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가 학생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호기심 많고 창의적인 집단이라고 했다.
그들은 정해진 길에서 늘 자신들만의 길을 찾아내고 개척하곤 했다.
여기야. 벽 옆에 움푹 파인 곳이 있는데, 여길 밟고 올라가면 돼.
팔지의 안내대로 담장을 올랐다. 발밑의 담장은 붉은 칠이 벗겨져 있었고, 모서리엔 벽돌이 드러나 있는 것이 오랜 세월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었다.
지각한 학생들은 정문으로 가면 규율 위원한테 걸리니까, 담 넘는 게 훨씬 편했지.
담장에서 뛰어내리자 무성한 잡초가 자란 비탈길이 나왔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보니 멀리 학교 건물이 희미하게 보였다.
지휘관이 안전하게 착지하는 걸 본 팔지는 담장 밖에서 훌쩍 뛰어올라 담벼락을 잡고 힘차게 밀더니, 가볍게 담을 넘어 지휘관의 옆에 착지했다.
그야... 예전에 여기서 잠복하면서 넘어오는 애들을 잡았으니까.
여긴 교칙 위반이 자주 일어나는 곳이라 기다리기만 하면 무조건 잡을 수 있었어.
정원 고등학교의 규율 위원이었던 팔지는 귀한 경험담을 공유하며, 뒤에 있는 낮은 벽을 가리켰다.
방금 만난 모리타 아저씨가 예전에 저 담 너머에서 간식 장사를 했었거든. 다들 너무 맛있어서 점심시간마다 참지 못하고 여기로 사러 왔었어.
학교가 도시락은 허용했지만 점심시간에 외출은 금지였거든. 그래서 이것도 교칙 위반이었지.
근데 모리타 아저씨의 간식이 진짜 맛있었는데...
뭐야, 아무도 규율 위원은 식욕과 싸워야 한다고 말해주지 않았다고.
팔지는 그렇게 말하며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면서 로봇 팔로 나뭇가지를 밀어내면서 지휘관에게 길을 만들어줬다.
문득 지휘관도 벽을 넘은 학생이 된 것 같았다. 그리고 팔지가 규율 위원으로서 감싸주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모리타 아저씨랑 상의해서 교내 매점이랑 협력하게 연결해 줬어. 가게를 학교 안으로 옮기게 된 거지.
대부분 학생들은 찬성했지만, 학교 공간이 워낙 귀해서 선생님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
그래서 친구들과 같이 선생님하고 내기를 했어.
육상부가 정원 고등학교 대표로 섬 일주 장거리 달리기 대회에 나가서 우승하면 학생들 요구를 들어주기로 말이야.
당연하지. 마지막에 치열하긴 했지만, 아슬아슬하게 우승 트로피를 따냈어. 그래서 동창들이 모리타 아저씨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됐지.
쿨럭, 아무튼 결과가 다 좋았어! 공적으로 사사로운 이익을 봤다고 하긴 좀 그렇겠지?
네가 하는 말투가 학교 선배 같네.
칭찬 고마워. [player name] 동창.
쿨럭.
[player name] 동창, 규율 위원을 계속 쳐다보는 것도 사실은 교칙 위반이야.
당연하지. 이 길은 내가 처음 발견했고, 밖에 있는 그 구덩이도 내가...
윽...
팔지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봤다. 하지만 지휘관의 시선은 피했다.
시선이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결국 "그냥 물어봐"라는 듯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처음엔 나도 규율 위원이 아니었어. 가끔 지각할 때 규율 위원을 피하려고 이런 지름길을 많이 봐둔 거야.
고개를 옆으로 돌린 팔지는 추억을 떠올리며 검지로 머리카락 끝을 만지작거렸다.
근데 규율 위원들이 자꾸 이런저런 이유로 벌점을 매기니까 짜증 나서, "이길 수 없다면 차라리 내가 들어가자" 하는 생각으로 신청했더니 날 받아줬어.
그 뒤로 난 어쩔 수 없이 솔선수범해야 했어. 그 녀석들이 예전 일을 들먹이면서 날 놀리지 못하게 하려고 말이야.
규율 위원 쪽에서도 나 같은 실력파가 필요했던 때라 잘 맞아떨어졌었던 거지.
처음엔 적응이 잘 안됐는데, 학교 분위기가 점점 좋아지는 걸 보니까 나도 좀 자부심이 생기더라고.
결과적으로 이렇게 됐으니까 나쁘진 않았어. 교칙 위반하는 녀석들 잡는 건 식은 죽 먹기였으니까.
그렇게까지는 아니었을걸? 내 동기가 그렇게 고상하진 않았으니까. 그냥 시간 보내고 귀찮은 일 피하려고 한 거였어.
근데 나중에는 시간 보내기만은 아니게 됐어. 귀찮은 일이 하나씩 계속 생기더라.
당연하지. 그렇지 않았으면 위에서 날 너랑 같이 보냈겠어?
이야기를 나누며 전진하다 작은 숲을 빠져나오자 높은 담장이 눈앞에 나타났다. 이 지름길은 과연 소문대로 학교 건물까지 가는 가장 짧은 경로였던 것이다.
팔지가 앞장서서 걸으며 학교 건물 정문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굳게 닫힌 문을 천천히 밀어 열고 어둑한 실내로 발을 들였다.
석양이 유리창을 통해 실내로 비춰 들어왔다. 공간 전체가 오랜 세월 쌓인 먼지로 뒤덮여 있어서 회색 베일을 씌운 것만 같았다.
눈앞에는 얕게 파인 현관이 있었고, 양쪽으로는 잘 정리된 신발장이 놓여있었다.
문가에 선 팔지가 한 손을 허리에 올리고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체념한 듯 어깨를 으쓱이고는 지휘관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어. 근데 이제는 필요 없을 것 같네. 복도가 이렇게 더러운데.
걱정 마. 이 규율 위원이 보호해 줄 테니까 그냥 올라가도 돼.
팔지가 신발장 앞에 가서 쌓인 먼지를 닦아내자, 명패에서 팔지라는 이름이 드러났다.
이어서 딸깍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먼지가 흩날리면서 햇살 속에서 반짝였다.
아무것도 없어. 예전이랑 똑같아.
어떤 이들은 신발장에서 동창들의 연애편지를 받기도 했거든.
난 운이 좋아서 한 번도 그런 귀찮은 걸 받아본 적이 없었어.
받았어도 어차피 거절했을 거야. 어린아이들 장난일 뿐이니까.
너는? 학교 다닐 때 연애편지를 받아본 적 있어?
역시 전설의 공중 정원 인기왕.
근데 생각해 보니, 내가 그 입장이었어도 하나쯤은 넣었을 것 같아.
쿨럭, 내 말은 도전장 같은 거 말이야.
그럼, 나랑 똑같잖아.
근데 네가 그런 집념이 있다면, 내가 롤 플레잉 해줄 수도 있어. 네 인생의 업적을 하나 채워주는 거지.
자, 이제 여기서 그만 있자.
찾는 물건은 이 층에 있을 거야. 따라와. 여기서 제일 큰 교실을 보여줄게.
나무로 된 문에는 화려한 무늬가 조각되어 있었고, 한쪽에 걸린 도금된 문패에는 금색 폰트로 "음악부 활동 교실"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팔지가 대문을 밀자 경첩에서 둔탁한 신음 소리가 났고, 이내 넓은 실내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팔지는 들어가자마자 곧장 악기 캐비닛으로 달려갔다. 로봇 팔이 튀어나와 보관함 문을 순식간에 열었는데, 그 동작이 너무나 능숙해서 이곳이 처음이 아닌 것 같았다.
팔지를 따라 교실로 들어가자 시선이 옆에 있는 피아노에 끌렸다. 손가락으로 쌓인 먼지를 문질러보니 세월의 두께가 손끝에서 느껴졌다.
그러면서 과거로부터의 음악과 노랫소리가 은은하게 울리는 듯했다. 이곳은 평화로운 노래가 울려 퍼지던 곳이었을 거였다.
챙챙챙.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겹쳐 들리며 적막을 깨뜨렸다. 그것은 캐비닛에 파묻혀 있던 팔지에게서 나는 소리였다.
두 개의 로봇 팔이 팔지가 찾아낸 몇 개의 금속 지지대를 뒤에서 받아서 들었고, 그녀는 계속해서 다른 곳을 뒤지고 있었다.
수납장 틈새, 통풍관 내부, 대형 악기의...
규율 위원의 오랜 물건 찾기 경험으로 말하자면 뭐든 가능해.
옛날 영화에서 보면 킬러들이 총기를 분해해서 기타 케이스에 넣잖아. 좀 구식이긴 해도 실용적이지.
봐. 이 난방기 뒤에 하나가 있네.
저녁노을이 조금씩 사라지고, 한참을 바쁘게 찾아봐도 평범해 보이는 지지대만 몇 개 찾을 수 있었다.
음... 가장 중요한 건 여기 없지만, 이것들을 찾은 것만으로도 나름 성과가 있었어.
여기는 원래 육상부 활동실이었거든.
근데 나중에 음악부가 뺏어갔어. 육상부는 실내 활동이 별로 없는데 이렇게 큰 교실을 차지하고 있느니 자기들한테 달라고 말이야.
반박할 수 없는 말이었어. 하지만 그때는 부원들이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음악부와 한참을 실랑이했었어.
결국엔 학교가 음악부 의견을 받아들여서 우리 두 동아리의 교실을 바꾸게 됐지.
근데 우리도 반격할 방법이 있었어. 봐봐. 이 교실이 운동장이랑 가깝잖아. 그래서 걔들이 리허설을 시작하면 우리는 트랙에서 구호를 외쳐서 연주 소리를 덮어버리겠다고 맹세했어.
팔지가 창밖을 가리키자, 운동장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팔지의 행동은 무척이나 세심했다. 이리저리 옮겨진 악기들을 로봇 팔로 조심스럽게 제자리에 되돌려놓고, 어질러진 수납장도 빠르게 원상복구 시켜서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것처럼 해놨다.
교실이 원래대로 돌아가자 로봇 팔도 다시 거둔 팔지는 피아노 옆으로 가서 기대섰다.
간단해. 우린 화해했거든.
한 번은 걔네 동아리 애들이 밖에서 괴롭힘을 당하는데, 지나가던 우리 부원 한 명이 보고 달려가서 괴롭히던 녀석들을 다 쫓아버렸어.
그 일 이후로 우리는 진지하게 대화를 나눴지. 서로 오해도 풀고 반성도 하고 나니 더 이상 대립할 필요가 없게 된 거야.
이걸로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음악부가 보답하겠다고 나중에 운동회 때 관중석에서 우리를 응원해 준 적이 있어.
이렇게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다들 웃으면서 화해하게 됐지.
우리 쪽에 들어가지 않는 물건들은 여기로 옮겨놨거든. 그래서 우리가 찾는 게 여기 있을 거라고 말한 거야.
복잡했던 감정들이 차분한 설명 속에 녹아들어 있었다. 팔지는 주위를 둘러보며 생생했던 그때를 되돌아보는 것 같았다.
팔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육상부원들이 목청껏 외치는 구호와 교실 안에서 빨개진 얼굴로 외부의 소음 속에서 자신들의 멜로디를 찾으려 했던 음악부원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다행히 이 완전히 다른 두 리듬은 대부분의 청춘 코미디처럼 마지막엔 조화로운 화음으로 어우러졌다.
맞아. 게다가 음악부 부장이 나한테 피아노 치는 법도 가르쳐줬어. 들어볼래?
미리 말해두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다른 이 앞에서 한 번도 쳐본 적이 없어. 네가 첫 번째야.
너무 복잡한 건 못 쳐. 간단한 음악 이론하고, 악보를 겨우 읽을 수 있는 정도라...
피아노 앞에 앉은 팔지가 피아노 덮개를 열고 흰 건반을 시험 삼아 눌렀다.
띵...
그런 다음 길게 숨을 내쉬고는 벽에 걸린 교가 악보를 보며 천천히 건반을 눌렀다. 그러자 음악 소리가 교실 안에 울려 퍼졌다.
처음에는 띄엄띄엄 더듬거리던 연주가 조금씩 부드러운 멜로디로 변했다.
팔지의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춤추듯 움직이면서 수년 전의 모든 것을 더듬어가며 연주했다.
팔지는 지휘관을 등지고 피아노 오른쪽 건반에 집중했다. 옆의 텅 빈 자리에는 분명 그녀의 동창이 앉아 있었을 것이다.
육상부든 음악부든, 팔지의 과거를 이루는 이 모든 것들이 이제 그녀 영혼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석양에 길게 늘어진 팔지의 가녀린 그림자는 지휘관과 단 한 걸음 거리였다.
천천히 팔지의 옆에 앉은 지휘관은 손을 들어 건반을 눌렀다.
교가의 멜로디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다. 단순하지만 함께 연주하는 음악이 조금씩 커다란 교실을 채워갔다.
연주하는 동안, 팔지는 건반을 누르면서 무심결에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시선이 마주치려는 순간, 팔지는 다시 피아노를 바라보며 건반을 두드려 마지막 고음으로 합주의 막을 내렸다.
여음이 감도는 동안 지휘관도 적절히 연주를 마무리했다. 창밖에서 서서히 바람이 불어오고, 황혼의 빛이 두 사람의 몸에 내리쬐는 것을 그대로 두었다.
몸을 돌려 말없이 지휘관을 바라본 팔지의 앰버색 눈동자에는 지휘관의 모습이 비쳐 있었다.
너 말이야.
남들이 깜짝 놀랄 일을 정말 잘하는구나.
지휘관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석양빛이 비치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성적인 자제력으로 팔지의 뒤에 서서 여운에 귀를 기울였다.
교가의 멜로디는 복잡하지 않았다. 팔지가 연주하는 음악은 조금씩 커다란 교실을 채워갔다.
모든 감정을 음악에 담아낸 팔지는 마음속으로 장거리 달리기를 시작하는 것 같았다.
온 힘을 다해 몰입하고 정신을 쏟아부은 팔지는 기억 속에서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모든 것들을 끄집어내는 듯했다.
다음 순간, 멜로디가 예상치 못하게 변조되면서 로봇 팔도 건반을 누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곡의 속도는 세 쌍의 손이 연주하면서 점점 더 빨라져 갔다.
지난 세월 속에서 새롭지만 혼란스러운 삶의 길을 개척하는 것처럼 들렸다.
이때 연주가 급박한 멜로디 속에서 갑자기 뚝 끊겼다.
팔지의 손가락은 더 이상 내려가지 않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피아노 치는 건, 나한테 아직 너무 복잡해.
하지만 네가 여기까지 내 연주를 들어줘서 고마워.
후... 좋아. 기분이 한결 나아졌어.
[player name] 동창.
해가 지기 전에 내 옛날 이야기를 더 들어볼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