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서명하시면 이 재료는 여러분 거예요.
이번 축제 규모가 예상을 크게 웃돌면서 식재료를 일반 시민용 가판대에 우선 공급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많이 드리지 못하게 됐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익숙한 스태프와 작은 수송 카트가 지휘관의 눈에 들어왔다. 도로 건너편을 바라보니 축제 준비가 한창이었고, 사방에서 모여든 방문객들이 점점 늘어나는 게 보였다.
확인하고 서명하자 예비 식재료가 카트 위에 실렸다.
사람들이 이렇게 즐거워하는 걸 보니, 오늘 추가 근무하는 보람이 있네요.
힘내세요. 저도 나중에 동료들 몇 명 데리고 여러분 가판대에 가서 응원할게요.
가판대로 돌아가는 길에 팔지가 푸드 트럭을 질서 정연하게 준비하는 모습이 멀리서 보였다.
몇 개의 로봇 팔이 능숙하게 움직여 수납함에서 수제 장식품을 꺼내 이 공간을 순식간에 꾸미고 있었다. 그리고 지나가던 행인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구경하고 있었다.
팔지는 고개를 숙이고 주변을 정리하고 있다가 지휘관이 다가오자 고개를 들어 인파 속에서도 단번에 지휘관을 알아챘다. 그 속도가 놀라울 정도로 빠른 반응이었다.
이게 다야? 종류가 좀 적은 것 같은데.
그래도 괜찮아. 다들 받을 수 있으면 됐어.
이 재료로 뭘 만들 수 있는지 봐야겠어. 더 늦으면 준비할 시간이 모자랄 거야.
음... 이거밖에 안 되겠는걸.
팔지는 재고의 재료를 확인한 뒤 레시피를 가리켰다.
어. 다른 건 재료가 부족해서 이걸로 해야겠어.
팔지가 말하는 동안 로봇 팔이 화로, 틀, 기존 재료를 포함한 모든 필요한 도구를 순식간에 준비해 놓았다.
어서 일하자. 그러니 와서 좀 도와줘.
지휘관은 팔지가 들고 있는 레시피를 보면서 적힌 대로 반죽을 만들었다. 상세하게 적혀 있긴 하지만 글씨체가 너무 거칠어서 어떤 단계는 알아보기 힘들었다.
어디 보자. 어...
역시 서예부와 같이 연습 좀 할걸.
여러 번 시도해 보자. 하다 보면 잘될 거야.
여섯 개의 다코야키가 여섯 로봇 팔의 뒤집는 동작에 맞춰 모양을 갖추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배 모양의 종이 상자에 가지런히 담겼다.
팔지가 그중 하나를 꼬치로 집어 먼저 맛을 봤다.
팔지의 표정은 크게 변하지 않은 채, 그저 입을 오물거리며 천천히 씹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맛이랑은 좀 달라.
너도 먹어볼래?
팔지는 종이 박스에서 향이 솔솔 나는 다코야키 하나를 꼬치로 찔러 지휘관 입에 가져다 댔다.
조심스레 한입 베어 물자마자 입안에서 매운맛이 가득 퍼졌다.
매운 기운이 코로 치솟았고, 뭔가 강한 양념이 입안을 공격하는 것 같았다.
오! 당첨이구나!
팔지는 재빨리 벚꽃 탄산수 한 병을 따서 지휘관 앞에 내밀었다.
이건 그때 동아리에서 정한 거야. 첫 다코야키에 고추냉이를 넣어서 먹을 때 깜짝 놀라게 하자고 말이야.
이러면 오늘을 잊고 싶어도 못 잊을 거잖아.
그래서 방금 만들 때 네가 한 번 맛보게 하고 싶었어.
미안. 내가 장난이 좀 심했나?
남은 것들도 먹어봐. 이제 고추냉이 맛은 없을 거야.
그런 표정 짓지 마. 진짜 없어. 내가 먼저 먹어볼까?
팔지는 연달아 두 개 더 먹더니 만족스럽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맛이 아직도 부족한데.
팔지는 레시피를 몇 번이나 뒤적거리다가 흐릿한 글씨에 짜증 난 듯 눈썹을 찌푸렸다.
알았어. 우리 둘이 꽤 맞는 것 같아. 더 해보자.
반죽 비율을 다시 조정하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이 가판대 앞에 멈춰 섰다.
그는 가판대 앞에 있는 동전 투입 로봇을 만졌다. 그건 육상부원 미유키의 작품이었다.
바쁜 와중에 고개를 들어보니 한 노인의 온화한 미소와 마주쳤다.
소문에 너희도 가게를 차렸다고 해서 한 번 보러 왔어.
오, 모리타 아저씨! 어서 와!
하하하, 다코야키를 만드는구나. 나도 이걸로 시작했었지.
하나 줘볼래? 내가 한 번 먹어보고 도움 될 만한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모리타 아저씨는 방금 만든 다코야키 하나를 집어서 입에 넣고 천천히 맛을 봤다.
어때?
음, 기본 맛은 괜찮은데, 반죽에 피시 소스를 넣어보는 건 어떠니?
그리고 전체적으로 맛이 좀 심심한데, 가다랑어포는 써봤니?
아직. 그건 어떻게 넣을까?
간단해. 다코야키가 다 구워지면 바로 위에 뿌리기만 하면 돼. 마요네즈도 발라주면 좋아. 맛의 깊이가 더해지거든.
고마워. 한번 해볼게.
지휘관은 모리타의 제안을 들은 팔지와 함께 다시 호흡을 맞춰 다코야키를 만들기 시작했다.
모리타는 온화하게 웃으며 흰 수염을 쓰다듬더니 푸드 트럭 안의 여러 물품들을 둘러봤다.
팔지야, 이런 물건들은 다 어디서 찾았니?
동아리실. 방금 학교에 다녀왔거든.
이것들도 팔 생각이니?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사가도 좋아. 어차피 이 물건들도 원래는 문화제에서 팔려고 했던 거니까.
팔리면 소원 성취하는 거고, 안 팔리면 밖에 나와서 신선한 공기 마시러 온 걸로 치면 되지.
그렇구나. 이런 걸 좋아할 만한 사람들을 내가 몇 명 아는데... 몇 개만 가져가도 될까?
응. 괜찮아. 하지만 망가뜨리진 마. 상대가 원하지 않으면 돌려줘야 해.
그럼, 이 카트도 잠깐 빌려도 될까?
하하하, 괜찮네. 그럼, 방해하지 않게 이만 가보겠네.
모리타가 수제품들을 카트에 올려두고 천천히 인파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사이 지휘관과 팔지는 새로운 다코야키를 마침내 만들어냈다.
갓 구운 다코야키는 황금빛 색깔을 띠고 있었다. 팔지는 마요네즈를 바르고 가다랑어포를 뿌린 뒤, 하나를 꼬치로 찍어 다시 시식을 시작했다.
음...
바로 이 맛이야!
네가 만든 마요네즈 맛도 아주 좋아. 어서 먹어봐.
지휘관이 대답할 틈도 없이 팔지는 새로 만든 다코야키를 재빨리 꼬치로 집어주었다. 그러자 풍미 가득한 향이 코끝에 닿았다.
팔지에게서 꼬치를 받아 공들여 만든 다코야키를 음미해 보았다.
팔지가 꼬치를 잘 잡아주어 바삭하고 쫄깃한 겉면을 쉽게 베어 물 수 있었다. 그렇게 정성 들여 만든 다코야키의 맛을 천천히 음미했다.
지휘관이 눈을 반짝이자 팔지도 기쁜 표정을 지었다.
이어서 팔지는 손을 들었다. 그녀의 의도는 분명했고, 지휘관의 반응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경쾌한 손뼉 소리와 함께 팔지와 지휘관은 어려움을 극복했고, 이제 포장마차가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멀리서 카트의 바퀴 구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신나 하는 모리타 아저씨가 가판대로 돌아왔다.
모리타 아저씨! 잘 오네. 이제 음식도 준비됐고, 아저씨 주려고 한 접시 남겨뒀어.
어? 카트에 재료가 왜 이렇게 많이 쌓여있지?
그 수공예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서 이 재료와 교환하고 싶다고 전해 달라는구나. 어떠니?
팔지는 새로 온 재료를 살펴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들의 영업에 영향은 없어?
몇몇 가판대 주인들은 그 황금시대의 소품들을 아주 마음에 들어 해서 각자 재료를 좀 모아서 나한테 전해 달라고 했단다. 이 정도면 그 사람들에게는 영향이 없을 거다.
그럼, 잘됐네. 이 재료들 대부분 다른 간식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들이야.
지휘관, 어떻게 생각해?
좋아. 그럼, 받을게.
아. 그리고 조심히 다뤄 달라고 전해 줘. 특히 미유키의 꼬마 로봇은 내가 직접 수리한 것이라 손상되기 쉽거든.
알았다. 둘은 계속 준비할 건가? 그럼, 카트는 여기 두고 난 먼저 갈 테니...
잠깐만. 모리타 아저씨. 이 다코야키도 가져가.
하하하, 고맙구나. 너희들도 즐거운 축제 되렴!
축제 시작까지 10분 남았다. 시간을 확인한 팔지는 지휘관을 한번 쳐다봤다.
주위의 대화 소리가 조금씩 시끄러워지는 가운데, 팔지가 지휘관에게 주먹을 내밀었다.
이제 축제가 개막돼.
오늘 밤 함께 힘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