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Affection / 테디베어·해영·그중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

테디베어·해영·그중 다섯

>

층적운이 낮게 드리워져 하늘이 산맥을 짓누르는 듯했다. 수송차가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리자, 테디베어는 덜컹거리는 차에 몸을 맡긴 채, 꾸벅꾸벅 졸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인간은 테디베어의 머리가 차창에 부딪히기 직전, 재빨리 손을 뻗어 소녀의 이마를 받쳐주었다.

응?

의식의 바다에서는 "사이버 독버섯"이 백그라운드에서 떠올리기 싫은 기억 데이터를 끊임없이 들춰내고 있었고, 일부 연산 능력은 멋대로 디어베어의 의식 시뮬레이션을 유지하는 데 쓰이고 있었다. 어젯밤의 분해 연산은 그야말로 사서 한 고생이었다.

괜찮아... 어젯밤에 전해액을 너무 많이 마셨나 봐.

인간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의식의 바다에 감돌던 피로감이 신기하게도 가시는 듯했다. 테디베어는 고개를 숙이며 피식 웃었다.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로 때문에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도 점점 많아졌다.

인간은 구조체의 미소를 보고 안심하며, 어제 미처 듣지 못했던 대답에 대해 다시 물었다.

쉽게 말해 센서 같은 거야. 보통 악천후에서 주행을 보조하는 데 쓰이지.

머리는 또 왜 그렇게 잘 돌아가는데...

으...

조교석에 앉은 테디베어는 솜 빠진 곰 인형처럼 축 늘어져, 양옆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끌어모아 떼를 쓰듯 얼굴을 가렸다.

아니, 그럼 그 상황에서 나더러 어떡하라고... 어차피 이미 떼버렸는데.

그래서, 뭐... 어쩔 건데...

의식의 바다 깊은 곳에서부터 희미한 진동이 퍼져나갔다. 무릎을 작은 망치로 치면 저절로 다리가 튀어 오르듯, 소녀는 자기도 모르게 말을 내뱉었다.

당장 차 세워. 공중 정원에 연락해서 이 여행을 그만둘래...

난 진심이거든... 됐다, 됐어.

인간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테디베어는 미간을 찌푸리며 작게 고개를 저었다.

흥... 자꾸 놀리면 선루프 열고 차 지붕으로 올라가 버릴 거야.

인간은 시스템에서 태풍 경로 예측을 꼼꼼히 확인한 뒤에야 안심했다. 남은 여정은 태풍의 영향이 거의 없는 곳이라, 심한 악천후를 겪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비가 꼭 온다는 법은 없잖아.

테디베어는 눈을 깜빡였다.

그 순간, 번개가 번쩍이며 테디베어의 옆얼굴을 비췄고, 뒤이은 천둥소리와 함께, 폭우가 성난 고양이 떼처럼 사정없이 차창을 할퀴어 댔다.

기상 예보에 따르면 태풍의 경로가 바뀌었다고 한다. 지나가야 할 길의 다리가 산사태로 무너지는 바람에, 둘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산길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지금 무슨 <재수 없는 테디베어> 같은 시트콤이라도 찍는 거야?

비록 태풍의 끝자락에 스쳤을 뿐이지만, 산간 지역의 폭우는 여정에 커다란 골칫거리를 안겨주었다.

수송차의 창문 발수 코팅은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었고, 실시간 노면 감지 시스템마저 고장 나 버렸다.

다시 한번 진흙탕에 빠진 뒤, 엔진이 마지막 비명을 내지르듯 몇 번 소리를 내더니, 이 낡은 수송차 역시 끝내 파업을 선언했다.

다리가 무너질 줄 누가 알았겠어. 이렇게 돌아오게 될 줄은 몰랐지.

일단 엔진부터 고쳐야 해... 계속 머물 순 없잖아.

테디베어는 차창에 엎드려, 도로 양옆의 위태로운 비탈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내가 내려가서 살펴볼게.

소녀는 이미 차에서 뛰어내려 빗속으로 달려 나갔다.

인간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차 문을 밀치고 테디베어를 따라나섰다.

인류 최고의 기술로 만든 구조체가 고작 이까짓 비바람에 벌벌 떤다면...

인류의 미래가 암담하지 않겠어?

오히려 네가 비 맞고 서 있다가 감기라도 걸리면 나만 귀찮아지잖아... 잠깐, 설마 그걸 노리는 건 아니지?

테디베어는 웃으며 눈을 깜빡여 빗물을 떨궈내고, 흠뻑 젖은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귀 뒤로 넘겼다.

일단 차로 돌아가 기다리고 있어, 금방 고칠 수 있을 거야.

너...

소녀의 얼굴에 못마땅한 기색이 스쳤다. 인간의 고집에 단단히 화가 난 듯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퇴역했어야 마땅한 이 수송차는 좀처럼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먼저 차에 들어가 있어... 계속 비만 맞지 말고.

다시 한번 해볼게. 다른 부분에 문제가 있는 걸지도 몰라...

인간은 테디베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어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내 인생의 골칫거리들은 이까짓 빗물보다 훨씬 지독했어. 내가 그런 거에 물러서는 거 봤어?

너...

테디베어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진짜로 화가 난 인간을 바라보며 당황해했다.

난 그냥... 네가 비 맞는 게 싫어서 그런 건데. 참... 내 맘도 몰라주고.

소녀의 고집스러운 목소리에는 좀처럼 보기 힘든 서운함이 묻어났다. 인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인간이 테디베어를 달래듯 머리를 쓰다듬으며 뺨의 빗물을 닦아주자, 소녀는 살며시 고개를 돌리며 눈을 감았다.

구름이 남긴 축축한 흔적이 제멋대로 눈가에 내려앉아, 마음속 젖은 상처를 감춰주었다.

인간이 엄지손가락으로 다정하게 눈가를 닦아 주자, 테디베어는 마침내 눈을 떴다.

안 돼.

여긴 암석으로 된 산이 아니야. 정확히 어떤 지질인지도 모르고. 산사태나 낙석 위험에 우리 목숨을 걸고 싶진 않아. 최대한 빨리 차를 밀어서 여기서 벗어나야 해.

하지만 네 말이 맞아. 우린 함께해야지.

정 그렇게 가만히 있기 싫으면, 같이 내려가서 차나 밀어.

테디베어는 마침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가 진짜 병에 걸리면, 내가 널 끝까지 책임질게.

[player name], 내가 잘 돌봐줄게.

구조체의 도움 덕에 차를 미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온몸의 무게를 싣자, 바퀴는 진흙탕 속에서도 안정적으로 나아갔고, 나란히 새겨진 두 줄기의 바큇자국이 그 뒤를 따르는 두 쌍의 발자국을 감쌌다.

마침내 둘은 위험한 산길을 벗어났고, 빗줄기에 가려졌던 앞길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소나기는 그치지 않았지만, 하늘은 수정처럼 파랗게 개어 있었고, 눈 부신 햇살과 무지개 사이로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아무리 지독한 현실주의자라도, 이렇게 운명처럼 주어진 선물 앞에서는 무지개 끝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덧없는 기대를 품게 된다.

마치 소녀의 애타는 바람에 화답하듯, 무지개 아래 화강암 절벽 위에 거대한 아치형 바위가 모든 이야기 속 약속을 지키는 오랜 친구처럼 조용히 서 있었다.

저쪽으로 가서 비를 좀 피하자, 지휘관, 안 추워?

바퀴가 진흙과 잡초를 깔아뭉개는 동안, 모든 좌절감은 어느새 축축한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심술을 부리던 운송 장비가 마침내 절벽 위로 "기어 올라왔을" 때, 아치형 바위는 석양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자연이 빚어낸 문을 통과하는 순간, 눈앞의 세상이 탁 트였다.

높은 절벽 아래, 드넓은 바다가 은빛으로 반짝였다. 수만 가닥의 은실이 하늘 끝에서 바다로 쏟아져 내렸다. 찬란한 빗줄기 속에서 석양빛이 장엄하고도 부드러운 붓 터치로,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캔버스를 금빛으로 물들였다.

묵묵히 기나긴 세월을 겪어온 아치형 바위는 마치 이 순간만을 위해 버텨온 것처럼, 존재하지 않은 운명을 대신해, 이 자리에 나타나 두 여행자를 포근히 감싸주었다.

흘러떨어지던 빛 또한 다행히 바다의 품에 안길 수 있었다.

응, 지난번에 컨스텔레이션 해변 휴가 말이야. 결국 휴가가 무산됐지만, 그때 가려고 했었잖아...

내가 원래 계획했던 그곳은 아니지만... 정말 아름다워, 지휘관.

인간의 옆모습이 석양빛 속에서 아련해졌고, 과거의 아쉬움도 그 아련함 속에 안개처럼 흩어졌다.

인간의 시선이 바다를 훑다가, 저 멀리 옅게 뻗은 흰색 띠에 머물렀다.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인간은 노선도를 꺼내 서둘러 몇 페이지를 넘기며 좌표를 재차 확인했다.

응?

구조체 소녀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이런 행운이 아무런 대가 없이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이 아직 믿기지 않는 듯했다.

비가 그치고 구름이 걷히자, 씻겨나간 하늘은 더없이 맑았다. 축축한 땅 위로 부드러운 빛이 감돌았고, 작은 물웅덩이들이 흩어진 별처럼 앞길을 비췄다.

테디베어

알겠어.

두 쌍의 손이 다시 차체 뒤쪽에 힘을 싣자, 파업 중이던 운송 장비는 천천히 경사로로 진입했고, 내리막의 관성을 받아 조금씩 속도가 붙었다.

삐... 심장이 다시 뛰는 듯한 미약한 알림음이 차 안의 제어판에서 울려 퍼져, 테디베어의 청각 모듈에 선명하게 잡혔다.

제어판에 꺼져 있던 표시등이 차례차례 켜지고, 다정하면서도 딱딱한 여성 전자음이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엔 마치 남의 불행을 고소해하는 듯한 기쁨마저 느껴졌다.

시스템 음성

동력 시스템이 복구되었습니다. 내비게이션 시스템이 활성화되어 자율 주행 모드로 전환합니다.

엔진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천천히 움직이더니, 이내 제멋대로 경사로 아래를 향해 달려 나갔다.

테디베어

...

여전히 차를 미는 자세를 유지하던 둘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말도 안 되는 황당함이 구조체 의식의 바다와 인간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테디베어

젠장!

분홍 머리의 구조체 소녀는 모든 체면을 내팽개치고, 깨어나자마자 "탈주"한 수송차를 향해 내달렸다.

소녀의 화난 듯한 외침은 점점 웃음으로 바뀌더니, 결국 숨이 넘어갈 정도로 크게 웃었다.

테디베어

뭐야, <재수 없는 테디베어>는 이미 끝난 거 아니었어?

테디베어

풉...

테디베어

하하하하.

구조체의 성능은 의심할 여지 없었다. 테디베어는 금세 차를 따라잡아, 몸을 날려 차 뒤쪽 범퍼를 짚고는 능숙하게 차 지붕 위로 올라탔다.

테디베어

지휘관!

소녀는 아직 달리고 있는 인간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석양빛마저 그녀를 위해 쏟아지는 듯했다. 옅은 금빛이 테디베어의 등 뒤에서부터 뿜어져 나와 지나온 길을 환히 밝혔다.

인간의 손이 테디베어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다. 구조체 소녀가 힘껏 몸을 뒤로 젖히자,

인간은 운송 장비의 관성을 이용해 가볍게 뛰어올라 그녀의 곁으로 쓰러지듯 안착했다.

인간이 팔을 짚고 몸을 일으키자, 그 아래로 석양빛에 반짝이는 분홍 머리칼과 함께 테디베어의 미소가 보였다.

그 순간, 수송차는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구불구불한 해상 도로 위로 올라섰다. 하늘과 바다가 하나가 된 물의 거울 위에서, 차가 그리는 파도의 흔적만이 유일하게 춤추는 악보 같았다.

온 하늘의 노을이 끝없는 바다 위에 내려앉았다. 바다에 비친 하늘은 찬란하게 불타는 구름바다를 떠받치고 있었다.

차 뒤편에서 일어나는 파도는 흰 면사포 자락처럼 흩어졌고, 쉴 새 없이 철썩이는 파도 소리는 석양과 수평선을 향해 달려가는 악장을 연주하며 하늘 끝으로 아득하게 퍼져나갔다.

지금이야말로 무언가 말해야 할 때였다.

테디베어

지휘관, 나...

인간의 얼굴이 소녀의 눈동자에 비쳤다.

타다닥...

억눌렀던 마음이 턱밑까지 차오른 순간이었다.

빗속에 물든 노을, 푸른 바다 위 무지개, 그리고 이 순간 찾아온 기적 같은 우연. 이게 신의 계시도 예언도 아니라면, 그럼 대체 뭘까?

양자적 무작위성 때문에 우주는 완전한 결정론도, 완전한 불가지론도 아니다. 그저 물리 법칙의 제약 속에서 확률적으로 진화할 뿐이다. 그리고 바로 그 관대한 확률이, 소녀에게 이토록 완벽에 가까운 순간을 선물했다.

물리학의 관점에서 "운명"이란 확률운에 가깝다. 하지만 그 안의 무작위성과 불확실성 때문에, 언제나 자신의 길을 선택하고 수정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

(선택하기만 한다면...)

타다닥...

테디베어는 그 우스꽝스러운 인형이 나타나, 또다시 실없는 소리로 자신을 막아서길 조용히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도 그녀를 막지 않았다. 더는 자신의 마음을 외면할 이유가 없었다.

지휘관, 나...

바로 다음 순간, 의식의 바다 깊은 곳에서 무거운 망치가 평온한 수면을 내리쳤다. 연이어 퍼지는 진동에 테디베어의 눈시울이 시큰거렸다.

아무것도 아니야.

도착했어.

심장이 있어야 할 자리는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종점 표지판이 시야를 스쳐 지나갔다. 석양은 바닷속으로 잠기고, 짧았던 해상 도로도 곧 끝을 맞이하려 했다. 계획했던 씨 솔트 빌리지가 저 앞에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