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팔에 안긴 라미아는 상대방의 팔을 꼭 껴안았다.
절 내려놓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저를 데리고는 멀리 도망가지 못해요.
제 몸무게도 만만치 않으니까요.
(이럴 줄 알았으면, 부유로 중력을 상쇄하지 않는 건데...)
멈춰! 움직이면 쏜다!
라미아는 자신을 안아 올린 인간의 어깨 너머로 뒤를 돌아봤다. 총을 든 주둔지 초병 3명이 뒤에서 쫓아오고 있었다.
추격병들은 쏜다고는 했지만, 발밑의 나무뿌리나 미끄러운 이끼 때문에 정조준하지 못했다.
게다가 추격 대상이 자주 방향을 바꾸며 큰 나무들 사이로 몸을 숨기고 있었다.
나무들이 계속 후퇴하는 것을 보며 라미아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왜 이런 일에 말려들게 된 거지!)
상황이 이렇게 된 건, 몇 시간 전 일이었다.
울음 소동이 있었던 후,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은 더 이상 라미아를 심문하지 않았다.
대신 주둔지에 라미아의 업무를 돕겠다고 신청했다.
게으름을 피우려고 했던 라미아는 속으로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건 하루 할 일을 1시간 만에 끝냈기 때문이었다.
참다못한 라미아가 부탁 아닌 부탁을 한 뒤에야,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도 게으름을 피우는 데 동참했다.
며칠 동안 지내다 보니 지휘관도 라미아가 주둔지의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어, 조금씩 경계심을 풀었다.
라미아도 자신이 엿들은 많은 것들을 인간에게 알려줬다.
가짜 신분으로 위장한 라미아와 지휘관은 묘한 동질감을 형성했다.
처음부터 이렇게 해야 했는데...
주위에 다른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한 지휘관이 라미아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뭔데요?
……
(그건 나도 알아. 내 목적이 바로 그거니까.)
(이 시기에, 이 말을 꺼낸다는 건... 설마...)
라미아는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럴 줄 알았어!)
네?... 도망이요? 왜 도망을 가요?
안전이요? 여기에서 위험한 일이 발생하나요?
인간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믿지 않는다고 하면, 그동안 했던 행동이 의심스러워지겠지? 좀 후회되는데.)
라미아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밖에서 지휘관을 몰래 처리하거나, 일부러 잡혀야겠어.)
그렇게 생각한 라미아는 앞에 있는 인간에게 잠깐 동정심이 생겼다.
(다시 잡히면 분명 힘들겠지? 그때 지휘관을 좀 도와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네. 좋아요.
밤이 되자 라미아와 지휘관은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제야 라미아는 지휘관이 초병들의 순찰 경로와 사각지대를 모두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에 여러 구역을 옮겨 다니며 일한 것도 지형을 파악하기 위해서였구나?)
(도망치려 했다면, 왜 여기로 온 걸까?)
라미아가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앞서가던 사람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상대방은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펜치를 꺼내, 길을 막고 있던 철망을 잘라냈다.
(어. 여기엔...)
누구야!
발각됐어요!
라미아가 마음속 기쁨을 억누르며 말했다.
먼저 가세요. 저는 제대로 달릴 수 없어서 짐만 될 뿐이에요.
(빨리 가. 네가 가면 나도 들킬 위험을 무릅쓰고 널 처리하지 않아도 되니까.)
라미아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가 자신을 들어올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지휘관이 라미아의 허리를 감싸안아 올리더니, 안정감 있게 팔에 안았다.
아...
반사적으로 지휘관의 팔을 잡은 라미아는 상대의 품에 안겼다.
멈춰!
지휘관의 등 뒤에서 총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야간 투시 장비가 없는 초병들은 시야가 제한된 상태여서 목표를 정확히 맞출 수 없었다.
지휘관은 라미아를 안고 놀라운 속도로 가까운 숲을 향해 달려갔다. 그들의 뒤를 쫓는 추격병은 서너 명에 불과했다.
(왜 하필 이럴 때 영웅 행세를 하는 거야.)
관망하던 라미아는 인간의 팔을 더 세게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다시 현재로 돌아왔다.
아무리 지휘관이라도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이었다. 난민 주둔지에서 잠복하면서 힘든 육체노동을 하면서도 제대로 된 식사를 한 번도 하지 못했다.
반면 초병들은 일상 순찰 외에 힘든 육체노동을 거의 하지 않았고, 음식도 선점할 권리가 있었다.
조준을 피하고자 자주 방향을 바꾼 것도 체력 소모가 심했다. 그로 인해 이 지구력 싸움에서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은 조금씩 열세에 처하기 시작했다.
절 내려놓으세요. 이러면 당신도 도망칠 수 없어요.
라미아는 가까운 거리에서 지휘관의 얼굴을 바라봤다. 붕대는 이미 땀에 완전히 젖어 있었고, 땀에 젖어 뭉친 머리카락이 관성에 의해 뒤로 날아갔다.
인간의 숨결이 라미아의 뺨에 닿았다. 그리고 뜨거운 온도는 상대의 고된 피로를 그대로 전해주고 있었다.
왜 그냥 포기하지 않으세요.
(왜 나 같은 사람 때문에...)
저희 때문에요?
라미아는 낮은 목소리로 되뇌었다. 그 말속에는 이해할 수 없는 혼란과 묘한 떨림이 담겨 있었다.
쓸모없는 아이에게 관심을 주는 이도 있는 건가?
하지만 라미아를 안은 인간에게는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저... 저 녀석 얼마 못 갈 것 같아! 좀... 조금 더 힘을 내.
추격병의 목소리도 헐떡이고 있었지만, 거리는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관목 숲을 넘은 인간의 앞에 나타난 건...
하하하. 제 발로 막다른 길로 도망친 거냐?
앞에는 절벽이었고, 아래에는 세차게 흐르는 바닷물이 있었다.
(이번 임무는 실패했어. 그냥 바다로 도망가자.)
뛰세요! 망설이지 말고... 엇!
라미아는 자신을 안고 있는 인간이 멈출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인간은 멈추기는커녕 돌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라미아의 말을 들은 지휘관이 이상하다는 듯이 라미아를 쳐다보고는 힘차게 뛰었다!
으아악!
갑작스러운 무중력에 놀란 라미아는 크게 소리 지르며 지휘과의 팔을 꽉 끌어안았다.
라미아가 위장을 해제하려던 찰나, 부드러운 감촉이 라미아와 지휘관을 들어 올렸다.
(그물?)
라미아와 지휘관이 그물에 떨어진 그때, 절벽 위에서도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너흰 누구야!
아아아아!
곧 사방이 조용해졌다.