 제가 크솔리의 훈련을 맡아도 문제없을 겁니다.
좋습니다. 하지만 규칙상 훈련사는 두 명이 한 조를 이뤄야 합니다. 마감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저렇게 "까다로운" 녀석을 받아줄 다른 파트너를 어디서 구하실 생각인가요?
혹시 또 도전해 보실 분 계신가요?
여기 있는 사람들이 이미 다 시도해 봤지만, 전부 실패했어요.
전부는 아니죠. 아직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님이 계시잖아요!
순간, 모든 시선이 지휘관에게로 쏠렸다.
일정이 바쁘신 분한테, 갑자기 권하는 건 실례인 것 같습니다.
소녀는 저도 모르게 치맛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언제나 침착하고 단호하던 목소리에, 미묘하게 조급한 기색이 묻어났다.
다만... 괜찮으시다면 우선 이름만이라도 함께 올려주실 수 있을까요? 훈련은 전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지휘관님도... 크솔리를 믿어주시는 건가요?
지휘관님도... 크솔리를 믿어주시는 건가요?
오블리크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희망의 빛이 서서히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고맙습니다, [player name] 님.
크솔리는 절대 지휘관님을 실망시키지 않을 겁니다.
오블리크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희망의 빛이 서서히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고맙습니다, [player name] 님.
제가 지휘관님을 지켜드릴게요. 이 믿음을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오블리크는 크솔리를 달래며, 조용히 가죽끈을 손목에 단단히 감았다.
소녀의 시선 아래, 지휘관도 그녀가 했던 것처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크솔리에게로 다가갔다.
여전히 사람들의 눈길을 두려워하던 크솔리는, 모두의 예상과 달리, 오블리크의 다리 뒤에서 머리를 내밀어 지휘관과 눈을 마주치더니, 코를 킁킁거리며 조금 더 앞으로 다가왔다.
역시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님의 친화력은 대단하시네요!
아니죠! 지휘관님의 위엄 있는 기세 덕분입니다!
고개를 들자, 소녀와 시선이 마주쳤다. 말없이 기뻐하는 그녀의 눈빛은 마치 황야에 핀 푸른 꽃처럼 반짝였다.
좋습니다, 좋습니다! 이제 원만히 해결된 것 같네요.
크솔리 덕분에 자문가님까지 직접 대회에 참가하시게 됐으니, 이거야말로 전화위복이군요! 저도 영리한 녀석을 하나 맡고 있는데, 이제 경연장에서 뵙도록 하죠.
그 말을 끝으로 케이지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흠잡을 데 없는 인사와 태도였지만, 지휘관의 마음속에는 왠지 모를 불편함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참가 신청이 먼저였다. 지휘관은 그 찜찜함을 잠시 접어둔 채, 오블리크와 함께 들뜬 직원들을 따라 접수처로 향했다.
이것으로 모든 절차가 끝났습니다. 보조 장비와 물자는 여기 구조체 아가씨가 배정된 숙소로 곧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다만 숙소 위치가 조금은 외진 곳입니다. 훈련견이 아직 사람들과 어울릴 준비가 덜 된 것 같아서요.
괜찮습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분, 힘내십시오! 꼭 훈련에 성공해서 "꾹꾹이 수호자"의 든든한 전력이 되어 주시길 바랍니다!
푸른 머리 구조체는 지휘관을 향해 단호한 눈빛을 보냈다. 그녀의 결심은, 그녀의 행동만큼이나 망설임이 없었다.
가시죠, 지휘관님. 이제 크솔리를 "집"으로 데려갈 시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