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Affection / 이스마엘·환일·그중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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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마엘·환일·그중 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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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과거의 틈새에서 일어난 이야기다.

소녀가 자신의 <phonetic=시련>여정</phonetic>을 시작하고, 운명과 마주하기 바로 전날 밤.

그 밤은 그녀가 마지막으로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이것은...

시공간 여행자들의 이야기다.

시간: ■■■■

장소: ■■■■

■■: ■■■■

분홍 머리의 여인이 말없이 높은 곳에 서서, 다가오는 파멸을 바라보고 있었다.

알림음이 울리자 여인은 손목에 있는 장치에 표시된 파라미터를 확인했다.

???

시공간 파동? 이럴 수가...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확인하러 가기로 마음먹었다.

세상에 처음 태어난 것처럼 어둠 속에서 벗어나 눈을 떴다. 그리고 마주한 것은 이미 무너져버린 세계였다.

사방은 붕괴한 건물들로 가득했고, 대지는 계속해서 흔들렸으며, 빛은 끊임없이 변화했다.

하지만 이런 혼돈 속에서도 이상하게 마음은 평온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떠오르는 세 가지 의문...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간단한 생각마저 머리에 통증을 일으켰고, 희미하게 떠오르는 것은 붉은 "실"뿐이었다.

붉은 실이 미세하게 떨리며, 우주의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현의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우주의 서곡을 써 내려갔고, 마침내 영원한 종말을 맞이했다.

붉은 실 옆에서 누군가의 형체가 말없이 실을 정리하는 것 같았다.

쾅!

갑작스러운 폭발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바로 옆에 떨어진 건물 잔해가 이곳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당장은 안전한 곳을 찾아 피하는 게 급선무였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과연 안전한 곳이 남아있기는 할까?

???

이봐, 이쪽이야! 빨리!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분홍 머리의 여인이 모퉁이에서 다급히 뛰어나와 손을 흔들었다.

???

이 세계가 곧 무너져 내릴 거야!

분홍 머리 여인을 따라 뛰어가려 했지만, 겨우 두 걸음 옮겼을 뿐인데 바닥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단순히 몸이 약한 게 아니라, 정신이 이 몸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수많은 백그라운드 프로그램이 실행 중인 탓에, 과부하가 걸린 단말기처럼 몸의 반응이 한 박자 늦었다.

분홍 머리의 여인은 지휘관이 쓰러진 걸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달려와 손을 잡아주었다.

그녀의 손에 이끌려 모퉁이를 돌자...

금색 광문이 우뚝 서 있었다.

광문을 통과하자 눈앞의 풍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둘은 어느 고층 건물의 옥상에 서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펼쳐진 광경은...

바로 문명의 말로였다.

수많은 운석이 대기권을 뚫고 떨어지며 하늘에 붉은 궤적을 그려냈다.

행성에 생명을 불어넣어야 할 항성은 마치 숨이 끊어질 듯 깜빡이다가 사그라들기를 반복했다.

항성이 깜빡일 때마다 온 별하늘이 함께 요동쳤다. 별들과 은하수가 붉게 물들어, 천막을 뒤덮으며 불길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대지는... 이상한 중력에 찢기며 솟구쳤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자기장이 육안으로 보일 정도였고, 수많은 자성 재료가 끌려와, 지면 위에서 일그러지며 거대한 뱀처럼 휘감고 있었다.

???

단지 하나의 세계가 멸망하는 것뿐이야... 또 한 번의 끝이 찾아온 거지.

세찬 바람이 이스마엘의 머리카락을 흩날렸고, 드러난 그녀의 눈동자에는 깊은 슬픔이 담겨있었다. 마치 이 모든 광경을 영원히 기억하려는 듯, 그녀는 무너져가는 세계를 묵묵히 응시했다.

찰나 같으면서도 영겁 같았던 시간이 흐른 뒤, 그녀는 멀리 두었던 시선을 거두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이스마엘

내 이름은 이스마엘. 시공간 여행자야.

이스마엘

응.

시공간 파라미터의 파동을 감지하고 네가 이곳에 있는 걸 발견했어. 원래는 이곳에 아무도 없어야 하는데...

저 멀리서 다가오는 이상 현상을 보니, 머지않아 이곳도 멸망하게 될 게 분명했다.

이스마엘

난 돌아가야 해. 너도 돌아가는 게 좋을 거야.

이스마엘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스쳤다.

이스마엘

모른다고? 애초에 어떻게 여기 온 거야?

이스마엘이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이스마엘

시공간 여행의 부작용인가? 이런 경우는 처음 듣는데.

바람이 더욱 거세지자 이스마엘이 고개를 들었다.

이스마엘

혹시 시공간 여행 보조 장치는 있어?

이스마엘

시간 평면 파괴 및 공간 위치 복귀 보조 장치 말이야.

대답을 듣자 이스마엘은 잠시 고민하더니 손을 내밀었다.

이스마엘

내 손을 잡아!

이스마엘은 왼쪽 손목의 시계처럼 생긴 장치를 바라보았다. 파라미터를 확인한 뒤, 다시 이쪽을 바라보았다.

이스마엘

어서!

둥근 장치에서 푸른빛이 흘러나왔다. 그 빛은 마치 액체처럼 이스마엘의 몸을 감싸더니, 그녀의 손을 타고 이쪽으로 흘러와 몸 전체로 퍼져갔다.

마지막 순간, 눈앞의 별들이 회색으로 변하며, 순식간에 모든 것이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쿵!

몸이 바닥에 세차게 내동댕이쳐졌다. 주변의 풍경은 흐릿한 필터가 씌워진 것처럼 뿌옇게 보였고, 머릿속은 어지러움으로 가득했다.

뿌연 시야 속에서 정확히는 볼 수 없었지만, 어렴풋이 연구소처럼 보이는 곳에 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왜 임무를 조기 종료하고 다른 사람까지 데려온 거지?

누군가 다가와 물었다.

약 가져왔어요? 급하게 데려오느라 보조 장치도 없이 왔거든요.

여기 있어.

손 좀 들어봐.

손등에 뭔가가 붙여졌다.

입 벌려봐.

적응제야. 먹으면 지금 상태가 나아질 거야. 걱정하지 마.

입안에 들어온 캡슐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적응제를 삼키자, 시야가 또렷해지고 어지러움도 사라졌다.

이제야 제대로 일어나 주변을 살펴볼 수 있었다.

분명한 건 이곳이 연구소라는 점이었다. 뒤쪽엔 로봇 팔 같은 장치들로 둘러싸인 빈 공간이 있었다.

그 공간은 주변과는 달리 육각형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희미한 흰빛을 내뿜는 유리 같은 재질로 되어 있었다.

주변에 놓인 여러 조작 콘솔에서는 두세 명의 작업자들이 무언가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다소 무심했고, 방금 벌어진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했다.

저 멀리에도 비슷한 육각형 공간이 몇 군데 더 보였고, 그 주변으로도 똑같이 조작 콘솔이 설치되어 있었다.

시공간을 여행할 때마다 현실이 조금씩 달라지는데...

저기서 작업자들이 그 변화 데이터를 기록하고 있어. 아주 중요하고 복잡한 작업이라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하거든.

방금 말을 했던 그 여성이 조급한 목소리로 이스마엘의 설명을 끊었다.

왜 다른 사람을 데려온 거지? 규정에 어긋난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게다가 이번엔 종말의 해에 도착했다고 들었어.

이 사람도 시공간 여행자예요. 목표 지점에서 우연히 발견했어요.

하지만 그 말에도 여성의 굳은 표정은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

이스마엘은 잠시 설명을 멈추고 소개를 시작했다.

이분은 탑·3T형 선배님이야. 이 연구소를 처음 만들 때부터 참여했고, 지금은 우리 시공간 여행자들의 임무를 관리하고 있어.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을까?

목표 지점에서 임무 수행 중이었는데, 근처에서 시공간 파동이 감지됐어요. 그래서 확인하러 갔더니...

이스마엘이 설명하는 동안, 탑·3T형은 이상한 기계로 둘의 몸을 스캔했다.

스캔 결과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탑·3T형은 안도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스마엘이 앞서 있었던 일을 모두 설명하자, 탑·3T형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둘이서 하나의 시공간 여행 보조 장치로 이동하다니... 너무 무모했어.

모르는 사람 때문에 그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잖아.

그나마 다행인 건, 결과가 "침몰"이 아닌 "귀환"이네.

탑·3T형은 잠시 말을 고르더니 다시 한숨을 쉬었다.

처음 보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다니...

평소에도 네가 마음이 여리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연구소에서 다들 널 "착한 마엘"이라고 부르는 게 이해가 가네.

헤헤.

탑·3T형은 얼버무리려는 이스마엘을 더 이상 쳐다보지 않고, 이쪽으로 몸을 돌렸다.

시공간 여행으로 그곳에 갔다는 건, 너도 시공간 여행자라는 뜻일 텐데, 데이터베이스에서 찾아보면 너의 정보가 있을지도 모르겠네.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오게 돼서, 아직 신원 확인은 안 됐지만...

"라니우스" 연구소에 온 걸 환영해.

응, 말했다시피 여긴 시공간 여행을 연구하는 기관이야.

이스마엘이 안내해 줄 거야. 당분간 이곳에 머물러.

그러고는 다시 이스마엘 쪽으로 돌아섰다.

난 그럼 이만. 마엘, 이... 손님 잘 챙겨.

탑·3T형은 말을 멈췄다. 방문자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탑·3T형의 눈썹이 더욱 깊게 찌푸려졌다.

불청객이라고 해두지.

탑·3T형은 이스마엘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또 야근이네" 하는 체념이 묻어나는 뒷모습이었다.

탑·3T형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이스마엘이 이쪽을 바라봤다.

기억나는 거 하나도 없어?

이름도?

이스마엘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럼 내가 코드네임 하나 지어줄까? 네 이름이 기억날 때까지만 임시로 부를 호칭 말이야.

음...

이스마엘은 고개를 숙이고 진지하게 고민하며 중얼거렸다.

고구마... 아니 아니... 쿠쿠로... 아니면 크슈...

아, 생각났다!

이스마엘은 갑자기 손뼉을 치며 고민을 끝냈다.

널 데려올 때 성운이 회색이었어. "그레이 레이븐"은 어때?

사익백아가 행운을 가져다줄 거야.

어때? 괜찮지 않아?

잠든 기억이 깨어나려는 듯했다. 잔잔한 수면에 파문이 일었지만, 순식간에 다시 고요해졌다.

왜? 별로야?

뭐 기억나는 거라도 있어?

괜찮아, 천천히 해보자. 언젠가는 기억날 거야.

자, 따라와. 휴게실로 안내해 줄게.

연구소 밖으로 나가면서 이스마엘에게 이곳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위상 전송 광막, 흔히 말하는 포털이야. 이것도 기억 안 나?

전송 기술은 이미 충분히 발달했어. 이 시대에선 그야말로 상식 수준이지...

생각보다 많은 걸 잊어버린 것 같네.

시간 평면 파괴 및 공간 위치 복귀 보조 장치야.

보통은 시간 여행 보조 장치나 그냥 전송 보조 장치라고 부르기도 해. 편한 대로 불러.

시간 메인 장치랑 연결돼야 해.

이스마엘이 생각을 읽은 듯 씩 웃었다.

이번엔 공식 명칭은 생략할게.

메인 장치는 초고성능 지능형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작동하는데, 모든 보조 장치의 데이터가 저장돼 있어.

시간 보조 장치는 "줄"같은 거야. 한쪽은 메인 장치에, 다른 한쪽은 시공간 여행자에게 연결되지.

시공간 여행자가 "라니우스"로 돌아와야 할 때, 이 "줄"이 그 시공간 여행자를 끌어당기는 거야.

순간 시야가 흐려졌다가 금방 선명해졌다. 무언가가 반짝 스친 것도 같았다.

이스마엘의 표정은 변함없었다. 아무 이상도 느끼지 못한 듯했다.

시간 여행의 부작용인가?

탑·3T형이 복도를 걸으며 지능형 컴퓨터 "고요"를 호출했다.

"고요", "라니우스" 내부 인사 자료 좀 띄워줘.

삐삐...

그때 메시지 하나가 들어왔다.

탑·3T형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종말의 해"에 갇혔다고?

이스마엘을 따라 걷다가 복도를 돌자, 대형 스크린이 눈에 들어왔다. 화면 주변으로는 복잡한 데이터 스트림들이 빛줄기처럼 흘러내리고 있었고, 정중앙에는 붉은색 큰 숫자가 떠 있었다.

이스마엘은 가리킨 곳을 바라보다가 그 숫자를 발견했다.

잠시 침묵하더니, 목소리가 한층 무거워졌다.

종말의 해야.

이 세계가 멸망하게 될 연도지.

머지않은 미래에 세계가 멸망을 맞이하게 돼. "라니우스"의 목적은 시간 여행을 통해 그 미래를 바꾸는 거야.

그래.

얼마 전 목격했던 세계의 종말을 떠올리자 "고통"이라는 감정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마치 전에도 비슷한 광경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건...

웅...

옆에 있던 육각형 플랫폼에서 이상한 소리가 울렸다.

쿵!

곧이어 누군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옆을 돌아보니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시공간 여행자가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남성 시공간 여행자

빨리... 콜록콜록...

남성 시공간 여행자는 짧게 외치더니 기침을 시작했고, 선홍빛 피를 토해냈다.

이어서 마지막 힘을 다해 절규했다.

남성 시공간 여행자

도망쳐요! 놈이 오고 있어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파악하기도 전에, 연구소 전체에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