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라운드가 끝난 지 불과 몇 분 만에 포크너와 라비오, 엘리너는 다음 라운드 카드를 들여다보았다.
이어서 그린스도 카드를 확인했다.
지휘관의 화면에 10초 카운터가 떴다. 제한 시간 내 결정하지 못하면 즉시 실격이다.
포크너와 라비오의 돌변한 태도 때문에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갔다. 두 적수는 맹렬하게 다음 라운드를 몰아붙였다.
결과가 바로 나왔다.
이번 라운드 결과: 3번, 4번 패배.
스크린이 붉게 물들기 전, 신속하게 혈청을 주입했다.
스크린 속 퍼니싱 농도가 순식간에 세 번째 칸까지 치솟았다.
릴리스는 가죽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옆 의자 위로 다리를 쭉 뻗었다.
이제 단조로워지기 시작했군.
사기와 배신... 고모의 수법은 여전히 식상하기 그지없군.
릴리스는 포춘쿠키를 반으로 쪼개 안의 메시지를 꺼내 들었다.
"애걸로 얻은 기회는 진정한 행운이 될 수 없다."
예상 밖의 전개를 기대했건만, 결국 그들에게 남은 건 자기 운명을 기도할 자유뿐이었군.
릴리스는 화면의 내용도 제대로 보지 않고 카드를 선택했다.
이번 라운드 결과: 5번 패배.
참 신기하네요... 그린스랑 라비오가 두 라운드 연속으로 운이 너무 좋으신데요?
단말기를 통해 엘리너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모두가 들을 수 있는 공개 채널이었다.
스크린의 퍼니싱 농도는 위험 수준에 육박했다. 수치가 조금만 더 오르면 방호복이 무력화될 상황.
그린스와 라비오의 카드는 일치했고, 아마 이것이 그들의 연승의 비밀이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린스가 라비오와 손을 잡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초기 안내에 따르면, 참가자들은 단말기를 반드시 착용할 필요는 없었다.
방금의 총성으로 그린스라 불리던 기계체가 총탄을 맞았을 것이다.
각 방이 서로 독립된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진 순간이었다.
범인은 그린스의 단말기를 탈취해 상황을 조종한 것이 분명했다.
협력할 수 있는 존재는 둘뿐이었다. 하나는 분노로 가득 찬 배신한 구조체였고, 다른 하나는 정체 모를 여성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깊은 정적만이 이어졌다.
여전히 침묵이 이어졌다.
지금까지의 정황을 고려하면, 그는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일 것이다.
그 순간 엘리너가 카드를 먼저 선택했다.
이는 참가자들 사이의 불신과 적대감을 조장하기 위한 계략이었다.
얘기하세요.
폐허가 된 방을 둘러보던 구조체는 단말기를 구석에 내던졌다.
이번 카드는 가위와 보가 나왔어.
...보를 선택할게요.
그의 몸은 극도의 피로에 휩싸여 있었지만, 그 안에서 불타오르는 분노만큼은 여전히 선명했다.
퍼니싱이 그의 의식을 침식하고 있었다.
그는 냉정을 되찾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단말기를 통해 울리는 음성이 포크너의 혼란한 의식을 깨웠고,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맞아요.
선택을 완료하자 통신이 차단되었다. 엘리너와의 연락은 다음 라운드까지 기다려야 했다.
포크너의 선택이 끝나자, 지휘관도 뒤따랐다.
결과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번 라운드 결과: 1번, 2번 패배.
엘리너가 선택한 카드가 포크너와 지휘관의 것과 같았다.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엔 묘한 타이밍이었고... 라비오와 그린스의 패배가 확정되었다.
멈춰있던 여과 장치가 다시 가동되었고, 퍼니싱 수치가 점차 감소하기 시작했다.
라비오는 문틈을 벌리고 통풍구에서 소리 없이 착지했다.
퍼니싱 농도가 더 높은 방에 발을 들인 선택이 후회스러웠으나, 적들의 연합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쿠로노의 XX 주제에, 유언을 준비해 두는 게 좋을 거야.
이번에 무슨 카드를 받았나요?
바위를 선택하세요.
선택할 카드 알려줬잖아요.
전 바위랑... 보 카드요.
포크너는 라비오가 떠든 이야기들 중 4번 참가자의 평화주의적 성향만을 사실이라 여겼다.
1번: 보 2번: 보 3번: 보 4번: 바위 5번: 보
결과가 나오기 전에 단말기를 다시 손에 착용했다.
가장 불안정한 요소부터 제어하려 한 건 역시 너무 위험한 시도였다.
그러나 다른 측면을 고려하면, 지휘관은 엘리너의 본질을 전혀 읽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엘리너가 철저히 감정을 숨겼기에, 진정한 의도를 파악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화려한 색상의 결괏값을 살펴보던 그때, 주변의 여과 장치에서 나던 윙윙거림이 또다시 멈추었다.
실내의 퍼니싱 농도가 서서히 상승하는 동안, 단말기 화면의 표시등은 연두색에서 점차 붉은 종료 X 표시를 향해 나아갔다.
두꺼운 강철 벽이 내려와 참가자들을 서로 격리한 상황이다.
무작위로 흩어진 참가자들 때문에, 강철 벽으로는 공간을 완전히 차단할 수 없었다.
게임의 목적이 단순히 행운아를 고르는 것이었다면, 이처럼 복잡한 장치는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제작자는 의도적으로 빈틈을 만들어뒀고, 아마도 참가자들이 그 틈을 파고들기를 바랐을 것이다.
핵심은 상대편이 이미 약점을 파고들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무너진 강철 벽이 박살 낸 입구로 되돌아갔다.
두 차례 붕괴된 잔해를 치워내자, 간신히 몸 하나 빠져나갈 틈이 보였다.
제식총을 재빨리 점검하여 허리에 고정했다. 전투용 비수를 빼 들어 살갗에 새겨진 공중 정원의 식별 문양을 깔끔히 제거했다.
적의 정체를 파악하기 전까진 자신의 신분 최대한 감추는 것이 안전했다.
천 조각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고, 방호복의 헬멧에도 많은 상처가 생겼다. 이제 혈청 주사만 남았다.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자, 단말기의 퍼니싱 농도가 점점 더 높아졌다.
이번 라운드에서 패배하면, 방 안의 퍼니싱 농도가...
아마 인간은 살아남기 힘들겠지?
릴리스는 권태로운 표정으로 카드 테이블에 걸터앉아 단말기를 집어 올렸다.
저기 평화주의자분, 아직 살아있으세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손에 든 단말기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릴리스의 시선이 잔해더미를 향했다. 그곳에 방호복을 착용한 형체가 불현듯 모습을 드러냈다.
결국 짐승이 되기로 하셨군요.
그녀의 입가에는 예측할 수 없는 미소가 서려 있었다.
건너편에서 온 방문객에게 놀란 척해 드릴까요? 아니면, 이 만남을 기다려 왔다고 할까요?
역시, 이곳은 밀실이 아니었군요.
충분한 대가만 감수한다면... 구역의 경계를 허물 수 있었네요.
방호복을 입은 인간이 릴리스 쪽으로 다가갔다.
방금 나온 결과 봤어요. 포크너와 접촉을 시도하셨던 것 같은데요.
안타깝게도... 포크너의 생각은 달랐나 보군요.
지금 누굴 공감해 줄 때가 아니에요.
인간이 계속 앞으로 걸어가자, <M>그</M><W>그녀</W>의 팔에 착용된 단말기의 퍼니싱 농도는 더 이상 받아들이기 힘든 수준까지 도달했다.
여기까지 온 이유가 있겠죠. 무엇을 원하시는지 궁금해지네요.
본인의 판단력을 굳게 믿고 계시네요.
릴리스는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며 거리를 가늠했다. 맞은편의 인간도 똑같은 긴장감으로 간격을 재고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 말에 릴리스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이 모든 게 사냥꾼의 완벽한 덫을 위한 연출이었던 걸까...
그럼, <M>그</M><W>그녀</W>는 언제까지 이 목적을 숨길 생각인 걸까?
하지만, 본인 능력을 입증할 방법이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