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Affection / 팔지·회섬·그중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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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지·회섬·그중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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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송기가 인공섬의 품에 안기듯 착륙하자, 바닷바람과 꽃향기가 맞이해 줬다. 축제 스태프의 안내를 받으며, 팔지와 함께 해안가 거리의 출발점으로 걸어갔다.

여깁니다. 먼저 상황 설명을 해드릴게요.

스태프가 목을 가다듬고 시연용 태블릿을 꺼냈다. 장시간 설명이 이어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두 분이 앞서 동기화하신 건축 재료 주문은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수집한 내용에 따르면...

본론만 말씀해 주시죠.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어디인가요?

아... 네. 저희가 인력이 부족해서요. 두 분께서 이 물자들을 필요한 상인들에게 나눠주실 수 있을까요?

새로 포장된 길 위로 작은 수송 카트 두 대가 안정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수송 카트들은 이동과 정차를 반복했고, 카트 위에 쌓여 있던 물건들이 점차 줄어들자, 바퀴 구르는 소리가 경쾌해졌다.

길을 따라 있는 상점마다 물건을 받으며 감사 인사가 오갔고, 모든 이의 얼굴에는 기쁨 가득한 미소가 번졌다. 찬란한 햇빛이 거리를 비추자, 모든 것이 생기로 가득했다.

북적이는 거리 사이로 팔지가 걷고 있었다. 그녀의 발걸음이 너무나 가벼워 지휘관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라는 점만 제외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둘 사이의 간격이 계속 벌어지며, 팔지의 뒷모습이 아득하게 멀어져 갔다.

응? 무슨 일이야?

카트를 밀며 멀리 앞서가던 팔지는 지휘관의 목소리를 듣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따스한 햇살이 팔지의 그림자를 비추고 있었고, 그녀는 무척 기뻐 보였다.

열심히 쫓아오는 지휘관을 본 팔지가 발걸음을 멈추고, 미안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지휘관과 나란히 섰다.

미안. 조금 흥분했나 봐.

자, 이거 하나 줄게.

팔지가 카트에서 벚꽃 탄산수 하나를 꺼내 건네줬다.

아니. 놀라워서 그래.

얼마 전에 왔을 때만 해도 이곳은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곳이었거든.

경사로를 다시 나란히 걸으면서 팔지가 지휘관에게 멀리 내다보라고 눈짓했다.

지휘관이 서 있는 곳부터 지평선까지 화물차와 수송기가 오갔고, 이곳저곳에 흩어진 텐트와 집들 사이로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는 활기찬 풍경이 펼쳐졌다.

들판 위에 우뚝 서서 햇빛을 받고 있는 폐허가 된 도시가 수십 년의 기다림 끝에 마침내 주인들과 재회했다.

이렇게 북적거렸던 게 언젠지...

먼 곳을 응시하던 팔지는 말끝을 흐렸고, 바닷바람이 그녀의 은색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폐허뿐인데도 보고 있으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생동감이 느껴지는 게 정말 신기해.

… 음.

팔지는 지휘관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떠올린 듯 살짝 미소를 지었다.

방금 그 말이 정말 전설의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답네.

근데 내가 들은 소문으로는 뒤에 이런 말도 덧붙인다고 들었어. 내가 한번 따라 해볼게.

쿨럭... 하지만 아직도 우리가 해방해야 할 사람들의 집이 많이 남아있어. 이게 바로 우리가 계속 싸워야 하는 이유야.

동료한테 들은 거야. 그러니 그런 눈빛으로 보지 마.

저기... 카트에 있는 게 새로 들어온 물건인가?

난 모리타일세, 명단에 있는지 확인해 주겠나?

가판대 주인이 전자 서명을 하자, 구조체의 로봇 팔이 카트에 있던 마지막 짐을 들어 올리더니 가판대 옆에 안전하게 내려놓았다.

팔을 내리는 순간, 팔지의 시선이 가판대 주인의 호기심 어린 눈과 마주쳤다.

?

이 구조체를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혹시 정원 고등학교의 그 규율 위원이었던 적 없나? 이름이 팔... 팔찌였던가?

팔지. 그런데 누구야?

팔지는 의아한 표정으로 눈앞의 노인을 살폈다.

맞구나! 매점에서 일하던 모리타 아저씨야. 수요일마다 얼린 붕어빵 하나씩 남겨뒀잖아. 기억나니?

아! 모리타 아저씨구나!

지금은 모리타 할아버지란다. 하하하!

어. 공중 정원에 잘 알려지지 않은 맛집이 하나 있는데 다음에 꼭 데려가 줄게!

하하, 둘이 사이가 좋아 보이는구나. 팔지야. 이 지휘관은 네 친구니?

응. 절친이야.

잘 됐구나. 지휘관. 팔지는 정말 의리 있는 친구야.

예전에 매점에서 물건이 없어진 적이 있었는데, 팔지가 도와주겠다며 잠복근무를 정말 오래 했었어. 그러다 내가 졸려서 잠들려는 찰나에, 갑자기 팔지가 죽도를 들고 번개처럼 뛰쳐나갔어.

그러더니 도둑놈을 쫓아 운동장까지 내달렸지. 팔지가 당시 육상부 유망 선수라 쫓아가기는 식은 죽 먹기였거든. 그래서 금방 그 도둑을 잡을 수 있었어. 정말 대단했지.

모리타 아저씨! 그건 규율 위원으로서 당연한 일이잖아. 그만해—

아직 말 다 못했어. 그 도둑놈이 억울했는지 학교 밖 건달들까지 불렀었지.

그 건달들이 학교 밖에서 팔지를 둘러쌌는데, 결국 다 나가떨어졌지. 그러고는 앞으로 학교 근처에 오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했어. 결국 그 도둑놈은 처분을 받고 전교생 앞에서 팔지에게 공개 사과까지 하게 됐다니까!

쿨럭... 다 옛날 얘기야.

하하하, 넌 별로 변하지 않았구나. 여전히 그때처럼 자신감 넘쳐 보여.

쿨럭쿨럭. 됐다. 됐어. 또 옛병이 도졌구나. 그만하자. 너와 이 지휘관은 아직 할 일이 남아있지?

이 늙은이 농담은 인제 그만 듣고 어서 가보렴.

응. 우리 있으니까 안심하고 축제를 준비해.

팔지야. 지휘관하고 재미있게 놀아!

물자 분배가 끝난 뒤, 지휘관과 팔지는 축제 거리 끝에 도착했다. 한 스태프가 수송 카트를 회수하며 현재 임무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지금은 급한 일이 없으니 두 분께 자유시간을 드릴게요. 필요하면 단말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이후 동료의 호출을 받은 스태프가 먼저 자리를 떴다. 다시 고요해진 분위기 속에서 팔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는 하늘 아래로 밝은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팔지가 살짝 고개를 들자, 빛이 콧등을 타고 흘러내리면서 아름다운 실루엣을 만들어냈다.

이제 뭐 할 생각이야,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

그럼, 나랑 학교에 한번 가볼래? 여기서 그리 멀지 않아서 걸어갈 수 있어.

학교에... 아직 남아 있는 물건들을 축제에 활용할 수 있을지도 몰라.

따라와. 이번엔 천천히 걸어간다고 약속할게.

학교로 향하는 길에서 이리저리 거리 풍경을 훑어보며 익숙한 흔적을 찾으려 했던 팔지는 지휘관보다 더 외부인처럼 보였다.

팔지는 걸으면서 손가락으로 새로 칠한 벽을 살며시 그으며 지나갔다.

손가락이 거친 벽면과 마찰하는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지금 둘 사이의 배경음이 됐다.

여기는 예전에 상업 거리였는데, 정말 번화한 곳이었어.

의류, 음식, 백화장...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여기 한 바퀴만 돌면 됐어.

이 자리는 원래 운동용품점이었는데, 동아리 친구들이 올 때마다 넋을 놓고 쳐다보기 일쑤였어.

어. 그때 우리는 이 거리를 따라 조깅 훈련을 했는데, 바로 여기가 시작점이었어.

그래서 다들 여길 꿈의 출발점이라고 불렀지. 이 길만 따라 달리면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거든.

걸음을 멈춘 팔지가 손의 먼지를 털어내고 바닥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아직 흰 선이 남아 있었다.

"동창아, 달려보자!"라는 육상부 구호가 난 정말 좋았어. 달리는 동안에는 모든 고민을 잊을 수 있었으니까!

여기가 출발선이야. 우리는 매일, 매년 이곳에서 출발했어.

팔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운동복을 입은 학생들이 옆으로 지나가며 시끌벅적하게 학교생활을 떠드는 환영이 보였다.

상업 거리를 지나 정원 다리를 건너면, 마지막으로 학교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어.

이 환영들은 팔지와 함께 견문을 나누며, 이곳에서 아름다운 청춘을 시작하려 하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퍼니싱이 폭발했어.

세월이 흘러 번화했던 거리는 색을 잃었고, 지휘관 앞에는 팔지 혼자만 남았다. 그녀의 그림자가 석양에 길게 늘어져 폐허의 그늘과 섞였다.

우리가 아무리 빨리 달려도 이 재난을 피할 수는 없었어.

팔지의 목소리가 조금씩 작아지더니 마지막엔 거의 속삭임처럼 들렸다.

응.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야.

팔지의 목소리가 버려진 거리에 울렸다. 그녀는 말을 이어가며 발밑의 출발선을 계속해서 왔다 갔다 했다.

팔지의 표정이 이별의 슬픔에 잠겨 있는 건지, 학창 시절의 즐거움을 떠올리는 건지 알 수 없이 복잡해 보였다.

멈춰버린 그 청춘을 되돌아본다면, 누구라도 슬픔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응?

지휘관의 말을 들은 팔지가 뭔가 생각에 잠긴 듯 저 멀리 내다봤다.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려면, 체력 훈련은 필수잖아.

?

의아해하는 팔지가 지켜보는 가운데 지휘관은 그 출발선 위에 섰다.

아? 뭐라고...

야!

육상부에선 내가 선두 주자였거든.

지휘관이 달리기 시작하자 팔지의 목소리에서 이전의 우울함이 사라지고 활기가 가득해졌다.

그러니 [player name] 동창, 날 따라와. 그리고 뒤처지지 마.

텅 빈 거리 위로 둘의 달리는 소리가 겹쳐서 울렸고, 기분이 좋으니 발걸음마저 경쾌해졌다.

팔지의 짧은 머리카락이 그녀의 달리는 동작에 따라 바람에 나부꼈고, 속도가 더해질수록 조금씩 더 휘날렸다

바람이 얼굴을 스치면서 모든 부담이 함께 사라졌다. 달리던 팔지가 지휘관 옆으로 다가와서는 손을 들어 어깨를 툭 쳤다.

팔지를 보려고 고개를 돌리자,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턱을 살짝 들어 올리더니 옆에 있던 잘 띠지 않는 길을 가리켰다.

지름길로 가자. 더 빨리 갈 수 있어.

보통 사람들은 이 길을 몰라. 따라와. 그리고 이제 속도 올릴 거야.

구조체가 지휘관의 앞을 지나가더니, 방향을 틀어 지휘관을 보호하듯 안쪽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로봇 팔 하나를 내밀더니 지휘관의 어깨를 격려하듯 툭툭 쳤다.

속도 좋데, [player name] 동창.

이쪽으로 가.

발밑 조심해!

멀리 보이는 거리 풍경이 점점 선명해졌다. 팔지는 여유롭게 앞에서 달리면서 때때로 뒤돌아 지휘관의 위치를 확인했다.

이 자동판매기는 아직도 있네. 예전에 맨날 여기서 벚꽃 탄산수 하나씩 샀었는데.

쉬고 싶어? 난 언제든 괜찮아.

거의 다 왔어. 내가 다른 지름길로 데려갈게.

봐. 저기가 정문이야.

근데 우린 저기로 안 갈 거야.

너 학교 다닐 때 담 넘어본 적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