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키스크는 유일한 "인간"을 위해 어디선가 트레일러가 달린 전기차를 구해와 지휘관과 테디베어를 태우고 출발했다.
전기차의 트레일러는 작아서, 지휘관과 테디베어는 꽉 끼어 앉아야만 했다.
헤드폰 하나 얻으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테디베어는 미간을 찌푸리며 단말기를 클릭했다.
생각해 보면 노르만 가인 테디베어는 악기 몇 가지쯤은 잘 다룰 것만 같았다.
다룰 줄 아는 악기가 무엇일까? 피아노? 바이올린? 아니면 클라리넷?
테디베어가 우아한 예복을 입고 무대에서 억지 미소를 지으며 연주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왠지 웃음이 났다.
머릿속 이상한 상상은 집어치워.
내가 바로 그 어떤 악기도 다룰 줄 모르는 테디베어야.
들어본 적은 없지만, 테디베어가 의외로 노래를 잘 부를지도...
유감이지만, 난 음치야.
무표정한 테디베어가 단말기에 코드를 입력했다. 그리고 잠깐 머뭇거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내가 시도해 본 건 아닌데... 흠.
누구한테도 말하면 안 돼.
내가 예전에 몇 곡 녹음해 보려고 한 적이 있었어. 그런데 시작 부분은 음을 잘 맞춰 가다가, 중간쯤부터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 버리더라고.
발성 모듈에 문제인가 싶어서 여러 번 점검해 봤지만, 아무런 오류도 찾을 수 없었어.
저기. 너의 웃음소리 다 들린다고.
꿈 깨. 노래하는 모듈은 이미 휴지통에 버렸거든. 그래서 이 세상 누구도 들을 수 없어.
악기 연주도 못하고, 노래 부를 계획도 없다면...
당연히 다른 방법이 있군. 예를 들어... 네가 무대에 올라가서 노래하는 건 어때?
예전에 파오스 졸업곡을 따라 부른 적은 있지만, 그건 단체 합창이라, 입만 벌려도 잘 넘어갔거든.
지휘관은 제한적이긴 하지만 노래한 경험이 있긴 했다. 하지만 저 각성 로봇이 만든 긴 "메들리"를 이길 자신은 없었다.
농담이야. 네가 노래하라고 시키지 않을게.
지휘관은 테디베어가 매일 큰 헤드폰을 끼고 다녀서 그녀 안에 음악이 흐르고 있는 줄 알았다.
명문가라고 다 우아한 예술을 배우지 않아. 그리고 헤드폰 끼고 있다고 다 음악을 듣지는 않아. 대체 이게 무슨 고정관념이지.
나에 대해 이상한 고정관념을 또 가지고 있는 건 아니지?
진짜?
예를 들어, "분홍 머리는 날라리에 행동이 불량하다" 같은 거 말이지.
정말? 못 믿겠는데.
공중 정원 포럼, 정비 부대 게시판에서 봤어.
너도 계정 있잖아? 공중 정원 포럼을 못 봤을 리 없을 텐데.
알았어. 정비 부대 게시판은 잘 보지 않나 보네.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은 그렇게 바빠?
고정관념 얘기하니까 생각났는데.
게시글에서 봤어. 예술 협회가 "그레이 레이븐 소대 지휘관의 초상화"를 공모한 적이 있었는데, 누군가가 머리 3개, 팔 6개를 그렸대. 그리고 또 누군가는 키를 5.1미터로 그렸다던데.
또 누군가가 그러던데,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은 지상 임무를 수행할 때 침식체를 맨손으로 찢어버리고, 이합 생물을 발로 차서 제거하며, 승격자와는 1대1로 싸울 수 있다고 말이야.
터무니없는 얘기가 아직 더 남았는데, 겨우 여기서 멈춰?
그때 전시회 사진도 단말기에서 찾았는데, 볼래?
히히, 농담이야.
의외로 잘 속이네.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
어쨌든, 그런 것도 다 이상한 고정관념이다.
사람들이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전투 중에 슈퍼 토네이도로 변신하고, 케르베로스 소대는 진짜로 머리가 셋 달린 개 로봇으로 변신한다고 말했어.
그러니까 고정관념으로 판단하지 말라고.
테디베어는 단말기를 두드리면서 고개도 들지 않았다.
음... 너를 겨냥한 건 아니야. 그냥 재료 좀 모으고 있었어.
흠, 별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맘대로 해.
테디베어는 자신을 믿든 말든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게슈탈트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는, 지휘관과 테디베어는 접촉한 적이 거의 없었다.
정비 부대 부대장인 테디베어는 평소 조용히 행동했기 때문에, 지휘관은 카레니나나 다른 정비 부대 대원을 통해 테디베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초대장"을 분석하게 된 것도 아시모프의 추천 덕분에 알게 된 것이었고, 그때 정비 부대에 이런 기술 천재가 숨어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많이 접할 기회는 없었지만, 모두가 테디베어를 언급할 때면 하나같이 신뢰할 수 있는 부대장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자주 전장에 나서지는 않지만, 후방에서 테디베어가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모두가 안심할 수 있었다.
황당하게 누가 그런 이상한 평가를 한 건가.
방금 너를 머리 3개에 팔이 6개가 달렸다고 말한 것에 대해 복수하는 거야?
흥, 아니면 됐어.
보아하니... 다른 이들이 너에 대한 평가도 사실인 것 같네.
안 가르쳐줘.
수많은 코드가 단말기 스크린에 빠르게 올라가면서 복잡한 명령어를 형성했다.
응? 아니, 이건 일이 아니야. 그냥 작은 합성 프로그램일 뿐이지.
분해하고, 합성했다가, 다시 조립하는 거.
됐어. 다 했어.
지휘관에게 말을 걸면서도 테디베어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마지막 문자를 입력했다.
그럼, 뭘 더 기대한 거야?
마지막 문자를 입력하면 단말기가 폭발하거나, 하늘에서 데이터 유성이라도 내리길 바란 건가?
지휘관은 열심히 일한 후에 트럼펫을 부는 작은 곰 같은 것이 나타나 축하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너에 대한 고정관념도 수정해야겠어.
어쨌든, 이번 대결은 나한테 맡겨 줘.
우리가 반드시 이길 거야.
키스크는 지휘관과 테디베어를 전기차에 태우고 컨스텔레이션에서 아직 탐사되지 않은 구역에 있는 반지하의 전시관으로 들어갔다.
원래는 여기가 저희 연습실이었어요.
문밖에는 "선더 스파크" 밴드를 상징하는 표식에 X표가 크게 그려져 있었고, 대신 그 자리를 다른 복잡한 기호가 차지하고 있었다.
바로 저들이에요. 어비스 레이지.
키스크가 문 옆에 있는 빈 깡통을 발로 찼다.
키스크... 너도 왔냐?
다른 방향에서 꼬마 로봇이 전기차를 몰고 도착한 뒤, 차에서 뛰어내렸다.
샘... 난 우리의 패배를 인정 못 해!
내가 누구를 데려왔는지 봐! 바로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님이야!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님이라니! 이번엔 우리가 승리할 거야!
푸흡.
지난번엔 "메들리"의 길이와 폭에서 어비스 레이지에게 졌지만, 이번엔 우리가 이길 거야!
이길 수 있어! 우리에겐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님이 계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