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부 교실을 나온 후, 팔지는 지휘관을 데리고 익숙한 듯이 육상부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이곳은 운동장과 멀지 않았지만, 실내 공간은 확실히 작았다. 팔지는 안으로 들어가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졌다.
금속 선반은 동아리의 업적으로 가득했다. 트로피가 가장 위층에 있었고, 그 아래로는 메달들이 있었으며, 몇몇 단체 사진들도 정성스럽게 액자에 넣어 가장 눈에 띄는 곳에 놓여 있었다.
정중앙의 사진은 팔지와 부원들이 시상대에서 함께 하이 파이브 하는 순간을 포착하고 있었다. 넘치는 활기와 빛나는 표정이 그 순간 속에 생생히 남아있었다.
왼쪽에는 그들이 운동하는 모습을 찍은 여러 장의 사진이 그리고 오른쪽에는 그들이 여가 시간에 장난치고 동아리 회식하는 모습들이 있었다.
사진에서 순수한 즐거움이 감도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구조체는 지휘관에게 등을 돌린 채 캐비닛의 그림자 아래서 무언가를 뒤적이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오늘까지의 모든 만남 동안 팔지가 사진 속처럼 밝게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이런 것들을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퍼니싱이라는 재난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세월이 흘러 팔지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었을까?
찾았다.
갑작스러운 팔지의 목소리에 지휘관은 끝없는 환상에서 깨어났다.
역시 내 기억이 맞았어. 여기 있었네.
팔지는 말하며 캐비닛 옆쪽 그림자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갔다.
한번 맞춰봐?
팔지는 머리를 내밀어 지휘관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뒷면에 있는 로봇 팔은 여전히 어둠 속 깊은 곳을 수색하고 있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려. 오, 찾았다. 와서 좀 도와줘.
어두운 구석에 먼지가 흩날리며, 금속이 바닥을 긁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이내 팔지의 로봇 팔이 무거운 상자 하나를 조금씩 끌어당겼다.
지휘관은 다가가서 팔지와 함께 양쪽을 들어 올린 뒤, 묵직한 상자를 교실 중앙으로 옮겼다.
팔지는 쪼그리고 앉아 상자의 먼지를 닦아내고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자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스크린이 나타나면서, 파란 형광이 그녀의 얼굴을 비췄다.
음, 내 기억이 맞다면, 비밀번호는 이걸 거야.
손가락이 가상 스크린 위에서 빠르게 움직였다. 스크린에 별표 입력이 완료되자, 스크린이 초록색으로 반짝이더니 딸깍 소리와 함께 잠금장치가 자동 해제되었다.
이럴 줄 알았어. 이 녀석들, 동아리 창립일을 비밀번호로 사용한 게 한두 번이 아니거든.
모두.... 써보지도 못하고 남은 아쉬움이야.
이거 봐.
팔지는 상자에서 수작업으로 만든 조명 판 하나를 꺼냈다. 그녀가 그것을 만지자 희미한 빛이 깜빡이며 켜졌고, 빛으로 이루어진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어. 이건 우리가 그해의 학교 축제를 위해 준비했던 거야.
이건 유키무라가 직접 디자인한 홍보 간판이야. 위에는 우리 동아리 구호가 적혀있지.
맞아. 바로 그거야.
"동창아, 달려보자!"
혼자서 이런 열혈 대사를 외치니까 좀 이상한 것 같네.
그리고 이건, 미유키가 특별히 만든 미니 동전 투입 로봇이야. 물건을 넣으면 자동으로 좋은 말을 해줘.
"후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장님 멋져요~"
뭐 이런 거.
팔지는 상자에서 이런저런 물건들을 꺼내 소개하면서 계속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사실은 이걸 찾으러 온 거거든...
팔지는 힘을 주어 상자의 틈새에서 노란 천 뭉치를 꺼냈다.
반짝이는 줄무늬 천막이었는데 팔지가 살짝 털자 먼지가 눈송이처럼 흩날렸다.
어. 갑자기 비라도 오면 축제가 곤란해질 테니까.
많으면 많을수록 좋잖아.
팔지는 방수포를 조심스럽게 접어서 옆에 둔 뒤, 다시 여러 보물이 담긴 사물함을 바라봤다.
그런데 말이야.
고개를 든 팔지가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내가 뭘 준비했을 것 같아?
거의 비슷해. 정답에 가까워.
내가 야구를 하긴 했지만, 네 말에는 뭔가 다른 뜻이 있는 것 같네.
팔지가 깊숙이 더 뒤적이더니 결국 책자를 꺼냈다.
정답은 너한테만 말해줄 테니까 다른 사람한테는 말하면 안 돼.
팔지가 책자를 펼치자 거친 필체로 쓰인 글씨가 보였다.
맞아. 그때는 전자책 같은 거 싫어해서 일부러 종이에 적었어.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데이터 패드에 저장했었다면 벌써 망가졌을 거야. 내가 꽤 선견지명이 있었군.
사실 그렇게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야. 그냥 육상부의 명예를 지키고 동창들이 후회 없게 하고 싶었을 뿐이야.
문화제 때 학교에서 학생들의 평가로 가장 인기 있는 동아리를 뽑았거든.
생각해 봐. 육상부가 밖에다 가판대를 차려봤자 보여줄 게 뭐가 있겠어?
학생들은 겉보기에 화려한 인기 동아리... 만화부나 게임부 같은 데를 더 좋아했을 거잖아.
그래서 내가 생각해 낸 방법이 육상부 자리에 요리 노점을 차려서 인기를 얻어보자는 거였어.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부원들은 다... 아무튼 요리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어.
그래서 난 처음부터 천천히 배우기 시작했어. 요리부 동창들도 다들 기꺼이 도와줬고 말이야.
그랬을지도. 나중엔 모리타 아저씨한테 부탁해서 붕어빵 레시피도 전수받았어. 그 대가로 골치 아픈 일도 많이 해결해 줬지.
응. 말 자르지 마.
모리타 아저씨가 들려준 과장된 이야기가 생각났는지, 팔지는 찡그린 표정으로 로봇 팔을 뻗어 살짝 찌르듯 건드렸다.
아무튼 많은 노력 끝에 문화제 시작 전까지 내놓을 만한 요리 몇 가지를 배울 수 있었어.
별거 아니야. 그때는 문화제를 기대하는 부원들을 실망하게 하지 말아야겠다고만 생각했으니까.
팔지가 고개를 숙이며 누렇게 변한 종이를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문화제 전날, 바다에서 갑자기 태풍이 왔어.
문화제는 취소됐고, 그 이후로는...
팔지는 눈을 감고, 모든 꿈을 무너뜨렸던 그 재난에 대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처음엔 그저 보통 비라 생각해서 천막만 치면 될 줄 알았던 거지. 누구도 그렇게 될 줄은 몰랐어.
인공섬의 날씨는 항상 변덕스러워서 큰비가 자주 내렸거든. 이번 축제도 다들 오래 준비했으니까, 폭우 때문에 또 망치고 싶지 않아.
그때는 못 했으니, 오늘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아.
날씨야 내가 어떻게 할 순 없지만, 그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에 할 수 있는 건 다 준비해서 두고 싶어.
응. 네 말이 맞아.
낡은 동아리실에서 이곳의 주인이었던 팔지가 이곳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다시 빛을 본 물품들이 팔지 앞에 놓여있었고, 그녀는 그것들을 그리움 가득한 표정으로 만지작거렸다.
찾아야 하는 물건은 다 찾았기에, 팔지는 천천히 이 물품들을 수납함에 다시 넣었다. 하지만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무슨 일이야?
팔지가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지휘관의 눈을 바라봤다.
무슨 뜻이야?
이미 준비된 거리, 준비된 행사, 준비된 축제가 있었다.
밖에서 불어온 바람이 책자의 페이지를 휘날렸고,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순식간에 팔지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팔지는 손을 들어 짝하는 소리와 함께 시원스럽게 지휘관과 하이 파이브를 했다.
좋아. 우리 같이 하자.
좋아. 난 네가 얘기하는 동안... 잠깐 나갔다 올게. 금방 돌아올 거야.
축제 스태프와 간단하게 대화를 나눴고, 그는 적극적으로 가판대 하나를 내주었다.
쿨럭, 저기... 뒤돌아볼래.
단말기를 내려놓자마자 뒤에서 익숙하면서도 밝은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 [player name] 동창.
팔지는 검은색 제복을 입고 있었고, 빨간 넥타이가 미풍에 살랑거렸다.
팔지의 눈동자는 맑았고 기운찬 분위기를 풍겼다. 마치 진짜 여고생이 지휘관 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비슷해. 기억을 더듬어서 커스텀한 코팅인데, 공중 정원에서 가져왔어.
어때? 그리고 가판대는 구했어?
팔지는 이번에 가져온 여러 물품을 들고 지휘관을 보더니 조용한 밤거리가 보이는 창밖을 가리켰다.
하늘가의 저녁노을이 완전히 사라지면서 끝없이 펼쳐진 밤하늘에 별들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럼, 출발할까?
좋아. 이번에는 실컷 해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