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 게임 시작까지 5분밖에 안 남았네요.
운이 좌우하는 게임인데 연습이 의미가 있을까요.
단말기의 신호음이 정적을 깨뜨렸다.
방금 그 신호 아이콘이 반응했다.
단말기의 화면이 좀 이상한데요?
퍼니싱 신호...!
정답.
단말기 화면의 퍼니싱 수치가 벌써 두 칸째를 채우고 있었다.
게이지가 마지막 칸까지 올라가면 패배하는 거죠.
왜 벌써 첫 칸을 넘은 거지?! 게임은 시작도 안 했잖아!
음? 제 단말기는 아직 별다른 반응이 없어요.
그러니까...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여기저기 소형 정화 설비에서 나는 듯한 기계음이 희미하게 들린다.
정화 시설로 인해 구역별 퍼니싱 농도는 단시간 내에 감소가 가능하다.
반대로 정화 시설이 멈추면, 퍼니싱 농도가 급격히 상승할 것이다.
엘리너의 퍼니싱 수치가 저보다 더 낮다는 게 이해가 안 되네요.
조바심 내지 마세요. 제 퍼니싱 수치는 당신보다 높아요.
퍼니싱 제어는 불가능하겠지만... 이런 불공평한 승부도 흥미롭군요.
그리고 전 이미 카드 선택을 끝냈어요.
로봇의 냉정한 음성이 시간제한을 알리자, 공기가 얼어붙는 듯한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포크너도 최종 선택을 마쳤다.
단말기 스크린에 바위와 보 카드가 떠올랐다.
이건 완전히 랜덤한 상황 아닌가요?
만약 바위 두 장, 가위 두 장, 보 한 장이 있다고 가정하면…
2대 2대 1 상황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았다.
게임의 불확실성을 직접 체험해 보려는 의도였군요?
지휘관이 선택하자 남은 참가자들도 차례로 선택을 마쳤다.
단말기에 결과가 나타났다.
1번: 바위 2번: 가위 3번: 보 4번: 바위 5번: 가위
이번 라운드 결과: 3번 패배.
지휘관이 선택하자 남은 참가자들도 차례로 선택을 마쳤다.
단말기에 결과가 나타났다:
1번: 바위 2번: 가위 3번: 보 4번: 보 5번: 가위
이번 라운드 결과: 1번 패배.
행운이 따르네요. 원하시던 대로, 불확실한 상황이 완벽하게 구현됐어요.
다수에게 승리를 주는 방식이라... 규칙이 의외로 배려심이 있네요.
새로운 라운드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보유 중인 6개의 혈청 중 2개가 소진된 상태다. 앞으로 얼마나 더 필요할지 가늠할 수 없으니, 남은 혈청을 신중하게 써야 한다.
릴리스는 전신거울 앞으로 걸어갔다.
이런 순간에 옛 기억이 떠오르다니...
쓴웃음을 지으며,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다. 오래된 코팅으로 갈아입은 모습이 낯설다.
곁에 놓아둔 단말기가 다시 한번 울렸다.
내 생각에는...
릴리스는 단말기 쪽을 바라보았다.
이 게임은 단순히 운에만 의존하는 건 아닌 것 같아.
어? 무슨 뜻이죠?
게임은 라운드마다 정확히 1시간의 간격이 있어.
만약 우리가 계속 무승부를 만든다면, 시간을 벌면서 탈출구를 찾을 수 있어.
모두가 같은 카드를 내는 게 최선의 전략이야.
그렇게 되기는 정말 쉽지 않을 것 같네요.
맞아, 그래서...
방금처럼 계속 무승부로 게임을 끌어가야 해.
잠깐만요. 그 말은, 이번 라운드에서는 누군가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거잖아요?
농담이죠?
대단한 발상이군요!
게임을 룰렛처럼 단순화하면서도 전략성을 유지하는 방식이라니. 카드 선택의 심리전은 줄어들겠지만, 오히려 더 다양한 전략이 가능해졌네요.
저는 협력할 의향이 있어요. 하지만 이 게임의 특성상, 단 한 번의 배신이 모든 걸 뒤집을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 주세요.
첫 게임에서는 내가 패배를 선택할게.
그런 숭고한 희생정신을 굳이 한 번만 보여주실 필요는 없죠.
이 부담을 나눠 가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목숨이 걸린 게임이라면, 모두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결말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괜찮으시다면, 첫 번째 게임은 제가 져드릴게요.
릴리스는 단말기를 들어 올려 마이크에 입술을 가까이 한 채 목소리를 냈다.
우리 서로의 정체도 모르는데, 왜 신뢰해야 하죠?
저도 협력할게요. 다만, 3라운드까지 탈출구를 찾지 못하면 각자의 방법을 모색하는 게 어떨까요?
4대 1 상황에서는 다수의 편에 서는 게 현명해 보이네요. 저는 특별한 입장이니, 여러분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싶습니다.
통신이 잠잠해진 30초 동안, 릴리스는 보관함에서 진주 목걸이를 꺼내 조용히 목에 둘렀다.
그렇다면 반드시 탈출구를 찾아내세요.
참여자들 사이로 무거운 정적이 감돌았다.
릴리스는 마이크를 껐다.
공개 채널에서 협력을 제안한 건... 단순히 시간을 벌려는 게 아니었을 텐데.
이 시간을 이용해, 대체 무슨 일을 꾸미려는 거지?
릴리스는 혼잣말하며 옷장을 닫았다.
카드 테이블을 정리하며, 게임의 진행 상황과 참가자들의 정보를 체계적으로 다시 분석해야 했다.
그 순간, 옆 벽에서 둔탁한 충격음이 울렸다. 포크너가 구조체의 힘을 이용해 벽을 강타했지만, 벽은 흔들렸을 뿐 흠집조차 남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 하지 않았다. 불안정한 감정 상태가 변수이긴 했지만, 그만큼 의도를 파악하기 쉬운 인물이기도 했다.
반면, 라비오는 속내를 철저히 감추고 있었다. 직접적인 발언을 삼가며 은근히 다수 의견에 동조하는 태도를 보였다.
엘리너는 읽기 어려운 어투를 사용해, 쉽게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뭐 찾아낸 거 있어요?
라비오의 말에 생각을 멈추고, 단말기를 확인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10분.
이 벽을 제 힘만으로는 부술 수 없을 것 같아요.
다른 구역으로 가는 길도 잔해에 막혀버렸어요.
시간이 거의 다 된 것 같은데요?
저는 가위와 보가 나왔어요. 제가 가장 퍼니싱 농도가 낮았으니, 먼저 시작할게요.
이번 라운드 결과: 5번 패배.
이제 모두 같은 출발선에 선 건가요?
그 말은… 다음 차례엔 제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거네요.
맞아요. 이 방법대로라면 앞으로 두 시간은 안전하겠네요.
"라비오"는 의자를 테이블 위에 올려 임시 발판을 만들고, 그 높이를 이용해 환기구 덮개에 닿으려 했다.
덮개를 향해 강하게 힘을 주어 끌어당겼다.
위쪽에서 눈 부신 빛이 쏟아졌다. 라비오는 몸을 숙이고 환기구 속으로 조심스럽게 기어들어 갔다.
55분이 지났다.
전 가위와 보 카드가 나왔어요.
다른 참가자들도 신속하게 각자의 선택을 마쳤다.
이번 라운드 결과: 1번 패배.
긴장감이 흐르는 침묵 속, 대화는 점점 줄어들었다.
여러분, 상황에 진전이 있나요?
가능성은 발견했는데, 확인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해.
지붕에서는 다른 통로를 발견할 수 없었다. 설령 통로가 존재하더라도 무너진 벽면 속 퍼니싱에 가려져 있을 뿐, 다른 구역으로 이동할 방법을 찾기란 막막한 상황이었다.
각 구역의 환경은 제각각 달랐다. 애초부터 공정한 게임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휘관의 옆 구역에 있던 배신한 구조체인 포크너는, 1시간에 걸친 무력 탈출 시도를 결국 포기했다.
소음이 멎고 고요해지자, 차분히 상황을 되짚어보았다.
순간, 귀를 때리는 둔탁한 충격음이 울렸다.
종이책이 부딪치는 가벼운 소음과는 전혀 다른 위협적인 울림이었다.
방금 그 소리 들으셨죠?
큰 덩치 구조체가 힘 조절을 못 해서 넘어진 걸까요?
전 괜찮아요.
결과는 곧 드러날 수도, 아니면 더 기다려야 할 수도 있었다.
제 손에 들어온 건 가위... 그리고 보 카드네요.
제 카드도 동일해요.
우와, 저도 같은 보와 바위에요.
전 가위와 보에요.
그린스의 음성이 평소보다 약하게 울려 퍼졌다.
모두 보를 내면 무승부가 될 것 같아요.
전 카드를 선택했어요.
프로필 아이콘마다 확인 표시가 하나씩 떠올랐다.
1번: 보 2번: 보 3번: 가위 4번: 보 5번: 보
이번 라운드 결과: 1번, 2번, 4번, 5번 패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고, 단말기 화면에서 붉은빛이 눈부시게 빛났다.
포크너, 가위라니요? 이러면 계획이 틀어지잖아요.
방금 그건 총소리였어요.
그 특유의 총소리를 여러 번 들어본 경험상, 그 무기를 사용하는 세력은 대개 그 저주받을 조직과 연관되어 있어요.
포크너가 말한 조직은 쿠로노였다.
저기 큰 덩치, 지금까지 대화가 잘 되고 있었잖아요? 아무도 다치지 않은 상태라고요.
실제로 총성이 울렸다면, 전투용으로 개조된 당신이 가장 의심스러운 거 아닌가요?
대화가 걷잡을 수 없이 격해지기 시작했다.
라비오, 당장 가서 당신 입을 찢어버리고 싶네?
끝이에요. 더 이상 협력은 의미가 없어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세 차례 시도에도 해결책을 찾지 못했으니, 저도 이만 물러나겠어요. "평화주의자분", 안타깝게 됐네요.
포크너와 라비오는 통신 채널을 닫은 것 같았다.
결국 이런 협력관계는 오래 유지되지 못하네요.
개인 통신채널에서 온 음성이었다.
이제 곧 서로를 노리겠네요, "평화주의자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